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케빈 넬슨의 『뇌의 가장 깊숙한 곳(The Spiritual Doorway in the Brain)』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10-04 18:24
조회
778

20161004_091807_57f373cf8b5c9.jpg 

저자: 케빈 넬슨(Kevin Nelson) 

역자: 전대호

출판사: 해나무(2013)


목차

1부 물질적 기초

1장 영적 경험이란 무엇인가?

2장 세 가지 의식 상태

3장 분열된 자아

2부 통로에서

4장 임사체험의 다양성

5장 죽음의 문턱에 이른 뇌

6장 오래된 메트로놈

7장 끔과 죽음이 만나는 곳

3부 뒷면

8장 합일의 아름다움과 공포

후기: 새로운 지혜의 탄생

 

 

<북 리뷰: 깨어 있음 상태와 렘수면 상태의 경계에 대한 신경과학적 탐구와 임사체험>

★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저자 케빈 넬슨은 미국 미시간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켄터키 대학교 의과대학의 신경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신경과학적 관점에서임사체험을 비롯한 영적 경험 사례들을 30여 년간 연구해오고 있다. 그는 책에서 주변 인물과 환자들, 그리고 잘 알려진 인사들의 임사체험 및 신체이탈체험 그리고 영적 경험 사례들을 상세히 소개하면서 오랫동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 왔다고 말한다. 위키피디아를 참조해도 저자에 대해 더 이상 정보를 얻기 어려운 것으로 미루어 이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 책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NDE, 또는 근사체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하버드 의대에 재직했던 신경외과 의사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박사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나는 천국을 보았다』(2013)를 읽고 난 후부터다. 그 전에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의 저서를 비롯해 몇몇 책을 통해 임사체험 및 이와 관련된 유체이탈체험(Out-of-Body Experience; OBE, 신체이탈체험이라고도 함)에 관해 조금 알고 있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알렉산더의 책을 읽고 이 분야의 선구자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와 많은 임사체험 사례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한 제프리 롱(Jeffrey Long) 등 이 분야에서 꽤 알려진 연구자들의 책을 읽고 생각하면서 임사체험이, 비록 전통적인 기준에 의하면 여전히 객관적인 사실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상당 부분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주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종양학 전문의인 의학박사 제프리 롱은 『죽음, 그 후』(2010)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임사체험에 관한 체험담을 수집한 후 이 가운데 객관적인 기준에 입각해서도 무시할 수 없는 사례들을 선별한 다음 이들에 공통적인 요소들을 취합하고 분석함으로써 임사체험이 환상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개인적으로 이런 엄격한 과정을 통해 확립된 이론은 과학적 이론으로 고려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이나 ”재현성(reproducibility)“이라는 전통적인 기준에 의하면 한계가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통계적 관점에서 보면 일정 수준 과학적 기준을 만족하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비일상적 의식 상태를 연구해 온 정신과 의사 스타니슬라프 그로프(Stanislav Grof)는 이렇게 축적된 지식도 당연히 과학적 지식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특히 인간의 의식과 관련해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다른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필자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저자 케빈 넬슨은 풍부한 임상 경험을 가진 신경과 의사로서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 및 영적 경험을 최대한 기존 신경과학의 테두리 안에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필자가 아는 한 임사체험을 반박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뇌의 문제로 인한 일시적 환각 상태에서 경험하는 현상 정도로 가볍게 일축하는 경향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국에서 <스켑틱스(Skeptics)>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마이클 셔머(Michael Shermer)를 들 수 있다. 그는 이븐 알렉산더 박사의 임사체험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뇌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것이 유물론자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케빈 넬슨은 이 책에서 일반인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도록 가급적 평 이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임사체험과 관련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뇌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저자의 주장을 모두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임사체험이 과학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현상인지 여부는 아직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과학적 찬반 논의는 중요하다. 예컨대 이븐 알렉산더 박사가 책에서 자신의 임사체험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기술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가 의사이면서 과학자로서 오랜 연륜과 명성을 갖고 있기에 그의 진술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다. 그의 체험은 이 분야에서 블랙 스완(Black Swan)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임사체험과 같은 영적 내지 비일상적 의식 상태에 대한 체험을 기존의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지지하거나 반박한 사례를 찾기 어려웠는데 이 책은 이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저자는 주류 신경과학자로서 임사체험과 같은 영적 체험이 발생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이 뇌의 작용과 무관한 신비체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임사체험에 대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렘(REM)수면 상태와 깨어 있는 의식 상태가 미묘한 방법으로 결합해 임사체험을 유발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렘수면은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 REM)수면이라고도 부르며 깨어있는 것에 가까운 얕은 수면으로서 안구의 빠른 운동에 의해 구분되는 수면의 한 단계이다. 사람은 주로 렘수면 상태에서 꿈을 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깊이 잠들어 있으면서 거의 꿈을 꾸지 않는 수면은 비렘수면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저자는 임사체험과 관련해서는 전통적으로 강조되어 온 신피질만 아니라 파충류의 뇌로 대체로 본능하고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온 뇌간(brain stem)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이 점은 자신이 최초로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신체이탈체험이나 다양한 영적 경험에도 뇌간이 관여하지만 이것 외에 인간의 감정과 기억 및 공포를 관장하는 포유류의 뇌로 알려진 변연계(limbic system)도 일정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기존의 주장과는 상당히 다르다. 필자는 그의 주장이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이런 찬반 논의가 임사체험과 같은 영적 체험의 본질, 나아가 인간의 의식 및 무의식 세계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 영적 체험의 본질에 대한 신경과학자의 견해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에 수반되는 비일상적인 의식 상태는 보통 영적 체험으로 이어진다. 18세기 스웨덴의 과학자 에마누엘 스베덴보리(1688~ 1772)는 20여 년 넘게 신체이탈을 통해 영계를 다녀왔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에는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로 알려진 키프로스 태생의 스틸리아노스 아테쉴리스(1912~1995)가 살아 있는 동안 수시로 신체이탈체험을 했다고 한다. 스베덴보리나 다스칼로스는 신체이탈을 통해 높은 영적 경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이런 체험의 특성상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주변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이 유일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예컨대 미국 메인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키리아코스 마르키데스(Kyriacos Markides)는 다스칼로스와 같이 생활하면서 체험한 내용을 『지중해의 성자, 다스칼로스』라는 제목으로 세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에는 다스칼로스가 수시로 신체이탈을 했으며 마르키데스 교수는 이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간접 증거라고 생각한다. 마르키데스 교수가 고의적으로 사기를 칠 의도가 없었다면. 스베덴보리는 어떤가? 그는 아이작 뉴턴 이후 최고의 과학자로 추앙받던 사람이며 스웨덴 대주교의 아들로서 높은 공직에 있었다. 이런 사람이 부와 명예를 모두 포기하고 20여 년 간을 독신으로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신체이탈체험을 바탕으로 여러 저서를 남겼는데 이 모두 사람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벌린 거대한 사기극이라고 매도하기 어렵다.

