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관련

한국인의 돈 콤플렉스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5 02:06
조회
268

돈은 인간의 발명품 가운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애증(愛憎)의 대상이 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도대체 돈이 무엇이기에 우리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한번쯤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와 같이 “돈 콤플렉스”가 만연한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우선 돈은 공식적으로는 화폐(money) 또는 통화(currency)라고 불린다. 화폐와 통화 간에는 개념상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여기서 이에 대한 논의는 생략할 것이다. 반면 돈 콤플렉스를 구성하는 두 가지 개념, 즉 ‘돈’과 ‘콤플렉스’의 의미는 명확하게 해 둘 필요가 있다. 모든 논의는 정확한 개념을 공유하는 가운데 시작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념을 둘러싼 혼란으로 인해 의미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점을 소홀히 했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논의가 지지부진했던 것이다.

 

먼저 돈이란 무엇인가? 일견 너무 자명해 보이지만 막상 대답하려면 누구나 조금 고민해야 한다. 흔히 돈의 기능으로 첫째, 회계의 단위, 둘째 교환의 매개, 셋째 가치의 저장수단이 거론된다. 그런데 이것은 돈의 기능에 관한 것이지 돈 자체를 설명한 것은 아니다. 간단히 말해 돈은 “일반적인 구매력의 원천(source of general purchasing power)”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돈이라 불리던 모든 대상(금, 은, 법정화폐 등)에 적용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정의라 할 수 있다.

 

우리가 돈을 원하는 이유는 돈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비가 미덕인 사회에서 돈은 실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자랑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가진 이런 힘 때문에 돈을 일종의 에너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일할 수 있는 힘’에 해당하는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를 취하지만 여전히 에너지로서의 본질은 동일한 것처럼 돈도 달러, 유로, 위안, 원화 등 다양한 형태를 갖지만 그 본질에는 차이가 없다. 이런 의미에서 돈은 사회 현상에 적용되는 에너지라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콤플렉스(complex)에 대해 살펴보자. 이것 또한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하는 용어로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막상 콤플렉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Carl G. Jung)이 제시한 콤플렉스에 대해 해석이 특히 한국인에게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한다.

 

흔히 콤플렉스는 ‘문제점’, ‘약점’ 또는 ‘열등감’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융은 그리 보지 않았다. 콤플렉스는 영어 단어의 의미 그대로 정신적인 여러 내용이 감정적으로 뭉친 것이다. 즉, 여러 감정들의 복잡한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이런 감정의 응어리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정신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거나 판단을 제약해 편견을 갖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콤플렉스는 사회적으로 낙오했다거나 외모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융 심리학의 권위자인 이부영 교수는 저서 『분석심리학 이야기』에서 콤플렉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콤플렉스는 본래 해롭거나 병적인 것이 아니다. 콤플렉스가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을 모르거나 무시할 때다. 그것이 오래도록 무의식에 있으면 에너지를 더욱 강화시켜 자동적으로 의식을 자극하여 여러 가지 의식의 흐름을 훼방하며, 심지어 신경증적인 장애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콤플렉스를 의식화하는 것, 즉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이 누구나 무의식에는 콤플렉스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융이 강조했듯이 콤플렉스는 열등감만이 아니라 우월감, 기쁨, 즐거움, 또는 분노와 공포, 그 밖의 강렬한 감정으로 인해 만들어져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콤플렉스는 인간 정신의 정상적인 구성 요소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돈 콤플렉스가 왜 문제가 되는가?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존재해왔던 일반적인 현상이 아닌가? 굳이 한국 사회에서만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주장할 수 있는가? 혹자는 이런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 이부영 교수는 앞의 책에서 명쾌하게 설명했다. 필자도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기에 여기서 그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과거부터 우리는 돈을 멸시하는 문화에서 살아왔다. 사농공상의 직능별 계층에서 돈을 다루는 장사꾼은 가장 낮은 계층이고 돈에는 초연하고 글을 쓰는 사람, 선비가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들어오자 사농공상의 가치계열이 곤두박질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전통적인 돈 경시사상이 아주 없어진 것도 아니어서 돈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은 멸시하면서도 가지고 싶은 두 갈래 감정이 돈을 중심으로 얽히게 되었다. 그래서 돈 콤플렉스가 되었다.”

