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스티븐 호킹의 《Brief Answers to the Big Questions》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9-01-25 13:42
조회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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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Stephen Hawking 

출판사: Bantam Books(2018)

 

Contents 

Forward: Eddie Redmayne

An Introduction: Kip Thorne

Why we must ask the big questions

Is there a God?

How did it all begin?

Is there other intelligent life in the universe?

Can we predict the future?

What is inside a black hole?

Is time travel possible?

Will we survive on Earth?

Should we colonize space?

Will artificial intelligence outsmart us?

How do we shape the future?

 

스티븐 호킹(1942~2018)을 추모하며 

스티븐 호킹은 아마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후 가장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일 것이다. 필자가 호킹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그가 쓴 첫 번째 대중과학서인 Brief History of Time을 통해서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후 호킹이 쓴 책은 대부분 읽었는데 특히 그의 초인적인 열정과 극한의 지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전이라 어떤 책인지 정확히 모르겠으나 호킹은 그 책에서 한 페이지가 넘는 수학공식을 모두 암기한 상태에서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했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적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이 그를 지탱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도입부에 있는 호킹 자신의 글 <Why we must ask the big questions>에 묘사되어 있듯이 옥스퍼드에 재학할 때 평생 그를 괴롭힌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해 1962년 케임브리지에서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 본격적으로 발병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나이 겨우 20세 무렵이었다. 평생 그를 괴롭힌 질병의 공식적인 명칭은 “Motor Neuron Disease”라고 하니 우리말로는 운동뉴런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식적으로 근위축성 측생 경화증이라는 어려운 병명이 사용된다. 운동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와 근육이 서서히 기능을 상실하게 되는 불치병이다. 일명 루게릭병이라도 하는 데 미국 메이저리그의 강타자 루 게릭이 이 병을 앓았기 때문에 유래한 명칭이다. 여담이지만 루 게릭의 일생을 다룬 영화에서 루 게릭 역할을 했던 명배우 게리 쿠퍼(Gary Cooper)가 영화 말미에 죽음을 앞둔 소년을 방문해 원하는 방향으로 홈런을 치겠다고 약속한 후 다음날 그대로 실현했던 장면이 기억나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화라고 한다. 그리고는 루 게릭에게 이 병이 발병하면서 조기에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스티븐 호킹은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 같다. 근육이 아니라 두뇌를 사용하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간 중간 몇 번의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가 있었지만 이를 모두 극복하고 76년의 삶을 살았으니 말이다. 

 

이 책은 호킹 사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노력을 통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호킹은 생전에 과학자, 기업인, 정치가 및 일반대중들로부터 이 책에 수록된 빅퀘스천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받았으며 이에 대한 답변은 연설이나 인터뷰 그리고 에세이의 형태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 책은 이런 자료를 정리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책 제목은 호킹을 유명하게 만든 첫 번째 저서 Brief History of Time를 모방해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으로 정했으나 결코 간결한 대답이 수록된 것은 아니다. 물론 열 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논하는 데는 수학을 사용한 복잡한 논의가 전혀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증이 결코 간결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나하나 매우 신중하게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면서도 원래 유머를 잃지 않았던 성격 탓으로 이 책 곳곳에서 호킹 특유의 재치 있는 표현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망외의 소득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내용이 무엇이든 빅퀘스천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인간 또한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고 일단 태어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유기체임은 분명하다. 죽음 이후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지만 지금의 육체를 가진 로 살아가는 삶은 단 한 번뿐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우주에서 가장 복잡한 기관인 두뇌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광대무변한 우주를 탐사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빅퀘스천을 탐구할 자격 내지 권리가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런 지적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동물 수준의 본능에 치우친 삶을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것은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포기하는 일이기에 의무라고 한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호킹의 육신은 떠났지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면서 빅퀘스천을 묻는 인간이 되라고 촉구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의 <프롤로그>에 해당하는 글의 제목이 “Why we must ask the Big Questions?”, 왜 우리는 빅퀘스천을 물어야 하는가?”이다. 호킹은 <프롤로그>의 마지막을 다음 문장으로 장식한다. 