 

영적 체험의 본질이 무엇이든 간에 이런 체험을 한 사람들의 삶이 종전과는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신경학자든 영성을 강조하는 사람이든 모두 인정한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영적 체험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영적 체험과 관련해 이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사람은 신경과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다. 독일의 빌헬름 분트와 함께 근대 심리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고 있는 윌리엄 제임스(1842~1910)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주저인 『심리학 원리』와 함께 지금은 고전이 된 『종교적 체험의 다양성』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저자에 의하면 제임스는 신비경험(영적 체험)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제임스는 신비경험의 네 가지 특성을 지적했다. 첫째, 신비경험은 어떤 식으로든 언어의 범위를 벗어난다........제임스가 지적한 신비경험의 둘째 특성은 그 경험이 앎을 선사한다는 것이다.........제임스가 지적한 신비경험의 셋째 특성은 짧은 지속 기간이다.........제임스가 지적한 신비경험의 넷째 특성은 수동성이다.“(48쪽) 그러면서 저자는 영적 체험을 다음과 같은 의미로 이해한다고 말한다: ”초월적인 것, 혹은 우리를 깊이 감동시키거나 움직여서 우리보다 큰 무언가와 연결해주는 어떤 것에 ‘영적’이라는 술어가 붙을 수 있다. 영적 경험을 이야기할 대 나는 주로 이 마지막 의미, 즉 우리를 초월하는 무언가를 경험한다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27쪽)

 

