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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과 협력: 대극(對極)의 조화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3-22 23:15
조회
2518

1960년 대 경제개발정책이 실시된 이래 우리가 자주 접했던 단어 중 하나가 ‘경쟁’이다. 신구세대를 막론하고 한국인들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치열하게 학우들과 경쟁해야 했으며, 이런 풍토는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경쟁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는 각종 공채시험을 통해 직장을 구하는 과정에서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으며, 이런 추세는 직장을 구한 후에도 승진을 위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한국인들에게 경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위로 자리 잡았다.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경쟁은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기업들 간 경쟁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고 이익을 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가피한 현상이 되었다. 나아가 글로벌 시대에 경쟁은 국제적으로 확장되어 국내 기업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기업들과 경쟁하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비록 경제 분야만큼은 아니지만,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정치 분야에서도 경쟁은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사회에서 경쟁은 그동안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보여주었다. 보통 바람직한 경쟁이라면 ‘공정한 경쟁’ 또는 ‘선의의 경쟁’을 말한다. 사람들이 이런 정신에 입각해 서로 경쟁한다면, 비록 한정된 자원이나 지위를 놓고 경쟁하더라도, 이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자각(自覺)을 경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을 함양할 수도 있다. 기업의 경우도 마찬가지로서 이것이 경제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경쟁의 의의다. 이런 경쟁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사회적 잉여를 극대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반대되는 의미에서의 경쟁에 익숙해 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양반의 자제에게 특혜를 주어 관직에 중용했던 음서(蔭敍)제도가 공공연하게 실시되어 진정한 경쟁의 의미를 훼손시켰다. 또한 경제개발계획이 추진된 이래 정경유착을 이용해 부당한 특혜를 받은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는 등 경쟁의 근본정신을 해치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 결과 사람들의 뇌리에는 경쟁의 부정적인 면이 깊이 각인되었으며 공정한 경쟁에 대한 기대는 부질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로 인한 치명적인 부작용은 우리의 의식이 더욱 파편화되고 ‘에고’ 중심적으로 전락함으로써 진정한 경쟁의 정신을 구축(驅逐)해버린 것이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한 경쟁은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경쟁이 국가 발전의 주요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경제사 교수인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은 저서 『시빌라이제이션』에서 16세기 이래 서양이 동양을 압도하게 된 여섯 가지 요인을 제시했는데, 첫 번째가 바로 경쟁이다. 15세기 유럽에는 1,000여 개가 넘는 국가 조직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과정에서 대항해술을 개발했으며, 근대적인 제도를 정비해 해외의 많은 나라들을 식민지로 경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획득한 자원을 바탕으로 그들은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네덜란드-영국으로 바뀌었던 세계 경영의 계보가 지금은 미국으로 이어져 있다.

 

반면 당시 세계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컸으며 소득 수준이 높았던 중국(명나라)은 중앙집권적인 관료제 하에서 환관(宦官)들이 권력을 장악한 가운데 일체의 변화를 거부했으며, 이런 전통을 고수한 결과 19세기 중반 아편전쟁에 패함으로써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경쟁이 초래한 이런 극적인 변화를 퍼거슨은 ‘거대한 분기(great divergence)’라고 불렀다. 이 말에는 다분히 서양의 오만함이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보든 현재 글로벌 환경을 고려하든 경쟁은 불가피한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렇기에 경쟁을 피하기보다는 경쟁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은 생존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경쟁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한편, 건전한 사회규범이 확립될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를 조성하는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법과 제도는 공식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건전한 사회규범은 비공식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 공정성에 기반을 둔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결코 경쟁 과정과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상실하게 만들 것이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획득한 강인한 정신력과 창조력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한편 우리는 경쟁에 집착한 나머지 이것과 대극적인 관계에 있는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진정한 협력이란 구성원들이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현상을 말한다. 협력의 기본 전제는 보통 진화생물학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직접적 상호 호혜’의 원칙이다. 이것은 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Robert Trivers)가 제안한 용어로서 『이기적 유전자』로 널리 알려진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와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종(種)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해 널리 확산시키기 위해 경쟁과 협력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전략을 모두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에는 경쟁이 가장 중요한 동인(動因)이었으나 최근에는 ‘친족선택’이나 ‘집단선택’이 주목을 받으면서 협력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수많은 사례들이 확인되었기에 협력의 보편성과 중요성은 생물학적 근거를 확보한 셈이다. 한 마디로 “네가 내 등을 긁어주면, 나도 네 등을 긁어주겠다”는 상호 호혜의 원칙은 종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물학적 증거를 확인해주듯이 우리는 현실의 경쟁적인 상황에서도 협력을 선호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경험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런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다. 자주 거론되는 사례는 위키피디아의 성공과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의 활성화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아무런 보상을 원치 않는 가운데 오로지 자신이 뭔가 기여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개정하는 과정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더 나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는 즐거움만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리눅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참여한다. 이런 현상들은 오직 이기심에 근거해 행동한다는 기존의 경제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인간은 이기심뿐만 아니라 협력하고자 하는 유전자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학의 비조(鼻祖)인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는 이기심(self-interest)을 강조하는 한편, 『도덕감정론』에서는 공감(sympathy)을 강조한 것은 놀라운 통찰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이기심에 기초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적 이익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전개하는 한편,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느끼면서 ‘공감하는 능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이기심은 경쟁의 원천이고, 공감은 협력의 기반이다. 우리는 경쟁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협력은 다분히 교육의 산물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통찰이나 진화생물학의 증거에 의하면 협력 또한 인간의 고유한 본성의 일부다.

