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켄 윌버의 『무경계(No Boundary)』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5-23 23:21
조회
1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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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켄 윌버(Ken Wilber) 

역자: 김철수

출판사: 정신세계사(2012)

 

 

목차

1 서론: 나는 누구인가?

2 그것의 절반

3 무경계 영토

4 무경계 자각

5 무경계 순간

6 경계의 생성과 전개과정

7 페로소나 수준: 발견의 출발점

8 켄타우로스 수준

9 초월적인 나

10 궁극의 의식 상태

 

 

<북 리뷰: 의식 수준의 다섯 대역(帶域)에 대한 통합적 접근>

★ 저자 소개 및 책의 개요

저자 켄 윌버는 미국 네브라스카 대학을 중퇴한 후 독학을 통해 약관 24세인 1973년에 『의식의 스펙트럼(The Spectrum of Consciousness)』이라는 놀라운 책을 완성했다. 그렇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4년 뒤인 1977년에 출간된 후 이 책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저서를 통해 당시 막 태동했던 초개아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동서양의 사상과 여러 분야의 이론을 섭렵해 통합이론(Integral Theory)을 구축함으로써 윌버는 이 분야의 대가로서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몇 년 전 우연한 기회에 이 책을 읽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기에 특별히 내용을 정리할 생각을 갖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저자의 명성을 알게 된 후 다시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검토하는 기회를 가졌다. 필자는 여기서 윌버의 사상에 대해 상세히 논할 자격도 의도도 없다. 우리나라에도 윌버의 사상을 연구하는 모임이 있으며 그의 사상에 대해 깊이 연구한 학자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윌버의 사상에 대한 소개는 그 분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인간의 “의식 문제”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일 뿐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켄 윌버에게는 우리가 관심을 가질만 한 비범한 무엇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무경계』를 읽은 후 느낀 점이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처녀작이자 출세작인 『의식의 스펙트럼』을 대중적으로 쉽게 풀어 쓴 것이다. 아직 『의식의 스펙트럼』을 읽지 않아 이 책에 비해 얼마나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이 책으로도 저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어렵다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 오히려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 저자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해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이 책은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초개아심리학자이자 통합이론의 대가로 알려진 저자가 의식 수준을 5단계의 대역(帶域)으로 구분한 후, 점진적으로 높은 의식 수준을 달성하는 실천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었다. 저자 자신이 이론적인 연구와 명상 수행을 병행해서 얻는 통찰이어서 그런지 저자의 주장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느꼈다. 과거 프로이트나 융의 시대 이후 한 동안 인간의 의식 세계와 관련해서는 크게 의식 대 무의식이라는 이분법적 논리가 적용되었다. 그런데 윌버는 이것을 5단계로 세분한 후, 각 단계에서 의식 확장을 방해하는 장애요인이 무엇이며,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단지 의식을 세분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실천적인 관점에서 의식 스펙트럼상의 하강, 즉 의식의 확장을 통해 에고에 기반을 둔 자의식 상태를 초월한 그 무엇을 지향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후 저자는 자신의 초기의 이론 중 상당 부분을 보완해 새로운 통합이론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대해 논평할 입장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저자의 최근 저서인 『통합비전』(2014)과 『모든 것의 이론』(2015)을 일별한 바에 의하면, 저자가 인간 의식에 관한 모델을 지나치게 현학적으로 발전시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힌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개인적으로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 대해 소개한 책을 이해하려 했다고 포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 세계를 그토록 복잡하게 분석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회의가 들었었는데, 저자의 최근 저서를 보다가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와 같이 인간의 의식 세계를 접근하는 것이 훨씬 더 이해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정체성 확장의 문제 :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통합적 접근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저자가 주장하듯이 의식 수준을 5단계로 구분하는 것이 의식 수준의 상승 내지 의식 확장의 문제에 접근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가 하는 점이었다. 예컨대 데이비드 호킨스(David Hawkins)는 『의식혁명』(2011)에서 행동신체운동학(Behavioral Kinesiology)의 원리를 응용해 인간의 의식 수준을 17단계로 구분했는데 이것과 저자의 의식 스펙트럼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견해의 차이는 결국 인간 의식 문제를 다루는 데는 객관적인 관점에서는 명백하게 한계가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인간의 의식 수준을 다룬 저서들은 모두 저자들의 주관적인 경험과 이론적 배경의 차이로 인해 비교 가능할 뿐만 아니라 통합 가능한 이론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물론 저자나 호킨스 모두 인간의 의식 수준이 페르소나 또는 자의식이라는 개인적인 차원을 뛰어 넘어 궁극적으로는 우주 전체와 하나가 되는 합일의식 또는 전체의식에 도달하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각 수준의 특징에 대한 해석, 그리고 의식 수준을 단계적으로 상승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라는 면에서는 기술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상당 부분 공감하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은 “의식의 본질”에 대한 과학적 논의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의식에 관한 신경과학적·생물학적·양자역학적 논의가 저자의 의식 스펙트럼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을 다루지 않는 가운데 의식 수준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저자가 극복하고자 하는 경계(boundary)를 설정하는 모순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궁극적인 실재(ultimate reality)에 대한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는 모든 논의가 허용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무경계의 진면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을 비롯해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들 저자들은 인간은 에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성(神性)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 즉 자신의 존재보다 훨씬 큰 무엇과 합일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가능한 현상이라고 어떻게 단정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올더스 헉슬리가 말했듯이 동서양의 현자들이 모두 유사한 신비체험을 했고 이에 근거해 동일한 주장을 했다는 사실만으로 합일의식에 도달한다는 것이 보편적으로 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들 모두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의 궁극적인 한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유사하게 보인다고 볼 수는 없는가?