영적 체험에 대한 저자의 이해와 제임스가 말한 영적 체험의 특성 간에는 아무런 모순이 없다. 제임스는 영적 체험의 객관적인 측면을 언급한 것이고, 저자는 영적 체험의 주관적인 측면을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임스의 말을 인용한 것은 이런 기준에 입각해 영적 체험의 객관적 측면을 이해하면서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의 특성과 비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과학자로서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자세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그런 후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임사체험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나의 연구에서 발견된 증거에 따르면,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원시적인 뇌간(腦幹)에 있는 의식 조절 스위치가 평범한 사람의 그것과 다르다(렘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 사이에 놓일 가능성이 더 높다). 그러므로 그 스위치가 작동하는 방식이 다른 유형의 영적 경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50쪽) 이와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힌 후 저자는 단계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신경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저자의 논리를 따르다보면 뇌의 부분별 기능, 그리고 뇌 전체의 통합적 기능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면 저자의 주장을 반박하기 어렵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저자는 오랫동안에 걸친 다양한 임상 경험 및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 그리고 자신의 경험 등에 근거해 이런 파격적인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시아와 파울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거의 모두 뇌에 문제가 있을 때, 그러니까 뇌가 최상 상태가 아닐 때 영적 경험을 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 일어난 일이 남긴 영적인 효과는 영속적이다. 신경학자라면 이를 간과할 수 없기 마련이다.“ (46쪽) 이 말은 뇌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만 영적 경험을 한다는 것으로 들린다. 즉, 정상적인 뇌 상태에서는 영적 경험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도 영적 체험을 한 사례들이 많다는 사실을 저자는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주의식“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캐나다의 정신의학자 리처드 버크(Richard Morris Burke)는 정상적인 뇌를 가진 가운데 영적 체험을 한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

 

여기서 임사체험과 관련해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바로 뇌간과 렘수면 상태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 임사체험에 관한 논의를 대중화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신경외과의사 이븐 알렉산더 박사는 박테리아성 급성뇌막염으로 인해 사고와 추론 및 계산 등 의식 활동을 담당하는 신피질(neocortex)이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임사체험은 의식이 뇌에 국한된 현상이 아님을 입증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저자가 주장하듯이 임사체험과 관련해 뇌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알렉산더 박사의 주장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신피질은 거의 파괴되었지만 생명 유지와 관련된 뇌간은 일정 부분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해 더 이상 논할 형편이 아니다. 전문가들의 논쟁을 지켜봐야겠다.

 

★ 세 가지 의식 상태와 영적 체험

저자는 신경생리학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세 가지 의식 상태, 즉 깨어있음 상태(일상적 의식), 렘수면 상태(렘 의식) 및 비렘수면(비렘 의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이 가운데 특히 저자는 깨어있음 상태와 렘수면 상태의 경계선에 주목하면서 이 세 가지 의식 상태를 조절하는 스위치가 뇌간에 있다는 사실에 저자는 초점을 맞춘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의 연구는 세 가지 의식 상태를 조절하는, 뇌간에 있는 스위치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이미 말했듯이, 적어도 임사체험이 지닌 영적 특성의 일부는 그 스위치가 렘 의식 상태와 깨어 있음 의식 상태 사이에 놓인 것에서 비롯되는 증상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52쪽)

 

그러면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일반적인 영적 경험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나의 연구는 영적 경험이 의식과 무의식과 꿈이 만나는 접경지역에서―의식 상태가 온전하지 않고 분열된 채로 뒤섞여 있을 때―돌발한다는 생각에 힘을 실어 준다. 어쩌면 ‘접경지역(borderland)’이라는 개념은 ‘더 높은’, ‘초월적인’, 혹은 ‘확장된’ 의식, 신이나 우주와 접촉하는 의식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일 뿐인지도 모른다.“(53쪽) 이것은 의식과 마음은 오로지 뇌의 산물이라는 사고의 표현이다. 우리는 이런 물리·화학적 현상을 의식의 특성인 주관적 체험, 즉 퀄리아(qualia)로 인해 신비로운 체험으로 전환해 이해하는 습관을 발전시켜왔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뇌과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듯이 인간의 뇌는 정말 스스로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온 것인가 하는 생각을 버리기 어렵다.

