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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06-17 09:43
조회
261

최근 필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모처럼 신규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소식을 듣고 분양사무실에 전화해봤더니 분양 계획이 연기되었다는 것이다. 분당 지역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것과 관련 있는 것 같았다. 필자는 분당 소재의 현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았으며 30여 년 전에 아파트 청약예금에 가입했지만 한 번도 아파트를 분양 받은 적이 없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의 원리에 비추어볼 때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어려운 타입이다. 부동산 투기과열로 자고나면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던 나라에서 오불관언(吾不關焉)의 태도로 한가롭게 살아왔으니 말이다. 

 

그러다보니 투기(speculation)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도대체 부동산 투기가 무엇이기에 이리도 끈질기게 우리 주변을 맴도는 것인가?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도 미국의 부동산 투기 과열이 아니었던가? 투기란 인간의 본성에 각인된 일종의 광기(狂氣)인가? 역사상 최초의 악명 높은 투기로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기(Tulip Mania)부터 최근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기 열풍에 이르기까지 투기적 행동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과시욕·허영심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쉽고 빠르게 큰 이득을 챙겨서 주위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싶은 허영심 말이다.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예일대학교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 교수가 투기 과열로 거품이 발생하는 현상을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라고 한 것은 현학적인 면은 있으나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투기는 경제 행위의 한 유형이다. 자신이 보유한 정보에 입각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면서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투기적 행위이다. 따라서 투기 자체를 원색적으로 비난할 근거는 없다. 이런 행위가 시장의 유동성을 풍부하게 해 시장 전반의 효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이런 평가를 내리기 위해서는 경쟁적인 상황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다수의 수요자와 다수의 공급자가 가격 형성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19세기 저명한 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이 정치경제학원리에서 투기의 긍정적인 면을 옹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 밖에 밀턴 프리드먼을 비롯한 유수한 경제학자들이 투기의 장점을 거론할 때는 이런 조건이 갖추어진 경우에 국한된다. 그러나 요즈음 금융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서 이루어지는 투기는 그렇지 않다. 특정 세력이 시장의 공급이나 수요를 통제할 수 있는 시장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시장참여자들이 비이성적 과열에 휩싸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시장의 경우 두 가지가 모두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토지라는 희소한 자원을 기반으로 하는 아파트 공급 규모는 한정되어 있으며, 부동산 불패신화가 여전히 사람들의 무의식에 각인되어 비이성적으로 행동할 조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해도 투기 과열을 예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부동산 투기 과열을 진정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정부가 사용했던 수단은 대체로 금융권의 대출 규제와 부동산 관련 과세 강화로 구분할 수 있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것은 전자에 해당되고 양도세와 보유세를 인상하는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정부의 정책을 보면 그다지 실효성 없는 정책들을 가지고 미세조정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대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투기적 행동을 잠재우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파트를 꼭 매입하고 싶은 사람은 이런 규제를 강화해도 결국 매입할 것이다. 거래세의 일종인 양도세 강화는 매도자가 매도 물량을 거둬들여 공급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이로 인해 가격 상승을 촉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자본이득에 대한 기대가 크다면 양도세가 인상되더라도 투기적인 행위를 저지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그나마 정부의 정책 가운데 가장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보유세 강화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언급했으니 여기서 같은 말을 반복할 필요는 없다. 단지 한 가지 첨언하자면 보유세의 누진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고 가격 연동 보유세 제도를 도입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보유세의 누진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은 형평과세의 원칙에도 부합할 뿐만 아니라 조세저항을 완화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예컨대 일정 과세표준 이하의 부동산에 대해서는 지금보다 보유세를 인하해주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누진적 구조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부동산 가격이 높을수록 더 많은 보유세를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부동산 부자에 대한 보복 차원이 아니며 조세정의 차원에서도 명분이 있다. 그리고 서울 강남을 비롯해 수도권에 고가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는 파워엘리트들이 이런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통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갖춰야할 덕목 중 하나는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하는 정신이다. 이번 기회에 이런 행동을 보여준다면 이번에 다르다는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다. 이들의 결단을 기대해 본다.

 

가격 연동 보유세란 앞서 언급했던 로버트 쉴러 교수가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불평등 연계 세제를 제안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가격 동향에 관한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보유세율을 조정하는 것이다. 예컨대 연 초에 비해 가격이 하락한 지역에 대해서는 보유세율을 인하하는 반면 가격이 상승한 지역에 대해서는 보유세율을 인상하는 것이다. 과표(課標)와는 별개의 사안이다. 인상·인하폭은 논의를 통해 정하되 미실현 기대이익의 일정 부분을 흡수할 정도로 결정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런 정책은 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에 보유세를 조금 더 내게 된다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을 완화시켜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제안하려는 것은 전국적으로 표준 지역을 여럿 선정해 주거와 삶의 질, 나아가 건강과 수명에 해로울 수 있는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분석한 결과를 정기적으로 공표하는 정책이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활용되고 있는 헤도닉 가격결정(hedonic pricing)의 아이디어를 부동산, 특히 아파트 가격 결정요인들에 선별적으로 적용하자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결정하는 요인은 크게 부동산 자체의 요인(면적, 인테리어 등)과 주변 요인(역세권, 교육여건, 범죄율, 공해 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요인들이 부동산 가격에 반영되려면 이들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부동산 가격에 부정적인 정보는 일반 대중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아파트를 매도하려는 사람이나 공인중개사는 좋은 조건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런 정보가 있더라도 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런 정보를 모두 공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제 정부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부동산 투기 과열을 막는 데 집착하지 말고 발상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미세먼지에 관심이 많다. 실시간으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하고 외출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세먼지는 건강에 해로울 뿐만 아니라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른 공해물질들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대기 중에 부유하는 중금속을 포함한 각종 화학물질들이 건강에 유해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밖에 주변의 소음이라든가 자동차 매연과 열기 등 우리의 건강과 수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적지 않다. 이것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고 상가가 밀집된 중심지일수록 더욱 심할 것이다.

 

이쯤이면 필자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정부가 이런 데이터를 수집·분석한 결과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표하라는 것이다. 필자는 서울을 비롯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대체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건강과 장수에 관심이 많다고 본다. 만약 이 사람들이 이와 같은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면 과연 무시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도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미세먼지 농도가 항상 더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외곽의 공기 맑은 곳으로 이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간절할 수 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이런 데이터에 포함될 항목들을 신중하게 선별하고 적절하게 표준 지역을 선정해 이 정책을 실시해 볼 것을 제안한다. 국민 건강과 행복한 삶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니 명분은 충분하다.

 

부동산 투기 과열과 이로 인한 비이성적 가격 상승은 사회발전을 가로막은 대표적인 요인이다. 일반대중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의식이 낮은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대추구가 기본인 사회,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심지어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일정 가격 이하로는 아파트를 팔지 말자고 결의하기도 하는 등 지대추구행위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지대추구행위는 공평과 효율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훼손시켜 시장경제를 병들게 만든다. 우리 마음속에 부동산을 소유해 단기간에 남들보다 더 많은 이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후진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정당한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 불로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로마의 몰락에는 부동산 투기 과열에 따른 가격 폭등이 상당히 영형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말이 단순히 냉소적인 표현으로 들리지 않는 현실, 어디에서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는가에 따라 계층 간 소통이 어려운 현실, 이런 한국적 현실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모습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이런 참담한 말이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부동산 투기 과열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동한 정책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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