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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의 구원에 대한 역설적 믿음- 이문열 소설 [황제를 위하여]를 읽고

작성자
박인영
작성일
2016-03-01 01:52
조회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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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와 역사의 구원에 대한 역설적 믿음
- 이문열 소설 [ 황제를 위하여 ]를 읽고


   박인영 ( misael@naver.com ; www.facebook.com/misaelpark )     
   copyright © Misael Park

* 작품 : 이문열 소설 [ 황제를 위하여 ] 1993, 서울, 고려원 *


1. [ 황제를 위하여 ]의 역사적 배경과 무대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당한 개인과 집단은 구원을 갈망한다.

우리나라의 민중에게 구한말은 극한의 고난 시대였다. 무너져 가던 이(李) 왕조의 부패한 탐관오리들과 무능한 지배층은 인민을 수탈하고 착취해 사욕을 채우기에만 혈안이 되었고, 왜인을 비롯한 침략자들은 온 나라를 휩쓸고 다니며 살인과 노략질로 민중들을 핍박, 겁탈했다.

인민은 '구원'을 갈망했고, 스스로를 '세상과 인민 구원의 화신'으로 여겨, 불우한 이 땅의 민중들에게 복지와 정의,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 줄 새로운 왕조와 의로운 혁명을 꿈 꾼 사람들도 있었다.


2.  [ 황제를 위하여 ]의 줄거리


[ 황제를 위하여 ]의 주인공, 남조선 태조 '광덕대비 백성제(光德大悲 白聖帝)'는, 자신을 덕치(德治)와 인의(仁義)로 새로운 세상을 열고 다스릴 새황제, 곧 새로운 이상국가의 시조, 구세주 '정진인(鄭眞人)'으로 확신한다.

황제는 정감록을 비롯한 비기(秘記)에 새왕도(王都)로 예언된 계룡산 밑 '흰돌머리 마을(白石里)'에 자신과 추종자들만의 황국(皇國)을 연다.

이후 황제는 자신과 그의 신성한 왕국에 대한 천명의식(天命意識), 그리고 그의 유교적 가천하 사상(家天下 思想)에 따른 인의(仁義)와 덕치(德治)의 통치이념(統治理念)을 거스르는 한국 근현대사의 모든 정치 집단, 이념 세력과 각종 종교와 그 신봉자들, 곧 침략자 왜적, (서양의) 세속적 실용주의(자)와 과학주의(자), 공산주의(자), 자본주의(자), 민주공화(국)주의(자), 그리스도교(도), 불교(도) 들에 분연히 맞서 싸운다.

황제는 침략자 왜적을 무찌르려 '의로운 군사'를 일으켰으나 왜병들의 신무기와 중과부적으로 궤멸당하고, 3.1 만세운동 때엔 왜인 순사를 때려눕혀 쫓기는 몸이 되자, 망명길에 올라 만주 북간도 용정에 추종자들과 함께 농장을 개척해 100 여 가구에 이르는 기업을 이룩하고, 정식으로 남조선(南朝鮮) 개국을 선언한다.

황제의 곁에는 그에게 정진인(鄭眞人)으로서의 천명(天命)과 유교(儒敎)의 가천하(家天下)사상, 곧 인의(仁義)와 덕치(德治)의 왕도(王道)이념을 주입하고 교육한 아버지 황고(皇考), 황제를 충성과 의리로 도운 여러 신하들, 박지초, 신기죽, 마숙아, 김광국, 변약유, 두충, 우발산 들이 있었다. 그리고 세속의 천한 논리와 탐욕적 계산으로 그를 이용하거나 배신, 반역한 사람들, 공산주의자 이현웅, 이현웅을 따라 공산주의자가 된 그의 첫째 아들 융(隆), 사기꾼 배대기 들이 있었다.

일본 패망후 귀국길에 오른 황제 일행은 공산주의자들의 세상이 된 만주와 북조선을 지나오다 소련군과 공산주의자들에게 박해와 강도를 당하고, 마침내 힌돌머리에 도착했을 때에는 간도를 출발했을 때의 성세와 위용은 간 데 없고, 겨우 늙은이 몇 명의 거지떼가 되었다. 그러나 계룡산 힌돌머리 마을에 남았던 황제의 둘째 아들 휘(輝)는 그 동안 힌돌머리의 재산과 토지를 잘 관리해, 황제는 이제 힌돌머리 일대의 힘있는 지주, 재산가가 되어 있다.

