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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사업과 기회비용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2 20:19
조회
393

 

비용(cost)은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다. 비용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용 최소화의 원칙”이다. 개인, 기업 및 국가를 막론하고 일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무심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이것은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다. 비용과 효과라는 두 가지 요인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의사결정 원리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당한 표현은 “일정한 효과를 최소 비용으로 달성하고자 함” 또는 “일정한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추구함”이다. 앞의 표현은 이 두 가지 표현을 적당히 혼합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한 행동의 전제조건이다.

 

한편 비용 관련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표현은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구절이다. 이것은 공짜를 좋아하지 말라는 충고를 담은 말이라기보다는 어떤 일이든 반드시 비용이 소요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넓게 보면 이 말은 우주에서 벌어지는 어떤 현상도 비용과 무관하지 않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137억 년 전의 빅뱅(Big Bang) 이래 지금까지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발생했던 사건 하나하나 모두 비용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것은 대상이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든 없든, 모든 행동이나 사건에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양과 같은 별, 즉 항성은 지속적인 핵융합 과정을 거친 다음 결국 초신성이 되어 엄청나게 밝은 빛을 내며 폭발을 한 후 블랙홀로 일생이 마감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탄소나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가 합성되어 우주 공간에 뿌려진다고 한다. 지구상에 생존했던 그리고 생존하고 있는, 탄소에 기반을 둔 모든 생명체는 이런 별들의 잔해인 것이다. 생명은 별의 죽음이라는 비용을 대가로 지불한 셈이다.

 

실제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 비용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첫째, 비용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둘째,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해 엄청난 비효율과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와 집행하는 주체가 다른 경우에는 심각한 비효율이 발생할 개연성이 원천적으로 존재한다.

 

먼저 비용의 측정과 관련해 경제학에서 비용은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을 의미한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기회비용은 간단히 “포기한 차선의 기회의 가치”로 정의된다. 이 정의에 입각해 기회비용 개념을 활용한다면 어떤 복잡한 경제활동에 수반되는 비용이라도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상론이다. 왜냐하면 개념 자체는 간단하지만 현실의 다양한 사례에서 기회비용을 매번 정확하게 측정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지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기회비용을 쉽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경박한 생각 때문에 문제가 더욱 어려워지기도 한다.

 

기회비용을 측정하는 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다음 문제를 검토해보자. 이것은 미국 코넬대학교의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교수가 만든 예를 필자가 우리 실정에 맞게 약간 가공한 것이다: 당신은 오늘밤 걸 그룹 「소녀시대」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공짜 티켓을 얻었다고 하자. 이 티켓은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없다. 한편 오늘 밤 소프라노 조수미도 공연을 하는 데, 소녀시대 공연을 보러가지 않는다면 조수미의 공연을 보려한다고 하자. 조수미 초청음악회 티켓 값은 5만원인데 당신은 이 공연을 보기 위해서라면 7만원까지 지불할 용의가 있다고 하자. 이 두 경우 중 어느 쪽을 보러가든 추가비용은 없다고 할 때 오늘밤 당신이 소녀시대 공연에 참석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은 얼마인가?

 

이 문제의 답은 무엇인가? 미국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어떤 교수가 경제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4지선다형으로 주고 풀어보라 했는데, 고작 7.4%만이 정답을 맞혔다고 한다. 심지어는 경제학자들에게 이 문제를 주고 풀어보라 했더니 정답률이 21.6%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는 실제 현실의 사례에서 기회비용을 측정하는 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 여기서 제시한 문제에서 기회비용은 얼마인가? 정답은 2만원이다. 당신이 조수미 공연을 통해 얻는 순가치는 2만원이다. 이런 상태에서 소녀시대 공연을 보기로 결정했다면 “포기한 차선의 기회의 가치”라는 정의에 의해 당신의 기회비용은 2만원인 것이다.

 

기회비용은 이용 가능한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두 가지 이상의 대안(代案)이 존재하며 시장이 경쟁적인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하는 비용 개념이다. 만약 자원이 무한하거나 다른 대안이 없다면 의사결정의 기회비용은 제로다. 또한 시장이 불완전경쟁 상태에 있다면 기회비용은 적절한 측정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그럼에도 기회비용이 중요한 이유는 의사결정의 결과 실제로 발생하는 명시적 비용 외에 묵시적 비용을 반드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회비용은 “명시적 비용+묵시적 비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때로는 묵시적 비용이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도 한다. 특히 공공부문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집행하려는 경우에는 반드시 이 개념에 입각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래야만 기회비용을 상회하는 성과를 올렸는지 사후적으로 평가함으로써 다른 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관점에서 지난 정부에서 무리하게 감행했던 4대강사업을 사례로 기회비용의 의의를 살펴보자. 여기서는 실제 자료가 아닌 가상적인 자료에 입각해 기회비용의 활용방안에 대해 논의하려 한다. 4대강사업에는 대략 22조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여기서는 20조원이 소요된 것으로 가정한다. 그리고 4대강사업에 대한 대안으로 검토되었던 것이 기초과학 지원 사업이라고 가정하자. 이것이 여기서 차선의 기회에 해당하는 사업이다. 이제 두 가지 대안에 대한 비용-편익 분석(cost-benefit analysis)의 결과가 다음과 같다고 하자.

