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경영학 분야

제인 메이어의 《다크 머니(Dark Money)》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11-12 02:19
조회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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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제인 메이어(Jane Mayer)

역자: 우진하

출판사: 책담(2017)

 

차례

1부 자선사업을 무기로: 이념전쟁(1970~2008)

  1장 급진주의자들: 코코 가문의 역사

  2: 보이지 않는 손: 리처드 멜론 스카이프

  3장 교두보: M. 올린과 브래들리 형제

  4장 코크 가문의 방식: 그들만의 자육시장

  5장 코크토퍼스: 자유시장 사상의 전파

2부 은밀한 후원자들: 비밀 임무(2009~2010)

  6장 현장 배치

  7장 타타임

  8장 화석연료

  9장 돈이 말을 한다: 시민연합의 결성

  10장 완승: 2010년 중간선거, 다크 머니의 등장

3부 정치의 사유화: 전면전(2011~2014)

  11장 전리품: 의회를 장악하다

  12장 가장 중요한 전쟁; 2012년의 좌절

  13장 역전의 발판

  14장 새로운 코크: 더 나은 선택

 

 

책의 특징: 탐사 저널리즘의 진수

저자 제인 메이어는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는 뉴요커(The New Yorker)의 전속 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탐사 보도 전문 저널리스트(investigative journalist)이다. 메이어는 이미 몇 권의 저서를 단독 혹은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그 가운데 2008년에 출판된 Dark Side는 테러와의 전쟁의 본질을 파해 친 책으로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책도 같은 맥락에서 극우파를 지지하는 소수 재력가들이 막후에서 어떻게 미국의 민주주의를 유린해왔는가를 파헤친 역작이라 할 수 있는데 부제인 <극우파 부상의 배후에 있는 억만장자들의 감춰진 역사>에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간파할 수 있다. 이 책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10권에 포함되었으니 마이어의 필력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외에도 마이어는 보도 및 저술 활동과 관련해 다양한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책 내용의 객관성과 진실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어 보인다. 탐사 보도의 성격을 띤 책의 생명은 객관성과 진실성에 있는데 바로 이 점이 높이 평가 받았기에 여러 상을 수상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차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이 책에서 1970년대 이후 최근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 소수 재력가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미국 정치에 개입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했는지 밝히고자 했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이 임무를 매우 훌륭하게 수행했다. 저자는 5년 이상의 시간을 투입해 각종 자료를 분석하고 관련된 다양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토대로 어둡지만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소수의 재력가들이 자신들의 어두운 면을 다양한 기부와 자선 행위로 위장한 가운데 어떻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비록 심오한 철학이나 이론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우리 내면에 잠재해 있는 탐욕과 오만의 본질을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다른 특징은 197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마치 연대기를 읽는 기분이 들 정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수 재력가들이 미국 정치에 개입해온 과정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이들의 계획이 점점 대담해지고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가 커질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교묘한 방법들이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모든 내용을 파악해 하나의 시나리오처럼 엮어서 서술한 저자의 집념과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파트너가 되어 잠복근무를 하고 있는 수사관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본문만 640쪽이 넘는 많은 분량의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 각종 단체의 명칭 및 여러 가지 사건들이 제대로 연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지나치게 단선적이면서 비슷한 패턴이 반복되기에 때로는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민주당을 후원했던 재력가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분명 민주당을 후원했던 재력가들도 나름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행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공화당을 지원했던 재력가들의 행적을 파 해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의 중심인물인 코크 형제(Koch brothers)에 대해서는 비교적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개하였기에 다른 내용에 비해 덜 단조롭다는 인상을 준다. 필자가 보기에 일찍이 코크 형제에 관한 방대한 조사를 바탕으로 이 정도로 깊이 있게 다룬 사람은 없었다. 미국의 진보적 작가이자 방송인인 톰 하트만(Thom Hartman)도 저서 2106년 미국 몰락에서 코크 형제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다루었지만 이 책에서 만큼은 아니다. 그 외에 각종 미디어에서 코크 형제에 관해 다룬 기사를 살펴보아도 이 책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이들 형제가 어떻게 미국 정치의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의 제목 다크 머니(dark money)”는 이들 형제가 쉽게 출처를 파악하기 어려운 방법을 동원해 정치를 조작하기 위해 투자한 돈을 지칭한다. 문자 그대로 어두운 돈이기에 누구의 돈인지 일반인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이들은 보이지 않은 손으로서 미국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필자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심오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접하기 어려운 미국 정치의 어두운 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와 권력이 결합하는 이른바 정경유착 내지 정실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지구상 거의 모든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인간의 본성에는 권력과 돈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리라. 미국의 경우 그동안 정책 결정과 입법 과정에 개입해 자신들의 이익을 강화해온 소수 재력가들의 행보는 실로 놀랍다. 이들의 장기적이고 일관된 전략은 사실상 이에 필적할 만한 상대가 없는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인들에게는 우울한 사실이다.

