경제학/경영학 분야

케일럼 체이스의 <경제적 특이점이 온다(The Economic Singularity)>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2-12 14:53
조회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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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케일럼 체이스(Calum Chace) 

역자: 신동숙

출판사: 비즈페이퍼(2017)

 

차례

1장 자동화의 역사

2장 이번에는 다를까?

3장 타임라인

4장 해결해야 할 문제

5장 시나리오

6장 요점과 권고사항

 

 

파괴적 혁신과 특이점

4차 산업혁명은 20161<세계경제포럼>, 일명 다보스 포럼에서 처음 사용된 후 지금은 이 시대를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3차 산업혁명과 제4차 산업혁명을 나누는 기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다보스 포럼의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저서 4차 산업혁명에서 밝혔듯이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공학, 합성생물학 및 나노기술 등 다양한 기술의 융합(fusion)과 수렴(convergence)을 특징으로 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로 인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이루어 질 것이며, 그 결과 사회와 경제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이 변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가 특이점(singularity)이다. 이것은 물론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을 의미한다.

 

특이점은 수학에서 함수값이 무한대로 수렴하는 불연속적인 점이나 물리학에서 블랙홀의 중심부와 같이 중력이 무한대로 커지는 점을 의미하는 과학 용어다. 따라서 특이점에서는 기존의 수학법칙이나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이런 특징을 기술적 변화에 적용한 것이 기술적 특이점으로서 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이 처음 사용했으며 이후 버노 빈지(Vernor Vinge)가 이어받아 특이점의 가능성을 경고했다.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에 맟춰 이 개념을 대중적으로 알린 사람은 발명가이자 인공지능 전문가인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다. 그밖에 커즈와일과 함께 2008년 싱귤레리티 대학교(Singularity University)를 설립한 피터 디아만디스(Peter Diamandis)도 특이점의 도래 가능성을 믿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책의 저자 케일럼 체이스 또한 이들과 같은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커즈와일의 예측대로 2029년경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 즉 범용인공지능(AGI)가 개발될 것이며, 2045년경에는 모든 인간의 지능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우월한 지능을 가진 초인공지능(ASI)이 출현함으로써 기존의 제도와 법칙이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이는 빅뱅 최초의 순간에는 알려진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을 지난 블랙홀의 내부 또한 물리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확대 적용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한다면 인류사에서 가장 커다란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조만간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할 것인가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혁신의 지속 가능성에 달려 있다 하겠다. 커즈와일이 예상하는 대로 2045년경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할지는 그가 주장하는 수확가속법칙(law of accelerating returns)의 성립 여부에 달려있다. 이것은 흔히 거론되는 기하급수적 성장(exponential growth)의 다른 이름이다. 반도체의 성능이 18개월마다 두 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의 법칙(Moore’s law)이 대표적인 사례다. 무어가 이 법칙을 거론한 것이 1965년이니 벌써 55년이 지났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기하급수적 성장의 위력을 설명한다: 지수곡선의 위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이어지지 않는다.......그러나 기하급수적 증가가 여러 단계에 걸쳐 지속될 때도 있는데, 우리 인체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인간의 신체는 27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포들은 분열을 통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들을 만들려면 46단계의 세포 분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와 비교하면 무어의 법칙은 50년 동안 지속되어오면서 지금까지 33단계를 거쳤다.”(118)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무어의 법칙에 따라 그 동안 컴퓨터의 성능은 233 = 8,589,934,592 배 향상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이다. 그런데 최근 컴퓨터업계에서는 무어의 법칙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보지만, 커즈와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무어의 법칙은 단순히 반도체에 한정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네트워크장비를 비롯해 정보기술 전반에 적용될 수 있다고 보며 앞으로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심지어 그는 저서 마음의 탄생에서 정보기술은 지구에 국한되지 않고 은하계로 나아가 우주 전체로 확대·적용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분히 과장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정보기술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그의 믿음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믿음을 갖고 있기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냉소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런 과감한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조금도 양보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2045년까지는 25년이 남았으니 그의 주장대로라면 컴퓨터의 연산 속도나 정보처리 속도가 지금보다 214= 16,384배 향상될 것이다. 이런 기술적 성장을 바탕으로 과연 그의 예상대로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할 것인가?

