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분야

이승만의 <독립정신>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12-30 01:47
조회
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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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이승만

교정: 박기봉

출판사: 비봉출판사(2019)

 

차례

1.총론   2. 사람마다 자기의 책임과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3. 자신의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 화를 당한다 4. 백성이 힘써 노력하면 될 것이다

5. 참으로 충성하는 근본 6. 마음속에 독립을 굳게 해야

7. 각국과 서로 통하는 문제 8. 독립국과 중립국의 구분

9. 백성이 깨이지 못하면 나라를 보전할 수 없다 10. 자주 권리는 긴요하고 중대하다

11. 천지자연의 이치 12. 육대주의 구별

13. 오색인종의 구별 14. 새것과 옛것의 구별

15. 세 가지 정치제도의 구별 16. 미국 백성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

17. 미국이 독립한 역사 18. 미국 독립선언문

19. 미국의 남북전쟁사 20. 프랑스 혁명사

21. 헌법정치의 효험 22. 정치를 변혁하지 않는 것의 손해

23. 정치제도는 백성의 수준에 달려 있다 24. 백성의 마음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

25. 자유 권리의 방한 26. 대한의 독립 내력

27. 청국의 완고함 28. 일본이 흥왕한 역사

29. 아라사의 정치 내력 30. 서양 세력이 동의로 뻗어오다

31. 일본이 조선과 통하여 하다 32. 일본과 처음으로 통상하다

33. 임오군란 34. 갑오년 이전의 한··청 삼국의 관계

35. 갑신 난리의 역사 36. 공사를 처음으로 서양에 보내다

37. 갑오전쟁의 근본원인 38. 갑오전쟁 후의 관계

39. 아라사 세력이 요동을 점령하다 40. 청국의 의화단

41. ·아전쟁의 근본 원인 42. 갑오·을미 동안의 대한의 사정

43. 갑오을미 후의 일본과 아라사의 상황 44. 전쟁 전 일·아 양국의 형세

45. ·아 교섭의 결말 46. ·아전쟁 개전 후 대한의 정황

47. 일본의 목표가 바뀐다 48. 대한의 청··아 삼국한테서 해를 받음

49. 우리는 좋은 기회를 여러 번 잃어버렸다 50. 일본 정부의 의도

51. 일본 백성의 의도

 

 

청년 이승만의 문제의식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 박사에 대해서는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우호적인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며 오늘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마련한 국부로 추앙한다. 반면 비판적인 진영에서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임시정부의 분열을 초래했고 미주교포사회를 농단하였으며, 권력에 눈이 멀어 남북분단을 고착시켰고, 말년에는 민주주의 정신을 훼손한 독재자로 폄하한다. 필자는 이승만 박사의 공과에 대한 첨예한 논쟁에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가 약관 20대에 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당시 그의 지적 수준과 정신세계를 가늠해보고 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필자가 이 책을 접하면서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한성 감옥이라는 열악하고 폐쇄된 공간에 수인의 몸으로 있으면서, 그것도 콜레라가 창궐해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던 암울한 여건에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19042월부터 6월까지 단 4개월 만에 집필을 마쳤다는 사실이다. 이승만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신동이라 불리면서 자랐다고 한다. 어린 시절 10년 간 유학을 공부한 후 19세부터는 배제학당에 입학해 선교사들로부터 서양 학문을 배우고 기독교 신앙을 통해 서구의 정신세계를 접하는 등 동서양의 지식을 섭렵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과 관련해서는 그가 서재필 박사와 협력해 협성회를 조직해 주필로서 독립정신을 고취하려고 했으며, 이후 독립협회를 조직하고 <매일신문>을 창간하는 등 언론인으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 <제국신문>2년여에 걸쳐 논설을 실을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단 기간에 이 책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청나라, 일본, 러시아 및 서구 열강이 조선의 명운을 놓고 각축전을 벌리던 그야말로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혼란의 시대에 조선의 백성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해 조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함께 조선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차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51개 사안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쓴 책은 아니다. 옥중에서 쓴 논설들을 수정 보완한 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일부는 내용이 간단하지만 다른 일부는 비교적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면에서 저자가 각 사안에 얼마만큼 비중을 두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면 저자는 특히 <24. 백성의 마음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51.일본 백성의 의도>는 상대적으로 상세하게 논했다.