 

아무튼 저자가 연구팀을 꾸려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은 렘수면 상태와 깨어있음 상태가 뒤섞일 확률이 매우 높았다고 한다. 이것은 곧 임사체험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깨어있는 채로 렘수면 상태에 놓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현상을 렘침입이라 한다. 이런 렘침입은 두 가지 의식 상태를 조절해주는 렘 스위치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경우에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임사체험의 배경에 대한 신경과학적 입장에서 본 저자의 견해다. 이런 논리를 확장한다면 임사체험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적 체험도 이 두 가지 의식 상태가 혼합되어 있는 렘침입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논평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주장은 ”반증 가능성“ 을 배제하지 않기 때문에 환영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여러 상반된 주장들이 경합하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가장 옳은 것을 채택하는 것이 바로 과학적 정신이기 때문이다.

 

★ 영적 체험에서 뇌간의 역할

인간의 뇌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이, 흔히 파충류의 뇌라고 하는 뇌간(brain stem)이고 다음이 포유류의 뇌로 불리는 변연계(limbic system)이고 마지막인 인간의 뇌라고 불리는 신피질(neocortex, 대뇌피질)이다. 필자 나름 뇌의 구성과 각 부문별 기능에 대해 조금 공부했지만 여전히 무지하다. 이런 이유로 여기서는 뇌간과 변연계에 대한 공식적인 정의를 인용하고자 한다. 이 두 부분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뇌의 가장 깊숙한 곳“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뇌간: 뇌줄기라고 하며 대뇌 반구와 소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총칭하는 용어다. 대뇌 반구나 소뇌가 의식적인 여러 활동이나 조절에 관계하고 있는 데 비해 뇌간은 무의식적인 여러 활동, 예를 들면 반사적인 운동이나 내장 기능 등의 중추가 되고 있다. 뇌간은 중뇌(midbrain), 뇌교(pons) 및 연수(medulla oblongata)로 구성되어 있다.

 

변연계: 변연계는 대뇌피질(신피질)과 시상하부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부위로, 겉으로 보았을 때 귀 바로 위쪽(또는 측두엽의 안쪽)에 존재한다. 해마(hippocampus), 편도체(amygdala), 시상앞핵(anterior thalamic nuclei), 변연엽(limbic lobe), 후각 신경구(olfactory bulbs)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감정, 행동, 동기부여, 기억, 후각 등 여러 가지 기능을 담당한다.

 

무엇보다도 저자는 뇌간의 역할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는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를 각성시켜 자기 자신과 환경에 반응하게 만들고 수면과 깨어있음 사이를 오가도록 조절하는 신경중추들은 이른바 ‘뇌간’에 있다........우리는 뇌간을 자극하여 각성을 일으킬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뇌간에 속한 몇 밀리미터 크기의 구역들이 파괴되면, 영구적이고 깊은 혼수가 발생한다.“(64쪽)

 

그러면서 저자는 이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뇌간은 그 위의 시상과 피질을 깨우고, 시상과 피질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뇌간은 더 큰 시상과 피질에 의해 쉽게 가려진다. 영적 경험 중의 뇌를 이해하려고 애쓴 모든 사람은 의식 통제와 관련한 뇌간의 결정적인 역할을 간과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67쪽) 여기서 의식과 관련해 뇌간이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왜 다른 학자들은 모두 뇌간의 역할을 간과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저자만이 이 점을 강조했다면 이는 획기적인 발견이거나 아니면 전혀 엉뚱한 주장일 수도 있는 것이리라.

 

저자는 필자가 알고 있는 것보다 과도할 정도로 뇌간의 역할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둔다. 이것이 저자가 오랜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이라면 일단 존중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표현에서 뇌간에 대한 저자의 확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의식은 시상과 피질 전체에 분포하는 신경들을 활용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극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의식을 뇌를 이루는 더 낮은 층위의 구조로 환원할 수 있고 의식의 일부 측면은 어쩌면 더 원시적인 뇌간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한다.“(71쪽)

 

