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경영학 분야

케이트 레이워스의 <도넛 경제학(Doughnut Economics)>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8-27 23:09
조회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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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  

역자: 홍기빈

출판사: 학고재(2018)

 

 

차례

1장 목표를 바꿔라: GDP에서 도넛으로

2장 큰 그림을 보라: 자기 완결적인 시장에서 사회와 자연에 묻어둔 경제로

3장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 합리적 경제인에서 사회 적응형 인간으로

4장 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 기계적 균형에서 동학적 복잡성으로

5장 분배를 설계하라: 부자로 만들어주는 성장 신화에서 분배 설계로

6장 재생하라: 저절로 깨끗해진다는 성장 신화에서 재생 설계로

7장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 유일한 지상명령에서 성장 불가지론으로

 

  

대안 경제이론의 모색

저자 케이트 레이워스는 이 책의 <여는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현재 주류 경제학이 비현실적인 가정에 근거해 지나치게 편협한 사고를 강요하는데 반발해 경제학을 접고 직접 현실에 뛰어들어 국제빈민구호 단체인 옥스팜(Oxfam)UN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근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세계 여러 곳에서 현실을 체험한 후 저자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여전히 경제이론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인지한 후 새로운 경제학의 필요성을 절감해 다시 경제학에 대한 연구로 회귀했다. 이 책은 이런 저자의 개인적 고뇌의 여정을 통해 탄생했다. 저자는 인간의 존엄과 자연의 소중함에 대한 자신만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안 경제이론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그만큼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파 경제이론의 영향력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자유주의 정책을 뒷받침했던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 EMH)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잘못된 이론임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계와 금융계에서의 위상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실정이다. 이것은 한번 확립된 이론을 퇴출시키고 대안 이론을 도입하는 것이 지극히 어려운 작업임을 의미한다. 과학사학자 토마스 쿤(Thomas Kuhn)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지적한 대로 패러다임 전환은 종교의 개종(conversion)과도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장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경제이론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고백한다. 왜냐하면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이 투자결정을 내리고, 소비자들이 소비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경제이론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1950년대에 이론적 토대가 마련되었으며 지금도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21세기의 상황에 더 이상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저자는 그동안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등장했던 행동경제학, 복잡계 경제학, 생태경제학, 제도경제학 등 다양한 이론적 시도를 통합적으로 적용한 새로운 경제학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저자는 여기에 도넛 경제학(Doughnut Economics)라는 다소 특이한 명칭을 부여했다. 저자 나름 고심 끝에 선택한 명칭이지만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명칭으로 여겨진다. 도넛은 대체로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도넛 경제학의 핵심 메시지 

저자가 제안한 도넛 경제학은 두 가지 기본 목표를 지향한다. 하나는 사회적 기초(social foundation)를 충족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적 한계(ecological ceiling)를 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가운데 인간의 위한 경제 공간으로 도넛의 내부에 머물 것을 제안한다. 도넛이라는 식품이 주는 불량식품의 이미지를 배제한다면 저자가 도넛을 통해 제시하려했던 시각적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사회적 기초에는 모든 인류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12가지 요소들(, 식량, 교육 등)이 포함된다. 저자는 12가지 사회적 기초를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것이 도넛의 안쪽 원이 갖는 의미다. 생태적 한계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와 이로 인한 멸종, 수몰, 나아가 지구 차원의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 반드시 준수되어야 하는 9가지 요소들(기후변화, 해양 산성화, 담수 고갈 등)이 포함된다. 이것이 도넛의 바깥 원이 갖는 의미로서 어떤 경우에도 이 9가지 한계를 위반해서는 안 되는데 이미 4가지 한계를 위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궁극적으로 모든 경제활동은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다음 그림에서 도넛은 허용 가능한 경제활동의 범위를 보여준다.