 

커즈와일이 이런 주장을 폈을 때 가장 먼저 비판한 사람으로는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Paul Allen)을 들 수 있다. 그의 비판의 핵심은 커즈와일이 예상한 시점까지 인간의 두뇌에 대한 연구는 충분한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앨런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앨런 뇌 과학 연구소(Allen Institute for Brain Science)는 두뇌 연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기에 이런 주장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간의 두뇌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조만간 인간의 두뇌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도달하기는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뇌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위해서는 뇌에 존재하는 신경망 전체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미국이 진행하고 있는 뇌 역설계 연구와 유럽연합이 독자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뇌 시뮬레이션 연구가 종료되려면 아직 멀었다. 이런 연구를 통해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조직인 인간의 뇌 신경망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이루어진다면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기술적 특이점의 가능성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커즈와일은 과거 게놈 프로젝트가 초기에는 지지부진하다가 정보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계획보다 조기에 완료된 사례를 강조한다. 이 경우에도 수확가속법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전반적인 성능 향상을 위해 실리콘이 아닌 다른 재료를 이용한 컴퓨터를 개발한다거나 전혀 새로운 방식의 양자컴퓨터를 실용화하는 연구가 상당히 진행되었기에 무모한 발상이라 하기 어렵다. 결국 기술적 특이점은 커즈와일이 주장하는 수확가속법칙이 계속 성립하는지 여부에 달려있다.

 

경제적 특이점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하려는 것은 기술적 특이점이 아니라 이보다 먼저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적 특이점(economic singularity)이다. 그렇지만 경제적 특이점의 원천이 기술적 특이점이므로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두 개의 특이점이다. 앞으로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굳이 이것을 경제적 특이점이라 명명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자칫하면 진지한 논의보다 감상적인 논의로 흐를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용어에 대한 논의로 인해 초점이 흐려지면 본질에 대한 논의는 퇴색하게 된다.

 

어쨌든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 특이점은 그야말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런 변화 가운데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가장 심각한 것은 일자리 문제다. 과거 기술혁신으로 기존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면서 총체적으로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러면 이번에는 다를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계속해서 풍요가 격차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다시 말해 미래에는 절대적으로 풍요가 자리를 잡아서 개별 구성원들이 대단히 부유해지고, 모두가 부족함이 없는 삶을 누릴 것이므로 경제적 불평등 문제가 비교적 안 드러나게 될까? 저자들에 따르면, 현재 상황으로 미루어볼 때 그렇지 못할 것이다. 마틴 포드와 마찬가지로 브린욜프슨과 맥아피 역시 미국 중산층이 경제적으로 퇴보하고 있으며, 이를 시정할 조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59)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MIT 경제학 교수로서 인공지능이 일자리에 미치는 연구를 많이 했으며 미래학자 마틴 포드는 저서 로봇의 부상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자동화로 인해 일자리가 소멸할 것으로 전망했다. 저자가 이들의 연구를 인용한 것은 저자도 이들과 같이 일자리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특이점의 핵심은 일자리 문제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것은 곧 자본주의 자체의 존립과 연결된다. 자본주의는 자본과 노동의 분리와 분업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 가운데 상당 부분이 자동화됨으로써 노동의 역할이 사라진다면 자본주의 자체의 존립이 문제가 될 것은 분명하다. 과거에는 인간을 보조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공학으로 대표되는 지금의 파괴적 혁신은 인간의 지능과 의사결정 능력 자체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런 이유로 일자리 소멸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결국 파괴적 혁신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일자리가 새롭게 창출될 것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문제다.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소멸이 확실시되는 분야는 운송 분야다. 승용차와 화물차를 막론하고 자율주행차량이 상용화된다면 수많은 운전자들은 일자리를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차량 공유제를 실시하려는 데도 기존 운전자들의 저항이 상당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과연 자율주행차량의 도입에 대한 저항이 어떤 사회적 갈등을 유발할지 짐작하기조차 두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량 사고로 전 세계적으로 연간 120만 명이 사망하고 2,000~5,0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부상을 입는다고 한다. 시험주행 통계자료에 의하면 사망과 사고를 90% 이상 줄일 수 있다니 자율주행차량은 결국 도입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미국의 사례에 근거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운전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경우만 따지더라도 트럭기사가 약 350만 명, 버스 기사가 65만 명, 택시 기사가 23만 명이나 된다. 그렇다면 이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177)

