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관련

《벌거숭이 임금님》의 진실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7-01-20 02:51
조회
315

덴마크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쓴 많은 동화 가운데 널리 알려진 것으로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짧은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의 원제는 The Emperor's New Clothes(황제의 새 옷)인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우리에게는 그리 소개되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황제의 새 옷에 대한 집착과 이로부터 비롯된 황당한 사건이다. 이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나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요즈음 현직 대통령이 연루된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전 국민이 느끼는 경악과 허탈 그리고 분노의 감정을 극복하고 다시는 이런 시대착오적인 황당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를 깊이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다들 알고 있겠지만 노파심에서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이야기는 두 명의 사기꾼이 허영심으로 가득 차 새 옷을 입고 과시하는 것을 좋아하는 황제를 찾아가 비단과 금으로 만든 옷을 만들어 바치겠다고 제안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들 사기꾼은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감추기 위해 교묘한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자신들이 만드는 옷은 매우 섬세하기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나 현재의 지위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침내 옷이 완성되었고 황제는 옷을 입으려는데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황제는 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 자신의 어리석음과 현재의 지위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 점은 주변의 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황제 주변의 어느 누구도 옷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현재 지위와 특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신하들이 모두 새 옷이 매우 훌륭하다고 칭송하자 황제도 더 이상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고 진정 훌륭한 새 옷을 입고 있다고 착각해, 즉 벌거벗은 채 많은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진을 하게 된다. 이들의 눈에도 황제가 옷을 입지 않은 것이 명백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으로 간주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황제의 새 옷을 칭송한다. 그런데 군중 속에 있던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가 갑자기 황제가 벌거벗었다고 지적하자 그때서야 꿈에서 깨어난 듯 모두가 이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그런데 황제는 백성들이 술렁거리자 반신반의하면서도 행진을 계속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어린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며 과거 특정 시대, 특정 사회에서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을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 이야기는 이런 사건이 정보기술이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변화를 선도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도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사람들이 탐욕과 무지로 이성의 눈이 멀면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 전체가 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전대미문의 황당한 사건에 휘말려 표류하고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연일 거리로 나와 촛불 시위를 하면서 진실 규명과 현직 대통령의 퇴임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촛불 시위는 과거에도 종종 있었지만 지금의 촛불시위가 다른 점은 초등학생을 비롯해 중고등학생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강력하게 의사 표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바로 벌거숭이 임금님이야기에서 임금님이 벌거숭이라고 외치는 순진무구한 어린 아이에 해당한다. 대통령을 비롯해 측근에서 보좌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이 점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들 어린 학생들이야말로 사심 없이 순수하게 민심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권력형 비리를 묘사하는 용어로 게이트(gate)”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당시 현직 대통령이면서 공화당 후보였던 리처드 닉슨 진영에서 워싱턴의 워터게이트(Watergate) 호텔에 있던 민주당 선거운동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된 사건부터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유명해진 이 사건은 19726월에 터져 19848월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당시 닉슨 대통령은 도청을 지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직위를 이용해 증거를 인멸하려 했고 위증을 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을 위기에 직면했는데, 이를 모면하기 위한 정치적 타협으로 사임을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으며 대통령이라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은 엄정한 도덕적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각인시켰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말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1948년 우여곡절 끝에 남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남한만의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래 대통령이 직접 관여 했거나 적어도 묵인했던 권력형 비리가 없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더욱 우울한 점은 초대 이승만 정부 이래 현재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 까지 권력형 비리가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적 또한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의 선진국에서는 우리가 경험한 것과 같이 대통령과 측근들에 의한 권력형 비리를 찾아볼 수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유형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는지 정말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누가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유사한 사건이 되풀이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모든 매스미디어에서는 경쟁적으로 이번 사태의 진행 과정을 보도하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사건을 폭로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이번 사태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것이 바로 경쟁이 제공하는 사회적 이득이다. 한편 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의 국정농단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탄핵, 하야, 실질적인 2선 후퇴 등 여러 가지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대통령의 퇴진을 강력하게 주장할수록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올라갈 것이라는 계산에서 움직이는 듯 한 인상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어린 아이가 한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이상 이런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원칙을 강화하는 한편, 건전한 사회규범을 확립함으로써 사회 전반의 도덕적 기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과거 및 현재의 정치인들 모두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남용해 사적인 이익을 추구해도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고착화되는 데 기여했음을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이들 모두 현재의 사태에 일정 부분 연대 책임이 있다는 말이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과 측근들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기에 앞서 이런 풍토를 조장하거나 적어도 방기(放棄)했던 것에 대해먼저 국민들에게 사죄했어야 했다. 주권자인 국민을 우습게 알고 일단 국회의원에 당선되기만 하면 각종 특혜와 특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이들의 의식 수준이 그대로 유지되는 한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필자가 누누이 강조해 온 도덕적 해이의 완결판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공직자들 그리고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을 비롯한 지방의회 의원들 모두 국민과 주민들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대리인이다. 이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 나라에서는 상식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본말이 전도되어 도덕적 해이가 상식이 되어 버렸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모든 권력형 비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현실이다. 이를 바로 잡지 않는 한 정권이 바뀌어도 권력형 비리는 재발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그만큼 어리석은 존재다.

