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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나 마주카토의 <경제적 가치란 무엇이며, 누가 창출하는가?>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5-31 12:46
조회
292

경제학에서 가치론(theory of value)은 경제적 가치의 원천과 측정 문제를 다루는 가장 근원적인 분야다. 경제적 가치와 관련해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이론이 있다면 소득분배 문제를 포함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낙 어려운 주제라 최근에는 이를 다루는 학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그런데 마리아나 마주카토(Mariana Mazzucato) 교수는 과감하게 이 동영상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물론 완벽한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현재 영국 University College London(UCL)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유럽연합 위원회를 비롯해 여러 공공기관의 자문역을 맡고 있는 명망 있는 경제학자다. 그녀는 2018<레온티에프 상(Leontief Prize)>을 비롯해 여러 상을 수상했는데, 공공부문이 혁신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연구해 온 업적이 높이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간략하게나마 이 동영상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주카토 교수는 2018The Value of Everything을 출간해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 동영상에서 그녀는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을 압축해서 소개하고 있다. 더 상세한 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그녀는 현재 자본주의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인 소득과 부의 불평등 악화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경제적 가치의 창출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가치의 창출(value creation)과 가치의 추출(value extraction)을 명확하게 구분하면서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는 이 둘을 혼동하고 있는데 기인하고 있다고 말한다. 불평등에 관한 연구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말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기서 가치 추출이란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서 가치를 차지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지대추구행위가 바로 가치 추출을 시도하는 것이다.

 

현재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 의하면 가치(value)는 가격(price)을 통해 측정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격이 곧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말한다.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에 기여한 바에 의해 가치가 결정되어야 하지만 생산과정에 투입된 다양한 요소들(factors)을 고려할 때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 결과 시장에서 결정된 가격이 바로 다양한 요소들의 가치를 반영한 결과라는 주장이 채택된 것이다. 이것은 논리의 역전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으며 필자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 , 가격이 가치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려면 완전경쟁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야 하고 외부효과 (externalities)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매우 비현실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는 충족되기 어려운 조건이므로 가격 = 가치라는 등식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마주카토 교수는 가치문제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중농주의 경제학자 프랑수와 케네를 비롯해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칼 마르크스의 가치론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했던 때는 농업이 중심인 가운데 산업혁명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였기에 생산과정이 비교적 단순했다. 그런 이유로 노동이 가치의 유일한 원천이라는 노동가치설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었다. 노동가치설은 마르크스의 잉여가치설로 이어져 자본주의의 모순을 설명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노동가치설은 가치를 결정하는 객관적 원천을 찾고자 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이론이었으나 지나치게 단순한 이론으로 현실을 설명하는 데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가치를 결정하는 주관적 원천으로서 소비자의 만족, 즉 효용을 강조하는 한계효용이론이 등장했던 것이며, 이를 발전시킨 것이 지금의 주류 경제이론인 신고전파 경제학이다. 마주카토 교수가 이 동영상에서는 이에 대한 상세한 논의를 하고 있지는 않다. 단지, 그녀가 가치 창출과 가치 추출을 구분해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들에게 적절하게 소득이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려면 가치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언급한 것이다.

 

 

이 동영상을 통해 가치문제 전반을 이해하리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서 마주카토 교수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막대한 소득을 추출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예컨대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국방관련 정보의 전송 및 공유를 위해 개발한 아파넷(ARPANET)이 모체다. 따라서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정보기술기업들은 공공 프로젝트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 기업이 얻는 이익의 상당부분은 사실 이들이 창출한 것이 아니므로 높은 누진세를 적용할 근거가 된다.

 

또한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은 매년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에 수십 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파이자(Pfizer)를 비롯한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개발하는 신약은 모두 이런 기초연구의 도움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신약 개발에 따른 이익은 모두 제약회사들의 몫으로 귀속된다. 가치 창출 면에서 이는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들 기업은 모두 가치 창출이 아니라 가치 추출을 통해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밖에 마주카토 교수는 현재와 같이 국내총생산(GDP)를 통해 일 년 동안 한 나라에서 창출된 가치를 측정하는 방식은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또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가치 창출과 가치 추출을 구분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그녀는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친다. 예컨대 가사노동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기에 국내총생산에 포함되지 않는 반면, 공해를 유발하는 행위는 가격을 통해 국내총생산에 포함된다. 이런 식으로 국내총생산이 왜곡되면 실질적으로 국민의 복지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마주카토 교수는 1970년대 까지만 해도 금융 부문은 국내총생산에 거의 포함되지 않았는데, 금융중개와 위험감수라는 명분을 내세워 국내총생산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금융부문이 가치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보다는 가치를 추출하는 데 기여하는 게 더 많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자사주 매입을 들 수 있다. 기업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재투자하는 대신 자사주를 매입해 주가를 부양하는 관행은 전형적인 가치 추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가치와 관련된 문제는 경제학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많은 분야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강연 말미에 가치와 가격을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그녀가 제기한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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