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경영학 분야

피터 필립스의 <자이언트(Giants: The Global Power Elite)>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2-20 02:57
조회
413

20200219_175539_5e4d769b54830.jpg 

저자: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s) 

역자: 김정은

출판사: 다른(2019)

 

차례

서론: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장 초국적 자본가 계급 파워 엘리트: 70년의 역사

2장 세계적 거대 자산운용사: 세계 자본주의의 핵

3장 경영자: 거대한 자산운용사를 이끄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

4장 조력자: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파워 엘리트 정책 결정 센터

5장 수호자: 파워 엘리트를 보호하는 국가와 기업

6장 이념가: 제국, 전쟁, 자본주의를 파는 대중매체

7장 거대한 힘에 맞서다: 민주주의 운동과 저항

 

음모론은 허구인가?

극소수의 파워 엘리트들로 구성된 폐쇄적인 집단이 세계를 자신들의 의도대로 통제하고 있으며, 적당한 시기에 단일 세계정부를 수립해 단일 통화를 유통시켜 정치, 경제 모든 면에서 권력을 장악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을 영구적으로 노예처럼 착취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책과 글이 출판되고 있으며, 유튜브에서 관련 동영상들을 다수 찾아 볼 수 있다. 이른바 음모론(conspiracy theory)이다. 필자도 한 때 음모론의 실체를 알아보려고 여러 책을 읽고, 다양한 기사들을 검색해보았으며, 동영상도 여럿 살펴보았다. 허무맹랑한 내용을 무책임하게 각색한 수준 낮은 것도 있지만 일부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서로 내용을 베껴서 그런지 어느 것이 원전인지, 그리고 그것이 진본인지 아니면 위작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원전을 알아야 내용의 진위를 검증해 볼 수 있을 터인 데, 원전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진위를 파악하기 어렵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세계적 기호학자인 움베르트 에코는 프라하의 묘지라는 소설을 통해 음모론에 단골로 거론되는 시온 의정서라는 책이 어떤 경위를 거쳐 위조되었는지 꽤 설득력 있게 묘사했다. 소설 형식을 취했지만 에코의 명성에 비추어 볼 때 충분한 근거를 갖고 썼을 것으로 짐작된다.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계나 진지한 지식인 사회에서 무시당하는 이유도 이런 측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소개하는 책은 다르다. 그런 유형의 음모론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 피터 필립스 교수는 미국 소노마 주립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이 책에서 다룬 주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학자이다. 게다가 이 책에는 2011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연구팀이 4만 개가 넘는 글로벌 기업들의 소유 및 지배구조를 네트워크 이론의 관점에서 심층 분석한 결과가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이 연구 자료를 기반으로 해서 세계의 정치, 군사 및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소수의 파워 엘리트 집단을 넷으로 분류한 후 각 집단의 역할을 분석하고 핵심 파워 엘리트 총 399명의 상세한 신상명세를 공개하고 있다. 이들에 관한 자료가 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면에서 이 책은 일반적인 저서와는 사뭇 다르다.

 

저자의 해석에 의하면 흔히 회자되는 음모론은 없다. 예컨대 로스차일드 가문이 막후에서 모든 것을 조종한다는 식의 음모론은 성립할 수 없다. 그렇지만 기득권을 수호하기 위해 일단의 파워 엘리트들이 정기적으로 공식 또는 비공식 모임을 통해 폐쇄적인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상호 이익을 추구한다면 이것을 느슨한 형태의 음모론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들이 세계를 지배할 청사진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전쟁을 유발하는 것도 불사한다는 의미에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 전편을 통해 이들이 전쟁도 불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여기서 음모론에 단골로 등장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즉 연방은행에 대해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연방은행은 탄생 초기부터 의문의 대상이었으며 이후 세계적 규모의 대공황이나 금융위기가 발발할 때마다 논란의 핵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음모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연방은행은 이른바 양털 깎기를 통해 정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착취해왔다고 주장한다. 연방은행의탄생 배경에 관한 가장 정확한 내용을 담은 책으로는 에드워드 그리핀(G. R. Edward Griffin)이 쓴 The Creature from Jekyll Island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그리핀은 1910년 미국 조지아 주 연안에 있는 지킬 섬에 연방은행의 설립을 논의하기 위해 극소수의 인사들이 모였는데, 그 면모는 다음과 같다고 말한다.