 

권력을 목표로 경합하는 사람들에게서 도인(道人)의 풍모나 성현(聖賢)의 지혜를 기대한다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 오히려 경제학에서 말하는 자기선택(self-selection)의 논리에 의해 부와 권력에 지나치게 탐닉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정치판에 넘쳐난다고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외모가 출중한 사람이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경우 검사나 판사 또는 경찰이나 세무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들 가운데 과연 몇 퍼센트가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사명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아마도 상당수는 공익에 봉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는 그들이 특별히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유전자가 다르듯이 다른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행동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 책을 통해 미국에서도 그런 부류의 재력가와 정치인들이 실제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금권정치의 전개 과정: 상상을 초월하는 교묘한 전략

저자는 이 책의 도입부에서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코크 인더스티리즈의 창업자이자 코크 형제의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Fred Koch)가 어떻게 재산을 축적했으며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비교적 소상히 설명한다. 프레드 코크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석유정제 사업에 뛰어들었고 스탈린의 소비에트와 히틀러의 나치에 정유공장을 건립하는 데 협조하고 막대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자는 프레드 코크의 네 아들이 유산을 상속받는 과정에서 벌어진 지저분한 싸움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보다는 프레드 코크가 1958년 존버치협회(John Birch Society)를 설립하는 데 참여해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급진주의 사상가 로버트 르페르브가 설립한 자유학교(Freedom School)에 아들 찰스 코크를 입학시킨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존버치협회는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공산당 비밀계획에 대한 음모를 널리 퍼뜨리면서 당시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많은 유명 인사들을 공산주의 동조자라고 비난했던 극보수단체이다. 자유학교는 미국 역사에 관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가르쳤던 교육기관으로서 저자는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금은 정부가 저지르는 도둑질로 비난받았고, 20세기 초의 혁신주의 운동과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 그리고 린든 존슨 대통령의 빈곤과의 전쟁 등은 자유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주의로 가는 파멸의 전주곡이었다.”(97) 이 두 가지 사안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프레드 코크의 두 아들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의 사고를 형성하는 데 이들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두 형제가 단지 부유한 사업가에 머물지 않고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자유지상주의를 실천하고자 했기에 그토록 집요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렸을 적의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찰스와 데이비드 코크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업 다각화와 인수합병을 통해 오늘날 코크 인더스트리즈를 미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비상장기업으로 키웠다. 2017년 기준 코크 인더스티리즈의 매출액은 1,100억 달러이며 종업원은 12만 명에 달한다. 그리고 코크 형제가 보유한 재산 평가액은 각자 5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재산을 합하면 미국 최고의 부자인 셈이다.

 

저자는 코크 형제가 본격적으로 미국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기 전에도 재력가들이 이런 행보를 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그 원조를 석유왕 존 록펠러에서 찾는다. 19세기말 이른바 도금시대(Gilded Age)의 주역 중 한명이었던 록펠러는 직접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 시도했다가 실패한 이후 자문 역할을 했던 프레더릭 게이츠 목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록펠러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과 함께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자선사업은 일종의 위장 전술이었다. 세금 감면 혜택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유용한 조직이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재단의 발전과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 재단의 숫자는 늘어갔고 재단이 관여할 수 있는 분야도 함께 늘어갔다. 1930년이 되자 미국의 개인 재단 숫자는 200개가 넘었다. 1950년에는 무려 2,000개에 달했으며, 1985년에는 3만 개를 넘어섰다. 2013년 기준으로 미국의 개인 재단은 10만 개 이상이며, 총 자산은 8,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이런 특별한 미국식 조직들이 어떻게 운영이 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142)

 

저자가 초반에 비중 있게 다룬 재단들을 설립하거나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를 신봉하는 사람들로서 대체로 재벌 가문의 후손이거나 자수성가한 부자들 및 후손들이었다. 예컨대 저자가 비교적 상세히 다룬 리처드 멜론 스카이프는 은행 재벌이었던 멜론 가문의 후손으로서 주로 카르타고 재단을 후원했는데 이는 모두 세금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미국에서 자선활동에 대한 기부금에 대해 무제한 세금 감면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17년부터였다. 따라서 이들 재력가들은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재단이나 단체에 기부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업에 자금을 활용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 셈이다. 이것이 이들이 말하는 선택의 자유의 확대에 해당된다. 스카이프 외에 저자가 특별히 언급한 사람으로는 존 M. 올린과 브레들리 형제가 있는데 이들은 보수적인 정치활동을 지원하는 데 나름대로 크게 기여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카이프는 루이스 파월(Lewis Powell)이라는 훗날 대법관이 된 기업 전문 변호사를 지원해 자유지상주의 사상을 널리 전파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M. 올린이나 브레들리 형제를 언급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저자는 올린이 설립한 재단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M. 올린 재단은 2005년까지 창립자의 유지를 받들어 총자산 37,000만 달러의 절반이 넘는 돈을 쏟아 부으며 자유시장의 이념과 다른 보수적 이념을 미국 대학에 퍼뜨렸다.”(180) 이들이 과연 순수하게 자유시장의 이념을 전파하는 데 전념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아니면 이를 통해 작은 정부를 지지하는 여론을 조성함으로써 세금을 줄이고 각종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필자는 후자가 진심이고 전자는 이를 위한 위장 수단에 불과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전통을 지금도 그대로 전승되어 수많은 재단들에 의해 실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선도하는 재력가가 바로 코크 형제이며, 특히 찰스 코크의 영향력이 두드러진다.