 

우리는 모두 시간 여행자로서 미래를 향해 함께 여행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방문하길 원하는 그런 미래를 만들기 위해 협력하자. 용감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단호하면서, 역경을 이겨내라. 우리는 해낼 수 있다(We are all time travellers, journeying together into the future. But let us work together to make that future a place we want to visit. Be brave, be curious, be determined, overcome the odds. It can be done).”(p.22) 

 

호킹의 빅퀘스천 

빅퀘스천은 인류 역사 이래 면면이 이어져온 그야말로 큰 질문으로서 소위 작은 질문(small question)에 반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작은 질문을 모두 배제한다면 큰 질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예컨대 오늘 저녁은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어디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가장 유리할까?”, “오늘 그녀와의 데이트에서 무슨 대화를 나눌까?”, “어떤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 좋은가?” 등은 작은 질문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제기하는 질문들은 거의 대부분 작은 질문에 해당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큰 질문은 현실적으로 별 도움이 안 되는 추상적인 질문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큰 질문은 본질적으로 에고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무엇 또는 순수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그 무엇과 관련되어 있다. 그렇기에 이성적으로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빅퀘스천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러면 큰 질문은 우리에게 무슨 혜택을 줄 수 있는가? 아무런 혜택이 없다면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자체가 시간 낭비요, 뜬금없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빅퀘스천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일 것이다. 필자 역시 이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빅퀘스천을 묻는다고 해서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지혜로워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지한 상태로 이 세상을 떠나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빅케스천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갖지 않아도 별 문제 없다. 이렇게 볼 때 빅퀘스천은 스스로 존재론적 의미를 묻고 싶은 열정이 있는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필자는 우리 모두 내면에는 이런 열정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현실에 함몰되어 있는 의식의 높은 벽이 이를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필자는 이 책에서 호킹이 제기한 열 개의 빅퀘스천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킹이 제시한 빅퀘스천은 대부분 물리학을 통해 답을 구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빅퀘스천은 물리학의 관점에서만 제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동서양의 현자들은 오래전부터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와 관련된 빅퀘스천을 제기해왔다. 그밖에 고대 그리스의 탈레스(Thales)이래 많은 동서양의 철학자들 또한 인간의 본성과 관련된 빅퀘스천을 제기해왔다. 그리고 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도 다양한 빅퀘스천이 제기되어왔다. 따라서 빅퀘스천은 특정 분야나 특정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 및 자연현상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빅퀘스천과 조우(遭遇)하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호킹은 작별 선물로 이 점을 상기시켜주었던 것이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낀 바는 논리적 추론과 직관 내지 통찰은 받아들이는 입장은 상당히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혹자는 통찰이나 직관을 통해 답을 얻는다고 말한다. 필자는 이런 경지가 그저 부러울 뿐 이를 부정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통찰이나 직관이 빅퀘스천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실한 답을 주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는 주관적인 특성을 갖는다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반면 이 책에서와 같이 이성적 사유와 논리적 추론을 통해 대한 답을 구하려는 자세는 객관적인 특성을 갖기에 일반인들에게 더 친근하게 여겨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어떤 사고의 비약이 없기에 잘 따라가면 자신도 객관적인 근거를 갖는 확신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이성적 사고의 장점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점에서 호킹과 조금 다르다. 아마 호킹과 같은 지적 수준에 도달하면 그럴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역량으로는 호킹의 논증을 모두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것은 그의 논증 자체에 오류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의 우주관이나 세계관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그 이유는 호킹은 사망 직전까지도 과학적 물질주의와 환원주의를 신봉하였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임종 직전까지 양자역학을 부인했던 아인슈타인과 흡사해 보인다. 물론 호킹 자신도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모순이 없기에 그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말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예컨대 호킹은 <1>에서 신의 존재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당신이 나와 같이 과학을 신봉한다면 항상 준수되어야 하는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것이다. 당신이 좋다면 그 법칙이 신의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라기보다는 신의 정의에 가깝다.(p.26) 

 

필자는 호킹이 이런 방식으로 큰 질문에 접근하는 자세를 존중한다. 여기에는 어떤 개념적인 혼란이나 모호함이 없다. 신의 존재와 신의 정의를 혼동한다면 더 이상 논의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제대로 된 논의의 출발점이다. 

