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의 《과학의 새로운 언어, 정보(Information, the new language of science)》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7-09-11 01:10
조회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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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Hans Christian von Bayer)

역자 : 전대호

출판사 : 승산(2009)

 

목차

배경

전기 비: 우리 삶 속의 정보

데모크리토스의 주문에 걸리다: 왜 정보가 물리학을 변화시킬 것인가?

-포메이션: 개념의 뿌리

비트 세기: 정보의 과학적 측정

추상: 구체적인 실재를 넘어서

생명의 책: 유전 정보

거인들의 싸움: 환원주의와 출현(emergence)

코펜하겐의 신탁: 과학이 다루는 것은 정보이다

고전적인 정보

9. 가능성 계산: 확률은 정보의 수량화이다

10. 자릿수 세기: 어디에나 있는 로그함수

11. 묘비에 새겨진 메시지: 엔트로피의 의미

12. 무작위성: 정보의 뒷면

13. 전기 정보: 모스에서 섀넌까지

14. 잡음: 방해와 필요

15. 궁극적인 속도: 정보 속도 한계

16. 정보 풀기: 물리학에 봉사하는 컴퓨터

17. 생물정보학: 생물학과 정보기술의 만남

18. 정보는 물리적이다: 망각의 비용

양자 정보

19. 양자 기계: 양자의 불가사의를 목격하다

20. 구슬 게임: 양자 중첩의 시대

21. 큐비트: 양자 시대의 정보

22. 양자 컴퓨터: 큐비트를 이용한 계산

23. 블랙홀: 정보가 숨는 곳

진행 중인 연구

24. 비트, 달러, 히트, 너트: 섀넌을 넘어선 정보이론

25. 차일링거의 원리: 실재의 뿌리에 있는 정보

 

 

<북 리뷰: 과학적 관점에서 본 정보의 진화섀넌의 정보에서 양자 정보까지>

책의 특징과 개요: 우주의 근본 요소로서 정보

저자 한스 크리스천 폰 베이어는 그다지 널리 알려진 물리학자는 아니다. 그렇지만 제목이 시사하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과학, 특히 물리학과 생물학의 관점에서 정보의 여러 측면을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비록 경제학의 관점에서 정보를 다루지 않은 것이 아쉽지만 과학의 관점에서 정보를 다룬 책으로는 매우 탁월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서 읽은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정보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소개하려 한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한지 벌써 상당한 시간이 지났고 정보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했기에 우리 모두 다양한 정보에 쉽게 접근하고, 저장하고, 전달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런데 정보와 생명, 정보와 의식, 정보와 기억 및 의사결정 등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마치 물이나 공기와 같이 필수적인 요소지만 일상적으로 늘 쉽게 접하는 대상이라 그 중요성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리라.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주장하려는 것은 정보는 개인, 조직, 사회, 국가 나아가 생태계와 우주를 망라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물질이나 에너지, 지식과 도덕 등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어떤 것보다도 더 근원적인 요소일지도 모른다. , 정보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저자가 과학의 관점에서 정보의 의의를 체계적으로 소개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 책과 관련해 주목할 것은 무엇보다도 물리학자 존 휠러(John A. Wheeler, 1911~2008)가 여러 사람들에게 준 영감이다. 휠러는 20세기 현대물리학의 두 거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와 공동 연구를 수행했던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킵 손(Kip Thorn), 휴 에버렛(Hugh Everett) 같은 유명 제자를 둔 훌륭한 선생이었으며 블랙홀, 웜홀 및 양자 거품(quantum foam)과 같은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으로서 학계에서 널리 존경받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휠러의 9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한 후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물리학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다룰 것을 처음 제안한 사람이 바로 휠러였기 때문에 이 책 또한 그의 업적을 기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휠러가 남긴 유명한 말 비트에서 존재로(It from bit)”만물은 정보다또는 우리는 참여하는 우주에 살고 있다는 것과 같은 그가 남긴 메시지를 대변한다. 휠러는 자신의 커리어를 세 개의 기간으로 구분했는데 첫째 기간은 만물은 입자다라는 말로, 둘째 기간은 만물은 장(field)이다라는 말로, 셋째 기간은 민물은 정보다라는 말로 압축했다. 이와 같이 휠러는 말년에 우주에서 정보는 물질과 에너지 못지않게 더 근본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이런 그의 생각은 1990사이언티픽 어메리칸에 수록된 논문의 다음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다.