넬슨 올드리치(Nelson W. Aldrich): 상원의원, 미국 통화위원회 의장, 존 록펠러 주니어의 장인

에이브러햄 앤드류(Abrham P. Andrew): 재무부 차관보

프랭크 밴더리프(Frank A. Vanderlip): 뉴욕 내셔널 시티 뱅크(National City bank) 총재이며 윌리엄 록펠러와 투자은행 쿤로브(Kuhn, Loeb & Co.)의 대리인

헨리 데이비슨(Henry P. Davison): 투자은행 제이피 모건(J. P. Morgan Co.)의 선임 파트너, 투자은행가

찰스 노턴(Charles D. Norton): 뉴욕 제이피 모건 퍼스트 내셔날 은행(First National Bank) 총재

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 제이피 모건 뱅커스 트러스트 캄패니(Banker Trust Company) 대표

폴 워버그(Paul M. Warburg): 투자은행 쿤로브의 파트너, 영국의 로스차일드 은행(Rothschild Bank)의 대리인

 

이 명단에는 당시 국제금융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 록펠러 가문 그리고 모건 가문이 그들이다. 이런 이유로 연방은행을 둘러싼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탄생 목적 자체가 최종대부자로서 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필자가 아는 한 이와 관련해서는 공식적으로 어떤 긍정도 부정도 없는 가운데 모든 것이 모호하게 남아 있다. 이런 경우 가장 흔히 사용되는 수법이다. 노코멘트!

 

필자가 굳이 연방은행과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저자가 파헤친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핵심 세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게이츠나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또는 버크셔헤서웨이의 워런 버핏이 아니라, 거대 자사운용사를 경영하는 금융 엘리트들이기 때문이다. 연방은행이 사실상 세계의 중앙은행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 세력과 연방은행의 핵심 인물들 간에 긴밀한 유착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은 합리적 추론에 해당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결국 모든 권력의 원천은 금융자본으로 귀속된다는 점에서 음모론이 무조건 황당한 주장이라고 매도할 필요는 없다. 금융자본을 주축으로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이해한다면 적어도 음모론에 끌려 다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누가 세상을 통제하는지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세계를 통제하는 세력에 대한 객관적 분석

글로벌 시대 일부 거대 기업은 국가 간 경계를 넘나드는 초국적 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 TNC)으로 성장했다. 이들의 영향력은 국가 차원에 한정되지 않고 전 세계 구석구석에 미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중국의 알리바바, 텐센트 및 바이두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면은 모두 상장된 기업으로서 여러 자산운용사, 사모펀드 및 헤지펀드 등 금융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우량 자산, 이른바 블루칩이라는 것이다. 이들 기업이 경영 방침에 따라 투자와 고용, 나아가 세계경제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 기업의 지분을 통해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집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연구팀은 2011년 바로 이 집단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에서 스테파니아 비탈리(Stefania Vitali), 제임스 B. 글래트펠더(James B. Glattfelder), 스테파노 바티스톤(Stefano Battiston)2011년 진행한 취리히대학교 연구에 따르면, 소수의 기업(주로 은행과 금융기관)이 세계 경제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초국적 기업 43060개에 수학 모형을 적용한 결과, 147개 회사가 세계 부의 약 40퍼센트를 지배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언급한 17개의 최대 자산운용사 가운데 15개는 세계 최고의 초연결 기업으로 이름을 올렸다.”(42)

 

