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닐 슈빈의 『DNA에서 우주를 만나다(The Universe Within)』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7-15 17:14
조회
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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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닐 슈빈(Neil Shubin)

역자: 이한음

출판사: 위즈덤하우스(2015)

 

목차 

1장 인류의 몸에 새겨진 우주의 기원

2장 우리는 별의 먼지에서 탄생했다

3장 행운의 별, 지구 이야기

4장 우리 몸속에 담긴 우주의 시간

5장 미생물에서 인간까지, 진화의 역사

6장 지각 변동과 생명의 기원

7장 ‘언덕 위의 왕’을 차지하는 생존의 규칙

8장 뼛조각에서 출발한 지구 탐험기

9장 기후 변화가 남긴 유물

10장 천문학, 생물학과 조우하다

 

 

<북 리뷰: 우주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생명의 본질> 

★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저자 닐 슈빈은 고생물학자로서 시카고대학교 생명과학 및 해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생물학이란 화석을 바탕으로 생물체의 발생과 진화 과정, 그리고 고대 생물들이 생존했던 환경을 연구하는 분야다.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고생물학자는 작고한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 Gould)이다. 그의 책 『다윈 이후』(2009)와 『풀 하우스』(2002)를 흥미 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닐 슈빈이 쓴 『내안의 물고기』(2009)를 읽으면서 저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굴드 이후 가장 대중적인 고생물학자로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는 그 책에서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틱타알릭(Tiktaalik)"이라 명명한 화석을 발견하게 된 사건을 중심으로 진화에 대해 설명했다. 매우 잘 쓴 책이라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탁타알릭은 어류에서 포유류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빠진 고리에 해당하는 중요한 화석으로 인정받았다. 왜냐하면 지느러미가 팔로 바뀌는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화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발견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필자가 특히 그 책을 읽으면서 감동했던 점은 저자와 같은 고생물학자들의 학문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었다. 저자를 비롯해 동료들은 새로운 화석을 발견하기 위해 그린란드를 비롯해 알라스카 등 북극권에 있는 춥고 척박한 곳을 찾아가 몇 달이고 추위와 외로움 등을 견디면서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화석 한 조각이라도 발견하고자 최선을 다한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말한 순수한 호기심(pure curiosity)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저자의 첫 저서인 그 책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러다가 일 년 전 저자의 최신작인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과거의 좋은 기억으로 인해 단숨에 읽었다. 당시에는 이 책을 정리해 소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필자는 전부터 인간의 문제나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작고하신 우리나라 원로 사회학자이신 이만갑 교수님도 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최근 그분의 저서(“의식에 대한 사회학자의 도전”)를 통해 알게 되어 반가웠다. 같은 생각을 한 동료가 있다는 것은 적어도 자신이 엉뚱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갖게 해준다. 

 

이런 이유로 필자는 앞으로 능력이 허용하는 한 생물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학자들이 쓴 저서를 몇 권 더 소개하려 한다. 좀 더 부연하자면 인간의 정신과 관련된 공부(예컨대 심리학, 종교, 영성 및 의식 문제 등)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그와는 대극(對極)에 있는 인간의 물질 조건에 대해 공부할 필요가 있으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이것이 대극의 조화 내지 합일을 위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자면 영어 제목("The Universe Within")에 나타나 있듯이 “인간과 우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불교의 화엄(華嚴)사상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은 다소 독자를 오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이 책에서도 DNA에 관해 언급하고 있지만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의 일부를 차지할 뿐이다. 더 넓은 의미에서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물과 현재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이 우주적 사건이며 우주 또한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인다. 저자는 더 나아가 무생물인 암석이나 빗물 등도 현재의 인간 존재와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마지막 장의 제목처럼 생물학의 관점에서 풀어쓴 우주론을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은 이 책에서 저자는 특별히 여러 분야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사람들에 관해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과학자이자 사상가였던 스웨덴의 이마누엘 스베덴보리를 비롯해 고생물학자 에셀 클라우드 주니어, 지질학자 헤리 헤스와 마리 타프, 동물학자 조르쥬 퀴비에,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 등을 소개하면서 이들의 주장은 처음에는 모두 무시당하고 조롱받았지만 결국 옳은 것으로 입증되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른바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온 사람들의 얘기다. 선구자들은 보편적으로 사회적 냉대와 조롱을 받았는데, 과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생물학과 진화론을 바탕으로 하면서 천문학, 지질학, 해양학, 기상학 등 여러 분야에서 제시된 이론들을 함께 엮어서 소개하고 있기에 다루는 범위가 비교적 광범위하다. 그렇지만 저자는 일반 독자들의 관심을 유발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지식이 없어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빅뱅으로부터 시작해 현재 지구의 환경까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여건 모두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데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저자의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와 해박한 지식을 통해 우리는 과학이 주는 깨달음을 조금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과학적 접근으로 손색이 없다고 본다. 