 

비트에서 존재로는 물리적 세계의 모든 것들은 근원에대부분의 경우 깊은 근원에비물질적인 원천과 설명을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를 상징한다;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것은 -아니오질문을 제기하고 장비에 의해 유발된 반응을 기록해서 얻는 최종 분석으로부터 발생한다. 간단히 말해 물리적인 모든 것들은 근원에서는 정보 이론적이며 이것이 참여하는 우주다.“(It from bit symbolizes the idea that every item of the physical world has at bottomat a very deep bottom, in most instancesan immaterial source and explanation; that what we call reality arises in the last analysis from the posing of yes-no questions and the registering of equipment-evoked responses; in short, that all things physical are information-theoretic in origin and this is a participatory universe.)

 

이 구절과 필자가 버나드 헤이시의 신 이론에 대한 리뷰에서 인용했던 양자물리학의 태두, 막스 플랑크의 다음 구절을 비교해보면 본질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플랑크는 물질적 우주의 이면에 있는 매트릭스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휠러는 비트, 즉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이 정의한 정보의 기본 단위인 비트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는 상이하다. 따라서 표면상으로는 두 가지 표현이 달라 보이지만 필자는 이들이 본질적으로 유사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 섀넌이 명확하게 규정했듯이 비트는 정보의 양적 측면을 강조하는 용어인 반면, 매트릭스는 정보의 질적 측면을 반영하는 용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두 가지 측면 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마음 또는 의식이란 결국 정보의 흐름 및 정보의 처리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정보에 반응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만물은 원자를 진동하게 만들고, 가장 작은 태양계와 같은 원자를 유지시켜주는 힘으로부터 유래하며 이로 인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힘의 뒤에는 의식적이며 지적인 마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마음이 바로 만물의 모체다.“(All matter originates and exists only by virtue of a force which brings the particle of an atom to vibration and holds this most minute solar system of the atom together. We must assume behind this force the existence of a conscious and intelligent mind. This mind is the matrix of all matter.)

 

저자는 이와 같은 휠러의 사고를 계승해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에서 정보가 어떻게 핵심 개념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 순차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강점이다. 이에 앞서 저자는 휠러가 제기한 정말로 큰 질문들(Really Big Questions)”에 해당하는 “1) 존재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2) 왜 양자인가? 3) 동참하는 우주 4) 의미는 무엇인가? 5) 비트에서 존재로?”에 대한 간단한 소개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이 가운데 마지막 질문이 휠러에게 가장 중요한 큰 질문이었는데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 질문이 시사하는 것은 물질적인 세계존재가 전적으로 혹은 부분적으로 정보비트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휠러는 다음과 같은 신비로운 주장을 내놓는다. ‘모든 존재, 즉 모든 입자와 역장(力場, field of force), 심지어 시공 연속체까지도 그 기능이나 의미 그리고 바로 존재 그 자체를 -아니오질문에 대한 답으로부터, 즉 비트로부터 전적으로 얻는다.”(12)

 

그러면서 저자는 정보에 대한 휠러의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몇 가지 질문을 추가하고 이를 풀어가는 방식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 저자는 본질적인 문제로서 정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전적 관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그런 후 최근 주목받고 있는 양자 정보(quantum information)에 대한 논의를 통해 휠러가 제기한 정말 큰 질문 비트에서 존재로에 대한 답을 모색하려는 시도를 한다. 필자 또한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학문 분야마다 정보를 달리 해석하는 상황을 극복해 통합적인 관점에서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는 정보 개념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인 양자 정보에 관해서는 필자가 논의할 입장이 아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서는 이 책에서 소개된 범위 안에서 언급할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양자 정보는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와 맞물려 양자역학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정보란 무엇인가?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가 등장하고 1990년대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 정보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공기나 물처럼 당연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든 기술혁신의 바탕에는 정보기술이 자리한다. 아울러 통신기술 또한 정보통신기술로 통합되어 인류의 미래를 바꾸고 있다. 이 책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는 정보이론의 대부인 클로드 섀넌은 최초로 통신, 즉 커뮤니케이션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수학적 모형을 고안한 사람이다. 그는 벨연구소에 근무하면서 당시 유선 통신망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수학적 모형을 고안했지만 그의 이론은 인터넷을 이용한 패킷 방식의 유무선 통신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사실상 섀넌은 인터넷 혁명의 초석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정보는 통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특징이 있으며 이로 인해 정보 개념을 둘러싸고 약간의 혼란이 발생해왔다.