 

협력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대표적인 저서로는 로버트 액설로드(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2009)와 요차이 벤클러(Yochai Benkler)의 『펭귄과 리바이어던』(2011)을 들 수 있다. 로버트 액설로드는 ‘용의자의 딜레마’(또는 죄수의 딜레마)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탐구했다. 그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이런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전략을 추천할 것을 제안했는데, 이렇게 해서 확보한 여러 전략들을 경합시킨 결과 팃포탯(맞대응전략, tit-for-tat)이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밝혔다. 이것은 상대방이 협력하면 자신도 협력하고, 상대방이 배반하면 즉각 보복하지만 상대방이 다시 협력하면 즉시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팃포탯은 기본적으로 ‘상호 협력’을 지향하는 전략이다. 나아가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공존하는 집단에서 이 전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정 비율을 넘어선 경우 시간이 경과하면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이 전략, 즉 상호 협력의 전략을 채택하게 된다는 것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보여주었다. 협력은 진화적으로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에 절실한 것은 협력적 태도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임계수준을 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우리사회는 더욱 협력적인 사회로 진화할 수 있다.

 

한편 요차이 벤클러의 저서에서 ‘펭귄’은 협력을, ‘리바이어던’은 이기적인 인간을 통제하는 권력을 상징한다. 그는 심리학, 진화생물학, 실험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이기심에 바탕을 둔 금전적인 인센티브 시스템보다 협력적 시스템이 더 효과적이었던 여러 사례들을 통해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훨씬 더 협력적이고 이타적으로 행동하거나 적어도 이기적이지 않다는 증거가 상당히 많이 축적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애덤 스미스의 공감 능력을 실증적으로 확인해 준 셈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더 나은 조직과 사회를 추구한다면 이기심보다는 협력에 기반을 둔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공정성과 건전한 사회규범을 확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경쟁과 협력이라는 대극의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진정한 경쟁과 진정한 협력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이비 경쟁과 사이비 협력은 우리 사회의 발전을 해치는 암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아직 진정한 경쟁과 진정한 협력의 조화를 추구하는 단계와는 요원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좌절을 느끼게 만드는 대표적인 분야가 정치다. 해방 이후 우리에게 정치는 부당한 경쟁을 바탕으로 전개되어 왔으며, 단 한 번도 여야 간 협력을 달성하지 못한 까닭에 극단적으로 비협력적인 분야로 우리 의식에 깊이 각인되어있다. 정치가 이런 수준에 정체되어 있는 근본 원인으로는 국민들의 보편적인 의식이 아직도 낮은 수준에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정치 지망생들이 오로지 천박한 권력욕에 사로잡힌 나머지 “갈등을 조정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국민통합을 달성하는 기술”로서 정치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크게 부족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수준의 정치는 ‘경쟁과 협력의 조화’를 방해함으로써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궁극적으로는 정치와 경제의 동반 몰락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는 경제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내지 벤처기업 간의 부당한 경쟁으로 인해 경제력의 집중이 더욱 가속화됨으로써 국민경제가 더욱 불안정해지고 있다. 나아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한 기업들 간의 협력 또한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제로섬 게임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심지어는 종교계와 교육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 선의의 경쟁과 협력은 우리사회에 건전한 규범을 정착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교육계 또한 획일적인 서열화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소모적인 경쟁과 배타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 여러 번 강조해듯이 진정한 경쟁과 협력은 개인과 조직 나아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 많은 연구를 통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가치가 아니라 상보적인 가치임이 밝혀졌다. 우리가 진정 선진사회를 지향한다면 진정한 경쟁과 진정한 협력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각자의 고유한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공식적·비공식적 제도에 반응하는 존재다. 특히 협력을 증진시키는 제도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생존에 불가결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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