그러면서 저자는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인간적인 의식의 원초적인 기반은 뇌간이다. 뇌간에 있는 경로들은 발, 내장, 심장, 온몸에서 유래한 정보를 위로 전달하여 시상과 대뇌피질을 활성화한다. 뇌간이 없으면, 의식도 없다. 뇌간이 손상되면, 사망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혼수에 빠진다.”(72쪽) 이런 저자의 주장이 맞는다면 뇌간은 무의식적 활동 및 생명 유지와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신피질, 시상과 함께 의식 형성 과정에 일정한 역할을 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뇌의 특성에 의할 때 신피질의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어도 뇌간을 이용한 의식 활동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자는 뇌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 임사체험과 신체이탈체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 책에서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을 한 다양한 사람들의 일화를 소개하면서 이들의 체험이 대부분 신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들의 체험을 환상이라고 매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임사체험 분야의 권위자인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의 브루스 그레이슨(Bruce Greyson) 교수가 제안한 임사체험 측정법을 이용해 다양한 사람들의 임사체험의 진실성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 임사체험을 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평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임사체험이 뇌와 무관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임사체험은 여전히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뇌가 발휘하는 힘은 무시무시하다. 신비경험과 임사체험을 비롯한 영적 경험들을 검토할 때 이 사실을 늘 명심할 필요가 있다. 뇌는 전적으로 믿음직스럽고 흔히 ‘실제보다 더 실제적이라고“ 표현되는 경험을 완벽하게 창조할 수 있다.”(114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은 뇌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체험이자 비일상적인 의식 상태의 일종에 불과하게 된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진화 과정에서 확립된 보상체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저자의 입장은 뇌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는 경우 임사체험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나 실신과 임사체험이 매우 유사하다는 주장에 반영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를린의 토마스 렘페르트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실신을 연구하면서 나의 경험과 아주 유사한 경험들을 기록했다. 또한 그들은 실신과 임사체험을 연관 지은 최초의 연구자들이기도 했다.........렘페르트 연구팀은 피실험자들의 경험과 무디의 임사체험 묘사를 비교했다. 놀랍게도 연구자들은 그 두 유형의 경험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음을 발견했다. 그들이 보기에 실험실에서의 실신과 생명의 위기에 발생하는 임사체험은 거의 같았다.”(158쪽)

 

또한 저자는 심장 전문의들이 임사체험을 뇌와는 무관한 특별한 현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데 대해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 이들이 뇌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입각해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혈류 공급이 멈춘 뒤에도 뇌는 10여 초 동안 정상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데 이들은 이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임사체험 중에 뇌는 어느 모로 보나 물리적으로 죽은 상태와 거리가 멀다. 임사체험 중의 뇌는 살아 있고 의식이 있다”고 말한다. 즉, 사실상 뇌가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임사체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임사체험은 사후세계에 대한 예고편이 아니라 살아있는 가운데 뇌가 만들어내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임사체험에 고유한 현상―밝은 빛, 터널, 신체이탈체험, 죽은 친지와의 재회, 우주와의 합일, 삶을 되돌아 봄 등―을 수반하는 것은 관련된 뇌의 부위들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분리뇌(split-brain)의 경우에 관찰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체이탈경험은 뇌가 감각을 종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교란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신경학자들은 신체이탈경험이 뇌가 감각을 종합하여 자아의 신체 도식(body schema)을 짜는 과정에서 일어난 교란에 기인한다는 것을 발견했다.......신체이탈경험이 일어나려면 우리의 시각뿐 아니라 우리가 지구 중력장 안에서 취한 자세에 대한 감각도 교란되어야 한다. 이 감각은 중이에 있는 전정기관과 관련이 있다.”(175쪽) 그러면서“전정감각을 담당하는 피질 구역이 신체이탈 감각을 일으키는 구역 근처에 있는 것은 신경학적 우연이 아니다. 신경학자들은 전정기관의 이상이 신체이탈경험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알았고 이제는 그 이유를 더 잘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을 하는 것인가? 심장마비가 일어나 뇌에 혈류가 공급되지 않아 사실상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모두 임사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신체이탈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은 일부 사람들의 경우 이런 체험을 영적경험으로 승화시킴으로써 보상을 받는 메커니즘을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호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적 경험처럼 숭고한 것을 뇌의 보상 시스템에서 비롯된 산물로 취급하는 우리의 태도가 매우 도발적일 수도 있겠지만, 뇌 과정에서 유래하는 경험들이 아주 기본적인 수준에서 보상에 기초를 둔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 뇌는 생존 가치가 높은 보상들과 함께 진화했다.”(223쪽)

 