 

청년 이승만은 영어(囹圄)의 몸으로 있으면서 당시 대한의 사정, 대한을 둘러싼 열강들의 의도와 책략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역사의식 등을 한 데 묶어 이 책의 내용을 구성한 것으로 보인다. 논설을 바탕으로 한 글이라 학문적 성격보다는 시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즉 대한의 백성들에게 자극을 주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비록 몸은 구속되어 있으나 자유를 추구하는 젊은 정신은 그야말로 막힘이 없이 다양한 주제와 쟁점에 대한 소신을 열정적으로 풀어낸 것으로 여겨진다. 주어진 열악한 상황과 젊은 나이를 감안할 때 저자의 대단한 집중력과 순발력, 그리고 분석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1. 총론>에서 <6. 마음속에 독립을 굳게 해야>까지는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대한의 백성으로서 갖추어야 하는 정신 자세를 일깨워주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소신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격려한다. ()를 행해야 할 때 뒤를 돌아보는 것은 벌써 나의 죽을 마음이 굳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진실로 이렇게 죽는 것을 영광으로만 안다면, 남들이 모르는 중에 나 혼자 알고 의를 위하여 죽는 것이 더욱 영광된 일인데, 남이 나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이 나에게 방해가 될 것이 무엇이며, 만약 남이 나와 같이 죽을 자 없어서 일이 성사되지 못할까봐 염려한다면, 마땅히 내가 남이 죽는데 같이 죽지 못하는 것을 먼저 염려해야 할 것이다.”(39)

 

다음, <7. 각국과 서로 통하는 문제>부터 <25. 자유 권리의 방한>까지는 당시 서구 여러 나라에서 이룩한 엄청난 과학적 발전과 경제적 진보 등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세계가 어떻게 구현되었으며 그 원동력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려고 했다. 특히 미국의 독립과 남북전쟁,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입헌군주제(저자가 말하는 헌법정치) 등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소개 및 평가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식견을 이해하기에 충분하다. 특히 지구의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 그리고 당시로서는 최신 물리학 지식도 갖추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서구의 과학과 학문에 대한 열정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6. 대한의 독립 내력>부터 마지막 <51. 일본 백성의 의도>까지는 서구 열강의 통상 요구에서부터 청일전쟁과 노일전쟁 등 구한말 대한민국의 명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여러 사건들에 대한 저자의 견해가 정리되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노일전쟁 전후 대한의 상황, 그리고 당시 일본과 러시아의 상황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다. 최악의 열악한 상황에서 자료도 턱없이 부족했을 텐 데 이 정도의 글을 썼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입장을 바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놀라운 역량과 집념의 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자주와 독립의 당위성

청년 이승만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무엇보다도 백성들이 자주와 독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자주란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태도를 말하며, 독립은 어떤 경우에도 남에게 의존하거나 부적절하게 신세를 지지 않고 독자적으로 난관을 해쳐나가는 자세다. 청년 이승만이 보기에 당시 사대부로 고위 관직에 있는 자들은 한 결 같이 자주와 독립보다는 조정의 권세가나 외국의 유력자에 의탁해 개인의 입신양명을 도모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이런 세태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질타한다. 이러면서 이들이 겉으로 하는 일은 체통과 예절 지키기, 등록(謄錄) 찾기, 사직상소 하기, 모든 글의 문구 차례 하기 등인데, 이런 일을 하느라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백성은 사경에서 울부짖고 있는 중에도 이들의 놀이와 잔치는 날로 심해가며, 나라의 위망이 시각에 달려 있으나, 종로 삼거리로 풍악을 울리며 돌아다닐 때 좌우로 벽제(辟除) 소리는 전 보다 더 요란하다.”(44) 한 마디로 당시의 파워엘리트들은 오직 개인적인 부귀영화에만 집착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원인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당시 세계적 조류에 무지했기에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을 지키는 데 있는 힘을 다 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구 열강과 일본의 통상 요구 및 이권 쟁탈전 앞에서 무방비 상태의 조선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은 신세였다. 청년 이승만은 이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 감옥에 있으면서도 대안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대단한 결기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독립은 군대를 조련하고 무기를 갖추어 무력을 바탕으로 외세에 대항하자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오직 백성이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무지에서 깨어나 현재 자신과 나라가 처해 있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함으로써 자주와 독립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젊은 시절부터 서구 열강들의 각축전에서 대한민국이 영구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이들 못지않게 학문적으로 발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식이 부족해 그들을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면 일시적으로는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겠지만 결국 그들의 속국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본 것 같다. 큰 틀에서 보자면 이는 정확한 판단이라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경제 규모 면에서는 세계 12위 안팎의 강국으로 성장했는데, 이는 모든 면에서 지식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첨단 지식의 거대한 흐름에서 소외된다면 다시 중진국, 나아가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가 그렇게 멀리 내다봤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진정한 독립을 위한 최우선 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런 지식과 함께 독립하고자 하는 강한 정신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지금 우리나라에 독립이 있다, 없다 하는 것은 외국이 침범해 오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도 아니고, 정부에서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인민의 마음속에 독립이란 두 글자가 없는 것이 참으로 걱정이기 때문이다.”(65) 개개인이 자주와 자유를 추구할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사는 집, 즉 국가(國家)가 독립하지 않으면 안 되며, 이는 각자가 맡은 바 직분을 다하는 가운데 독립정신을 마음 깊이 새겨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지당한 말인가. 문제는 실천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이 책을 써서 널리 읽히기를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평가

