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머시 스나이더의 《폭정(On Tyranny)》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Timothy Snyder)
역자: 조행복
출판사: 열린책들(2017)
차례
1. 미리 복종하지 말라 2. 제도를 보호하라 3. 일당 국가를 조심하라
4. 세상의 얼굴에 책임을 져라 5. 직업윤리를 명심하라
6. 준군사조직을 경계하라 7. 무장을 해야 한다면 깊이 생각하라
8. 앞장서라 9. 어법에 공을 들여라 10. 진실을 믿어라
11. 직접 조사를 하라 12. 시선을 마주하고 작은 대화를 나누어라
13. 몸의 정치를 실천하라 14. 사생활을 지켜라 15. 대의에 기여하라
16. 다른 나라의 동료로부터 배워라 17. 위험한 낱말을 경계하라
18.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침착하라.
19. 애국자가 되라 20. 최대한 용기를 내라
■ 책의 특징 및 리뷰 배경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는 현재 예일대에 재직하고 있는 역사학자인데 필자는 이 책을 통해 그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스나이더는 중앙유럽 및 동유럽 역사와 홀로코스트(Holocaust)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스나이더는 다섯 권의 책을 출판했고 두 권을 공동 편집했는데 이런 활동과 관련해 여러 가지 상을 받았다. 또한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스나이더는 진보적 성향의 신문인 《The Guardian》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기고하고 있는 진보적인 지식인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히틀러의 집권에 비유하면서 미국인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학자다.
스나이더는 1969년생이니 1976년생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보다는 나이가 많지만 역사학자로서는 둘 다 소장학자 내지 중견학자의 대열에 속한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저서를 꾸준히 출판할 수 있는 이유는 시대를 앞서가는 통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도 이 책에서 미국의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미국인들에게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것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을 포함해 외형적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모든 나라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제시하는 경고 내지 교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저자는 <20세기로부터의 20가지 교훈>을 이 책의 부제로 책정했던 것이리라.
필자가 이 책을 리뷰하기로 결심하게 된 데는 조그만 에피소드가 있다. 필자와 대학시절 학회활동을 같이 했던 친구가 있다. 그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 편의상 C라 부르겠다. C와 나는 다른 학회의 멤버였지만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항거하던 시절에는 여러 학회들이 힘을 합쳐 학생운동을 추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때부터 알고 지낸 C는 대기업에 입사했고 필자는 유학을 떠났으니 가는 길이 엇갈렸다. 그 후 C는 대기업을 퇴사한 후 기업을 설립해 경영에 매진했는데 얼마 전 정부에서 우수한 중소기업에게 수여하는 <국민영웅>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C가 참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부터 가끔 만나기도 하고 전화 통화를 하는 등 옛날의 관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었다. 최근 필자가 추진하고 있는 일종의 사회·문화운동에 대해 전화로 논의하던 가운데 C는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했고 그래서 즉시 구입해 읽게 되었다. 필자가 이런 경로를 통해 책을 읽고 리뷰를 한 것이 처음이다. 참으로 좋은 인연은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도 C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우리는 지금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
이 책은 정치나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다루고 있는 교양서는 아니다. 불과 160쪽 안팎의 작은 책으로서 집중해서 읽으면 2시간 남짓이면 독파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현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벼운 책도 아니다. 비록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거나 복잡한 논쟁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미국을 비롯해 세계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현상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 한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과연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매뉴얼(manual)이라 할 수 있으며, 과거로부터 얻은 교훈(lesson)을 정리해 알려주고 있고,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에 대한 선언(manifesto)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니 다른 두 권의 책이 떠올랐다. 하나는 미국 독립운동을 촉발한 글을 썼던 토마스 페인(Thomas Pain)의 『상식』이고 다른 하나는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과제』이다. 페인은 1775년 렉싱턴 전투에서 아메리카 연합군이 영국군에게 패배한 이후 영국과 화해를 모색하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던 상황에서 혁명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페인은 영국의 폭정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공화주의에 반하는 것이라는 취지를 담은 작은 책자를 통해 화해 분위기를 혁명 분위기로 전환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는 실로 인류사에 남을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폭정에 대한 대응 방식의 전형(典型)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젊은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최신작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내용 면에서는 이 책과 상당히 다르지만 필자 생각에 이 책의 부제를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하라리 책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저자는 21세기 현재 민주주의가 잠재적으로 위협 받고 있는 시점에서 20세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20가지 항목으로 제시했다. 