 

 

4대강사업

기초과학 지원사업

경제적 효과(편익)

40조원

35조원

투자비용(실제 지출)

20조원

20조원

순가치

20조원

15조원

 

여기서 경제적 효과는 각 사업으로 인해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모든 이득, 즉 편익을 적절한 할인율을 이용해 현재가치로 환산한 것을 나타낸다. 투자비용은 두 사업에 공통이므로 사실상 각 사업의 순가치(편익 - 비용)를 비교하면 사업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수 있다. 기회비용은 동일한 규모의 자원(시간, 돈, 물질적 자원 등)을 여러 대안 중 어디에 투입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할 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은 개인이나 기업 나아가 정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사업 타당성 검토의 핵심 사항은 미래의 편익과 공식적으로는 반영되지 않은 묵시적 비용의 규모를 최대한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타당성 검토 과정에 경제적 요인 외에 정치적 요인이 개입하는 경우 미래의 편익은 과대평가하는 반면, 묵시적 비용은 과소평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에서 집행된 국책사업들의 경우 이것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여기서 다루는 간단한 사례에서 확실한 것은 실제로 투입될 사업비 20조원뿐이다. 반면 미래의 편익과 묵시적 비용에는 상당한 불확실성이 내재되어 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것들을 평가하는 과정에는 어떤 정치적 요소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이 간단한 원칙이 무너지는 순간 사업 선정은 대체로 정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참담한 결과가 예상된다. 이것이 우리가 늘 목격했던 일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사심 없이 가장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전문가에게 의뢰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기회비용에 관한 논의가 핵심이므로 묵시적 비용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앞의 표에는 묵시적 비용이 빠져있다는 점을 주목하라. 묵시적 비용은 대안을 검토하는 단계보다는 사업을 집행한 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4대강사업을 집행한 결과 여기저기서 예상치 않았던 부작용이 드러났다고 하자. 무리한 강바닥 준설과 과다하게 설치된 보(洑)로 인해 수질오염이 심해지고 강 주변의 생태계가 파괴되어 엄청난 환경비용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자. 이런 환경비용은 묵시적 비용으로서 대략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고 하자. 이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4대강사업의 기회비용은 ‘포기한 차선의 기회’인 기초과학 지원사업의 순가치인 15조원이다. 묵시적 비용을 무시하는 경우 4대강사업의 순가치는 20조원이므로 기회비용 15조원을 상회한다. 따라서 4대강사업은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4대강사업의 묵시적 비용을 고려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10조원의 묵시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4대강사업의 순가치는 10조원으로 감소하므로 대안이었던 기초과학 지원사업의 순가치 15조원보다 작아진다. 따라서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 4대강사업을 추진한 것은 잘못된 선택임이 입증된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묵시적 비용이 진지하게 고려되었다면 4대강사업 대신 기초과학 육성사업이 채택되었을 것이다.

 

여기서의 논의가 실제 자료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지만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무엇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하는지 분명하다. 우선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기회비용에 입각한 정확한 사전평가를 통해 국책사업을 선정하는 기준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후적으로는 채택된 사업의 순가치가 기회비용을 상회하는지 확인함으로써 적절한 결정이었는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회비용 개념을 적용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이런 논의는 정부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경우 묵시적 비용의 대부분은 환경 관련 비용이 차지한다. 그런데 이런 비용을 무시하는 것도 문제지만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거 인천 국제공항 건설과 관련해 여러 민간단체에서 국제공항 건설을 반대했던 사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각종 환경단체를 포함해 여러 시민단체에서는 영종도 주변의 생태계 파괴로 인한 재앙을 강조하면서 공항 건설을 극렬하게 반대했다.

 

그러나 공항 건설은 강행되었으며 현재 인천 국제공항은 세계적으로도 가장 우수한 공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면 당시 생태계 파괴라는 사회적 비용을 강조하면서 공항 건설에 반대했던 많은 사람들은 지금 인천 국제공항에 대해서도 여전히 같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다. 이들이라고 해서 합리적 의사결정의 원칙을 무시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들이 강조했던 것만큼 생태계 파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면,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인천 국제공항 건설은 적절한 의사결정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향후 환경 문제를 다루는 경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필자는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주먹구구식으로 국책사업을 추진했던 정부와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자신의 허명(虛名)을 드러내려 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런 사례들을 언급한 이유는 향후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더욱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기회비용 개념 자체는 명확하고 간단하다. 그렇지만 실제 현실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이유에서 국책사업의 기회비용을 측정하는 경우에는 다양한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한 후 이를 수렴해 의사결정에 반영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무시하고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 자체가 의사결정 과정이 비민주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국책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을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측정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대형 국책사업의 경우 비용을 부담하는 주체는 결국 납세자들이다. 문제는 이런 사업의 추진 여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은 국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소수의 정치인과 관료들이다. 그런데 이들에게서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는 경우와 같은 정도의 신중함이나 집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각종 공사(公社)나 대기업의 경우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예상된다. 이들이 자신의 비용을 투입하는 것과 같은 정도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지 않는 한 ‘비용 최소화의 원칙’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이 문제는 도덕적 해이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신상필벌의 차원에서 정교한 인센티브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 외에 달리 해결방법이 없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이들은 사후적으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과문한 탓인지 건국 이래 지금까지 국책사업과 관련해 자신이 내린 잘못된 결정에 책임을 통감하고 공직을 사퇴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모든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하고 공(功)은 자신이 독차지 하려는 태도가 만연해 있는 한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길이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에서 출간한 『MB의 비용』은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하다. 국민이 깨어있지 않으면 같은 일이 되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잘못된 국책사업으로 인해 앞으로도 국민들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여러 사례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특히 자원외교와 4대강사업 관련된 내용은 공분(公憤)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단지 이 책에서도 과거 정부가 추진한 여러 국책사업들의 공과(功過)를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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