그런데 이 책 전체를 통해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청년 이승만의 일본에 대한 인식이다. 여기서 청년 이승만을 강조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리고 일제의 지배가 지속되면서 이승만의 일본관에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서술한 내용만으로는 청년 이승만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정확하게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단정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그가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해 당시 비교적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게 만드는 표현이 눈에 띤다. 이에 앞서 외국의 통상 요구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저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에는 조금도 누구를 해롭게 하거나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와 통상하고 교섭하여 피차 이롭게 하고자 오는 것이니, 이는 결코 막을 수도 없고 막을 이유도 없다.”(73) 이것은 매우 순진한 견해라 볼 수 있는데, 당시 서구 사정에 비교적 정통했던 저자가 이런 생각을 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 선교사들의 우호적인 태도에 익숙한 나머지 그리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닌지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저자가 이런 맥락에서 조선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1876년 일본과 제물포조약을 체결해 개항하기 전 일본 내부에서는 조선을 침공하자는 강경파와 아직은 시기상조이니 훗날을 도모하자는 온건파가 대립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온건파가 승리해 조선과 통상조약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강경파는 사이고(西鄕)를 주축으로 이에 수긍하지 않고 내전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일본 정부에서 사이고(西鄕, 반란의 수괴)의 주장을 따르지 아니 한 것은 과연 장원한 계책으로 밝게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두운 이웃나라를 극력 깨우쳐서 힘을 합쳐 보존하고자 한 것은 우리나라 신민들이 일본에 대하여 깊이 감사해야 할 것이다.”(247) 일본이 조선에 침공하지 않은 것은 우리를 배려해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내부 사정과 이익을 위해서인데 왜 우리가 감사를 해야 하는지 저자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저자가 주장하는 자주와 독립정신에도 위배된다.

 

나아가 청년 이승만은 일본이 청일전쟁을 승리함으로써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의 지위에서 벗어나 독립국임을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면서 그 공을 일본에 돌리는 것 같은 발언을 했다. 필자가 오해하지 않았다면 이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이다. 설사 일본적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 대한의 독립국임을 천명했다 하더라도 일본의 간계를 간파했어야 한다. 이는 단지 사후에 비판적으로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일본이 우리에게 한 각종 만행을 보면 결코 그들의 행보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년 이승만은 다음과 같이 우호적으로 일본을 평가한다. 만일 이 통상조약이 아니었으면 서양 각국이 결단코 그저 있었을 리가 만무할 것이니, 그 중에서 강포한 나라가 먼저 기회를 타서 손을 댔더라면 대한의 형편이 어떻게 되었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다행히 일본과 먼저 통상조약을 맺어 공고하고 완전한 독립을 실제로 공표하였으니 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251) 이것은 필자가 청년 이승만의 뜻을 왜곡하기 위해 거두절미하고 일부만 인용한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의 전후맥락으로 보아 그는 당시 일본에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청국을 물리친 점, 그리고 일찍이 명치유신에 성공해 서구열강과 같은 반열에서 나날이 발전하는 모습이 부러웠기에 일종의 롤 모델로 여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속내를 드러낸다. “이처럼 전후로 사십 년 동안 전국이 변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세상 사람들은 이르기를, 일본은 다만 그 나라 이름 두 글자 외에는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는데, 이렇듯 속히 변혁한 것은 세계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우리나라의 신민된 자들은 저들의 변화한 모습을 보고 부러운 마음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227)

 

그밖에도 저자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 많이 있다. 필자는 여기서 이승만 박사가 원래부터 친일 성향이었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일본에 대한 이승만 박사의 태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 박사의 역작 Japan Inside Out(일본의 가면을 벗긴다)를 통해 이런 변화를 살펴 볼 수 있다. 이 박사는 일본이 194112월 진주만을 기습하기 전인 6월 이 책을 미국에서 영어로 출판했다. 당시 66세인 이 박사의 대일본관을 알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일본은 군국주의의 망령에 빠져 세계를 지배자가 될 운명이라는 맹신을 갖고 아시아 여러 나라, 그리고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1910년 대한민국 합방은 이런 담대하고 거대한 계획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내에는 일본의 집요하고도 조직적인 홍보로 인해 평화주의자들이 득세하는 형편이라는 것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런 내용으로 미루어 노년의 이승만 박사는 일본의 감추어진 내면을 제대로 파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일본관을 수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완전히 떨쳐버리기 어렵다. 예를 들면 1848년 정부 수립 후 <반민족특별위원회>를 무력으로 해산한 것은 이 박사의 오점(汚點) 중 하나로 남아있는데, 이 사건이 이 박사의 일본관과 연관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완전한 인간은 없다는 경구를 떠올리기 된다. 이는 누구나 실수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부족하므로 자신을 돌아보고 실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박사가 <반민족특별위원회>가 대한의 모든 백성이 자주와 독립의 정신으로 무장하는 데 중요한 동기를 제공한다고 생각했으면 과연 그리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도 필요한 독립정신

