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지식(共有知識)의 중요성
오늘날 정보화 시대를 살면서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축적된 정보의 양이 유사 이래 인류가 축적한 정보의 양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은 최근의 엄청난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미국 버클리대의 연구진에 의하면, 인류는 2003년까지 대략 12엑사바아트(1exabyte=1018 byte)의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 전 세계 디지털 데이터의 양이 2006년 161엑사바이트에서 2009년에는 988엑사바이트로 증가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1제타바이트(zettabyte)를 초과했을 것이다. 1제타바이트는 1,000엑사바이트에 해당한다. 실로 엄청난 정보의 양이요, 놀라울 정도로 빠른 축적이다.
그런데 지금과 같이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정보의 양적인 면보다 질적인 면이 훨씬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자본의 수익률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보의 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급 정보를 얻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정보의 질을 여러 단계로 구분할 때 하위에 있는 정보는 아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보의 질 못지않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정보의 다른 측면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경제학에서 “메타 정보(meta information)”, 즉 “정보에 관한 정보”로 알려진 것이다.
“정보에 관한 정보”란 정보가 여러 상이한 수준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건물에 여러 개의 층이 있듯이 정보의 수준도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정보란 기본적으로 “미래의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관한 지식이나 데이터”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0차 정보(zero-order information)에 해당한다. 그 다음은 1차 정보, 2차 정보, 3차 정보 등으로 계속되는 데, 1차 정보부터는 메타 정보에 해당한다. 즉, 1차 정보부터는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이런 메타 정보 가운데 가장 높은 차수의 정보를 공유지식(common knowledge)이라고 한다.
공유지식은 다수의 사람들이 관련된 경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를 들어 두 사람 A, B를 고려해보자. “A가 알고 있고, B도 알고 있다”는 상태는 공적 지식(public knowledge)이라 하는데, 0차 정보에 해당한다. 1차 정보는 “A는 B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와 “B는 A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2차 정보는 “B는 A가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을 A가 알고 있다”는 상태를 말한다. 이와 같은 추론을 끝까지 밀고 가는 경우 극한의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공유지식이다.
공유지식은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로버트 아우만(Robert Aumann)과 토마스 셸링(Thomas Shelling)이 처음 게임이론에 도입한 개념으로서 경제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단히 말해 어떤 정보가 공유지식의 상태에 있지 않다면 누군가는 이런 정보의 상태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거나 거래를 왜곡시킬 수 있다. 그렇지만 공유지식의 상태에서는 누구도 정보의 보유 상태를 이용해 부당이득을 얻을 수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관련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경우에는 공유지식의 상태를 달성하는 것이 전반적인 복지를 위해 중요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찬 안데르센의 “벌거벗은 임금님”은 공유지식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하는 우화다.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사기꾼이 허영심 많고 새 옷을 좋아하는 왕에게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옷을 만들어주겠다고 호언하면서 시작한다. 이에 덧붙여 이들은 이 옷은 지위에 적합하지 않거나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은 천으로 만든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함정이다. 왕은 옷의 제작 과정이 궁금해 시종들을 보내 수시로 확인하였는데, 그때마다 시종들은 옷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고 보고한다. 사실 그들은 전혀 옷을 볼 수 없었지만, 이 사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지위에 적합하지 않거나 어리석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므로 왕에게는 잘 진행되고 있다고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사기꾼들이 놓은 덧에 걸린 것이다.
드디어 옷이 완성되었지만 왕에게는 새 옷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주위의 신하들 모두 옷이 훌륭하다고 칭찬하므로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되기 싫은 왕은 마치 새 옷을 입은 것처럼 행동한다. 마침내 왕이 새 옷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자 도로변에 모인 사람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 두려워 왕의 새 옷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군중 속에 있던 천진난만한 소년이 갑자기 “왕이 벌거벗었다”고 소리치자 그 때 사람들은 비로소 왕이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어린 소년은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공유지식”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 것이다. 그가 소리치자 사람들은 마치 최면 상태에서 깨어난 듯 왕이 벌거벗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공공연히 인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우화에서 순진한 소년이 크게 외침으로써 사람들은 비로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보(즉,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를 인정하게 됨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그리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즉, 개개인은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차원을 넘어서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서로서로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궁극적인 상태에 도달한 것이다. 그 결과 왕이 벌거벗었다는 사실과 관련해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공유지식은 정보의 보유 상태로 인해 누군가 부당하게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공유지식의 형태로 보유할 수 있는 사회는 정보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일화로 1996년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은 어떤 모임에서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인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 휘말린 것이 아니냐?”라고 슬쩍 한마디 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모두 주식을 팔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린스펀의 한마디가 사람들이 주가가 고평가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공유지식으로 만들어 버렸으며, 사람들은 주식을 매각하는 행위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어떤 사건이나 사실에 관한 정보를 공유지식의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는 경제 전반에 긍정적 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인 경우 국민의 알권리라는 차원에서 정확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와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는 단순히 정보를 공표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언론과 함께 노력해 이것이 공유지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서로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국론이 분열되고, 이로 인해 국가적으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와 반대로 역대 정부는 국민들이 공유지식을 갖지 못하게 방해했던 적이 종종 있었다. 과거 북한의 땅굴사건, 간첩단사건, 천안함 침몰사건, 광우병 사태 그리고 최근의 세월호 참사와 같이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들의 경우,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를 그대로 믿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지금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는 메르스 감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들이 사건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보유하도록 하는데 실패했던 것이다. 공유지식의 중요성을 모르기 때문에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이런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지식의 수준에서 공유할 수 없다면, 서로 어떤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개개인은 우왕좌왕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는 갈등과 불신만 깊어질 것이다.
정부와 언론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는 사회적으로 쟁점이 되는 사건의 진실을 파악해 솔직하게 공표함으로써 이런 사건에 대해 국민들이 공유지식을 보유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개인이나 정파적인 이익을 우선해 적당한 선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는 국민들이 공유지식을 보유 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다. 누가 공유지식의 형성을 방해하는지, 누가 이를 위해 노력하는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면 안데르센의 우화에서 사기꾼과 같은 역할을 하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사회에 건전한 상식과 올바른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많아져야 공유지식의 형성을 방해하는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선진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