 

그런데 과거에는 돈을 경시하는 의식과 돈을 중시하는 무의식 간의 대극적인 관계로 인해 돈 콤플렉스가 형성되었다면 지금은 대체로 반대 이유로 돈 콤플렉스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돈에 대한 “대극(對極)의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이와 같이 한국 사회는 근원적으로 돈 콤플렉스가 보편적인 현상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배경 하에서 돈 콤플렉스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어 왔던 것이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이래 역동적인 변화 과정에서 불법적이거나 탈법적인 방법으로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이 일약 한국 사회의 주역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재벌을 중심으로 형성된 정·관계 및 재계의 파워엘리트들은 돈에 관한한 누구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그 정당성에 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무의식에는 일종의 수치심이 형성되었으며 이로 인해 돈을 경시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이런 이유로 이들도 돈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반면 경제개발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근로자들이나 오직 합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던 일반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이중적인 감정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의식적으로는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번 사람들을 비난하는 한편, 무의식에는 그들과 같이 돈을 벌지 못한 자신의 무능함을 원망하는 감정이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돈을 많이 번 사람들과는 반대로 여전히 전통적인 의미의 돈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했듯이 콤플렉스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더라도 이것을 무시하고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지내면 나중에 이로 인해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는 돈 콤플렉스를 의도적으로 무시해 온 바람에 곳곳에서 사회적인 장애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융이 했던 경고를 무시한 결과 우리는 필요 이상의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돈의 출처와 돈의 사용처를 중심으로 다음과 같은 ‘돈의 매트릭스(matrix)’를 생각해 보자.

  

영역 I

자기 돈/ 자기를 위해 사용

 

 

영역 II

자기 돈/ 남을 위해 사용

영역 III

남의 돈/자기를 위해 사용

 

 

영역 IV

남의 돈/ 남을 위해 사용

 

<영역 I>

이 영역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돈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므로 신중하게 행동할 것이다. 또한 자기 돈이 정당한 방법으로 번 것이라면 비교적 돈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 가운데 돈을 사용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당하지 않은 방법, 즉 뇌물이나 횡령 및 탈세 등의 방법으로 번 돈이라면 돈을 가볍게 여길 뿐만 아니라 무의식에는 비도덕적인 돈이라는 수치심으로 인해 돈 콤플렉스가 형성될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정상적인 의사결정이 어려워진다.

 

<영역 II>

자기가 번 돈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각종 비영리단체에 기증하는 것이다. 적십자사나 장애인협회에 기증하는 것이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어떻게 돈을 벌었든 이타적인 목적에 사용한다는 도덕적 정당성으로 인해 돈 콤플렉스가 있더라도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비록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은 아니지만 좋은 목적에 사용한다는 명분이 돈 콤플렉스의 멍에를 상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가운데도 별 생각 없이 남을 위해 돈을 쓰려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어느 정도 돈 콤플렉스가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돈을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들은 생각 없이 돈을 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돈에 대한 이중 기준으로 인해 종종 모순된 행동을 한다.

 

<영역 III>

남의 돈을 자기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은 돈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기 쉽다.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이 아니기 때문에 지출하는 경우에도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이유에서든 돈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은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실업급여를 받는다든가 소득보조를 받는 사람들의 경우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가 항상 발생할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인간의 본성상 누구라도 이런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복지정책을 실행하는 경우에는 수혜를 받는 사람들이 돈의 가치를 존중하는 가운데 효과적으로 돈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들이 복지정책의 진정한 의미를 공유해야 할 것이다.

 

<영역 IV>

돈의 사용과 관련해 가장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남의 돈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경우다. 누구나 짐작하겠지만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세출의 상당부분, 그리고 적십자사와 같은 비영리단체의 활동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경우 대부분 자기 돈을 지출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방만하게 돈을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인들이 말도 안 되는 공약을 내세우며 혈세를 낭비해왔던 다양한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이런 경우 돈이 가장 비효율적으로 사용될 뿐만 아니라 관련된 사람들-정치인이든 관료든-은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비록 자신의 고유 권한인 양 남의 돈을 마구 집행하지만 마음속에는 돈을 가볍게 취급하는 자신에 대한 불만이 쌓일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형성되는 돈 콤플렉스는 이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비합리적인 요소가 만연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 영역에서의 부작용을 얼마만큼 줄이는가가 사회 발전의 관건이다.

 

이상 돈의 출처와 사용처를 기준으로 네 가지 가능한 영역을 나눈 후 각 영역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며, 이것이 돈 콤플렉스와 어떻게 관련될 수 있는지 간단히 살펴보았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설명의 편의를 위한 구분일 뿐 이들 네 영역의 중간에 해당하는 다양한 영역이 존재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런 영역 구분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돈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는다면 돈 콤플렉스는 계속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이고, 그 결과 잘못된 의사결정과 비효율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돈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반적인 구매력의 원천”으로서 돈은 가치중립적이다. 돈은 자체로는 더러운 것도 신성한 것도 아니며, 존경 받을 만한 것도 무시할 것도 아니다. 현실적으로 돈을 벌고 쓰는 방법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이 가운데 사람들이 돈은 정당하게 벌어 명예롭게 써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돈을 마구 쓰는 것은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다. 생각 없이 여기 저기 마구 돈을 기부하는 것은 돈의 주인이 아니라 돈이 주인이라는 표시다. 돈이 없다고 지나치게 인색하게 행동하는 것 또한 돈이 주인이라는 다른 표시에 불과하다. 돈이 많던 적던 우리가 돈의 주인이 되지 않으면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money over mind”가 아니라 “mind over money”가 되어야만 비로소 돈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의식수준에 도달하는 경우 비로소 인간 중심의 세상이 가능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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