 

 

★ 별에서 온 그대

이것은 작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의 제목이다. 필자는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아 내용은 모르지만 우리 모두 별에서 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별의 잔해인 먼지로부터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즉 초신성(supernova)과 같은 별들이 폭발하면서,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 산소와 탄소 같은 무거운 원소들이 우주공간으로 분산되는데 이런 우주의 먼지들이 모여 행성을 만들고 여기서 탄소 기반의 생명체가 출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초신성은 폭발하면서 죽은 별의 원자들을 은하 전체로 퍼뜨린다. 초신성은 한 행성계의 원자들을 다른 행성계로 내보내는 엔진이 된다. 우리 몸의 가장 작은 부분도 우주 자체만큼 거대한 역사를 지닌다.”(55쪽) 이것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다.

 

여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137억 년 전 무한히 큰 밀도와 높은 온도를 갖는 특이점(singularity)이 폭발한 이래 시공간이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수소와 헬륨을 비롯한 가벼운 원소들이 만들어진 과정으로 소급하게 된다. 즉 우리는 별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과거와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주에서 가장 흔한 원소는 수소이며, 인간의 몸에서도 가장 많은 것(무게가 아니라 수량 면에서)은 수소 원소라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우리는 시간적으로도 우주의 시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60kg의 사람 기준으로 몸을 구성하는 주요 원소의 비율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성분

무게(kg)

원자 백분율(%)

산소

38.8

25.5

탄소

10.9

9.5

수소

6.0

63

질소

1.9

1.4

칼슘

1.2

0.2

0.6

0.2

칼륨

0.2

0.07

 

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자의 숫자로 평가하면 우리 몸의 63퍼센트는 수소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인 몸의 50퍼센트 이상이 물이라는 사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체는 주로 수소로 이루어져 있다. 한 예로 코발트 원자 하나당 수소는 거의 4억 개가 들어있다........하지만 우주 전체에서 두 번째로 풍부한 원자인 헬륨은 없다. 인체에서 빠진 이 원소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헬륨은 내부 구조상 다른 원자와 전자를 교환할 여지가 전혀 없다. 이런 교환을 할 수 없기에, 헬륨은 생명을 정의하는 물질대사, 번식, 성장과 같은 화학반응에 참여할 수 없다........반응성은 몸에 있는 흔한 원자들이 사용하는 공통 화폐다. 홀로 행동하는 원자는 이 화폐를 이용하는 교환 활동에 낄 수 없다.”(33쪽) 우리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조차 홀로 지내지 못하고 서로 반응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하기 위해 지구에 등장한 생명체라는 것을 원자 레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특별히 원자들 간의 상호작용의 원천으로 전자(電子)의 역할을 강조한다. 필자도 전자의 특별한 역할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저자가 전자를 강조한 다음 대목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사과를 먹을 때, 사과에서 나온 전자는 당신의 세포 속을 돌아다니면서 물질대사를 추진해 당신의 몸에 힘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 사과에 들어 있던 전자는 땅에 있는 광물질과 하늘에서 떨어진 빗물로부터 나온 것이다. 양쪽의 전자들은 영겁에 걸친 세월 동안 우리 세계를 돌고 또 돌았다. 그리고 이 모든 전자들은 지구, 태양계, 심지어 별이 형성되기 오래전에 출현했다.”(49쪽) 이 얼마나 과학적이면서도 낭만적인 표현인가? 우리는 태초에 생긴 전자를 교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다. 

 

★ 태양계와 지구의 생명체: 목성의 역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여러 물리 상수(중력의 세기, 강한 핵력의 크기, 전자의 전하량 등)들이 미세 조정(fine-tuning)되어있기에 지구라는 행성에 인간을 포함해 생명체가 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는 여러 물리 상수들이 우연히 생명 친화적으로 미세 조정되어 이로부터 생명이 출현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생명이 화학적 유기물의 원시스프에서 무작위적으로 출현하기에는 우주의 역사(137억 년)가 너무 짧다는 것이다. 즉 생명의 출현을 우연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든(기독교의 신이든 다른 종교의 신이든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신이든) 설계자(designer)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반면 주류 과학자들—예컨대 스티븐 호킹을 비롯한 대부분의 물리학자들—은 중력법칙과 자기조직화 원리를 포함한 자연법칙만으로도 우주의 탄생 및 진화 그리고 생명체의 출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로서는 주류 과학자들이 우세해 보이지만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진정 과학적인 태도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기원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이것은 종(種)의 기원을 설명하는 진화론과는 별개의 문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혼동하면 여러 가지 불필요한 논쟁이 벌어지게 된다. 