 

사실 정보는 인류 역사, 아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체는 본질적으로 정보 처리 유기체(information- processing organism)”이기 때문이다. 정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유기체는 자연선택에 의해 멸종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개체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씨족, 부족, 그리고 국가 차원에서도 정보는 사실상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정보임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 기업의 경우에도 정보는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다. 이와 같이 모든 주체들에게 있어 정보는 늘 중요한 요소였지만 과거에는 정보의 획득, 저장, 전달 및 응용이라는 모든 측면에서 기술적으로 제한되어 있었다. 이런 한계를 제거해 준 것이 바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이에 기반을 둔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라 할 수 있다. 정보는 새로운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이런 오랜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학문적 대상으로서 정보의 역사는 매우 짧다. 우선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경성과학(hard science)인 물리학이나 화학에서는 얼마 전까지도 정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정보란 인간의 마음이나 의식과 같이 측정 불가능한 개념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고전물리학이나 현대물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물질과 에너지이며 이것을 근본 요소로 하면서 표준모델은 네 가지 힘의 지배를 받는 소립자, 전자, 광자, 양자 등의 상호작용을 통해 물질세계를 설명한다. 따라서 정보가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이 점은 화학도 대동소이하다. , 생물학에서는 1953년 이중나선이 발견된 이래 생물학적 정보의 저장 및 전달 수단으로 DNARNA가 주목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정보 개념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정보를 소극적인 의미로 이용했다. 생물학적 정보는 복제를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오늘날 이런 패러다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양자역학에 바탕을 둔 양자 정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생물학에서도 생물정보학(bioinformatics)이 각광을 받고 있다. 그밖에 경제학에서는 이미 오랜 전부터 정보의 중요성을 인식해왔으며 정보경제학(information economics)은 주요 분야로 간주된다. 이런 추세는 철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필자도 최근 정보 문제에 관심이 있는 철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학회를 설립하고 웹사이트(www.informationphilosopher.com)를 개설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철학에서도 정보 철학이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사이트를 방문해 보기 바란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정보란 무엇인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학문 분야마다 정보를 달리 해석하는 전통이 있기에 이것은 간단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나아가 현실에서 사용하는 정보라는 개념을 고려하는 경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보라는 단어도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개인 정보혹은 디렉터리 정보(directory information)’ 등과 같이 일상적인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정보는 특정 종류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의미를 뜻한다. 반면에 전문적인 영역에서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호그것이 문자이건, 수이건,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01이건가 강조된다. 정보기술에서 정보는 이 두 번째 의미로 사용된다.”(40) 이런 이유로 정보와 관련된 문제는 간단하지 않으며 종종 혼란을 초래했던 것이다.

 

경제학을 포함해 철학이나 인문학에서는 정보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지만, 물리학이나 정보이론에서는 기호의 양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의미라는 질적 측면과 기호의 양적 측면을 조화시키는 통합된 이론이 필요하다. 나아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정보는 이 두 가지 개념과도 조금 다르다. 어떤 면에서는 질적, 양적 측면이 모두 망라된 채 사용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단지 우리는 이런 측면들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보 개념을 훌륭하게 정리해 놓은 책으로는 Luciano FloridiInformation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의 문고판 시리즈 중 하나인데 여러 분야에서 정보 개념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잘 정리해 주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 작은 책을 참조하기 바란다.