 

일자리와 관련해 최초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옥스퍼드 마틴 스쿨(Oxford Martin School)의 연구원인 경제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와 기계학습전문가인 마이클 오스본(Michael Osborne)2013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이들은 자동화가 될 확률이 높은 702가지의 직업에 순위를 매겨, 과학기술 혁신이 실업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을 수치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미국 내 모든 직업의 약 47퍼센트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들의 연구를 지지하는 전문가 설문조사와 연구가 잇달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사용한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2018일의 미래에 관한 <세계경제포럼(WEF)>의 예측에 의하면 2022년까지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75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133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58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이 보고서의 내용은 일자리 소멸을 우려하는 우울한 전망과 상충된다. 또한 세계적인 IT 컨설팅 기업인 <가트너(Gartner)>는 인공지능은 단기적으로 2020년까지 1.8백만 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반면, 2.3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WEF와 대동소이한 예측이다. 또한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GI)>도 비교적 낙관적인 일련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소가 20186월에 발표한 <인공지능과 자동화 및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 추세로 인해 2030년까지 완전 자동화되는 직업은 전체의 5퍼센트 정도에 그칠 것이며, 60퍼센트의 직업은 직무 면에서 30퍼센트 정도 자동화될 것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완전자동화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보다는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이유로 이 보고서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감소하는 일자리보다는 늘어나는 일자리가 더 많은 것이라는 낙과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와 같이 일자리 관련해서는 낙관적인 견해와 비관적인 견해가 공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경제포럼>의 의장을 맡고 있는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저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더 넥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낙관적으로 말했다:우리는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의 부는 더욱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고, 사회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할 사회적 신뢰기구가 다시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들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것이고 지속가능한 환경 속에서 더욱 의미 있고 성취감 있는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의 낙관적 예상과는 달리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슈밥은 개별 국가를 비롯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적절한 거버넌스 (governance)를 확립함으로써 인공지능 중심으로 하는 파괴적 기술로 인한 일자리 문제 등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이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혁신인가 하는 문제다.

 

한편 일자리 관련해 여러 전문가들이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분야가 있다. 다름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이나 인공지능 기술과 같은 고급 숙련 기술을 소지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임금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누구라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많은 일자리가 자동화되면 고급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다수의 사람들이 특별한 기술을 요하지 않으면서 여전히 자동화하기 어려운 일부 분야로 몰리게 된다. 이로 인해 이들의 임금은 만성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소수의 고급 인력과 대다수의 쓸모없는 계층(useless class)이라는 양극화는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소득불평등의 악화로 이어진다.

 

필자는 여기에 덧붙여 금융자본과 기술의 담합이 더욱 공고해 질 것을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실물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금융자본의 위력은 앞으로 더욱 강력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을 비롯해 대부분의 국가에서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사실과 금융자본의 규모가 훨씬 더 커졌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나아가 금융자본은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향후 글로벌 경제를 주도할 인공지능 기술, 로봇공학, 생명공학 및 나노기술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금융자본과 기술혁신은 담합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은 극소수의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s)는 저서 자이언트에서 이 점을 상세하게 분석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막대한 금융자본을 운영하는 파워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비정부조직과 군사보안조직 그리고 미디어 조직의 상부에 있는 소수의 파워 엘리트들이 견고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자본의 지배를 더욱 강화할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다. 그가 밝힌 바에 의하면 금융자본의 경영자, 조력자, 수호자 및 이념가로 분류된 네 집단에 속한 최정예 파워 엘리트는 고작 389명이라는 것이다. 필립스 교수는 이들 소수 세력은 자본에 일정한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할 정도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테러와의 전쟁이나 이라크 침공 등은 모두 이들의 영향력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영화 <바이스>에서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듯이 2003년 당시 미국 부통령 딕 체니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작해 결국 이라크 침공을 단행한 것도 이들 세력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이들의 지배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경제적 특이점과 관련해 저자가 이 책에서 강조한 부분은 이른바 타임라인으로서 앞으로 언제 어떤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거시적인 예측이다. 이것은 과학이라기보다는 예술의 영역이다. 그 만큼 객관적인 예측이 어렵다는 의미다. 어쨌든 저자는 2021, 2031, 그리고 2041년을 기준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시도한다. 2021년은 바로 내년이므로 사실상 지금과 별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전문가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2021년 기준) 자동화가 기술적 실업으로 이어질 것인지 여부를 놓고 언론에서 대단히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지만, 그렇더라도 아직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을 포함해 기술적 실업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수가 긍정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252)

