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분야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의 『새로운 무의식』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6 16:46
조회
398

20160226_074537_56d002a1d2f46.jpg

저자: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  

역자: 김명남

출판사; 까치(2013)

 

   

목차

1부 두 층위로 구성된 뇌

1장 새로운 무의식

2장 감각 더하기 마음이 곧 현실

3장 기억과 망각

4장 사회성의 중요성

2부 사회적 무의식

5장 사람의 마음 읽기

6장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기

7장 사람과 사물을 분류하기

8장 내집단과 외집단

9장 감정

10장 자기 자신

 

 

<북 리뷰: 무의식에 대한 과학적 접근>

★ 저자 소개 및 책의 개요

저자 레너드 믈로디노프(Leonard Mlodinow)는 미국의 명망 있는 캘리포니아공대(보통 “칼텍”이라고 불림)의 이론물리학자다. 그는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과 공저한 『위대한 설계』(2010)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으며, 이외에도 일련의 대중적인 과학 관련 저서를 통해 나름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그는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가 상당한 인도 출신의 의사이자 영성지도자인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와 함께 쓴 『세계관의 전쟁』(2013)을 통해 철저하게 환원주의적 유물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자신이 전공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책을 쓰거나 논평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오랫동안 그 분야에 모든 정열을 쏟은 전문가들을 모욕하는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필자도 이 책에 대해 논평하는 데 상당히 주저하였다. 비록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는 하지만 오랫동안 천착(穿鑿)해온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부한다는 자세를 견지하는 가운데 질문을 하는 것이라면 웬만한 실수나 결례는 용서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된 것이다. 이 점은 저자 믈로디노프 교수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 자신도 무의식의 세계에 대한 물리학자의 관점을 평가받으려는 의도에서 이 책을 쓴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다. 후기(後記)에 밝혔듯이 저자는 5년간 칼텍의 신경과학 연구소의 각종 세미나, 토론 등에 참석했으며 800여 편이 넘는 이 분야의 논문들을 소화한 후 이 책을 집필하였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노력과 탁월한 해석 능력, 그리고 글솜씨에 감탄하였다.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저서들을 통해 짐작하였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의 흐름을 나름 정확하게 꿰뚫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신경과학의 새로운 분야인 사회 신경과학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책을 관통하는 기본 과학적 관점이 있다면 저자가 다른 책에서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환원주의적 유물론과 진화론이다. 저자는 철저하게 유물론적 관점, 즉 의식이든 무의식이든 모두 뇌의 작용의 결과일 뿐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나아가 인간이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을 구분하고 안배한 이유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해석한 점에서 진화론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프로이트나 융의 무의식이론과 구별해 “새로운 무의식”이라 명명한 것이다.

 

 

★ 새로운 무의식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저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단지 저자의 견해를 비판하려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에 관해서는 새로운 과학적 관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뇌에 구속된 상태에서 순환논리를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개아심리학자인 스타니슬라프 그로프(Stanislav Grof)는 저서 『코스믹 게임』(2008)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오로지 뇌의 산물이라는 기존 과학자들의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도 뇌와 의식 간에는 상관관계가 존재한다는 과학적으로 규명된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의식의 원천이라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주류 과학자들도 쉽게 반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여전히 미지의 분야로 남아있다고 본다.

 