 

필자는 정보는 의미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리 정보의 양이 많아도 의미가 없으면 그야말로 무의미한 메시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보의 의미란 곧 정보의 질적 측면을 반영한다고 해석할 때 가장 이상적인 정보는 가장 가치 있는 정보에 해당된다. 나아가 질적인 관점에서 정보를 분류하는 작업 또한 비교적 간단하다. 가장 가치 있는(질적으로 우월한) 정보에서부터 가장 가치가 없는(질적으로 가장 열악한) 정보로 서열을 매길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서열이 항상 완벽하게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부분 서열(partial ordering)이라는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보를 질적 측면에서 분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생각이 반드시 옳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보의 양이 정보의 질과 전적으로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서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예컨대 소비행동에 관한 빅데이터를 이용해 소비자들의 특정한 소비 패턴을 추출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정보의 양이 증가함에 따라 정보의 질도 향상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TV나 모바일 기기의 디스플레이의 경우 픽셀의 수가 증가하면 화질도 좋아진다. 그러면 화면에 나타나는 대상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도 정보의 양과 정보의 질 간에는 정()의 상관관계(positive corelation)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모든 경우에 이런 상관관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정보에 대한 질적 접근과 양적 접근 간에는 여전히 상충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 클로드 섀넌이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을 철저히 무시하고 오로지 양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접근법의 한계를 극복할 때가 되었다. 이 가능성을 빅데이터 분석에서 발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보에 대한 고전적 해석: information = in+formation

여기서 잠깐 고대 그리스 이래 서구에서 정보에 대해 어떤 견해가 지배적이었는지 생각해보자.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투스 이래 오랫동안 세계는 객관적인 실재와 이를 관찰하는 주체로 분리되어 있다고 인식되었으며 이런 사고는 데카르트-뉴턴의 이원론적, 기계적 세계관으로 확립되었다. 여기에 정보가 등장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존재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보는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정신과 물질의 연결점이다. 그것은 압축 가능한 희한한 재료이다. 원자나 DNA분자, 혹은 책이나 피아노처럼, 정보는 만질 수 있는 대상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리고 감각이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그것은 우리의 뇌 속에 자리를 잡는다. 이는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보는 물질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을, 실재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을 매개한다.”(38) 이 대목은 중요하다. 정보는 정신과 물질의 연결고리를 형성하는 과정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리고 저자는 information을 분해하면 “in + formation”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formationform의 명사형이다. form은 형상을 말하며 이것은 플라톤에 의하면 이상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것, 즉 이데아의 다른 이름에 해당한다. 이렇게 보면 정보는 뭔가 모호한 실체에 형상을 주입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informationin + formation의 합성어로 볼 수 있으므로 정보는 형상이 없는 존재에 형상을 주입(infusion)하는 것을 의미한다.......그러므로 정보의 의미에 대한 질문은 다음과 같은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형상은 무엇일까?”(42)

 

저자가 말하는 형상은 플라톤이 말한 형상으로 이어진다.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형상을 이상적인 세계에 존재하는 실재의 모습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정보의 본질과도 일맥상통한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정보는 뭔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실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을 때 그 존재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정보는 불확실한 상태들(uncertain states) 중에서 무엇이 실현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장차 실현될 진정한 상태(true state)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서비스로 간주한다. 이것은 미지의 대상에 형상을 부여한다는 고전적인 견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단지 사용되는 용어가 다를 뿐이다. 이런 사실은 예로부터 정보라는 개념은 존재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지의 대상에 형상을 부여한다는 관점에서 정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누구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필자가 이해하는 한 근대에 와서는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과 존 휠러, 그리고 시스템 철학자 에르빈 라즐로(Ervin Laszlo)를 언급할 수 있다. 특히 라즐로는 Science and the Akashic Field라는 책에서 정보장(information field) 개념을 소개하면서 이런 관점에서 정보를 해석하였다. 그가 말하는 정보장은 아직 충분히 검증된 개념은 아니지만 모든 정보의 저장고로서 여기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가 누군가에게 일정한 경로를 거쳐 주입된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어쨌든 정보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에도 관심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정보를 다루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어떤 정보를 언제, 어디서, 어떤 과정을 통해 입수할지 미리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보의 묘미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정보를 해석하는 것은 정보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형상은 실재 내지 본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상을 부여한다는 관점에서 정보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정보의 의미를 강조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의미가 때로는 모호하기도 하고 때로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념이라는 것이 문제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체계적인 분석이 어렵다. 이런 면에서 경제학은 자연과학과는 달리 절충적인 입장에서 정보를 해석해왔다고 할 수 있다. 즉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을 중시하면서도 양적 측면을 고려함으로써 체계적인 분석이 가능하도록 했다는 의미다. 따라서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경제학의 방법론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저자도 말미에 언급했듯이 자연과학 분야에서도 이런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섀넌의 정보와 볼츠만의 엔트로피