이윽고 남조선에는 천한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내세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들어서고, 북에는 궤변무도(詭辯無道)한 유물론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무산자 독재국가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세운다. 이렇게 해서 참서의 예언대로 이제 삼국(북조선, 남한, 황제의 남조선)이 정립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이 마을을 점령하자, 마을의 실질적 지도자, 황제의 둘째 아들 휘는 스스로를 마을 인민위원장으로 내세우고,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은 기지와 수완을 발휘해 마을에 대한 공산당의 각종 부역과 인민군 지원병 요구 등을 교묘히 피하고 무마한다.

국군과 유엔군의 반격으로 인민군이 물러가자 황제의 아들 휘는 부역자 누명을 쓰게 되고, 정처없이 일본으로 밀항해 소식이 완전히 끊기고 만다. 휘 옆에서 그의 비서 노릇을 하던 배대기는 그 기회를 이용해 황제의 모든 재산과 토지를 사기로 빼앗고 황제 부부와 황제에게 충성하던 늙은 신하들, 변약유, 우발산, 두충 들을 내쫓는다.

황제 부부와 늙은 신하들은 이제 계룡산 계곡 작은 움막에 의지해 살며 때로는 구걸로 연명하는 비참한 생활을 하게된다.

말년의 황제는 노장(老莊)의 깊은 세계에 침잠했다:

"몸은 마른 나무 등걸 같았고, 마음은 불꺼진 재와 같았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지덕(至德)으로 삼아 고요히 산속을 소요했다. 다스림을 잊으니 땅 위에서는 왕중의 왕이요, 하고자 함이 없으니 하늘에서는 귀신의 우두머리였다."

1895년에 출생한 황제는 1972년에 바람처럼 눈을 감았다.

황제는 지고한 정신의 승리 속에 이승의 숨을 거둬 삶의 껍질을 버렸고, 명증하고 찬란한 관념과 조화의 나라, 대우주 시간과 공간의 한복판 자미궁(紫微宮)에 영원한 별자리들에 둘러싸인 새황국을 열었다.

계룡산 남쪽 제왕혈(帝王穴)에 남조선(南朝鮮) 시조(始祖), 태조(太祖) 광덕대비(光德大悲) 백성제(白聖帝)의 덕릉(德陵)이 있다.

잡지사 기자인 '나'는 '정감록'과 관련된 종교 사회 현상을 취재하러 계룡산에 갔다가, 황제의 덕릉과 능을 지키던 황제의 마지막 신하 능참봉 우발산을 만난다. '나'는 우발산에게 황제의 이야기를 들었고, 황제의 일대기가 적힌 [백제실록(白帝實錄)]도 보게 된다.

우발산이 죽고, [백제실록]도 유실된 상태에서 '나'는 오직 기억을 더듬어 [백제실록]의 '연의(演意: 주관적 부연, 설명)' 형식으로 이 글을 썼다. "황제를 위하여, 그 승리와 영광을 위하여...."


3.  [ 황제를 위하여 ]를 읽으며 한 생각들


3.1 복지와 사회 정의


인민 대중의 기본적 생존권과 인간 차별없는 행복 추구의 여건은 실현되어야 한다.

사회(공산)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정치 이념, 복지 구현을 위한 갖가지 경제 이론 들은 인민, 곧 인간의 생존권 보장과 행복 추구 여건 마련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창안, 기획되었다.

그러나 그런 정치 이념들과 경제 이론들의 추종, 실천자들은 역사, 특히 한국의 근현대사 안에서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해, 그들의 정치 이념과 그 목적, 경제 사회 이론과 그 성과의 구현을 위해 '인간'을 무시하고, 인권을 희생시키고, 민중에게 착취, 고문, 살인, 전쟁과 같은 극악한 폭력을 휘둘러 왔다.

작가 이문열은 우리 근현대사가 낳은 폭력성과 비인간성의 까닭과 근간이, 사회 정의와 복지 구현을 기획, 의도한 '이념이나 이론의 부재가 아닌 과잉'에서 왔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황제'의 유교적 '가천하 왕도 정치 이념(家天下 王道 政治 理念)'이 그 현대적 대안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오늘날 우리가 '황제'의 '가천하 왕도 정치 이념(家天下 王道 政治 理念)'에서 배우고 익혀 계승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사회 정의와 복지 구현을 내세워 그 일에 투신하는 이들이, 무엇보다 우선해 자기 스스로 인의(仁義)와 도덕(道德)을 쌓으며 스스로의 인품과 인격을 고양하는 인격 수련과 철저한 수신(修身)에 끊임없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직 그럼으로써만 각종 정치 이념(가들)과 사회 경제 이론(가들)이 (자신을 포함한) 구체적이며 실존적인 인간과 인민 대중을 무시하고 억압하며 핍박, 말살하는 일이 지양될 것이다.


