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글로벌경제 관련

주주가치극대화 vs.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07-22 09:11
조회
337

기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핵심이다. 기업이 성장한다는 것은 시장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역도 성립한다. 물론 이것은 이상적인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진리다. 그것은 기업과 시장은 항상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은 위계질서를 갖는 인위적인 조직인 반면, 시장은 자생적인 조직의 특성을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과 시장이 양립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독점기업의 출현이 그것이다. 독점기업은 효율적 자원배분이라는 시장의 고유한 기능을 마비시킴으로써 시장의 장점을 퇴색시키고 계획경제의 망령을 불러들이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의 본질은 무엇인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기업의 스펙트럼(spectrum)은 상당히 넓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기업은 수적으로는 1인 기업부터 수십만 명을 고용한 초국적기업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다양할 뿐만 아니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부터 사회적 책임을 중시하는 사회적 기업에 이르기까지 목적 또한 다양하다. 여기에 최근 공유경제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플랫폼 기반의 공유기업(sharing company)이 부상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의 협동에 기반을 둔 협동조합(cooperative) 기업도 활발하다. 

 

이런 이유로 기업에 관한 의미 있는 논의를 위해서는 어떤 기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기업이란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 즉 법인격이 부여된 기업을 말한다. 기업을 지칭하는 영어 단어가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corporation”이 여기에 해당한다.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숫적으로는 극히 적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매출이나 이익 및 고용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점하고 있기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지극히 타당하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최초의 주식회사는 1602년에 탄생한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라 할 수 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이보다 2년 앞서 설립되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주식회사라 할 수 없기에 그렇다. 이후 주식회사는 자본을 공모하여 이를 바탕으로 위험 사업을 추진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다가 1720년 영국에서 왕실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주가가 폭락하는 사건, 이른바 남해거품이 발생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 후유증으로 인해 1720년 거품법(Bubble Act)이 제정되어 이후 100년 가까이 주식회사가 설립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영국에서 1842년 회사법이 개정되고 이어서 1855년 유한책임법이 통과되어 주주는 출자한 자본의 범위 내에서만 책임을 지는 제도가 확립되어 주식회사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와 거의 동시에 유럽과 미국에서 추진된 철도건설 사업은 대규모 자본 조달을 필요로 했기에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바탕으로 하면서 중앙집중적인 위계질서를 가진 철도회사들이 현대적인 기업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시장경제와 기업은 공진화(co-evolution)하면서 경제발전을 견인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1929년 대공황을 비롯해 1, 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자본주의 기업의 역동적인 적응력을 바탕으로 기업과 시장경제는 꾸준히 진화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2차 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이 시기를 대압착기(Great Compression)라고 부르는 것은 이 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전대미문의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기에 경제적 불평등이 상당히 완화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명백하다.

 

그러다가 시장경제와 기업 모두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1971년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달러와 금의 태환을 중지하는, 이른바 금태환 정지를 선언했고 이로 인한 후유증으로 국제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은 전무후무한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여파로 인해 금융자본이 글로벌 경제의 주역으로 부상하는 전기가 마련되었는데 이는 모두에게 지극히 불행한 사건이 되었다. 금융자본은 실물경제를 지원하는 보조적인 역할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업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역으로 급성장했지만, 이것은 득보다는 실이 훨씬 더 많았던 사건임이 드러났다. 그것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면서 말이다.

 

앞서 말한 대압착기에 모두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업이 주주를 포함해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에 봉사하는 조직으로 경영되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의 두 축인 효율과 평등을 위해서는 그만큼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경제학자 세바스티안 둘리엔(Sebastian Dullien)은 저서 자본주의 고쳐쓰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몇 십 년간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가 지배적 형태였다.......하지만 이는 주주가치 자본주의(shareholder-value capitalism)로 대체됐으며, 기업지배구조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주주가치는 특히 앵글로·색슨 식의 경영 개념으로서 래퍼포트가 주주가치의 창출: 사업실적의 새로운 기준(1986)에서 만든 말이다.”기업의 본질에 대한 이런 변화로 인한 영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주주가치극대화를 주도한 세력이 기업이 아니라 금융자본이라는 데 있다. 수익률 게임에만 관심이 있는 금융자본은 기업의 전문경영자가 오로지 주주가치극대화를 추구하도록 각종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했다. 성과보수제라든가 스톡옵션은 기본이고, 그 외에도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데 각종 포상이 주어졌다. 이로 인해 기업은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기 보다는 단기적으로 주가를 부양함으로써 금융자본이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이른바 단기주의(short-termism)가 득세한 것이다. 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전문경영자는 퇴출되었기에 대부분의 기업은 단기주의에 입각해 주가를 부양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던 것이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전문경영자인 GE의 잭 웰치(Jack Welch)의 별명이 중성자탄 잭(N-bomb Jack)인 것은 정리해고를 통해 한때 GE의 기업가치를 크게 높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주주가치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드러난 실상은 참담했다. 기업은 더 이상 시장경제의 창달에 기여하기 보다는 시장경제를 위기로 내모는 부정적인 주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배경에는 단연코 주주가치극대화라는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 왜 시대착오적인 이데올로기인가? 한 마디로 지금은 주주들만을 위해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논리가 수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주주만을 위해 기업을 경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상황과는 양립하기 어렵다.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는 이런 기업을 존중하기는커녕 적대적으로 대하고자 하는 마음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더 이상 주주만의 것이 아니다. 물론 주주로서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보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자본의 주도하는 상황에서 주주의 의미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들은 단기적으로 수익률을 극대화한 후 기업을 떠날 수도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주주가치극대화는 더 이상 기업의 목표가 되기에는 한계가 드러났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인가?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던 대압착기의 교훈에서 배울 수 있듯이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만이 실효성 있는 대안이다. 그리고 이것만이 단기주의의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는 본질적으로 기업과 관련된 모든 주체들, 즉 주주, 전문경영자, 종업원, 채권단, 소비자, 정부 등 모두의 이해관계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기업경영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시장이 이런 노력을 평가해주지 않는다면 이는 그저 이상적인 대안일 뿐이다. 

 

증권시장은 이런 기업의 노력을 평가해 기업가치를 결정해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지금까지는 주주가치극대화 차원에서 기업가치를 평가해왔다면 이제는 관점을 바꿔 이해관계자가치를 극대화하는 기업을 높이 평가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 그런데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란 다름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은 곧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증권시장은 이런 기업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기준을 설정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시장경제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이 같이 이루어지도록 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주주가치극대화의 패러다임에서는 시장경제의 발전과 기업의 성장 간에는 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는 지난 역사가 증명한다. 이제는 시장참여자 모두 이해관계자가치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문화를 바꿔나가는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이런 과제를 더 이상 늦추기 어려운 이유는 4차 산업혁명의 성패 또한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원칙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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