 

 

 경제학, 도넛으로 바꿔라

저자는 경제학에서는 그동안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표와 그림을 이용한 교육이 효과적이었음을 인지하고 자신이 제시한 두 가지 목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도넛의 이미지를 차용한 것이다. 도넛의 이미지에서 알 수 있듯이 도넛의 안쪽 원에 의해 묘사된 사회적 기초를 확립하기 위한 최소 기준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동시에 도넛의 바깥 경계를 넘어 생태적 한계를 무너뜨려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제주체를 오직 도구적 합리성(instrumental rationality)에 따라 행동하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유형의 경제주체는 소비로부터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또한 주류 경제학은 시장에서 가격을 지불하지 않고, 즉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다른 경제주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externalities)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에도 이를 매우 예외적인 현상으로 간주해왔다. 예를 들면 공해물질을 방출하는 것이 대표적인 외부효과의 사례임을 감안할 때 이제는 더 이상 이런 문제를 예외적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이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는 주류 경제학은 기후변화와 불평등과 같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문제에 대한 해법을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저자의 문제의식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줌으로써 정책이 바뀌고, 기업이 목표에 변화가 일어나고, 소비자들이 외부효과를 의식하는 가운데 적절하게 행동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이론 모형이 요구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이런 이론 모형을 구축하는데 반드시 반영되어야 할 7가지 원칙을 강조한 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나 새로운 이론 모형을 제시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도넛 경제학이 대학에서 학생들의 교제로 채택되기 어렵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주류 경제학자들에게는 그다지 자극이 되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그동안 다양한 관점에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해 온 것들을 모아놓았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만큼 깊은 차원의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제시한 7가지 원칙을 다시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다보면 과연 이 원칙들을 모두 반영한 새로운 경제이론의 가능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넛 경제학이 제시하는 7원칙

저자가 제시한 7개의 원칙은 하나하나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별적으로 논의되었던 것들을 함께 묶어서 논의하도록 제안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들을 순차적으로 간략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1) 목표를 바꿔라: GDP에서 도넛으로

GDP는 한 나라의 경제적 성과를 측정하는 거시지표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GDP가 국민의 일반적인 복지 수준을 측정하는 지표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여성의 가사노동을 비롯한 무보수노동의 가치가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범죄활동이 활발해지면 이를 예방하는 활동도 증가해 GDP가 증가하는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넘쳐난다. 전쟁을 수행하는 경우 이와 관련된 생산과 지출이 증가하면 GDP가 증가하는 것도 대표적인 부정적인 측면이다. 이와 같이 GDP의 한계는 이미 잘 알려져 있으나 이를 대체할 마땅한 거시지표가 없는 실정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인 2008<스티글리츠--피투시 위원회(Stiglitz-Sen-Fitoussi Committee)>에서 이 문제를 검토한 후 발간한 GDP는 틀렸다(Measuring Our Lives)GDP의 여러 대안을 검토한 대표적인 보고서지만 아직 어떤 것도 현실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 다른 대안으로 UN에서 개발한 인간개발지수(HDI)라든가 부탄에서 실시한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 GNH) 등이 거론되었지만 GDP의 약점을 보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저자가 도넛을 통해 제시한 상한 기준과 하한 기준을 염두에 둔 거시지표를 만드는 작업은 상당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새로운 지표가 만들어진다 해도 기존 GDP 기준에 익숙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저자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하위 목표들을 모두 양적으로 측정하는 작업에 내재한 한계를 무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2) 큰 그림을 보라: 자기조정적인 시장에서 사회와 자연의 일부인 시장으로 

자유시장의 가장 탁월한 기능은 가격 시스템을 통해 수요와 공급을 원만하게 조정함으로써 시장의 안정적인 균형 상태로 수렴할 뿐만 아니라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달성하도록 해준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강조한 보이지 않는 손의 현대적 표현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장경제가 완전 경쟁(perfect competition)과 완전한 정보(perfect information)라는 이상적인 조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 즉 현실에서는 불완전한 경쟁과 불완전한 정보가 일반적이라는 사실은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자기조정적인 시장이란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일찍이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자기조정적인 자유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시장을 모든 것을 갈아엎어버리는 악마의 맷돌에 비유했던 것이다.

 

저자는 폴라니와는 다른 맥락에서 자기조정적인 시장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이 사회의 하위 조직이며, 경제와 환경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배제한 가운데 구축된 경제이론으로부터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이론적 기초를 기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와 자연이라는 경제활동보다 상위에 있는 두 가지 측면을 망라한 새로운 경제이론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 또한 저자의 주장에 대체로 공감하지만 이 모든 측면들을 망라한 이론 모형을 구축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과제다. 저자는 이 문제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회와 자연에 기반을 둔(embedded) 경제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하며 이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해서나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다. 