이미 강조했듯이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일반 백성 모두가 자주와 독립정신으로 무장해야만 나라집(국가)가 반석위에 선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24. 백성의 마음(정신(精神)이 먼저 자유해야 한다>에 담겨 있다. 청년 이승만은 당시 우리나라 사람 모두 과거의 풍속과 문화에 결박당해 있다고 진단했다. 칼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당시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은 병적인 상태에 고착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음으로써 자유와 자주의 주체로서 개인의 존엄을 물론 나아가 나라의 독립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치명적인 병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복해야 할 문제점 8가지를 지적했는데 다음과 같다. 살펴보면 공감하겠지만 지금 우리에게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

1) 반상(班常)의 등분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다.

2) 생각을 제 뜻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3) 사람들이 벼슬(관직)에 복종하는 노예의 사상을 면치 못한 것이다.

4) 사람의 마음이 세력에 의지하기 좋아하는 것이다.

5) 사람들이 사사로운 생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6) 사람의 생각이 구습(舊習)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7) 사람의 마음이 거짓말하는 악습(惡習)에 물든 것이다.

8) 사람에게 만물을 다스릴 권리가 있음을 알지 못하는 폐단이다.

 

이어서 저자는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밝힌다. 이상의 여덟 가지는 다 사람의 마음이 결박하여 하늘이 부여해준 자주 권리를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폐단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들이다. 이것을 깨뜨려 부수지 못하고는 백성 된 권리를 얻어 발달 진보하는 데로 나아갈 수 없으니, 사람마다 자기부터 먼저 이런 습관을 깨치고 어서 남을 깨우쳐 주는 것을 자신의 직책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알고자 한다면 새 학문이 아니고는 될 수 없는 것이다.”(204)

 

저자가 말한 8가지 가운데 첫째와 마지막은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는 데 무리가 있다. 지금은 양반사회가 아니므로 신분제와 관련된 정신적 장애요인은 대부분 사라졌다. 그렇지만 최근 부와 소득의 극심한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새로운 세습제에 대한 우려가 싹트고 있기에 이것도 완전히 무관하지는 않은 실정이다. 마지막 만물을 다스릴 권리에 관한 것은 저자가 기독교인이기에 그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다종교사회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렇지만 살펴보면 나머지 6개의 문제점은 지금도 그대로 우리 주변에 편재해 있는 것들이다. 무엇보다도 파당(지금은 팬덤)을 지어 획일적으로 사고하면서 자신들과 달리 사고하는 사람들과는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요 결국 개인의 자유와 자주를 위협하는 것이다. 사회의 기초가 무너진다면 궁극적으로는 독립국의 지위도 위태로울 수 있다. 물론 이것은 과거처럼 속국이나 식민지로 전락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영향력이 커진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승만 박사의 철학이나 정치 인생 그리고 삶 전반에 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이 글을 쓴 것이 아니다. 단지 청년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라는 책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탁월한 지적 능력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념을 가졌기에 한 시대의 주역이 될 만한 충분한 자질을 갖춘 인물임은 우리 모두 인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출중한 지적 능력과 용기, 그리고 강인한 정신을 바탕으로 통합된 인격을 가진 것으로 여겨졌던 인물이 정치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어떤 기준에서 보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실수 내지 악행을 저지른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나이를 먹으면서 총기가 흐려졌다는 말로서 변명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지식과 권모술수의 측면에서는 출중했으나 통합적인 인격이 결여되었기에 발생한 모순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이는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되는 물음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크던 작던 공익을 위해 봉사하려는 사람들은 이승만 박사의 행적을 연구하고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해야 언행이 일치하도록 처신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보여준 청년 이승만은 높고 순수한 이상, 해박한 지식, 그리고 조국 독립에 대한 불굴의 열정으로 가득 찬 대단한 인물이다. 이런 인물도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하물며 요즈음 지적으로나 결기 면에서 이 박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한 사람들이 권력을 탐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고 막막할 뿐이다. 모쪼록 이들이 청년 이승만이 독립정신을 통해 대오각성하는 계기를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이 책은 그 소명을 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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