오늘날 정보이론이라면 대체로 클로드 섀넌이 제시한 정보 개념에 바탕을 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수학적 이론을 의미한다. 섀넌이 벨연구소의 연구원으로서 출간한 1948년 기념비적인 논문 The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은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런 의미에서 섀넌은 정보이론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의 시대에 정보통신기술이 차지라는 위상을 고려할 때 섀넌의 공헌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보의 전문적인 정의는 너무 단순하긴 해도 정확하고 간결하다. 정보이론의 창시자 섀넌은 정보 자체를 정의하지 않고, 심지어 메시지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도 않고, 메시지 속에 들어 있는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방법을 발명했다.”(53) 이것은 섀넌이 제시한 정보 개념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음을 시시한다.

 

저자도 이 점은 인식하였기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섀넌의 조작적인 정의는 충분히 훌륭하지만, 그것의 문제점은, 메시지의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섀넌의 정의는 명확한 대신에 의미를 무시하는 결함이 있다. 휠러의 정말 큰 질문 <의미는 무엇인가?>는 비트를 세는 과정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과학자들은 정보문제의 정량적이고 피상적인 측면만 다루고 더 중요한 정성적인 측면을 무시하는 듯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역사의 가르침을 간과한 것이다.”(55) 그런데 이 말은 섀넌의 정의가 분명 명백한 한계가 있지만 정보의 정량적인 측면이 과학의 발견이라는 점에서 기여한 바를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리학의 역사는 정보를 수량화하는 섀넌의 단순한 기법이 언젠가 정보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질문에 빛을 비출 것으로 예상한다.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어쨌든 섀넌은 최초로 정보를 양적으로 측정 가능한 개념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섀넌은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주관적인 요소를 제거해야만 정보에 대한 과학적 접근에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견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그렇지만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 즉 가치의 측면을 배제하는 데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쨌든 섀넌은 정보의 기본 단위로 비트(bit)를 도입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비트 카운팅(bit counting)을 통해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원칙을 제시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정보는 비로소 과학적 연구의 대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찰스 다윈의 진화론과 섀넌의 정보이론을 대등한 반열에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로서는 이론적인 관점에서 섀넌의 정보이론이 그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오늘날 정보통신기술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및 경제적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현실적인 영향력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히려 아인슈타인이나 다윈의 영향력을 능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섀넌에서 정보는 불확실성 및 이에 관한 확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확률적인 요소는 양자역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자 정보로 이어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양자역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닐스 보어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한다. 보어에 따르면, 궁극적인 실재는 사물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사물에 관해 가지고 있는, 확률로 수량화된 정보의 총합이다. 그 정보를 코드화해서 담고 있는 파동함수는 행성처럼 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그림보다 더 큰 실재성을 주장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물리학이 다루는 것은 존재론, 본질의 과학이 아니라, 인식론, 즉 우리가 아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아는지에 대한, 그리고 지식의 한계에 대한 연구라는 것이 보어의 믿음이다. 그리고 인식론은 항상 정보의 흐름과 관계를 맺는다.”(102)

 

이 대목은 상당히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보어는 우리는 결코 실재를 알 수 없다고 생각했고 오직 실재에 대한 정보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보어에게 정보는 사물의 실재에 접근하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자역학은 원래부터 정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섀넌이 정보이론을 제안한 시점은 양자역학의 등장한 이후임에도 섀넌 자신은 이런 관계를 특별히 인식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오늘날 양자물리학자들이 섀넌의 정보 개념을 양자 정보로 확장하고 이를 측정하는 단위로 비트 대신 큐비트(qubit)를 제안하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보인다.