 

호킹이 제기한 열 가지 빅퀘스천 가운데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1, 2, 7장 및 9장에서 제기한 질문들이다. 사실 1장과 2장의 질문을 서로 연관되어 있다. 우주의 기원과 관련해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를 가정하지 않고도 자연법칙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호킹이 이미 The Grand Design에서 상세하게 밝혔으며 특별히 새로운 내용이 추가된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아직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비록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우주의 기원과 진화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빅뱅 이론을 신뢰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컨대 의사이자 줄기세포 전문가인 로버트 란자(Robert Lanza)는 저서 BiocentrismBeyond Biocentrism에서 빅뱅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적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생물중심주의라는 새로운 우주론을 제창했다. 물리학자가 아닌 그의 주장이 주류 계에서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적어도 반론을 제기했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사고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가장 공감한 대목은 인류가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다른 종들은 물론이고 인류 스스로 멸망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다룬 7장 및 8장 그리고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한 9장이다. 7장에서 호킹은 인류가 과연 지구에서 생존할 수 있는지 묻는다. 이것이 오래전부터 호킹이 인류에게 경고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호킹은 태양이 수십 억 년 후 적색거성으로 변해 지구를 삼켜버리기 훨씬 전인 지금부터 불과 몇 백 년 후에 인류가 멸망할 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예컨대 그는 핵폭탄과 기후변화의 위험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핵폭탄이나 환경재앙이 앞으로 1,000년 이내 일정 시점에서 지구를 심하게 손상시킬 것이 거의 필연적이라고 간주하는데 이는 지질학적 시간의 관점에서는 눈 깜짝할 사이에 불과하다. 그 때까지 나는 재간이 많은 우리 인류가 지구의 무정한 속박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고 그래서 재난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며 그렇게 믿는다.”(p.150) 

 

그러면서 호킹은 인류는 지구를 떠나 일단 태양계 안에서 새로운 거점을 발견해야 한다면서 달과 화성을 일차적인 후보지로 제안한다. 이후 태양계 너머 다른 행성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향후 수백 년 안에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할 것이라는 낙관론을 펼친다. 호킹은 오래 전부터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이 인류의 멸종을 피하는 방법이라고 제안해왔는데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은 거의 우리 손 안에 들어왔다. 다른 태양계를 탐험해야 할 시점이다. 우주로 나아가는 것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 나는 인류가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확신한다. 만약 여기 그대로 머문다면 우리는 절멸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p.151) 

 

필자에게는 호킹이 인류의 미래를 이 정도로 암울하게 전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아마도 호킹은 인류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이런 종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호킹은 현재와 같은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이것은 이미 여러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한 내용이기도 하다. 예컨대 글로벌 경제가 연평균 2%씩 성장한다면 복리로 계산했을 때 조만간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이것은 일찍이 1960년대 <로마클럽 보고서>에서 주장한 것이기도 하다. 호킹은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해 이런 성장지상주의에서 탈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와 같이 난마처럼 얽혀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은 정말 어려워 보인다. 

 

호킹이 인류가 직면할 다른 존재론적 위험의 원천으로 지적한 것이 인공지능이다. 물론 이때 인공지능은 현재와 같은 수준의 약인공지능(ANI)가 아니라 범용인공지능(AGI) 및 이를 업그레이드한 초인공지능(ASI)이다. 호킹은 다수의 인공지능 전문가들과는 달리 초인공지능이 실현 가능한 것으로 예상한 듯하다. 그렇기에 호킹은 다음과 같은 경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설계하는데 있어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우월해져 인간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개선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지능폭발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달팽이를 능가하는 것보다 지능 면에서 인간을 훨씬 능가하는 기계가 출현할 것이다.”(p.184)

 

이런 견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호킹은 2015년 일론 머스크, 빌 게이츠 등과 함께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하는데 도덕적·윤리적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호소문을 작성하는 데 참여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호소가 구속력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호킹은 스스로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인공지능, 즉 초인공지능의 출현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예측한 것 같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은 인류의 의지(will)와는 상반되는 자기만의 의지를 발전시킬 것으로 예상하였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위험을 경고한 것이다. 호킹도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가져다줄 이득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정적인 면을 강조했던 것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인간의 도덕성에 회의를 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호킹은 부와 권력을 독점하려는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데 그 종착역은 초인공지능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이 점에서는 호킹과 같은 생각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이것이 SF영화의 소재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고 실제로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의 특성이 블랙박스”, 즉 어떻게 그런 결과를 도출하는지 아무도 정확하게 모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호킹의 비관적인 전망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필자도 호킹과 같은 이유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호킹은 천성적으로 낙관주의자이기에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문제와 관련해 호킹은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매듭을 짓는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무한한 도움을 줄지, 아니면 우리를 무시하고 열외로 취급하거나 우리를 파괴할지 알 수 없다. 낙관주의자로서 나는 우리가 세상을 위한 인공지능을 개발할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와 사이좋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우리는 단지 그로 인한 위험을 인지하고 확인하며 최선의 실천과 관리를 도입함으로써 미리 그로 인한 결과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p.205)