 

루이스 파월의 메모와 2010년 시민연합의 승소 사건

저자가 미국 금권정치의 연대기를 1970년대부터 시작한 것은 나름 이유가 있는데 이른바 파월 메모(The Lewis Powell’s Memorandum)”로 알려진 비망록이 작성된 시점이 1971년이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당시 잘 나가던 기업 변호사였던 파월은 미국 상공회의소의 부탁으로 약 5,000자에 달하는 비망록을 작성했다. 이 비망록에는 당시 수세에 몰리고 있는 기업들이 미국의 정치, 교육, 언론 및 법조계 등을 장악하기 위한 상세한 전략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후 미국 기업들은 워싱턴에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실의 숫자를 1968100개에서 1978년에는 500개로 늘렸다. 1971년에 워싱턴에는 단지 175개의 로비 전문 기업들이 등록되어 있던 것이 1982년에는 2,500개로 늘어났다. 이 모두 기업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구글 검색창에 “The Powell memo”를 치면 그의 비망록 전문을 볼 수 있는데 실로 대담한 계획이라 아니 할 수 없다. 파월은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되어 점점 강화되고 있던 정부 규제, 특히 환경, 노동 및 소비 관련된 규제들로 인해 기업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던 상황에 직면해 기업들이 단결해 정치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기업의 위상을 다시 회복할 것을 촉구했다. 지금 보아도 그의 계획은 매우 치밀할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탁월하다는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도 대학과 연구소, 그리고 미디어를 장악해 더 이상 기업에 부정적인 이론이나 여론이 조성되던 상황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역설한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 결과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까지 자유지상주의는 학계와 언론계 그리고 일반대중 사이에서 나름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예컨대 필자의 유학 시절이었던 1980년대 초 주류 경제학에서는 합리적 기대가설(rational expectations hypothesis)과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높이 평가받고 있었다. 이들 이론은 모두 경쟁적이고 자유로운 시장에서는 자원과 정보가 효율적으로 배분될 것이기에 어떤 정부의 개입도 필요 없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런 이론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실제 현실에서 금융계와 실업계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치하게 됨으로써 이런 이론의 위상은 더욱 강화되었으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유지상주의가 불변의 진리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파월 메모가 이후 미국 사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로 코크 형제는 정확하게 파월이 제시한 전략을 사용해 자신의 주장을 전파하려고 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2010년 시민연합(United Citizens)이 미국연방선거위원회(FEC)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승소한 사건이다. 시민연합은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았던 모호한 성격의 조직이었다. 시민연합은 대법원장 존 로버츠(John Roberts)가 주심을 받는 법정에서 미국연방선거위원회를 상대로 5 4로 승소했다. 이로 인해 미국 기업들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직접 특정 후보에게 후원하는 경우가 아닌 경우 간접적인 방법으로 재단이나 비영리단체를 통해 무제한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와 같이 출처를 알 수 없는 돈을 다크 머니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물리학에서 실체를 알 수 없는 물질을 다크 매터(dark matter)”, 그런 에너지를 다크 에너지(dark energy)”라고 부르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했고 현재 버클리대 골드만 스쿨의 석좌교수로 있는 로바트 라이시(Robert Reich)도 파월 메모를 미국에서 공동선(common good)을 약화시킨 중대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라이시 교수가 시민연합 사건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이 사건의 영향력이 사실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조심스럽게 진행되던 정치에 대한 기업의 관여가 점점 더 노골적으로 변했을 뿐만 아니라 규모와 다양성 면에서도 가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금권정치라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시대가 도래했던 것이다.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를 위시해 미국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태롭다고 경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리는 어떠한가? 이런 경고를 보내는 지식인들이 있는가?