어쨌든 저자는 자신의 과학적 관점에 입각해 의식세계의 수면 아래 있는 무의식 세계가 인간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진화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해왔는지, 어떻게 의식의 한계를 메워왔는지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저자는 책 이름을 "subliminal"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 명칭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Carl G. Jung)의 표현을 차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칼 융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건들이 있다. 말하자면 역치 아래에 잠겨 있는 사건들이다. 그런 사건들이 늘 벌어지지만, 역하적으로 흡수되고 만다.’ ‘역하적’이라고 번역되는 subliminal의 라틴어 뜻은 ‘역치 아래의’이다. 심리학자들은 의식의 역치 아래를 가리키는 말로 이 용어를 사용한다.”(11쪽) 역치란 문지방(threshold)과 같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일정한 경계를 상징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 책에서 저자의 설명 방식은 실험심리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 사용하는 각종 실험과 관찰 및 그 결과에 대한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 책에 인용된 다양한 사례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인간, 나아가 인간관계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런 실증적인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간의 깊은 내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을 단지 선험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으므로 두 가지 방법은 상보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필자가 의문을 갖는 것은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오직 뇌의 부위와 해당 부위의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만으로 과연 의식과 무의식의 본질과 기능,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작용을 모두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나아가 과연 낡은 무의식이론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와 융의 해석은 이제 일고의 가치도 없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새로운 시각에서 볼 때, 어떤 정신적 과정이 무의식적인 까닭은 뇌 구조상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지, 억압과 같은 동기적 힘에 붙잡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새로운 무의식의 접근 불가능성은 방어기제로도, 불건전한 것으로도 간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으로 여겨진다.”(28쪽) 이것이 과연 무의식에 대한 정확한 해석인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저자의 주장 가운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인간의 사고와 감정 그리고 행동에 있어서 무의식의 관여하는 영역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동적 정보처리의 역할은 원시적 생물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인간도 자동적, 무의식적 행동을 무수히 많이 한다. 다만 의식과 무의식의 상호작용이 몹시 복잡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할 뿐이다.”(21쪽) 필자 또한 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이것이 이른바 “낡은 무의식”을 제안했던 프로이트나 융의 입장과도 모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의식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가운데 상당 부분이 사실은 무의식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우리 의식은 이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것이 의식의 한계임과 동시에 무의식의 교묘함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목차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개인의 고유한 정신적 영역(마음의 영역 내지 내면세계)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반영하는 인간의 사회성 영역도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저자는 다양한 실제 사례와 실험 결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꿈의 분석, 자유연상법, 내성법, 인터뷰 등 비교적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했던 프로이트나 융 시대보다 오늘날 확실히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무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의식의 아래에 있으며 결코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는 무의식 세계는 단지 진화론의 관점에서 주장하듯이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차원에서만 의식과 상호작용해왔는가 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칼 융이 말한 것처럼 인간에게는 자의식에 해당하는 자아(self)와 진정한 자신을 의미하는 자기(Self)가 있으며 무의식의 턱을 낮추어 의식과 통합함으로써 진정한 자기를 발견할 수 있다는 주장은 단지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진술에 불과한 것인가? 인간의 무의식에는 어떤 신비한 요소도 없고 오직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저자가 주장하는 것이 진실이요 우리가 찾고자 하는 성배(聖杯)라면 의미 있는 삶을 살려는 모든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 수도 있다. 심지어 인간은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철저하게 분석하도록 진화해왔고 그 결과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지나치게 진화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말처럼 들린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아우르는 정신세계의 문제 또는 마음 과 영혼에 관한 문제에는 과학적 방법론만 가지고는 접근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무당과 같은 샤먼에게서 볼 수 있는 신내림 현상이라든가 빙의(憑依)현상과 같은 것을 단순히 미신이요 비과학적이라고 매도하기에는 적지 않은 증거와 증인이 존재하고 있다. 또한 <마이클 뉴턴 연구소>를 설립해 40년 넘게 최면요법가로서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마이클 뉴턴(Michael Newton)은 자신의 연구방법을 LBL(Life Between Lives)요법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영혼은 존재하며 다음 생(生)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영혼들을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은 책을 여러 권 출간했다. 얼핏 들으면 황당한 주장인데 그토록 오랫동안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단순히 허무맹랑한 주장이라 속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는 이런 다양한 현상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의식과 무의식의 범주 및 이들 간의 상호작용에 관해서 우리가 아직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지적하려는 것뿐이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무의식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기존의 과학적 관점에 지나치게 편향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그럼에도 저자가 의식을 과학자에, 무의식을 변호사에 비유한 다음과 같은 표현에는 공감하게 된다: “뇌는 괜찮은 과학자이지만 훨씬 뛰어난 변호사였다........변호사를 닮은 무의식은 사실과 착각을 섞고, 장점을 과장하고, 약점을 축소하고, 어느 부분(우리가 좋아하는 부분)은 엄청난 크기로 부풀리고, 어느 부분은 보이지 않을 지경으로 쪼그라뜨려서, 피카소풍으로 왜곡된 그림을 창조해낸다. 그러면 의식이라는 합리적 과학자는 그 자화상을 순진무구하게 찬미하며, 그 그림이 사진처럼 정확하다고 믿는다.”(274쪽) 어떤 관점에서도 무의식의 세계는 실로 엄청나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의식의 “어려운 문제”가 철학과 과학의 오래된 난제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의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은 세계인 무의식과 관련해서는 더욱 긴밀한 통섭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무의식에 관한 최근의 과학적인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떤 경우에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학적 연구를 매도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과학적 연구는 궁극적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참조 사항> 

• 의식을 활용하거나 때로는 최면요법과 같이 무의식을 통해 광대무변한 무의식의 세계를 탐구하는 작업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최초로 무의식의 세계에 체계적으로 접근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점에서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가 무의식을 성적 억압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찬 불결한 창고인 것처럼 묘사한 데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는 집단무의식의 개념을 도입하고 원형(原型)과 상징을 이용해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원천으로서 무의식을 파악한 칼 융의 해석에 더 끌리게 된다. 무의식에 대한 칼 융의 해석은 주요 종교의 신비주의자들이 경험한 것과도 양립하며, 초개아심리학에서 말하는 비일상적 의식 상태와도 모순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융 심리학의 권위자인 이부영 교수가 융의 분석심리학을 쉽게 풀어쓴 『분석심리학 이야기』(2014)와 『자기와 자기실현』(2014)는 읽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학자로서 죽음과 무의식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최준식 교수의 『무의식에서 나를 찾다』(2015)와 『무의식연구의 새로운 지평』(2015)도 일독을 권한다. 무의식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누구도“나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다가갈 수 없다고 본다.

 

• 그리고 저자 레오나르도 믈르디노프 자신이 구글 초정으로 무의식에 관해 한 강연에 관심 있는 사람은 다음 링크의 동영상을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https://youtu.be/NJ-IfVHJH58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