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글로벌경제 관련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은 올 것인가?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12-12 00:59
조회
349

최근 제목만 봐서는 별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책 두 권을 읽었다. 하나는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자본주의를 구하라이고 다른 하나는 마틴 포드(Martin Ford)로봇의 부상이다.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 클린턴 정부시절 노동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공공정책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틴 포드는 실리콘벨리에서 벤처기업을 설립해 경영했던 컴퓨터 설계와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이다. 이렇게 경력과 전문 분야가 다른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내용이 있다. 이것이 이 글의 주제인 셈이다. 그렇다고 로봇이 앞으로 자본주의를 구할 것이라는 내용인가 하고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사실은 정 반대다. 

 

라이시는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자유시장의 고질적인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그는 자유시장이라는 미명하에 실제로는 소수 특권 계층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경제 규칙이 제정되고 시행된 결과 특권 계층의 횡포를 저지할 수 있는 대항세력(countervailing power)이 사라졌으며, 이로 인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이 점은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그리고 앤서니 앳킨슨(Anthony Atkinson)과 같이 불평등 문제를 깊이 연구한 학자들이 경고한 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논의에 한 가지 문제를 추가한다. 노동 문제 전문가답게 앞으로 자동화와 로봇이 보편화되면서 단순노동만이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 분야에서 상당수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물론 이것이 그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아니다. 그는 다수에게 번영의 과실을 분배해주는 시장의 규칙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점은 스티글리츠 교수가 말하는 "번영의 공유(shared prosperity)"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수에게 적절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그런데 라이시 교수는 불평등의 악화로 소비가 줄어들고 로봇이 점점 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한다면 결국 일자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음을 우려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틴 포드가 주장하는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마틴 포드는 로봇공학과 인공지능 분야의 기술발전으로 향후 일자리가 대량으로 사라질 것을 예측한 최초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필자 생각에 이런 예측을 처음 한 사람은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이다. 그럼에도 마틴 포드를 그렇게 평가한 이유는 리프킨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전망을 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포드의 논리는 간단하다. 앞으로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것이고, 이를 탑재한 로봇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고 한다. 과거 기술발전의 경우에는 새로운 일자리가 다수 창출되어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체했지만 정보기술의 특성상 앞으로는 분명 다르다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상당수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음식을 만드는 로봇, 농산물을 수확하는 로봇, 의사보다 정확하게 영상을 판독하고 암을 진단하는 인공지능, 변호사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판례를 분류하고 분석하는 인공지능 등이 상용화되어 많은 분야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올해 초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도 인공지능, 로봇공학, 자율운행자동차,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등으로 인해 202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5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과거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할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와 같이 정보기술의 특성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소멸될 수밖에 없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기술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을 크게 연장시킬 수 있고 저렴한 가격에 에너지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는 등 결핍의 시대에서 풍요의 시대로 진입할 것이라면서 기술적 유토피아를 전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장밋빛 미래는 오직 소수의 특권 계층에게만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것은 곧 일반 대중은 더 이상 시장에서 소비의 주체로서 역할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시장은 오직 소수 특권 계층만을 위한 곳으로 변질될 것이다. 마틴 포드는 이런 상황을 기술적 봉건주의라고 명명했다. 적절한 표현이다. 이것은 정보기술이 향후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지극히 우울한 전망이다.

 