저자가 이 책에서 밝힌 내용은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연구 결과를 상세하게 보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연구에 참여했던 제임스 글래트펠더가 Who Controls the World라는 제목의 테드 강연에서 밝힌 내용을 중심으로 연구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글래트펠더는 전 세계적으로 1,300만 개 기업의 소유권에 관한 2007년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래트펠더에 의하면 1,300만 개에 달하는  기업의 소유권 관계는 43,000개의 TNC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TNC로부터 60만 개의 노드(node)100만 링크(노드들 간의 연결망)를 도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노드와 링크는 복잡계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들이다. 그는 이러한 노드와 링크로부터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를 유도할 수 있으며, 이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드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부분으로부터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성질, 이른바 창발성(emergent property)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는 복잡계의 전형적인 특성으로서 TNC가 지배하고 있는 노드들 간의 네트워크로부터 이런 성질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글래트펠더는 분석 대상인 60만 개의 노드들을 중심(center)과 주변(periphery)으로 분류한 후 중심에서 다시 핵심(core)을 구분해 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 핵심에 속한 737개의 노드들을 지배하는 TNC들은 전체 TNC 시가총액의 80%를 통제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737개의 노드들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의 금융기관들이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60만 개 노드들의 약 0.1%에 불과한 소수가 전 세계 시가총액의 80%를 지배한다는 말이다. 이를 더 압축하면 고작 146개의 노드들이 TNC 시가총액의 40%를 통제한다고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글로벌 경제는 사실상 이 노드들을 지배하는 소수의 금융기관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분석을 한 후 글래트펠드는 이것은 음모론에 입각한 탑-다운 방식의 지배가 아니라 복잡계에서 발생하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더 객관적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그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본다. 사실 이 책의 저자도 필자와 같은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들 소수의 파워 엘리트들의 담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공식, 비공식 모임을 통해 항상 긴밀한 유대관계를 유지해왔다. 이것이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 모든 내용이 음모론으로 치부되는 순간 이들은 오히려 더 유리한 입장에 놓이게 된다. 왜냐하면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뭔가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아니면 그저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기여한 일등 공신은 바로 저자가 말하는 이념가(ideologists), 즉 초국적 자본가 계급을 비호하는 미디어 집단이다. 따라서 우리는 음모론을 넘어서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통제하는 세력의 실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저자가 의도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글로벌 파워 엘리트의 실체: 네 개의 집단과 핵심 파워 엘리트

저자는 앞서 지적한 대로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세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파워 엘리트들을 파악한 후 크게 네 집단으로 분류했다. 그러고 나서 각 집단에서 가장 핵심적인 조직들을 선정한 다음 이런 조직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상세한 개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389명에 달하는 이들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이다. 이 책의 서문에는 이들 파워 엘리트의 위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음과 같은 표현이 있다: 어떤 글로벌 엘리트는 정부 관료들을 가리켜 우리 비행기를 운전하는 조종사라고 했다. 필립스 교수의 말처럼 글로벌 파워 엘리트는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를 내리며, 그 지시가 당연히 이행될 것으로 기대한다.”(18)

저자가 밝힌 글로벌 파워 엘리트의 중심은 금융자본을 운영하고 있는 거대 자산운용사의 이사들이다. 결국 모든 권력은 거대한 금융자본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이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그리 생각해왔기에 새로운 주장으로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거대한 금융자본을 누가 소유하고 있으며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는가에 있다. 이런 파워 엘리트를 논하는 경우 특정 가문, 예컨대 로스차일드나 록펠러 가문을 중심에 둘 근거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현재 글로벌 차원에서 유통되고 있는 금융자본의 규모가 정확하게 얼마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략 100조 달러 안팎인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 정도 막대한 자금을 몇몇 가문이 장악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마 크고 작은 상당수의 금융자본가들을 포함해 몇몇 국부 펀드라든가 큰 규모의 연기금 등도 여기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국민연금도 참여하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글로벌 파워 엘리트를 네 개의 집단으로 구분하고, 이들의 상세한 인적 사항을 바탕으로 이들 간의 담합 내지 유착 관계를 철저하게 해부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네 집단이란 경영자(managers), 조력자(facilitators), 수호자(protectors) 및 이념가(ideologists)를 지칭하는데, 각 집단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영자>

