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관련

극단적인 군집행동의 부작용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6-14 11:22
조회
411

언제부터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각종 대중매체에서 특정 개인에게 국민 여동생’, ‘국민 엄마’, ‘국민 요정’, ‘국민 가수’, ‘국민 배우라는 명칭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일반 대중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이것을 하나의 관행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런 관행이 북한에서 인민 영웅’, ‘인민 배우등의 명칭을 사용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록 남북으로 분단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와 북한 주민은 여전히 유사한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체제가 달라도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칼 융(Carl G. Jung)이 말한 인간의 집단무의식에 존재하는 원형(archetype)’의 영향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왜 그런 명칭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선진 사회로 발전하는 데 중요한 전제요건인 다양성 및 이에 기초한 창의성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런 명칭이 널리 수용되는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에는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며, 그 배경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찍이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명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독일에서 나치즘이 대중의 광적인 지지를 획득하게 된 배경으로 당시 독일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지적했다. 그렇기에 대중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나치즘을 내세운 히틀러의 절대 권력에 맹종했던 것이다. 우리의 정신적 측면에도 이런 요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우리가 익숙한 이런 성향이 비단 특정인의 호칭 앞에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심각한 문제라 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이 일반대중의 삶 속에 널리 그리고 깊이 침투해있다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져할 것이 한국 사회에서 종종 목격할 수 있는 군집행동(herd behavior)이다. 이것은 일단의 사람들이 사전에 계획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적으로 특정한 행동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쏠림현상이라고 불리는 것은 군집행동의 결과를 말한다. 예를 들어 주식시장에서 종종 나타나는 거품(bubble)은 투자자들의 군집행동의 결과로 인한 대표적인 쏠림현상에 해당한다.

 

군집행동을 무조건 나쁘다고 비난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군집행동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997년 외환위기 시절 금모으기 운동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단순히 은행 지점 앞에 긴 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고객들이 불안해 예금을 인출하는 바람에 발생하는 뱅크 런(bank run)은 좋지 않은 군집행동에 해당한다. 필자의 견해로는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서 발생했던 군집행동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 이들로 인해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거나 사회적 비용이 증가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군집행동의 발생 원인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향후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군집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동일한 선호(選好)를 가지고 있다면 이로 인해 군집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 또는 사람들이 유행에 매우 민감하다면 이로 인해 군집행동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폭포(information cascade)로 인해 발생하는 군집행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한국인들과 같이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보다 다른 사람들의 언행에 큰 비중을 두는 경우에는 이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다룰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개개인은 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결국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가 발생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불확실한 경제 여건에서 개개인은 처음에는 자신이 보유한 사적 정보에 의존해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주식투자의 경우나 관광지에 가서 식당을 고르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 그런데 개개인이 순차적(順次的)으로 행동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사적 정보 외에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서 얻는 정보를 자신의 행동에 반영할 수 있다. 이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얻은 정보보다 자신의 사적 정보가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원래 계획한 대로 행동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부터 얻은 정보에 입각해 행동할 것이다. 정보폭포란 처음에는 자신의 사적 정보에 입각해 행동하다가, 일정 시점이 지난 후에는 사적 정보를 무시하고 오직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해 얻는 정보에 입각해 행동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경우 일정한 임계수준을 넘는 다수가 특정 행동을 선택하면, 사람들은 그런 행동의 의미와는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모방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거품이나 뱅크 런의 경우와 같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보폭포 현상에서 중요한 점은 개개인은 나름 합리적으로 정보를 이용하려 하므로 누구도 자신에게 불리한 행동을 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이다.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에서 가격 폭등이나 폭락은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시작한 시위가 어떤 돌발적인 사건으로 인해 군집행동으로 이어져 불행한 폭력 사태를 초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군집행동의 엄청난 파괴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막연한 불안감에서 너도나도 끝없는 매도행렬에 동참함으로써 주가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나아가 한 분야에서의 군집행동이 다른 분야로 파급되어 경제 전반으로 군집행동이 확산되면 국민경제, 나아가 글로벌 경제 전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도 경험했다.

 

군집행동은 한국 사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관찰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군집행동 및 이와 유사한 행동을 자주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100만부 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만큼 팔린 나라가 없었다. 이 책의 내용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책이 많이 팔린다는 사실 때문에 구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책을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단지 이런 이유 때문에 구입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군집행동의 사례로 특정 영화의 관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최근 이런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영화에 관심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연령이나 경제력 등을 감안해 실제로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는 저변 인구를 대략 3,000만 명이라고 추산한다면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경우, 유효 인구의 대략 절반 정도가 특정 영화를 관람했다는 의미다. 필자는 이것도 한국 사회에 특유한 군집행동의 사례라고 생각한다. 주변의 대다수가 봤다는 영화를 보지 않으면 대화에서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를 관람하도록 한 주요 원인일 것으로 추측한다. 필자는 나름 과거 영화를 많이 본 편이라 좋고 나쁜 영화를 구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데, 그렇게 많은 관객에게 어필할 정도로 우수한 한국 영화를 본 적이 거의 없다.

 

인간의 본성에는 다수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각인되어 있다. 이것은 험난한 환경에서 오랜 진화과정을 통해 인간이 터득한 생존 전략 중 하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급적이면 유행을 따라가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광고는 이런 성향을 더욱 자극해 특정한 방향으로 소비를 부추긴다. 이와 같이 현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이나 우리의 본성이 군집행동을 유발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런 모든 군집행동을 경계하자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함으로써 결국 군집행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개인적으로 어떤 행동을 선택하기 전에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것을 생활화하는 것이다. 왜 특정한 정치인에게 호감을 갖는지, 왜 정치 집회에 참가하려는지, 왜 촛불시위에 참여해야 하는지, 왜 특정 테마주식을 매입하려는지, 왜 특정 지역의 아파트를 분양받으려 애쓰는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포장한 주장에 왜 쉽게 넘어가는지 등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군집행동 자체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라 할지라도, 이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피해나 부작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런 노력을 통해 정신적으로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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