 

코크 형제의 부상과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

코크 형제의 활약상은 특히 최근에 와서 더 두드러진다. 이들이 거창한 신념을 가지고 최소한의 정부와 개인의 자유 확대를 주장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세금을 덜 내고 정부 규제를 피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코크 가문은 계속해서 자신들을 자유주의자로 내세우며 정부의 과세와 규제, 그리고 보조금 지급 등을 문제 삼았지만 정작 자신들과 관련되어 있는 석유와 에탄올, 그리고 송유관 사업과 관련해 받을 수 있는 특별 혜택은 모두 받았다는 사실이 기록에 드러나 있다.”(371) 이것은 진정 역설적이다. 정부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면서도 최대한 정부 지원을 받았다는 명백함 모순을 어떻게 변명해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코크 형제는 이런 진짜 목적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대학과 연구소 및 각종 재단들을 이용해 자유지상주의를 전파해왔던 것이다. 예컨대 저자는 이들이 소유한 기업들은 환경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2012년 환경보호국의 자료에 따르면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미국에서 독성 폐기물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이다. 650가지 독성 발암물질의 제조 과정에서 총 43만 톤에 달하는 독성 폐기물을 배출해 법에 의해 책임을 질 의무가 있는 8,000여 개 기업 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250) 석유 정제 및 화확 관련 산업의 비중이 큰 코크 인더스트리즈로서는 환경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수록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므로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환경에 관한 규제를 철폐하려 시도해왔다.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연구를 지원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외에도 코크 형제의 진짜 의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례들은 넘쳐난다. 예컨대 2008년과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던 것이라든가 오바마케어를 무산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압력을 가했던 것, 기후변화의 존재를 부정하는 연구를 지원함으로써 기후변화는 사실상 허구라는 생각을 널리 퍼뜨림으로써 대중을 혼란에 빠지게 한 것 등은 모두 세금을 줄이고 환경 규제를 완화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부와 영향력을 최대한 유지하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라는 작가가 지적한 대로 이들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기업의 이해관계를 일반대중의 운동으로 전환시킨 전략의 탁월함에 기인한다. 이들은 각종 연구소와 재단을 지원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여론을 조작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들이 이용했던 많은 단체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으로는 보수적인 싱크탱크로 유명한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 케이토 재단(Cato Foundation)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mericans for Prosperity)등 실로 다양하며 이들이 지원한 자금 규모는 가히 천문학적이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참조하면 된다. 한 마디로 다양한 루트를 이용해 자신들의 정체를 감춘 가운데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것이다.

 

코크 형제는 과거 두 번의 대선에서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후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후보를 당선시키려 했으며 이들이 다른 부자들과 함께 모금한 규모는 88천만 달러에 달했다. 이것은 이들이 2012년 대선에서 사용한 금액의 두 배에 이르는 규모였다. 물론 이들의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라는 뜻밖의 인물이 등장하는 바람에 대폭 수정되었다. 트럼프는 다른 공화당 후보와는 다른 배경을 갖고 있기에 코크 형제의 자금 지원이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번 대선에서는 코크 형제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비록 자신들이 원하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의 참모들 가운데 이미 상당수는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은 인사들이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를테면 트럼프의 정권 인수위원회를 이끌었던 건 부통령에 당선된 마이클 펜스(Michal Pence)였는데 찰스 코크는 이미 2012년 펜스를 댙통령 후보로 지지한 바 있으며 막대한 정치자금도 지원했었다. 그리고 트럼프가 코크 인더스트리즈와 밀접한 이해관계에 있는 환경 및 에너지 사업 분야와 관련해 내세운 정권 인수위원회 인사들의 면모를 보면 코크 형제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또한 트럼프가 당선된 이후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 협약에서 탈퇴한 것도 코크 형제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코크 형제는 여전히 막후에서 미국의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 특히 찰스 코크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다분히 우려하는 말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찰스 코크는 그 동안 아주 먼 길을 걸어왔다. 위치타에 있는 존버치협회의 서점에서 처음 새로운 세상을 만났고, 자유학교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으며, 정치권의 변방 중 변방인 자유당 활동을 하며 좌절도 겪었다. 그가 지닌 의지의 힘은 막대한 재산과 합쳐서 찰스 코크를 현대 미국 정치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행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믿음에 대해 그처럼 무자비하고 효율적인 공격을 펼친 사람은 미국 정치사에 있어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627)

 

필자는 코크 형제를 주축으로 하는 소수 재력가들이 과연 언제까지 미국의 정치를 좌우할지 궁금하면서도 한국의 미래와 관련해서는 우울한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는 남북문제와 경제문제 등 모든 면에서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실정에 처해 있음을 감안할 때 막연히 친미(親美)나 반미(反美)를 주장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 국익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용미(用美)의 관점에서 미국의 정치를 좌우하는 세력들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에서도 코크 형제를 비롯해 극우파에 속하는 일단의 재력가들이 어떻게 미국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이런 목적에 부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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