 

필자는 호킹이 제기한 빅퀘스천 가운데 여기서 강조한 것들은 누구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킹이 주로 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빅퀘스천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는 점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의 성배(Holy Grail)로 불리는 이른바 만물이론(Theory of Everything) 내지 통일이론(Unified Theory)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이래 우주를 지배하는 네 가지 힘을 통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을 개발하는 것은 물리학자들의 염원이다. 그런데 이미 일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여기에는 인간의 의식(consciousness) 내지 정신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다. 모든 것에 모든 것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의식은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환원주의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도 뇌를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들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는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정신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David Chalmers)가 주장했듯이 의식을 물질이나 에너지와 같이 우주의 기본요소로 간주해야 한다는 데 필자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의식은 환원 불가능한(irreducible) 현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로버트 란자가 제창하는 생물중심주의 또한 의식이 물질에 선행했다는 가설에 근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호킹이 인간의 의식 내지 정신과 관련된 빅퀘스천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점이다. 호킹은 마지막 장에서 아직 답을 얻지 못한 존재와 관련된 커다란 문제로 생명의 기원과 의식의 본질을 언급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아직도 해결되어야 할 빅퀘스천이 많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는 일종의 립서비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킹과 같이 처절하게 육신의 한계에 갇혀 살면서도 정신은 우주를 종횡무진 활보했던 사람에게 어떤 의미로든 영적 각성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예컨대 미국의 우주비행사 에드워드 미첼은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신비체험을 했고 이후 인생이 달라졌다. 필자는 호킹에게는 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아마 그에게는 수학과 물리학이 제시하는 세계가 실재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물질의 기본 단위로 환원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 영적인 각성이란 스스로 이성의 존재를 부정하는 모순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호킹의 마지막 선물에 경의를 표한다. 지구를 떠나면서도 인류에 대한 애정을 이런 방법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하지만 그가 제기한 빅퀘스천만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가 제시한 답이 유일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호킹은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도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빅퀘스천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글은 호킹에게 바치는 헌사(獻辭)라 할 수 있다. 

 

빅퀘스천은 왜 중요한가? 

필자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살면서 언젠가는 어떤 계기에 의해 자신만의 빅퀘스천과 조우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제시한 것 외에 어떤 빅퀘스천이 가능하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우선 필자가 기억하는 한에서 몇몇 사람들이 제시했던 빅퀘스천을 간략하게 살펴보려 한다.

 

우선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물리학자 중 한 명인 존 휠러(John Wheeler)는 다음과 같은 빅퀘스천을 제기했다. 물리학자 한스 크리스찬 폰 베이어는 휠러의 9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 학술회의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정보, 과학의 새로운 언어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여기서 휠러가 제기한 빅퀘스천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존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왜 양자(quantum)인가?

동참하는 우주(participatory universe)란 무엇인가?

의미는 무엇인가?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

 

휠러가 제기한 빅퀘스천 가운데 마지막 질문은 그가 말년에 모든 것은 정보다(Everything is information)”라고 선언했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다. 이 질문이 시사하는 것은 물질적인 세계(존재)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정보(비트)로부터 구성된다는 것이다. 휠러는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주장을 펼쳤다.

 

"모든 존재, 즉 모든 입자와 역장, 심지어 시공연속체까지도 그 기능이나 의미 그리고 존재 그 자체를 -아니오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즉 비트로부터 전적으로 얻는다." 

 

휠러는 물리학자임에도 단순히 어떻게의 관점이 아니라 라는 보다 근본적이고 철학적 관점에서 우주와 우리 자신의 관계에 대한 과학적 질문을 제기했던 것이다. 하나하나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에 빅퀘스천으로 손색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휠러는 물리학을 다시 형이상학의 관점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호킹은 이 책보다 먼저 출판된 The Grand Design에서 다음과 같은 빅퀘스천을 제기했다.

  

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존재하는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다른 법칙이 아니라 왜 이와 같이 특별한 일련의 법칙이 성립하는가?