 

저자는 여기까지 논의를 확대시키지는 않지만 상당히 광범위한 차원에서 인간과 지구 환경을 연관시키고 있다. 예컨대 저자는 물에 관해서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물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등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생명과 관련된 대부분의 화학 반응에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물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의 역사는 물을 통해 형성돼왔고, 인간은 물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고, 인간의 미래도 물과 맺는 관계에 따라 규정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물과 공모한 다양한 사건들이 인간의 존재 자체와 몸의 기본구조를 규정해왔다.”(74쪽) 

 

그런데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이같이 중요한 물이 형성되는 데 목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목성은 태양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행성으로서 목성은 지구보다 먼저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목성의 역할에 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액체 상태의 물과 생명을 유지하는 데 알맞은 조건을 가진 우리 행성의 질량과 태양으로부터의 거리는 목성의 영향을 적잖이 받은 결과다. 지구에 물이 존재하는 것부터 우리 몸의 크기와 형태와 작동 양상에 이르기까지, 우리 존재의 모든 부분은 목성에 의존하고 있다.”(83쪽) 

 

지구는 태양계에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골디락스 지대(Goldilocks Zone)“에 위치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지구에서 태어난 것은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지구는 단순히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거리(수성처럼 가깝지도, 화성처럼 멀지도 않은 거리)에 있기에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목성이라는 다른 행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구에 물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현재와 같은 몸의 크기를 갖게 되었다니 절묘한 조화요, 그야말로 빈틈없는 연결망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의 과학적 해석이라 할 만하다. 이와 같이 얼핏 봐서는 인류의 출현과 전혀 무관할 것 같은 목성의 존재조차 인간의 탄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은 곧 우주 만물이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목성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 지각 변동과 탄소의 순환 그리고 생명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출현 초기부터 지구의 환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특히 지구상의 종들이 수차례에 걸쳐 대멸종을 당했던 사건들은 이런 연관을 보여주는 극단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반면 지구상에 살아남았던 종들의 경우에도 이런 연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으면서 우리에게 많은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생명은 처음에는 단세포생물로 출발했으나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복잡한 생명체로 진화해왔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6,500만 년 전 소행성의 충돌로 당시 지구를 지배하던 공룡이 멸종함으로써 포유류가 번영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런 얘기들은 잘 알려진 것이지만 이런 과정에서 산소 농도의 변화와 탄소 순환의 역할에 대한 저자의 논의는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저자는 지구상에 큰 생명체의 등장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구 역사의 처음 25억 년 동안은 큰 생물은 아예 없었다. 그러다가 약 10억 년 전 고대 바다에서 몸이 있는 생물들이 하나가 아니라 몇 종류가 출현했다. 그중에는 식물의 몸, 균류의 몸, 동물의 몸도 있었다........큰 생물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생물학적 메커니즘들은 큰 생물이 실제로 등장하기 수십 억 년 전부터 지구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큰 생물들을 만들 잠재력의 수문을 열러 구체적으로 실현시킨 것은 무엇일까? 여기서 다시금 철광석이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한다.”(141쪽) 저자의 표현이 재미있다. 철광석이 깨달음의 기회를 제공한다니. 큰 생물이 출현하는 데 철광석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저자는 고생물학자 프레스턴 에셀 클라우드 주니어(1912~1991)의 연구를 인용하면서 암석에 난 철(鐵)의 띠, 산소를 내뿜는 조류(藻類), 큰 생물의 출현을 한데 엮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지구에 산소 농도가 증가하는 데 철도 일정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산소의 농도가 올라감으로써 비로소 큰 생물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간과 같이 비교적 큰 동물은 출현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철에게도 신세를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지구와 생명체 간의 상호작용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생물과 행성 사이의 상호작용은 대기의 산소 농도를 증가시켰다. 그러자 산소는 많은 세포로 이루어진 큰 생물이 출현하도록 함으로써 세계를 바꿨다. 생명은 지구를 바꾸고, 지구는 생명을 바꾸며, 오늘날 지구 위를 걷고 있는 우리들의 몸속에는 그 상호작용의 결과가 들어 있다.”(148쪽) 이것은 요즘과 같이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인 시대에 적절한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는 지구 전체를 망라하는 생물권 의식(biosphere consciousness)이 필요한 것이다. 