 

도덕적 해이의 유형은 실로 다양하며 그 파괴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해 왔지만 도덕적 해이를 완벽하게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방치하면 나라 전체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예컨대 공산주의 체제가 몰락한 주요 원인으로 체제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를 꼽는다. 북한 체제가 몰락한다면 아마도 사회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해이가 그 주된 원인일 것이다. 이 점은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에는 아무런 죄의식 없이 도덕적 해이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잠재적으로는 누구라도 도덕적 해이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가히 도덕적 해이의 왕국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이 문제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법과 제도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이 점은 특히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이들 대부분은 표면적으로는 공익을 앞세우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데 익숙해있기 때문이다. 공직에 있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익을 우선하는 것이 주권자인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당연한 임무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일부는 적극적으로, 나머지는 소극적인 방식으로 각종 도덕적 해이를 저질러왔던 것이다. 더욱이 매스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사람들만 도덕적 해이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이들의 정체를 알고도 침묵한 사람들 또한 도덕적 해이를 범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과거 행적과 관련된 사적 정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것이다. 현재까지 매스미디어를 통해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인간관계와 행적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았다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들 다수가 과연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겠는가? 짐작컨대 매스미디어를 통해 공개되기 훨씬 전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관련된 사적 정보를 알고 있던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대선 전에 유권자들이 이런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시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은폐해왔다. 이들이 누군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아마 이들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중적 인기를 감안해 훗날 권력을 장악하면 이런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득을 챙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그리 행동했을 것이다. 이것 또한 도덕적 해이의 일종이다. 공익보다는 사익을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새삼 부각된 핵심적인 사항은 황당한 발상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기업을 압박해 자금 출연을 강요했던 것보다 2014년 세월호 대참사 때 박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이다.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와 관련해 정말 중요한 사항이다. 앞서도 지적했듯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위증 혐의로 하야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죄를 범하고도 대통령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 처벌을 면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아직도 봉건시대를 살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간에는 그 시간에 박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합리적 추측이 청와대의 공식적인 입장보다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둘러싸고 왈가왈부할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국격(國格)과도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둘러싼 의혹을 해소할 방법은 간단하다.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은 그 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박 대통령 스스로 무엇을 했는지 밝힐 용기가 없다면 이들 중 누군가는 양심선언을 해야 한다. 이것은 공직자로서 그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사적으로는 배신일지 모르지만 공적으로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다. 따라서 양심선언은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하는 당당한 행위이며 벌거숭이 임금님에서 어린 아이가 한 역할에 해당한다. 누군가 이와 관련해 양심선언을 한다면 온 나라가 이 기가 막힌 참담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런 선언을 기대하는 것이 정말 무모한 일인가? 그들은 단지 권력의 주구(走狗)에 불과한가? 그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의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그들이 정말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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