 

이 단기 예측은 부분적으로는 맞고, 부분적으로는 틀린다. 자동화로 인해 기술적 실업이 확산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것은 맞지만 많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는 점에서는 맞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아직 이 논의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대체로 직무 분석의 관점에서 볼 때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가 소멸되는 일자리를 능가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의 기사에서도 이런 내용을 다루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경제학자들이 여전히 기존의 방법을 이용해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긍정적인 예측을 내놓는 것으로 판단한다. 미래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기 때문에 복잡계 이론의 관점에서 예측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선형적(linear) 사고에 근거하고 있는 경제학자의 예측은 비선형적(non-linear) 행태를 보이는 복잡계를 분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기하급수적 기술혁신 자체가 비선형적이라는 사실로 인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이 점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 저자는 2031년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예측한다. 실제로 여러 기관에서도 2030년 무렵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 것으로 볼 때 이 시점이 중기 예측을 위한 적절한 시점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 같다. 예컨대 앞서 언급했듯이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2030년까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감소하는 일자리보다는 늘어나는 일자리가 더 많은 것이라는 낙과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 밖에 2030년까지 인공지능이 세계 GDP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면서 대체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예측과는 반대로 상당히 부정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즉 이 무렵에는 이미 기본소득에 대한 격렬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본다. 이것은 대다수가 쓸모없는 계층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암울한 시나리오인데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2031년 기준)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민 대다수가 경제의 특이점이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머지않아 소수자 집단 대다수가 영구적으로 실업자가 될 것이므로 보편적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많은 도시와 몇 개 국가에서 진행된 실험에 따르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약에 빠지거나 자포자기하지 않지만, 소수 집단 사람들 중 상당수는 도움이 필요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편 보편적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259)

 

레이 커즈와일에 의하면 2031년은 이미 범용인공지능이 등장한 시점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커즈와일의 예측을 상당히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일자리 대부분을 대체할 정도의 수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보편적 기본소득이 과연 일자리 소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인지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재원도 문제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고려할 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일을 하면서 자유롭게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존재다. 단지 기본소득으로 겨우 생존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사회가 해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음 저자는 2041, 즉 커즈와일이 예측한 기술적 특이점의 시기에 근접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041년 기준) 몇몇 국가의 정부와 유권자들은 경제의 특이점을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 굴복하는 것으로 보고, 경제의 특이점에 저항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어떻게든 피해 갈 방법을 찾아내지만, 결국 얼마 안 가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금세 다른 나라에 뒤처진다. 그런 나라 등 일부에서는 1990년대 동유럽에서 공산주의 정권이 붕괴되었듯이 정권이 교체되고, 남은 나라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을 것으로 보이는데, 부디 폭력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이 교체되기를 기원한다.”(244)

 

저자는 경제적 특이점의 도래를 기정사실로 인정하는 가운데 이런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의 예상대로 진행되지는 않겠지만 이와 유사한 미래가 도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같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단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다. 중국은 이 점에서 이미 전체주의적 성향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의 약점을 보완하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인공지능 기술은 고도의 생산성을 바탕으로 인간 노동을 배제함으로써 오히려 자본주의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역설을 드러내고 있다. 인류 역사는 진정 역설의 역사인가?