 

여기서 정보의 관점에서 확률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섀넌은 메시지를 전송하는 경우에 내재된 불확실성을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엔트로피를 계산했다. 이것이 섀넌의 엔트로피이며 단위는 비트다. 그런데 정보의 단위도 비트라면 섀넌이 말하는 엔트로피는 곧 정보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이는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엔트로피는 무질서 내지 정보의 결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는 섀넌의 정보 개념을 이해하는 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경제학에서와는 반대로 정보 개념을 정의하고 측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복잡한 설명 대신 다음의 간단한 사례를 살펴보자.

 

<사례 1> 균형 잡힌 동전을 던져 앞면(H) 또는 뒷면(T)이 나오는 경우

<사례 2> 불균형한 동전으로 앞면이 나올 확률이 0.9이고, 뒷면이 나올 확 률이 0.1인 경우

 

두 경우 모두 동전을 한 번 던지는 경우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올 가능성을 확률적으로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사례 2>에 비해 <사례 1>이 훨씬 더 불확실하다. 즉 무작위적이다. 두 면이 나올 확률이 같이 때문이다. 반면 <사례 2>의 경우에는 앞면이 나올 확률이 매우 높기에 뒷면이 나온다면 의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실현될 진정한 상태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례 1>의 경우에 훨씬 정보가 부족하다. <사례 1>은 더욱 무작위적이므로 엔트로피가 크다. 동시에 정보 부족(information deficiency)도 크다. 그럼에도 섀넌은 이것을 정보의 양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예컨대 <사례 1>의 엔트로피는 1비트이며 동시에 정보량에 해당한다. <사례 2>의 엔트로피는 0.469비트로 <사례 1>보다 작다. 두 경우 모두 다음과 같은 섀넌의 엔트로피 공식을 이용해 구할 수 있다: H(X) = -[ p(H)log2p(H) + p(T)log2p(T) ]

이 공식에 P(H) = P(T) = 0.5를 대입하면 H(X) = 1을 얻고, P(H) = 0.9, P(T) = 0.1을 대입하면 H(X) = 0.469를 얻는다. 섀넌은 이런 수치를 정보의 양이자 엔트로피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필자로서는 왜 섀넌이 정보 부족을 정보의 양으로 묘사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불확실성 정보 부족 엔트로피로 연결되는 개념들은 이해하는 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엔트로피 = 정보량이라는 등식을 강조함으로써 혼선이 빚어진 것이다. 단언컨대 섀넌의 엔트로피는 불확실성(내지 무질서)에 대한 확률적 평가를 반영한 것으로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곧 불확실성이 증가한다는 것이고 이는 정보 부족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석해야 일관성이 있다. 즉 섀넌의 정보는 정보 부족을 나타낸다. 그리고 이런 정보 부족은 외부에서 얻는 정보의 가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일반적으로 정보가 부족할수록 새로이 얻게 되는 정보의 가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은 이런 관점에서 정보를 정의하고 응용한다는 점에서 섀넌의 정보이론과는 다소 다르게 발전해왔다. 이제는 경제학의 관점을 수용할 필요가 있는데 저자가 24장에서 카레(Khare)의 연구를 인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카레는 정보를 평가하는 단위를 비트에서 달러, 즉 가치로 전환할 것을 제안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점을 특별히 강조했지만 이것은 이미 경제학에서 정보를 평가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저자는 이 점을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카레의 연구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확률은 통계역학의 창시자인 루드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이 제시한 엔트로피 개념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열역학의 제2법칙은 엔트로피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 개념을 처음 제안한 루돌프 클라우지우스는 엔트로피를 열량(W) 나누기 온도(T), W/T로 정의했다. 볼츠만은 이 정의를 일반화시켜 엔트로피를 가능한 미시적 상태의 수와 연결시켰다. 여기서 확률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엔트로피의 단위는 온도분의 열량인 반면에 로그값은 특정한 단위가 없는 순수한 수이다. 그러므로 볼츠만은 다음과 같은 그의 법칙을 완성하기 위해 먼저 비례상수를 도입해야 했다엔트로피는 방식의 수의 로그값 곱하기 특정한 비례상수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플랑크는 훗날 이 등식을 수학적인 기호로 표기하면서 엔트로피를 S로 비례상수를 k로 방식의 수를 W로 표기했다. S= k logW이것이 볼츠만의 묘비에 새겨진 등식이다.”(143) 볼츠만의 방정식 S = k logW에서 k는 비례상수로서 10-23으로 매우 작은 숫자인 반면, W는 분자들의 가능한 배열의 수로서 엄청나게 큰 수이다.