 

이 질문들은 이 책에서 제기한 열 개의 빅퀘스천과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 책의 첫째, 둘째 질문이 이들과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호킹은 The Grand Design의 마지막 장에서 굳이 신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우주의 탄생부터 현재까지의 진화 과정을 중력과 자기조직화의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면서 자신은 신의 존재를 부정 또는 긍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신을 상정하지 않고도 자연법칙에 의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호킹은 이 책의 1장과 2장에서 이와 대동소이한 내용을 다루었다. 따라서 호킹이 이 책에서 제기한 빅퀘스천은 이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추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컨대 9장에서 다룬 인공지능 관련 내용은 The Grand Design이 출판된 2010년에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한편 생물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는 저서 Science Set Free에서 기존 주류 과학계에 공개적으로 10개의 질문을 던졌다. 필자는 그가 제기한 질문 하나하나가 빅퀘스천에 해당된다고 본다. 이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은 기계적인가? 

물질과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한가?

자연법칙은 불변인가?

물질은 의식이 없는가?

자연은 목적이 없는가?

모든 생물학적 유전은 물질적인가?

기억은 물질적 흔적으로 저장되는가?

마음은 뇌에 갇혀 있는가?

초자연적 현상은 환각인가?

기계적 의학이 정말 효과가 있는 유일한 것인가?

 

셸드레이크 자신이 밝혔듯이 이 열 가지 질문은 모두 과학적 물질주의와 환원주의에 기반을 둔 주류 과학계가 인정하고 있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주류 과학적 견해에 의하면 이들은 이미 답이 있기에 빅퀘스천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필자는 셸드레이크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는 입장이기에 이들 대부분은 빅퀘스천으로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중에서 물질은 의식이 없는가?”, “모든 생물학적 유전은 물질적인가?”, “기억은 뇌에 갇혀 있는가?”, “마음은 뇌에 갇혀 있는가?”와 같은 질문은 주류 과학계가 명쾌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질문들이기에 빅퀘스천의 관점에서 깊이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또한 개미 연구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도 일련의 저서를 통해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인간 존재의 문제와 관련된 몇 가지 빅퀘스천을 제기했다. 그가 제기한 빅퀘스천은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차이가 있다면 윌슨은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적 관점에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가 지구의 정복자, 인간 존재의 의미등의 저서를 통해 제기한 빅퀘스천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의미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 조건을 이해하면 존재의 의미가 모두 드러나는가?

사회적 진화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생물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외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영원의 철학에서 다루었던 많은 현자들과 신비주의자들도 영적 관점에서 표면상으로는 이들과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빅퀘스천을 제기했다. 헉슬리가 언급했던 동서양의 현자들이 제기한 질문의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궁극적인 면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모두 궁극의 실재에 관한 의문과 확신을 자신이 처했던 문화인류학적·사회적 상황을 반영해 다른 방식으로 표출했을 뿐이다. 

 

우리 인간은 이런 큰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지구에 왔는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깊은 차원에서는 과학과 종교가 우리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져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다른 답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좀 더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영성의 조화라는 통합적인 관점에서 빅퀘스천을 궁구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제 이 글을 마치면서 필자가 품고 있는 빅퀘스천을 간략하게 소개하려 한다. 여기에는 다른 의도는 없다. 다만 사람들이 자기 나름의 빅퀘스천을 궁구하다보면 부지불식중에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작은 소망은 담겨 있다. 

  

주요 종교와 과학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자아란 허상에 불과하다는 명제는 진실인가? 허상에 불과한 것을 인지하는 주체는 무엇인가?

뇌는 의식의 원천인가, 아니면 필터에 불과한가?

만약 의식이 뇌와 독립적이라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드러나는가?

기억은 뇌에 저장되는가, 아니면 뇌 밖의 어딘가에 저장되는가?

죽음은 존재의 완전한 소멸인가, 아니면 아직은 파악되지 않은 세계로의 이동인가?

진화론은 한 점 오류가 없는 이론인가, 아니면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가?

초인공지능이 출현하면 인류의 모든 난제들이 해결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시대에 적합한 정치·경제 시스템은 무엇인가?

생명의 기원 및 의식의 기원과 정보의 출현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정보이론, 물리학, 생물학, 신경과학 및 경제학에서 다루는 정보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이론은 가능한가? 그렇다면 여기서 의식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상으로 필자가 생각하는 몇 가지 빅퀘스천을 언급해보았다. 아직은 무지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에 이 가운데 어느 것이 계속 궁구할 가치가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능력이 닿은 범위 안에서 계속 노력할 뿐이다. 이것만이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라고 믿기 때문이다. 현실적인 이득을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다른 사람들과 다툴 일이 없을 것이며 위선적으로 행동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우리 각자 나름의 빅퀘스천을 궁구해보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세상을 기대하면서. 

 

 

이 책은 최근호킹의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으니 참조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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