 

필자가 이 점을 거론하는 이유는 의식 문제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의식이 온전히 뇌의 창발적인 산물인가 아니면 뇌는 단지 필터에 불과하고 뇌 밖의 어떤 원천과 공명(共鳴)하는 과정을 통해 발생하는 현상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고 본다. 달리 말하자면 의식은 진화 과정에서 우연히 생겨난 부산물인가, 아니면 의식이 선행된 후 물질이 생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문제는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며 조만간 해결될 것이라는 전망은 없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강조하는 이유는 이에 대한 논의를 전제하지 않는다면 의식 수준을 다루는 것이 자칫 공허한 논의에 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객관적인 기준에 의하더라도 인간의 의식은 오로지 뇌의 창발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고 하자. 그렇다면 인간의 의식 수준에 관한 모든 논의는 창졸간에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와 관련된 모든 논의가 진화론으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다양한 의식 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진화 과정에서 적응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한 대로 자신의 경계를 긋는 행위도 진화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예상할 수 있는 현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의식 수준을 높인다는 것 자체가 자연선택의 부산물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인간 밖에 존재하는 에고보다 큰 존재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이 진화론의 테두리 안에서 설명될 것이다.

 

반면 인간의 의식의 원천이 뇌가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에는 자신의 에고를 초월한 그 어떤 실재, 즉 궁극적 실재의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이 궁극적 실재가 바로 합일의식이고 전체의식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인의 의식, 즉 자의식은 이 전체의식으로부터 분화된 일부지만 깊은 차원에서는 여전히 전체와 연결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에고의 벽이 이런 연결을 의식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있는 것이기에 의식 수준의 상승을 통해 이런 벽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무경계의 영토로 들어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자를 비롯해 의식 수준을 다루는 사람들의 의식의 본질에 대한 이런 논의를 생략하고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이 가장 큰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탁월한 글 솜씨와 해박한 지식에 경탄했다. 특히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는 대극(opposite)으`로 인해 경계가 발생하며 이 가운데 근원적인 경계는 바로 “나/나 아님”의 경계라는 점을 논의의 출발로 삼는 가운데 논의를 전개한 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즉 저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논리적 틀을 사용해 논의를 시작함으로써 경계란 사실상 우리가 만들어내는 허상임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어디에도 영적인 각성을 강요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고 스스로 발견해 가도록 도움을 주려한 듯하다. 이 점에서 저자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조 사항>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저자 켄 윌버의 사상에 대해 논평할 위치에 있지 않다. 따라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정리해 관심 있는 분들이 저자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첨부파일에서는 대체로 저자가 주장한 바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으며 거기에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첨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