 

이어서 저자는 볼츠만이 사용한 엔트로피 개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보완 설명한다. 볼츠만의 해석에서 정보의 양과 관련된 항은 W, 즉 계를 재배열하는 방식의 수이다. 그 수가 크면 우리의 무지도 크다. 그 수가 작으면 우리의 무지는 작다. 이런 대략적인 방식으로 엔트로피를 결여된 정보와 동일시함으로써 볼츠만은 정보의 개념을 물리학의 영역 속에 들여 놓았다. 정보와 엔트로피의 연관성을 설명할 때 배열(arrangement)이나 질서(order)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두 개념은 형상(form)의 동의어이기 때문이다.”(146) 볼츠만이 말한 정보의 결여, 즉 정보 부족은 정확하게 섀넌이 말한 엔트로피에 해당한다.

 

필자는 여기서 결코 간단한 개념이 아닌 엔트로피에 관해 논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섀넌의 엔트로피 개념과 볼츠만의 엔트로피 개념 간에는 상당한 공통점이 있음을 언급하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양자는 불확실성 내지 무질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불확실성(무질서)의 증가 엔트로피 증가 정보 부족의 증가(정보의 가치 증가)라는 연쇄적인 관계가 성립한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섀넌의 엔트로피와 볼츠만의 엔트로피 모두 로그함수를 이용해 측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측정에서는 확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섀넌의 엔트로피가 볼츠만의 엔트로피를 포괄하는 더 넓은 개념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논평할 입장은 아니지만 섀넌의 간단한 개념에는 의외로 심오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지적한 대로 섀넌은 2진법 코드가 정보를 다루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임을 입증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 원리는 단순히 통신채널을 통한 메시지의 전송만이 아니라 우주의 삼라만상 간에도 적용된다는 것이 바로 존 휠러가 말한 참여하는 우주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든다. 휠러가 말한 대로 근원에는 -아니오에 대한 답이 존재한다면 이는 분명히 2진법을 이용한 정보의 전달이기 때문이다.

 

정보의 미래: 양자 정보와 우주의 이해

고대시대 이래 사람들은 정보 개념을 의식하고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 클로드 섀넌이 정보의 의미적인 측면을 배제하고 오직 양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비로소 정보의 양을 객관적으로 측정하고 효율적인 전달의 문제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정보에 대한 섀넌의 접근은 고전적 물리학이나 생물학의 관점에서도 완벽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오다가 드디어 정보는 양자역학과 연결되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고전적 정보 개념에 일대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교적 소상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른바 양자 정보와 큐비트 개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실험실에서 가동하고 있는 양자 컴퓨터는 큐비트 개념을 바탕으로 양자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로서 머지않아 실용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재는 원자 몇 십 개를 조작하는 수준에서 양자 컴퓨팅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데 과연 앞으로 얼마나 빠르게 발전할지 지켜볼 일이다. 큐비트와 관련해 저자의 다음 설명은 흥미롭다. 비트와 동전던지기의 결합, 확실성과 무작위성의 결합이 낳은 결실인 큐비트는 부모의 성질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큐비트는 부모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큐비트는 개념이다. 사물이 아니다. 비트가 0 또는 1의 값을 가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큐비트는 0 그리고 1의 양자 중첩으로 정의된다. 큐비트의 값을 실제로 측정하면, 값은 동전던지기에서처럼 무작위적으로 0이나 1이 될 것이다. 그러나 측정 이전의 큐비트는 50퍼센트의 1 그리고 50퍼센트의 0의 평형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혹은 80퍼센트의 1 그리고 20퍼센트의 0과 같은 다른 비중일 수도 있다.”(256) 큐비트는 비트에 양자 중첩 현상을 적용한 개념에 해당한다. 직관적으로는 잘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론적으로나 실험적으로는 이미 잘 정립된 개념이므로 양자 정보는 고전적 정보를 한 단계 더 일반화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필자가 이해한 범위 안에서 말하면 양자 정보는 양자 중첩(quantum superposition)으로 알려진 현상을 기반으로 한다. 양자 중첩은 0 또는 1이 아니라 01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주장에 해당하므로 동일한 정보 처리 채널을 통해 섀넌의 정보 개념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어떻게 비트를 큐비트 속에 집어넣고 불가피한 잡음에 의한 손상 없이 다시 꺼낼지, 어떻게 다수의 큐비트들 간의 얽힘의 정도를 측정하고 분류할지, 어떻게 고전적인 정보와 양자 정보를 전선을 통해 그리고 큐비트 사이의 무형의 연결을 통해서 이동시킬지이 질문들은 현대적인 양자 정보이론이 해결해야하는 난해한 질문 중 일부다. 기대하건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보의 본성에 빛을 비출 뿐만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을 것이다.”(267)