저자는 자산 운용 규모가 1조 달러가 넘는 상위 17개 거대 자산운용사의 이사들 총 199명을 글로벌 파워 엘리트 집단의 핵심으로 보며,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개의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자본을 모두 합치면 총 411,000억 달러가 넘는다. 이들은 국제적 자본주의의 거인들이다. 그들이 운용하는 막대한 자산은 수천 명의 백만장자, 억만장자, 그리고 기업에서 온 것으로, 이들은 자신의 돈을 자산운용사에 맡겨 평균 이상의 높은 이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장에 투자하도록 했다.”(41) 이 말처럼 자산 운용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다. , 이들 소수의 거대 자산운용사들이 상호 투자를 바탕으로 하는 일종의 묵시적 담합을 통해 끊임없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관행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관행을 굳이 음모론의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서 저자는 최상위 자산운용사 17개 가운데 15개는 스위스 연구에서 밝혀진 가장 집중화된 기업 27위 안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9개 기업은 최고의 초연결 기업 10위권에 속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연구와 스위스 연구는 이런 점에서 상호 보완적이다. 이어 저자는 17개 거대 자산운용사와 새로 등장한 3개의 거대 자산운용사, 그리고 9개의 준거대 자산운용사는 총 53조 달러가 넘는 금액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그 다음으로 규모가 큰 39개 자산운용사까지 포함하면 총 68개 자산운용사들이 운용하는 규모가 자그마치 74조 달러를 넘는다. 이 수치는 2017년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2017년 세계 GDP(경상)는 약 80조 달러였다. 자산운용 규모는 일정 시점에서 측정한 stock variable이고 GDP는 연간 발생한 부가가치를 모두 합한 flow variable이므로 이 둘을 평면적인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상대적인 비중을 논할 수는 있다. 예컨대 자산운용규모가 GDP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증가하는지 여부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자료에 의하면 그렇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지적했던 자본수익률(r) > 경제성장률(g) 관계와 유사하다.

 

저자는 1조 달러 이상을 운용하는 17개 자산운용사들의 자산 규모과 운용 방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이사진들에 대한 상세한 최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 말대로 모두 공개적으로 구할 수 있는 정보이므로 여기에는 일체 모호한 부분이 없다. 따라서 또 다른 음모론의 일종으로 매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아가 이들 자산운용사들이 일종의 상호 투자를 통해 서로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일종의 담합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이다. 나아가 저자가 밝힌 이들 운용사들의 주요 투자 대상이 대표적인 초국적 기업인 구글,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및 페이스북 등이라는 사실은 금융자본과 초국적 기업 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시사한다. 이것은 곧 현재 진행 중인 4차 산업혁명도 이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간주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 자산운용사의 내용을 다룬 2장과 이사들의 상세한 신상정보를 다룬 3장이 이 책의 핵심이다. 나머지 집단은 결국 파워 엘리트 경영자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책에는 2017년 자료에 근거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운용자산 규모가 5.4조 달러로 되어 있는데,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20194분기 기준 규모가 7.4조 달러로 증가했다고 하니 대단한 성장이다. 아마 다른 자산운용사들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양적 완화로 엄청난 돈이 시중에 풀렸고 상당 부분이 주식과 파생상품에 투자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앞서 언급했던 총 68개 자산운용사가 운용하는 자금 규모는 100조 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2019년 글로벌 GDP(경상) 규모는 87조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이 운용하는 자금 규모가 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초국적 자본가 계급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초국적 자본가 계급을 연구한 레슬리 스클레어(Leslie Skliar)의 말을 인용해 초국적 자본가 계급이란 기업 경영인, 세계화된 관료와 정치인, 세계화된 전문가들과 엘리트 소비주의자들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엘리트 소비주의자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모호할 뿐 아니라 세계화된 관료나 정치인 및 전문가라는 표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저자의 의중을 반영한다면 초국적 자본가 계층은 사적으로 막대한 부를 소유한 제프 베이조스나 빌 게이츠 같은 재력가들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막대한 금융자본을 운용하는 극소수의 파워 엘리트들, 그리고 이들을 지원하는 조력자, 수호자 및 이념가에 속하는 극소수의 파워 엘리트들로 구성되며, 이 가운데 최정예 소수에 해당하는 389명은 초국적 자본가 계급 가운데서도 최상위인 이른바 슈퍼 클래스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의 정체이다.