그런데 문제는 기술발전이 시장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단순히 일자리의 감소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기술발전의 충격이 기후변화의 영향, 불평등의 악화, 금융자본의 지속적 영향력, 인구절벽의 도래, 국제통화 질서의 불안정 등과 같이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작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과 결합했을 때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생각만 해도 암울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자체가 붕괴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에 해당한다. 개별적으로는 그다지 영향이 크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과 결합하면서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태풍으로 변한 것이 바로 퍼펙트 스톰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퍼펙트 스톰은 발생할 것인가? 발생한다면 언제인가? 그리고 그 충격은 얼마나 클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현재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발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현재까지 드러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이것을 교정하려는 의지와 실행 가능한 계획 여부이다. 이런 노력 여하에 따라 퍼펙트 스톰이 발생하더라도 피해의 정도가 극명하게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학자들은 불평등의 문제를 포함해 현재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드러낸 문제점에 대해 학자적인 관점에서 비교적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이들이 저서나 대중 강연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력하지만 선동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금융시장에서 활동하는 투자전문가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선동적인 방식으로 머지않아 종전보다 더 큰 금융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2008년 금융위기를 통해 경험했듯이 현재와 같이 금융자본의 위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황에서는 금융시장의 위기가 곧 자본주의 시장경제 전반의 위기로 비화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 중 몇몇은 나름 탄탄한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인구통계에 근거한 경제예측 전문가인 해리 덴트(Harry Dent)라든가 투자전략가이자 국제금융에 정통한 제임스 리카즈(James Rikards), 퀀텀펀드의 공동창시자이자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짐 로저스(Jim Rogers),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해진 로버트 기요사키(Robert Kiyosaki)와 같은 투자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저서나 유튜브의 동영상을 통해 머지않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보다 훨씬 더 큰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필자는 영화 빅쇼트에서처럼 이들이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상태에서 이런 비관적인 전망을 유포해 부당 이득을 취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장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하고 있기에 무조건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 외에도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세부적인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향후 더 큰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심지어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예일대학교의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교수도 올해 초 일본 외신기자클럽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앞에서 언급한 투자전문가들처럼 노골적은 아니지만, 금융위기는 늘 반복되어왔음을 강조하면서 현재 글로벌 채권시장의 이상 과열은 심히 우려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품이 터진다면 이번에는 채권시장에서부터 시작할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이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한 마디로 글로벌 경제를 낙관할 수 있는 요인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로버트 라이시나 마틴 포드가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향후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금융자본의 여전히 과거와 같은 행태를 유지하고, 인구절벽이 도래해 가장 인구가 많은 세대가 현역에서 은퇴하고,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어 1퍼센트의 상류층과 99퍼센트의 빈곤층으로 사회의 양극화가 고착된다면 결국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만성적인 소비 부족으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침체에 빠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우리는 시장경제 스스로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는 역설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모두의 번영을 위해 추진한 기술발전이 결국 모두의 숨통을 조이게 된다는 역설 말이다.

 

역사적으로 조망해 볼 때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소비를 중심으로 발전해온 것은 사실이다. 모든 나라가 경제성장을 지상과제로 책정하는 이유도 경제성장 투자 확대 고용 증대 소득 증가 소비 증가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선순환의 핵심은 소비 증가에 있다. 미래의 수요 예측을 기반으로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소비 중심의 경제 운용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생태적 관점이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상당한 비판이 제기되어왔다. 예컨대 최근에 활발해진 탈성장(degrowth) 논의도 소비중심/성장지상주의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협동조합(cooperative) 중심의 공유경제(sharing economy)에 대한 관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필자는 소비중심의 경제구조를 단기간에 다른 가치 중심의 경제로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소비지상주의가 초래한 반문명적이고 비인간적인 풍토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문화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의식 전환이 선행되어야만 이런 기반을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단기간에 소비와 경제성장을 핵심축으로 하는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기는 어렵다. 필자는 이런 현실적인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닥칠지 모르는 퍼펙트 스톰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나 마틴 포드,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많은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미국 경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는 미국 경제보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더 많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슈퍼파워이자 달러라는 기축통화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카드를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남북 분단과 소수 재벌에의 경제력 집중이라는 치명적인 약점만 갖고 있을 뿐 활용할 수 있는 카드가 없다. 마치 부모로부터 재산은 한 푼도 상속받지 못하고 빚만 잔뜩 떠안은 형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필자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퍼펙트 스톰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이해 수준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파워엘리트들에게서 이런 문제의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백일하에 드러났듯이 한국의 파워엘리트 상당수가 봉건체제의 의식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미래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이 보여준 상상을 초월하는 각종 도덕적 해이 현상들이 단적인 증거다.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 사람의 내면세계를 정밀기기로 스캔해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한 누구도 뭐라 말할 수 없다. 그런데 그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하는 순간 내면에 잠재해 있던 지배적인 생각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도 다양한 도덕적 해이의 형태로 말이다. 이들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이 말하는 이면에 감추어진 개인적인 탐욕을 진정으로 버리지 않는 한 이들에게 퍼펙트 스톰에 대비할 방안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그러면서도 이것이 필자의 기우(杞憂)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상식과 이성적 사고의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