이상의 모든 논의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 그리고 이들과 관련된 어떤 영적 체험도 뇌와 무관하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체험과 관련해 신피질이 중시되었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간이나 변연계의 역할은 무시되어 왔다는 것이다. 뇌간은 깨어있음 상태와 렘수면 상태에 관여하는 데 이 두 가지 의식 상태를 조절하는 렘 스위치가 비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이른바 렘 침입이 발생하는 경우 임사체험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임사체험 중에 렘침입이 일어난다는 나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신경과학자는 거의 없다........아무튼 나는 렘침입이 임사체험에 관한 최종 진리이거나 렘의식이 영성에 관한 최종 진리라고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의 침입 가설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을 지녔다고 인정받고 있다. 첫째, 나의 가설은 잘 밝혀진 뇌 메커니즘에 근거하여 임사체험을 포괄적으로 설명한다. 둘째, 나의 가설은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하다.“(270쪽)

 

저자는 임사체험과 신체이탈체험 및 영적 경험을 이와 같이 뇌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결코 그런 체험의 의미를 저감(低減)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영성을 과학으로 떠받치는 것은 과학을 영성으로 떠받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다. 설령 우리가 뇌 속의 모든 분자 각각이 어떻게 기여하여 영적 경험이 발생하는지 알아낸다 하더라도, 왜 뇌가 영적 경험을 일으키는가 하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가장 소중한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뇌에는 신앙을 위한 공간이 있다. “어떻게” 와 “왜”의 분리는 다음과 같은 역설을 일으키기도 한다. 뇌가 영적 경험을 창출하지만, 뇌 자체는 영적으로 중립이라고 할 수 있다는 역설말이다.“(320쪽)

 

★ 뇌와 의식의 진정한 관계는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임사체험 및 신체이탈체험과 관련된 다양한 임상 사례들을 기능성 MRI 등의 첨단 장비를 이용해 분석한 결과를 다루었다. 본질적인 문제는 임사체험이 단지 뇌가 만들어내는 특수한 현상인가, 아니면 뇌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현상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몇몇 학자들이 주장했듯이 만일 임사체험이 뇌와 무관하게 발생한다면 인간의 의식이 뇌와 독립적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전생체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 이언 스티븐슨(Ian Stevnson) 교수의 연구로 전생체험, 즉 환생은 진지하게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현상임이 밝혀졌다. 어떤 객관적인 기준으로도 누군가의 환생이라고 해야만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떤 결론을 내릴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 더 많은 연구와 사례가 축적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버지니아 대학교 정신과 브루스 그레이슨 교수는 달라이 라마의 초청으로 <의식은 뇌와 독립적인가?(Is consciousness independent of brain?)>라는 강연에서 의식이 단지 뇌의 창발적 산물이라는 기존 과학계의 견해를 반박하면서 그 근거로 다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1. Deathbed recovery of lost consciousness

(죽음 직전 잃어버린 의식의 갑작스러운 일시적 회복)

2. Complex consciousness with minimal brain

(대부분의 뇌 조직이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의식 활동)

3. Near-death experience (임사체험 사례)

4. Memories of past lives (전생의 기억 사례)

 

비록 소수지만 그레이슨 교수와 같이 뇌를 수신기(receiver)나 필터(filter)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의식이 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높은 상관관계)은 사실이지만, 뇌가 곧 의식을 만들어내는 주체(높은 인과관계)라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입장과는 대척점에 있는 주류 신경과학자이다. 기존의 환원주의적 방법론에 입각해 임사체험이나 신체이탈체험을 분석하는 한 누구라도 저자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방법론은 다른 해석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뇌의 특정 부위와 인간의 행위나 사고 간의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로 해석하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에 해당한다.

 

주류 신경과학계는 뇌의 특정 부위에 이상이 생기면 인간의 어떤 기능에 장애가 오는가 하는 데만 관심을 집중해온 결과 상당한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런 관점에서 아무리 많은 연구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의식의 ”어려운 문제(hard problem)“에 대한 어떤 해결방안도 제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런 연구는 모두 의식의 ”쉬운 문제(easy problem)“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이 문제는 비일상적인 의식 상태에 해당하는 임사체험, 신체이탈체험, 전생체험, 그리고 영적 경험 등에 대해 다양한 관점에서 객관적인 연구를 한 후 이 연구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경우에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 책은 뇌와 의식의 관계와 관련해 깊이 생각해 볼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