 

경제적 특이점과 자본주의의 위기

경제적 특이점은 학술적인 용어가 아니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특이점을 다룬 책으로는 머리 샤나한(Murry Shanahan)특이점과 초지능(The Technological Singularity)이 더 적절하다. 샤나한은 이 책에서 기술적 특이점의 이론적 배경을 다루었다, 예컨대 인공지능과 의식 문제가 그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전개될 미래의 경제적 상황을 압축적으로 묘사한 용어로서 나름 의미가 있다. 저자는 이미 일련의 저서를 통해 기술적 특이점이 발생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경제적 특이점은 반드시 발생할 것으로 본다. 즉 비록 기술적 특이점 보다는 충격이 적은 기술혁신이 이루어지더라도 사회적·경제적인 측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은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기계가 꼭 인공일반지능을 갖추어야만 인간의 직업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이 직업으로 하는 일을 그저 인간보다 더 잘 할 수만 있으면 된다.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 자연어 처리를 포함한 여러 형태의 패턴을 인식하는 기계들의 능력이 이미 인간을 능가하게 되면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에 있다.”(351)

 

필자 또한 저자와 같은 생각이다. 우리는 이런 변화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경제적 특이점이 반드시 기술적 디스토피아라는 부정적인 의미와 연관될 필요는 없다. 반대로 기술적 유토피아가 실현된다면 모두가 풍요롭고 건강하게 영생을 누리는 세상에서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레이 커즈와일이나 피터 디아만디스 같은 골수 특이점주의자(singularitarian)들은 이런 세상을 전망하고 있다. 그렇지만 기술적 유토피아가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한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사회가 지금보다 더 극단적으로 양극화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호모 사피엔스가 서로 다른 종()으로 분화할 가능성을 논하는 사람도 있다. 즉 트랜스휴먼(transhuman)을 거쳐 육체적·정신적으로 전혀 새로운 인간인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진화한 일부와 현재의 상태에서 정체한 대다수의 인간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는 이런 상황을 신들과 쓸모없는 사람들로 묘사했다. 이는 가장 암울한 시나리오라 할 수 있다. 소수의 포스트휴먼에 편입되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한 사건들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화 <엘리시움>은 그런 식상하고 진부한 스토리를 섬뜩하게 그려낸 예다. 다른 많은 작품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미래 사회는 자본주의에서 일종의 기술 봉건주의로 퇴보하게 된다. 반쯤이라도 정신이 깨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계들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데 인간을 노예로 부릴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할 것이다.”(314)

 