 

<조력자>

저자가 말하는 조력자란 주로 비정부기관에 소속해 있는 극소수의 파워 엘리트로서 특기할 점은 금융계 인사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앞에서 언급한 경영자들이 왜 글로벌 파워 엘리트의 핵심인지 확인할 수 있다. 미국 연방은행이나 유럽 중앙은행, 그리고 국제결제은행, 국제통화기금 및 세계은행과 같은 공공부문을 비롯해 민간부문의 금융계 인사들은 때로는 조력자 집단에 속하기도 하고, 때로는 경영자 집단으로 이동하기도 하면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루빈을 들 수 있다.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으로서 루빈은 대표적인 조력자 집단 중 하나인 외교평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루빈에 이어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로렌스 서머스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G30(Group of Thirty)으로 알려진 강력한 조력자 집단의 회원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 국제기관들이 사실상 조력자 집단에 속해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연구 결과 역시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G20, G7, 세계경제포럼, 삼극위원회, 빌데베르크회의, 국제결제은행, G30, 국제금융회의 등의 국제기구들이 초국적 자본가 계급 내에서 의견의 합치를 이끌어내고, 파워 엘리트들의 정책 형성 및 집행을 돕는 제도적 기제로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205) 이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필자가 보기에 사실에 가깝다. 여기서 잠깐 G30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는 선진 7개국 정상의 모임인 G7, 그리고 이를 확장한 G20에는 익숙하다. 그래서 G30이라면 마치 30개국 정상의 모임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사실 이것과는 무관하게 금융계, 학계, 정치계 주요 인사 32명으로 구성된 막강한 비정부조직이다. 이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었는데 저자는 이들 32명의 상세한 신상명세까지 공개하고 있다. 예컨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회원이다. 평소 그가 쓰는 글의 논지로 미루어 짐작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는 비정부기관으로서 초국적 자본의 수익률 추구를 지원하는 여러 조력자 집단 가운데 특히 미국에 기반을 둔 삼극회와 G30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초국적 자본가 계급 파워 엘리트 정책기관은 G30일 것이다. G30는 스스로 설립 목적을 국제 경제와 금융 문제에 대한 깊은 이해를 도모하고,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결정이 국제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G30가 세계 금융 통치의 영역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1978년 설립된 G30는 파워 엘리트 은행가, 자본가, 정책결정자, 학자들로 구성된 연구 모임을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한다.“(207) 그러면서 저자는 G30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 32명의 모임으로서 본질적으로 초국적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한 글로벌 파워 엘리트의 집행위원회라고 보면 된다고 단언한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 책에서 32인의 면면을 보면 저자의 주장이 허언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이들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셈이다.

 

<수호자·이념가>

저자는 조력자 집단 다음으로 금융자본의 운용을 지원하는 집단으로 정부 조직에서는 NATO, 비정부조직에서는 대서양위원회, 그리고 민간부문에서는 용병을 파견하고 파워 엘리트들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는 몇몇 민간 군사기업을 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구적 전쟁을 잉여 자본에 대한 경제적 완화 장치로 이해해야만 우리는 오늘날 세계 자본주의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전쟁은 거대한 금융사들과 초국적 자본가 계급 엘리트에게 투자 기회를 제공하고, 자본에 대한 수익을 보장한다. 또한 전쟁은 두려움을 이용하여 고통 받는 대중을 순응시키고 억제하는 기능도 수행한다.”(277) 저자의 이 말은 자칫하면 음모론의 일종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그렇지만 오늘날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의 존재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여기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저자는 특히 NATO의 변질을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NATO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와 초국적 자본가 계급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 군사 제국을 보조하는 경찰로 빠르게 변질되고 있다. 1980년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초국적 자본가 계급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NATO의 작전 영역은 더욱 넓어지기 시작했다.”(279) 이 대목에서 저자는 자본가 계급이 전면에 등장한 것과 소련의 붕괴 간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짐작컨대 공산주의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들 자본가 계급이 글로벌 차원에서 전면에 등장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궁금하다.