한편 하라리는 앞으로 정보기술과 생명기술의 융합을 바탕으로 전개될 미래의 변화에 대비해 무엇을 경계해야 하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21가지 제언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두 책 모두 우리가 미래에 닥칠 역경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스나이더는 정치적 측면을 강조했고, 하라리는 기술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결국 전체주의의 출현 가능성을 경고한 점에서는 두 사람이 일치한다. 인간의 잠재된 본성과 이를 구현하도록 해주는 정보기술의 출현, 그리고 이 둘의 필연적 결합은 인류의 미래를 결코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 모두 단단한 각오로 이에 대비해야 하는데 이는 개인적인 역량의 한계를 벗어난 일이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 간의 연대(solidarity)가 중요한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민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 민주주의는 지속 가능한가?: 20가지 교훈의 시사점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하나다. 민주주의는 현재 커다란 위협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결연한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목적을 위해 1930년대와 1940년대를 풍미했던 나치즘, 파시즘 및 공산주의와 관련된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얻는 교훈 20가지를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일종의 행동 강령집 내지 선언문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안한 20가지 행동 강령 모두 나름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중에는 우리 정서에 더 적합한 것이 있는 반면, 저자의 지나친 기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저자의 충고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사실 저자의 의견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뭔가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민주주의든 자유시장경제의 관점에서는 우리의 보편적인 자유의 확대와 일반적인 복지의 증진에 기여하는 제도와 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확한 상황 인식에 근거한 지속적인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우선 저자가 지적한 예측 복종(anticipatory obedience)의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측 복종은 정치적 비극이다........나치의 집권을 가져온 1932년의 독일 선거나 공산주의자들이 승리한 1946년의 체코슬로바키아 선거 이후, 그 다음의 결정적인 단계는 예측 복종이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자발적으로 새로운 지도자에 봉사하려는 사람들이 넘쳐 났기 때문에, 나치와 공산당 모두 완전한 체제 변화를 향해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23쪽) 이런 태도를 보인 협력자들이 많았기에 나치즘이 그렇게 신속하게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유신정권이나 이어진 신군부 시절에 다수의 정치인, 관료, 언론인 및 지식인들이 행한 몰지각한 처신도 이런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
저자가 제시한 교훈 가운데 <일당 국가를 조심하라>는 것이 있다. 1930년대 나치즘의 부상이나 스탈린의 공산당 독재라든가 1940년대 동유럽에서의 일당 독재 등을 언급하면서 저자는 일당 독재의 가능성을 우려한다. 일면 저자의 기우라는 생각이 들지만 전혀 근거 없는 경고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최근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이 사실상 장기 집권의 기반을 공공이 하고 중국의 시진핑이 실질적으로 영구 집권의 발판을 마련한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만하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드러난 변화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우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토머스 제퍼슨이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다(Eternal vigilance is the price of freedom)>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에 이같이 말한 미국인들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그러나 이 격언의 참뜻은 완전히 다르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의 자유를 갉아먹고 기어코 끝장낼 <미국인들>을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여기서 경계의 대상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35쪽) 이 대목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내부의 적, 즉 우리들의 의식 수준에 따라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한 이유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그리고 이후의 행보 때문이다. 필자가 리뷰한 『The Common Good』에서 로버트 라이시 교수도 트럼프의 막말과 돌출 행동 자체보다는 정당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행동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라이시 교수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태를 히틀러에 비유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틀러의 언어에서 국민은 언제나 오로지 일부만을 의미했고(트럼프 대통령이 이 단어를 이런 식으로 쓰고 있다), 만남은 언제나 투쟁이었고(트럼프는 승리를 얘기한다), 자유로운 사람들이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지도자에 대한 비방이었다(트럼프가 주장하듯이, 명예훼손이었다).”(75쪽) 이 밖에도 여러 대목에서 저자는 히틀러와 트럼프를 대비하고 있다. 저자가 정기적으로 기고하고 있는 《The Guardian》의 2018년 10월 30일자 칼럼 제목이 《Donald trump borrows from the old tricks of fascism》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서 파시즘의 잔재를 인지하고 있다. 그러니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20가지 교훈 가운데 필자가 특히 공감하는 부분은 진실을 믿으라는 것, 직접 조사하라는 것, 그리고 대의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가짜 뉴스(fake news)를 대량으로 유포할 수 있는 환경에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또한 이른바 탈진실(post-truth)의 시대에 각자의 감각적 판단에 의존하려는 성향이 강해짐에 따라 진실을 전하기도 어려워졌다. 저자는 “탈진실은 파시즘의 전단계”라고 단언한다. 그러므로 저자는 진실을 알고 이를 전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실이 없으면 민주주의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빅토르 클렘퍼러 같은 전체주의 평자들이 주목했듯이, 진실은 네 가지 방식으로 소멸하는데, 우리는 그 모두를 얼마 전에 목격했다. 첫 번째 방식은 검증 가능한 현실에 대한 공공연한 적개심이다. 