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관련

과감한 투명성은 불가능한가?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2-18 12:06
조회
368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특성으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 견해가 다르겠으나 필자는 투명성 결여를 지적하고 싶다. 이 현상이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고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기에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보통신기술이 발달해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개방된 사회가 도래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실을 보면 참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투명한 것을 싫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는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다거나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관용적 표현에 익숙하다. 적당히 거짓말하고 다른 사람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는 것이리라. 물론 이것이 한국사회에만 적용되는 특성은 아니다. 그럼에도 필자가 굳이 이 점을 언급하는 이유는 유독 이런 표현이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사회에서 투명성을 기대하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투명성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투명성은 진실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진실을 은폐하고 거짓을 말하는 것은 단연코 투명하지 않은 것이다. 투명성은 또한 지대추구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데 아무것도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더 많은 몫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은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자신의 이득을 확보하려 한다. 이들에게 투명성은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마지막으로 투명성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 및 정보와 관련되어 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은 결코 투명한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런 기준에 비추어 우리들 각자 하루하루 자신이 투명하게 살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따라서 이것은 남녀노소 및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다. 예컨대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잘 모르는 내용을 아는 것처럼 얘기했다면 투명성을 위반한 것이다. 정치인이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는다면 이 또한 투명성을 위반한 것이다. 기업의 오너가 회계장부조작을 통해 은밀하게 비자금을 모으고 있다면 당연히 투명성을 위반한 것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담합해 일정 가격이하로는 매물을 내놓지 말자고 결의했다면 이 또한 투명성을 위반한 것이다. 이것도 지대추구행위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 투명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스럽다. 필자도 예외가 아니다. 단지 조금 더 투명해지려 노력할 뿐이다. 그런데 정작 심각한 것은 사회가 복잡해지고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투명하지 않은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힘 있는 조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사회발전을 위한 선결과제라 할 수 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그 중요성을 절감할 수 있는 사건들이 많았으니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감한 진실(radical truth)과 과감한 투명성(radical transparency)을 바탕으로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미국의 금융인 레이 달리오(Ray Dalio)의 경영철학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과감한 투명성은 그가 처음 제안한 개념은 아니다. 정보기술이 발달로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빅데이터가 등장해 과감한 투명성을 뒷받침하는 기술적 여건이 마련되었다. 그래서 이미 여러 사람들이 조직의 효율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명성이 요구된다는 제안을 하기 이르렀던 것이다. 실제로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과감한 투명성이란 기업의 지배구조, 정치, 소프트웨어 설계 및 비즈니스 분야에서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과 데이터의 개방성을 과감하게 증진하려는 행동과 접근법을 묘사하는 용어. 여기서 방점은 과감한에 있다. 이것은 과격할 정도로 모든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의사결정 과정을 철저히 투명하게 유지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레이 달리오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헤지펀드를 운영하고 있는 투자회사인 Bridgewater Associates1975년에 창업해 오랫동안 CEO를 겸하면서 과감한 투명성을 바탕으로 기업을 크게 키웠다. 이 회사가 운용하는 자산 규모는 1,6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2위 헤지펀드의 몇 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그리고 달리오 자신의 순자산은 20199월 기준 187억 달러로 블룸버그에 의하면 세계에서 58번 째 부자로 알려졌다. 달리오는 회사를 설립한 초기 자신의 판단을 과신한 나머지 전 재산을 잃는 쓰라린 경험을 했으며, 이를 통해 과감한 진실에 기반을 둔 과감한 투명성의 가치를 터득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그의 입장은 저서 Principles에 잘 정리되어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가장 큰 비극은 사람들은 머릿속에 자신의 아이디어와 견해를 갖고 있지만 그 중 무엇이 진실인지 밝히는 적절한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관련이 있으며, 내 생각에 모든 의사결정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과감한 진실과 과감한 투명성을 믿는다고 말할 때 내가 의미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이 숨기는 것들, 특히 실수, 문제점 및 약점들을 테이블위에 드러내놓고 그것들을 함께 살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숨기지 말아야 한다.”

 

이에 덧붙여 달리오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의미 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는 과감한 진실과 과감한 투명성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이런 이유로 몇 년 전부터 그의 행보를 주목해왔다. 자수성가한 금융인으로서 주요 미디어의 단골 초대손님이며 다보스 포럼의 주요 연사로 참여하고 있다는 이력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달리오가 2년 전 How to build a company where the best ideas win이라는 제목으로 한 TED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그는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는 현장에서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해왔는데, 이는 상당한 결단과 용기 그리고 겸허함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는 단순히 구호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과의 미팅에서 항상 이 두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팅에 참여한 직원들 모두 Dot Collector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른 직원들에 대해 솔직하게 평가하게 되어 있다. 이때 신입사원이라도 CEO인 달리오를 포함해 모두를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모두 철저하게 진실을 말하고 철저하게 투명할 것을 요청 받는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직원의 3분의 1 가량은 입사 후 3년 내에 이직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축적한 정보를 알고리즘을 이용해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린 결과 Bridgewater Associates는 과거 26년 중 23년간 헤지펀드 업계에서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유감스럽게도 달리오가 실시한 방법은 우리 풍토에서는 현재 실행 불가능하다. 권위주의적인 위계서열이 분명한 조직에서 상사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반박한다는 것은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대통령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은 가운데 즉흥적인 지시를 내리는 경우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를 반박할 수 있는 고위 공직자가 있겠는가? 재벌총수가 잘 모르는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려 할 때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는 임원이 있겠는가?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는 절대 불가한 일이다. 이런 풍토에서 과감한 투명성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격렬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도 과감한 투명성을 도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당장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앞으로 생존을 위해서라도 모든 분야에서 점점 더 투명한 조직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익을 내세우면서 은밀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최악의 인간이 조직을 장악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 새해에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은 서로 견해가 다른 것이 지극이 정상임을 인정하는 가운데 솔직하게 서로의 생각을 교류하고 토론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달리오가 충고하였듯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내가 진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 말해야 할 것인가? 당신이 진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내게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이라면 과감한 투명성을 실현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과감한 투명성은 극단적인 투명성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이로 인한 부작용을 강조하는 사례들도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모든 것이 점점 더 개방되는 추세라는 사실과 상대적으로 투명한 조직일수록 더 나은 결과를 실현하고 있다는 경험이 이를 뒷받침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투명성은 이에 비하면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진실에 바탕으로 두고 교묘하게 사익을 추구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아는 범위 안에서 주장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양식 있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덕목들이다. 그렇지만 당연한 것들을 새삼 강조해야 하는 필자의 심정은 착잡하다. 각자 자신이 있는 위치에서 조금 더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는 결심으로 한 해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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