 

앞으로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양자 정보의 단위인 큐비트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양자 컴퓨터가 현재의 컴퓨터를 대신할 날이 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놀라운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 덕분에 더 많은 빅데이터를 분석함으로써 전에는 알 수 없던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대비책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미 정보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서로 연관되어 있는 정보 시대를 살고 있으며 향후 컴퓨터의 연산 능력과 패턴 처리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함으로써 정보를 처리하고 이용하는 우리 인간의 잠재력에도 커다란 발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다음과 같은 질문은 유효하다. 이와 같이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처리하게 됨으로써 우리는 과연 더 행복해질 수 있는가? 비트에서 큐비트로 발전하면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이어주는 정보의 역할에도 진전이 있을 것인가? 우리는 정보의 의미와 관련된 궁극적인 측면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과학의 언어로서 정보에 국한해 논의를 전개했기에 정보의 의미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고작 언급한 것은 비트 대신 달러가 채택되어야 한다는 카레의 주장 정도다. 필자는 정보와 관련해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의미이고 가치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긴 메시지라도 별다른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며 예 또는 아니오라는 간단한 메시지에 인생을 좌우하는 정보가 담겨 있을 수도 있다. ,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방대한 정보를 처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과거에는 불가능하던 질적으로 우수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은 정보의 양과 질 사이의 관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증거라 할 수 있다. 예컨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람의 감춰진 마음이나 의도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기술수준에 도달한다면 정보의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 사이의 갭은 상당히 해소될 것이다. 양자 컴퓨팅이 실용화되면 이런 현실이 가능하지 않을지 추측해 본다.

 

그리고 끝으로 저자가 휠러가 제기한 정말로 큰 질문 중 하나인 왜 양자인가?”를 둘러싸고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고 말하는 대목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비록 섀넌의 정보 개념과 이를 발전시킨 큐비트 개념을 바탕으로 과학이론으로서 정보이론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의미적인 측면을 간과한 것은 문제가 있지만 궁극적인 질문에 속하는 왜 양자인가?”하는 데 대한 답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휠러의 정신을 이어받은 실험물리학자 안톤 차일링거(Anton Zeillinger)가 제시한 양자 정보의 원리에 입각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차일링거 원리의 첫 번째 함축은, 휠러의 유명한 질문, “왜 양자인가?”에 대한 대답이다. 자연은 왜 물처럼 연속적이고 부드럽지 않고 모래처럼 불연속적이고 분절적인 조각들로 양자화되어 있을까? 대답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지 전혀 모르며, 심지어는 어떠한지를 묻지도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아는 것은 세계에 대한 앎이 정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보가 본성적으로 양자화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도 양자화되어 보인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대답은 더할나위 없이 단순하고 심오하다.“(315) 필자는 현재 차일링거의 원리를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비트에서 큐비트로 이어지는 정보이론이 단지 우주의 양적 측면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다.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로 이어진다는 변증법의 논리가 정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면 언젠가는 정보의 관점에서 우주의 신비를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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