이는 날조와 거짓말을 마치 사실인 양 제시하는 형태를 띤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주 높은 비율로, 그리고 빠른 속도로 그 짓을 하고 있다. 2016년 선거 운동 기간 중 트럼프의 발언을 분석한 한 조사에 따르면, 그가 사실이라고 주장했던 것의 78퍼센트가 거짓이었다.”(87쪽) 나머지 세 가지 방식도 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사용하는 것으로 모두 진실을 은폐하고 가짜 뉴스를 진실인 양 퍼뜨림으로써 민주주의의 기초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인터넷에 너무 의존하지 말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조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견해를 세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을 분별하는 능력은 비로소 당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우뚝 세운다. 그리고 공동의 지식에 대해 모두가 신뢰를 보낼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의 사회를 이루게 된다. 진실을 조사하는 개인은 사회를 건설하는 시민이며, 그러한 개인을 싫어하는 지도자는 잠재적 독재자다.”(95쪽)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이 깨어있지 않으면 전체주의와 독재의 망령은 항상 그 모습을 드러내려 꿈틀거린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대의에 기여하라고 조언한 것은 뭔가 엄청난 일을 감행하라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단지 각자의 취향에 따라 일정 단체에 소속한 가운데 서로 교류하면서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이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러한 활동(자신이 좋아하는 집단에서의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자부심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을 알아 가는 것은, 그 자체로 시민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공동의 프로젝트를 같이하다 보면, 우리는 친구와 가족이라는 좁은 범위를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되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권위자를 발견하게 된다.”(122쪽)
이것은 정확하게 필자가 구상하고 있는 시민·문화운동과 같은 맥락이다. 시민으로서 우리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 상황을 파악하고 이를 주변 동료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성숙한 의식을 가진 시민들이 많아질수록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파괴하려는 소수의 권력 추종자들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려워진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런 시민들이 임계치를 넘어섬으로써 전체주의나 권위주의적 사고가 감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어려운 과제이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관건은 우리 스스로 높은 의식 수준에 도달하려는 열망에 있다.
저자가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지적한 필연의 정치학(politics of inevitability)와 영원의 정치학(politics of eternality)의 개념은 역사학자로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가 정치를 이해하는 데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이다. 필연의 정치학은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Fukuyama)가 저서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에서 주장했던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인 승리에 도취된 정치를 말한다. 더 이상 우리가 추구할 이상도 대안도 없다는 또 다른 역사의 필연법칙에 함몰된 결과 우리는 지금 역풍을 맏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영원의 정치는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명저 『영원의 철학』을 연상케 하는 용어이지만 내용은 완연히 다르다. 저자가 말하는 영원의 정치는 일종의 환상에 기반을 둔 “기만 정치”의 다른 명칭일 뿐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필연의 정치는 불가피하게 영원의 정치로 수렴한다면서 이런 대표적인 실례로 푸틴이 주도하는 러시아의 정치를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자가 《The Guardian》에 기고한 2018년 3월 16일자 칼럼 《Vladmir Putin’s politics of eternity》를 참조하길 바란다.
이 책은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고 있기에 저자가 20개의 교훈을 강조한 이유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저자가 불평등의 악화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과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제인 마이어가 『다크 머니』에서 파헤쳤듯이 미국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소수 재력가들에 의한 금권정치(plutocracy)를 언급하지 않은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가 『불평등의 대가『에서 지적했듯이 불평등의 악화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태롭게 한다. 또한 제인 마이어가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보여 주었듯이 코크 형제(Koch brothers)를 비롯한 재력가들이 막후에서 미국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시민으로서 연대하고 진실에 근거해 사고하고 행동할 때이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혁명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던 토머스 페인의 《상식》을 상기시킨다. 물론 폭정의 잠재성이 드러나고 있다고 해서 당시와 같이 무력 혁명을 촉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다. 즉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의식혁명(consciousness revolution)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책을 마무리하면서 젊은 세대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기대한다. “우리는 필연의 정치학을 포용함으로써 역사 없는 세대를 키웠다. 필연의 약속이 그렇게 명백하게 깨졌으니 역사를 모르는 젊은 세대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그들은 아마도 필연에서 영원으로 서서히 이동할 것이다.......한 가지는 확실하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만드는 데 나서지 않는다면, 영원과 필연의 정치인들이 역사를 파괴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를 만들려면 뭔가 조금이나마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