 

3) 인간 본성을 피어나게 하라: 합리적인 경제인에서 사회 적응형 인간으로 

주류 경제학에서 경제주체는 도구적 합리성에 입각해 오직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 이윤을 극대화하는 반면 비용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냉혹한 인간으로 묘사된다. 또한 경제주체들 간 상호작용은 모두 시장에서 수요과 공급을 통해 이루어지므로 시장수요와 시장공급의 관계에 따라 가격이 신축적으로 변동하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지만 그동안 현실 경제에서 관찰된 결과는 이런 가정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경제주체는 항상 도구적 합리성에 의존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가격을 통하지 않고 서로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현실의 관찰 결과를 이론에 맞추는 억지를 부리지 않으려면 이론을 수정해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합리적 경제인 대신 사회 적응형 인간을 상정한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 적응형 인간은 다른 사람과의 상호의존관계를 인식하고 있으면서 상호주의에 입각해 서로 주고받으며, 협력해서 과제를 완수하는 적응적인 인간을 말한다. 이와 같이 저자는 현실에서 우리가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경제이론을 구축하자고 제안한다. , 도구적 합리성 가정을 배제하는 경우 연역적 방법론에 입각한 경제이론을 구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단점이 노출된다. 예를 들면 행동경제학은 경제주체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이 인간의 심리에 내재된 성향이라는 것을 여러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그렇지만 행동경제학에서의 발견을 바탕으로 주류 경제이론을 대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주된 이유는 연역적인 이론을 구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어진 과제는 실험을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현실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연역적인 방법을 적용한 이론 모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류 경제학의 근본 가정을 바꾸는 결코 간단하지 않은 작업이다. 

 

4) 시스템의 지혜를 배워라: 기계적 균형에서 동학적 복잡성으로 

주류 경제학에 의하면 시장경제는 항상 균형 상태로 수렴하는 특징을 갖는다. 외부 교란이 있더라도 빠른 조정을 거쳐 새로운 균형 상태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런 핵심 메시지를 현실 경제에 광범위하게 적용한 실험이었는데 결과는 참담했다. 이런 균형이론의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바로 효율적 시장가설이다. 이것은 시장에서 모든 이용 가능한 정보는 즉각적으로 가격에 반영되며 그 결과 수요와 공급이 조절되어 항상 균형으로 수렴한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이 가설에 의하면 가격 거품(price bubble)이 형성될 수도 없고 가격 폭락도 있을 수 없다. 즉 역사적으로 반복해서 발생했던 금융위기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가설에 의하면 2008년 금융위기도 발생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그렇지만 발생했고 이는 효율적 시장가설이 틀렸다는 명백한 증거다.

 

따라서 저자는 새로운 경제학은 시스템의 관점에서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진화론과 복잡계 이론(complex system theory)의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이미 여러 학자들이 제안한 것이다. 특히 산타페 복잡계 연구소의 연구원인 브라이언 아서(Brian Arthur)는 복잡계 경제학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가 제기한 엘 파롤 바 문제(El Farol bar Problem)”는 복잡계 경제학이 왜 필요한지 잘 보여준다. 그 밖에 복잡계 전문가 데이비드 오렐(David Orrell)경제학 혁명, 마크 뷰캐넌(Mark Buchanan)내일의 경제, 그리고 에릭 바인하커(Eric Beinhocker)부는 어디에서 오는가는 왜 복잡계의 관점에서 시장경제를 이해해야 하는가를 잘 설명해준 책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주류 경제학자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복잡계 경제학은 여전히 경제학의 변방에 머물고 있다. 그렇지만 현실의 시장경제는 복잡계의 관점에서 시장을 파악하는 것이 옳다는 다양한 증거를 제공하고 있으므로 계속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시장을 불균형 상태에서 동학적으로 변동하면서 결코 균형 상태로 수렴하지 않는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모든 시장이 항상 불균형상태에서 끊임없이 변동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부 시장은 시간이 지나면 균형으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다른 시장은 대체로 불균형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변동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예를 들면 금융시장은 후자의 사례에 해당되고, 가격 변동이 거의 없는 생필품 시장은 전자에 해당된다고 본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저자가 주장하듯이 시장경제는 자동적으로 균형으로 수렴하는 시스템이라는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균형이론으로는 금융위기와 같은 창발(emergence) 현상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실의 시장경제에서는 다양한 창발 현상이 종종 발생한다는 사실은 복잡계 이론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5) 분배를 설계하라: 성장 신화에서 설계에 의한 분배로