 

산소와 관련해서 또 하나 언급할 것은 대륙 이동과 해저 활동의 역할이다. 저자는 대륙 이동에 따라 지구상에 산소 농도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한 예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글로마챌린지 호가 뚫은 코어 안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했다. 2억 년 전 대서양(大西洋)이 열리기 이전의 세계와 열린 뒤의 세계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대서양이 생긴 뒤로 급증했다. 약 4,000만 년 전이 되자, 대기는 가만히 있어도 숨이 차는 곳에서 오늘날 우리가 뛰어 다닐 수 있는 수준으로 대기가 변했다.”(177쪽) 글로마챌린지 호는 미국 국적의 해저 시추선 이름이고 코어는 해저 시추를 통해 얻은 원통 모양의 암석과 퇴적물을 말한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각 변동으로 대서양이 생긴 사건이 궁극적으로 산소 농도를 높여 인간과 같은 생명체가 등장하는 데 기여했다니 놀랍다. 실로 우주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그리고 저자의 해설을 듣고 보면 오늘날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기후 변화는 인간이 지구 스스로 탄소를 순환시키던 메커니즘을 교란시킨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탄소는 생명에 없어서는 안 될 원소다. 우리는 모두 탄소 기반의 생명체다. 이와 관련해 저자의 다음 표현은 음미할 만하다: “인간은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의 일시적인 보유자다. 이 구성 물질 중에서 탄소만큼 생명과 지구의 균형에 중요한 원소는 없다. 지구의 구성 부분들 사이의 연결은 탄소가 공기, 암석, 물, 몸 사이를 어떻게 이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연결 사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생물, 암석, 바다를 독립된 실체가 아니라 지구가 진화할 때 함께 나아가는 탄소의 정거장이라고 생각해야 한다.”(219쪽)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원래 지구에는 탄소의 자연스러운 재순환 메커니즘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희소식은 탄소의 재순환 메커니즘이 있다는 것이다. 지구 내부의 탄소는 화산이 가스를 뿜어낼 때 다시 대기로 주입된다. 화산은 우리가 들이마시는 탄소 중 상당 부분의 원천이다. 산성비와 암석 풍화가 대기에서 탄소를 제거하는 반면, 가스를 뿜어내는 화산은 탄소를 대기로 되돌려 보낸다. 화산은 대개 엄청난 양의 수증기, 이산화탄소, 기타 기체를 쏟아낸다. 해마다 화산이 1억 2,0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대기로 뿜어낸다는 추정값도 있다.”(220쪽) 이런 재순환에는 티베트 고원의 암석을 비롯해 빗물과 화산 활동 등 다양한 사건들이 관여하면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해왔던 것이다. 인간이 이 재순환 메커니즘을 고장 낸 것이다. 

 

★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자는 고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임에 틀림없지만 리처드 도킨스나 에드워드 윌슨의 글을 읽을 때 같이 뭔가 지나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과학의 정신은 중요하며 과학적 사고, 즉 합리적 사고가 우리 삶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전적으로 찬동한다. 그렇지만 오직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이성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뭔가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신비에 대한 외경심이라고 표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생물학과 우주론, 지질학, 기상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결시켜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좁게는 지구, 좀 더 확대해서는 태양계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주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진지하게 그리고 흥미롭게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사이사이에서 생명에 대한 저자의 따뜻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이런 저자의 감정을 잘 드러낸 표현이다: “모든 조직, 세포, 유전자는 지구와 생물 사이에 이루어진 상호관계의 산물이다. 조류(藻類)와 이동하는 대륙이 없었다면, 다리든 다른 어떤 신체 기관이든 그것들을 만든 세포 기구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변화는 수십 억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기나긴 동물 선조들의 계통뿐 아니라, 태초부터 인간, 그리고 인간의 역사와 얽혀왔던 지구적·우주적 사건들도 우리의 조상들이다. 미국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종교적 경험이 ‘우주에 고향이 있다는 느낌’에서 나온다는 말을 종종 했다. 몸이 천체의 탄생에서 유래한 입자들로 이루어지고 행성의 활동, 암석의 침식, 바다의 작용이 빗어낸 기관들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디에서나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277쪽) 

 

우리의 존재 자체가 우주 전체에 신세를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개인적인 탐욕이나 오만 내지 독선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과학의 관점에서 우리의 생물학적 기원을 깊이 생각해 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 이성이 있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들(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체)에 대해 조금 더 공감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라는 의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니 합일의식을 지향해야 한다”고 어설프게 믿는 것보다는 이런 이성적인 사고 과정을 거쳐 얻은 통찰이 더욱 강력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이 책 말미에 남긴 “인간의 몸과 마음과 생각이 지구의 지각, 바다의 물, 천체의 원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개념은 거의 마법처럼 들린다”라는 메시지는 우리에게 변화하라는 계시처럼 들린다.

 

<참조 사항> 

여기 첨부한 것은 저자 닐 슈빈이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만든 약 20짜리 동영상이다. 우선 저자의 인상이 무척 좋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이 다루고 있는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재미 있는 강연을 하고 있다. 관심 있는 분들에게 시청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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