머지않은 미래에 과연 초인공지능이 출현해 기술적 특이점이 도래할지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실제로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전문가들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45년경 특이점이 온다는 견해부터 특이점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까지 실로 다양하다. 그렇지만 대다수 전문가들은 언젠가는 초인공지능이 출현해 결국 특이점이 올 것으로 본다. 단지 시기의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는 초인공지능의 출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에 준하는 인공지능, 예컨대 범용인공지능에 근접한 수준까지 발전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본다. 특히 인간의 뇌 신경망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인공지능 분야는 지속적으로 대단한 성과를 올릴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인공지능의 겨울은 없을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경제적 특이점이 도래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이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파괴적 기술혁신은 자연스럽게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인간과의 협력 또한 활발해질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궂은일에서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골고루 이런 혜택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데 있다. 빅데이터를 독점한 소수의 기업이나 정부는 다수를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얻게 되며,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필연적으로 부와 소득의 극단적인 불평등, 그리고 사회 계층의 극단적 양극화로 이어지게 된다. 이는 곧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 이는 초인공지능이 출현하지 않더라도 가능한 시나리오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가 강조한 데이터주의(Dataism), 미래학자 마틴 포드(Martin Ford)가 말한 기술적 봉건주의(technological feudalism), 미디어학자 닉 콜드리(Nick Couldry)가 역설한 데이터 식민주의(Data Colonialism), 경영학자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제기한 감시자본주의(Surveillance Capitalism)는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빅데이터를 독점한 소수의 기관들로 인해 암울한 미래가 예상된다는 경고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공통적으로 현재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는 경고도 포함되어 있다. 현재와 같이 소수의 정보기술기업이 빅데이터를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함으로써 향후 인공지능 경쟁에서 승리한다면 막대한 부가 이들의 수중에 들어갈 뿐만 아니라 결국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이는 자본과 노동의 분리와 분업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며,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퇴조를 암시한다. 우리의 후손들은 전체주의와 독점이 지배하는 극단적인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공산주의 체제의 부활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과거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한 원인들 중 가장 큰 원인은 다양한 정보를 적절하게 처리함으로써 인적·물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권 국가들의 몰락은 비효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반면, 자본주의 체제는 더욱 독점화의 길로 갈 수 밖에 없기에 결국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활발하게 이런 취지의 글을 쓰고 있다. 이들에 의하면 역사는 마르크스가 예언했던 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인공지능의 출현이 바로 그 증거라는 것이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결핍이 아니라 풍요가 지배하는 세상이 올 것이지만 자본주의는 이런 상황에서 점점 낮아지는 이윤율을 감당할 수 없기에 결국 공산주의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필연법칙이 이제야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러한지 우리 모두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이런 마르크스 지지자들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주인공은 중국 칭화대 법대 교수인 Feng Xiang이다. Xiang교수는 201854일자 미국 <The Washington Post>에 기고한 AI will spell the end of capitalism이란 제목의 글에서 소수의 정보기술기업이 빅데이터를 장악한 현 자본주의 체제는 결국 붕괴의 길로 갈 것인 반면, 중국과 같이 사적으로 소유한 정보기술기업들이 존재하지만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국가는 과거와는 달리 방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복지에 기여하는 이상적인 체제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인공지능 시대에 미국식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며, 중국식 국가 자본주의 또는 계획된 시장경제는 부흥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그의 주장 가운데 상당 부분에 공감한다. 특히 소수의 기업이 빅데이터를 장악한 이후의 세상은 결코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듯이 대다수의 사람들을 기술적 유토피아로 안내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이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세금을 포탈하고 사회적 요구보다 개인적 이득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관행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의 지배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이 점에서는 Xiang교수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런데 중국처럼 정부가 빅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는 경우 과연 정치권력을 장악한 소수가 대중의 이익을 우선해서 빅데이터를 활용할 것이라는 보장이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 공산주의를 비롯한 모든 전체주의 체제는 결국 소수의 권력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체제로 전락했고, 그 결과 모두 몰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Xiang교수는 별다른 방안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권력을 장악한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적인 성향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결국 권력 집중의 문제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부와 빈곤이라는 책을 통해 레이건 정부가 추진했던 공급 중심의 경제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했던 조지 길더(George Gilder)가 최근 출판한 구글의 종말(Life After Google)에서 주장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길더는 이 책에서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빅데이터를 독점하고 이를 바탕으로 광고수입을 얻는 구글의 비즈니스 모델의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안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부상과 대중화를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계가 조성된다면 구글로 상징되는 빅데이터의 독점에 따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저자가 우려하는 경제적 특이점 또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블록체인 기술 하나만으로 현재 진행 중인 거대한 흐름을 저지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낙관론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단순히 기술 차원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재인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덕적·윤리적 가치에 대한 담론이 추가되어야 한다. 예컨대 인공지능 시대의 공동선(common good)에 관한 논의가 그것이다. 인간이 점점 기계로 대체될 수밖에 없는 시대에 과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공동선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만약 이런 논의의 절실함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결국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 특이점의 암울한 측면이 우세한 미래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저자의 다음 경고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계몽주의와 그 뒤를 이은 과학혁명과 더불어, 모든 이들에게 인간으로 태어나 살기에 가장 좋은 시대를 제공했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이 실업자이고 극소수인 최상위 계층만이 지능형 기계를 소유한 세상은 불합리하고 확고부동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불평등은 오늘날에도 사회악으로 평가받지만, 경제의 특이점 이후의 세상에서는 과학기술로 인류의 신체적, 인지적 능력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불평등이 더욱 심각한 문제로 작용할 것이다.”(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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