주류 경제이론에 의하면 경제성장은 모두를 위해 더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줄 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공평한 분배를 통해 모두의 번영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성장지상주의다. 그러나 지속적인 성장은 사실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장을 통해 분배 문제도 해결된다는 가정은 오류임이 확인되었다. 경제성장은 고용 없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켜 미래의 성장 동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일부 급진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역성장(degrowth)을 주장하지만 이는 국가적 차원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어쨌든 완급을 조절하는 가운데 꾸준히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렇지만 저자를 포함해 많은 학자들이 지적했듯이 분배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성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시장경제도 일정한 제도와 규칙을 바탕으로 작동하는 것이지 문자 그대로 아무런 간섭이나 규제 없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분배를 설계(design)하자고 제안한 것은 새로운 주장을 아니지만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누진세제를 강화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 전반에 걸쳐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토지, 금융, 정보기술 등 소수에 의한 독점적 지배로 인해 경제적 과실이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분배되는 구조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제를 수행하면서도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은 어렵지만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과제다. 분배를 설계하는 것은 곧 성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장과 분배의 조화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중요한 과제로 부상할 것이다. 

  

6) 재생하라: 성장만능주의에서 재생 설계로

주류 경제이론은 청정한 환경을 사치재로 간주한다. 따라서 성장과정에서 공해는 불가피하지만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스스로 감소하게 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펼쳤다. 이른바 성장이 결국 공해를 해결한다는 이상한 논리다. 그렇지만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처럼 환경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탄소세를 도입하고 배출권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것은 공해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저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순환경제(circular economy)의 개념을 도입해 모든 분야에서 재생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재생을 지지하는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예를 들면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의 경우 기존 화석연료보다 에너지 단가가 높다는 이유로 시장에서 외면되었지만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한편 원가절감과 기술혁신을 통해 점점 에너지 단가를 낮춰 지금은 경쟁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다. 이른바 그리드 패리티(grid parity)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더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더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너지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가 재생 가능한 순환경제로 재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의식 전환이 요구된다.

 

7) 경제성장에 대한 맹신을 버려라: 성장 중독에서 성장 불가지론으로 

주류 경제학자들은 복지 향상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불가피한 것으로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에서 무한정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는 경제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다. 진화론자들의 표현대로 자연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최적의 규모를 추구해야지 무조건 규모를 확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진국같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성장을 추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성장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리라는 취지에서 성장 불가지론(growth-agnostic)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우리가 추구할 것은 성장 자체가 아니라 모두에게 번영을 가져다주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지극히 원칙적인 주장이므로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현실적인 관점에서 볼 때 성장을 배제한다면 과연 무엇을 대안으로 내세워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는 외면할 수 없는 과제다. 이것은 경제 시스템 전체를 재구축해야 하는 차원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현재와 같이 금융부문의 과도한 지배와 이로 인한 단기 성과주의가 만연하고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풍토에서는 성장지상주의를 저지할 세력이 없는 셈이다. 따라서 성장 대신 번영의 공유를 목표로 하는 경제 시스템을 지향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시장경제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의 주장은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를 어떤 방향으로 개선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넛 경제학은 가능한가? 

2008년 전대미문의 금융위기를 경험한 후 여러 경제학자들이 새로운 자본주의를 위한 이론을 모색해왔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것은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현행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가 즐겨 사용하고 있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난데없이(out of thin air)”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이라도 시장이 아무런 규제 없이 작동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는 어떤 경우에도 일정한 제도와 규칙 및 법체계를 바탕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과거 자유방임주의는 독점기업을 비호했던 세력들이 지지했던 이데올로기로서 경제주체의 선택의 자유를 역설한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식으로 경제적 상황을 조종할 수 있는 재량을 얻고자 했던 것뿐이다. 즉 자유방임은 더 이상 논의할 가치가 없는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남은 옵션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을 최대화하는 반면, 단점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현재의 경제 시스템을 개혁하는 것이다. 이는 곧 효율을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분배의 불평등을 최소화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이것을 효율과 평등의 조화라고 부르고자 한다. 직접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투표를 시행한다면 어느 나라에서나 과반수이상이 이런 개혁을 지지할 것이 확실시 된다.