 

저자는 NATO 외에 비정부기구인 대서양위원회의 역할에 주목한다. 이 위원회를 금융 엘리트와 군부 엘리트 간의 연결고리로 간주하고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서양위원회에는 28개 나라 출신 146명의 글로벌 파워 엘리트가 등재되어 있다.......세계 자본 경영과 편중된 자본 투자 관행의 보호는 대서양위원회의 최우선 관심사다. 조사 결과 이사회 구성원 가운데 자본투자 경영회사와 연관된 인물이 40명에 달했다. 거대 자산운용사 6곳의 이사들이 대서양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며, 여타 금융경영/투자회사 소속 이사들도 많다.”(287) 이와 같이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은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각종 안전장치를 해두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이용해 막대한 투자 수익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밀착 관계를 단절시키는 묘책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즉 군산복합체에 금융자본이 가세한 형국이다.

 

마지막으로 이념가 집단은 여론 조작을 담당하는 매스 미디어 집단과 파워 엘리트 집단과 이들이 운영하는 조직에 대한 긍정적인 소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홍보 담당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거대 자산운용사들은 이들이 사실상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막대한 수익을 얻고 있기에 이들 기업에 투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을 이용해 여론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예컨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국민 여론을 우호적으로 돌린 것도 이들의 공로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데마고그, 즉 선동가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테러리즘에 대한 끝없는 대비와 전쟁은 사전 제작되는 뉴스 시스템의 이념과 잘 맞아 떨어진다 정부와 민간 대중홍보 전문가들은 초국적 대중매체의 뉴스 배포 시스템에 지속적으로 기삿거리를 제공하고, 그 결과 뉴스를 제공하는 측과 기사를 배포하는 측 사이에는 거대한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공생관계를 완벽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국방부가 중동과 워싱턴에 만든 합동 정보 수집 기구를 들 수 있다.”(324)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과 이들 이념가 집단은 밀착관계를 유지하는 운명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저자가 이 책에서 제공한 자료에 의하면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이 구축한 시스템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으로 보인다. 저자가 지적한 389명이라는 극소수의 집단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현재 이들 389명의 면모가 아니라 이들이 구축한 시스템이다. 사람은 바뀌어도 이 시스템이 그대로 작동한다면 이들이 구축한 철옹성을 깨뜨릴 방법이 없다. 여기에 향후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 그리고 인공지능을 장악한 세력이 가세한다면 천하무적일 것이다. 그리고 모든 정황이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런 상황을 감안했는지 저자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부의 계속되는 편중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극단적인 불평등과 억압은 전 세계 민중의 저항과 반란을 불러올 뿐이다. 이제라도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이 경제적, 환경적 붕괴가 불가피하게 일어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엄청난 사회적 불안정이 반드시 촉발될 것이다.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이 과감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환경 재앙과 더불어 거대한 사회운동과 반란이 세계를 혼돈과 전쟁 상태로 몰고 갈 수밖에 없다”(373) 이런 상태로 가면 결국 폭동이 날 것이니 알아서 스스로 개혁하라는 조언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가 예상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이들 파워 엘리트들은 먼저 생각하고 있을 것이며,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놓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비책은 저자가 생각한 것과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예컨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이 이런 요구에 쉽게 응하지 않는 경우를 대비해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사회운동의 확산에서 다른 가능성을 엿보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들 엘리트 집단 스스로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도록 촉구한다. 결자해지의 입장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들 엘리트들과 사회운동세력 모두 1948년에 공표된 <유엔인권선언>을 깊이 참조할 것을 조언한다. 어느 쪽이든 인간의 자유, 기본권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회복해야 한다는 관점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이것은 주목할 만한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필자가 늘 주장하는 공동선을 회복함으로써 현안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하자는 입장과 일맥상통한다. <유엔인권선언>은 우리 모두 지켜야 하는 공동선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그 실천을 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전개될지 우리 모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