 

문제는 개혁의 방향과 실행 가능성이다. 저자는 두 가지 목표와 7가지 원칙의 관점에서 새로운 경제학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도넛이라는 그림 이미지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안쪽 원과 바깥쪽 원이 상징하는 두 가지 한계다. 안쪽 원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12가지 항목의 사회적 기초의 최소 요건을 나타낸다. 앞의 그림에서 보았듯이 12가지는 물, 식량, 보건, 교육, 소득과 일자리, 평화와 정의, 정치적 발언권, 사회적 공평함, 성 평등, 주거, 각종 네트워크, 에너지를 말한다. 이 모두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주체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물질적·정신적 가치들이다. 도넛의 바깥쪽 원은 멸종을 피하고 지구의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생태적 한계를 표시한다. 여기에는 기후변화, 해양 산성화, 화학적 오염, 질소와 인의 축적, 담수 고갈, 토지 개간, 생물 다양성의 손실, 대기 오염, 오존층 파괴와 같은 9개 항목이 포함된다. 이들 항목 중 일부는 중복되는 느낌을 주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사회적 기초를 구성하는 요소들과 생태적 한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기후변화는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더욱 큰 피해를 줄 것이므로 기후변화를 저지하는 것은 곧 이들에게 사회적 기초를 제공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경제 문제를 고민하는 것이 21세기 경제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그리고 경제학자들이 이를 반영해 새로운 경제학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의 과도한 욕심이다. 우선 경제학만으로는 이 모든 변수와 요인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경제이론을 구축할 능력이 없다. 이는 본질적으로 여러 학문 분야에 협력해서 대안 이론을 구축해야 하는 성격이 문제다. 저자는 경제학자들의 지적 수준을 지나치게 높이 생각하는 것 같다. 더욱이 주류 경제학에 익숙한 세대는 이런 작업을 수행할 의지뿐만 아니라 능력도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경제학이 출현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의 개발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주류 경제학의 핵심적인 가정 중 하나는 수확체감의 법칙인데,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반대로 수확체증의 법칙을 실현시킬 것이 거의 확실하다. 따라서 일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데로 2045년 경 특이점이 도래하기 전에 주류 경제학은 새로운 경제학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그리 멀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후면 새로운 경제학의 내용을 담은 텍스트가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도넛 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한계,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해결해야할 경제적 과제들을 다양한 그림을 이용해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한 책이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저자가 제시한 7가지 원칙에 잘 정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중요한 원칙을 천명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나 방안이라는 면에서는 다소 미흡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도 실행이 어려우면 별 의미가 없다. 저자가 제시한 원칙은 모두 훌륭할 뿐만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해관계의 그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느낌이다. 저자도 인지하고 있듯이 시장은 중요하다. 국가와 코먼스(commons)의 역할을 되살리더라도 시장과의 협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다양한 경제주체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금전적, 비금전적 인센티브 시스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경제주체는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단지 주류 경제학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금전적 인센티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비금전적 인센티브도 중요하다. 이 두 가지 인센티브를 적절하게 배합하는 것은 저자가 제시한 7가지 원칙을 현실에 적용하는 데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필자가 번역한 크리스티안 펠버(Christian Felber)의 저서 모든 것이 바뀐다(Change Everything)와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갖는다. 펠버는 이 책에서 공동선(common good)에 근거한 새로운 윤리적 시장경제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차별화된다. 예를 들어 펠버는 공동선 대차대조표(common good balance sheet)는 기존의 재무적 대차대조표 대신 기업을 평가하는 주된 대차대조표를 사용되어야 한다면서 구체적으로 공동선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방법과 절차를 제시하고 있다. 한편 케이트 레이워스는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경제 모델로서 도넛 경제학이라는 더 큰 그림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 두 책이 제시하는 내용을 종합해 더 나은 윤리적 시장경제이론을 구축한 후 이를 실행할 수 있다면 향후 도래할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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