3.2 인간 구원과 자기 완성

내 이웃과 가족, 나의 지속적인 건강과 젊음, 변치 않는 복지와 부유함, 환멸없는 쾌락이 가능한가?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누군가 그런 걸 간절히 바라거나, 또 그것을 얻거나 이루지 못해, 불안해 하고 스스로 불행하다고 느껴 우울해 한다면, 그는 자기 기만에 빠진 착란자이거나, 세상의 미망과 육체와 물질의 환상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우매한 소인이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배움'이나 '깨달음' 그리고 '영성(靈性)과 인품(人品)의 고양(高揚)'과 같은 '정신적 성취와 승리'로부터 올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황제'가 말년에 도달하고 이룩한 노장(老莊)적 '적멸(寂滅)' 그리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은 인간 구원과 자기 완성의 한 본보기이다.


4.  결어 - 비교종교(사)학적 상념 : 사회와 역사의 구원에 대한 역설적 믿음


2000 여년 전, 중동 유대 지역의 상황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한반도 형편과 비슷했다:

막강한 로마제국의 침략으로 이스라엘 왕국은 주권을 잃은 식민지 국가였다. 당시의 유대 지배계급은 침략세력에 빌붙어 오히려 동족을 핍박하고 수탈하는 매국노들에 가까왔다. 크고 작은 무장세력들은 국권 회복을 위한 폭력혁명과 봉기를 꿈꾸며 들끓고 있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과 광신자들은 말세를 확신하며 신의 역사 개입과 심판, 세상과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의 강림을 고대했다.

예언자 요한과 그 제자들은 임박한 하늘 나라의 도래, 그리고 죄와 불경으로 타락한 세상에 대한 신의 준엄한 심판을 예언하며 광야에서 세례 활동을 했다.

예수, 혹은 그 추종자들은 예수가 세상과 이스라엘을 구원할 구세주라 믿었고, 성서에 예언된 '새하늘과 새땅, 하느님 나라와 의로운 구세주 오심'의 임박한 실현을 믿고 설교했다.

예수와 초대 그리스도교 집단의 믿음과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으나, 이후 예수-운동, 즉 '그리스도교'는 서구의 역사, 나아가 인류의 역사와 정신문화사를 관통하고 지배하는 '이념과 문화의 준거'를 제공했다.

구한말 한반도에서 나온 한반도 중심의 구세사(救世史)적 신념, 즉,'후천개벽사상(後天開闢思想)'은 세상과 우주역사의 한 주기가 마감되었고, 그래서 부패와 모순으로 가득찬 선천(先天)이 끝나고, 가장 지독한 핍박과 수난에 시달려 온 한반도 남쪽의 남조선(南朝鮮)을 중심으로 광명(光明)과 지복(至福)의 새로운 하늘(後天)과 지상선경(地上仙境)이 열린다는, 현실 역사에 대한 역설적 믿음이며 종교적 예언이다. 이후 '후천개벽사상(後天開闢思想)'은 거의 모든 한국민중종교들의 중심 사상과 메시지가 되었다.

구한말에 첨예화되어 나타났던 한국 사회의 여러 부조리와 모순의 대부분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거나 그 개선이 미미하다. 외압(外壓)과 외침(外侵)에 맞선 국권 수호, 자유, 정의, 평등, 복지의 구현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요원하다.

그러므로 '기필코 새하늘이 열려야 한다'는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메시지와 그 당위성은 한국 사회 안에서 아직도 간절하며 유효하다.

한국 사회는 개혁, 정의, 자유, 평등, 복지의 실현을 그 어느 때보다 갈망하며, 그 일에 투신해야 할 한국 사람들의 엄한 자기 반성과 희생, 수신(修身)의 의지, 그리고 치열한 각고의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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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 이문열 장편소설, [ 황제를 위하여 ] (1993, 서울, 고려원)

* 참고할 만한 글 :

김현, 베끼기의 문화적 의미 ('황제를 위하여' 평론)

함재봉, '家'의 이념과 체제, 계간 [전통과 현대] 2000년 겨울

류병덕, 계룡산 모악산 하의 민중종교, [한국민중종교사상론] 류병덕 편저, 시인사, 1985, p 224 ~ 316

황선명, 후천개벽사상과 혁세사상 - 조선말기 민중종교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 민중종교사상] 학민사, 1983, p 7 ~ 34

노길명, 신흥종교창시자와 추종자의 사회적 배경과 그들간의 관계,[증산사상연구 (논집3)] 증산사상연구회, 1977, p137 ~ 167

Charles Perrot, [Jésus et L'histoire], 박상래 옮김, [예수와 역사] 가톨릭출판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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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까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전체 1
  • 2016-03-01 02:47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가 이런 내용의 소설인지 몰랐네요. 줄거리를 보니 한국인의 파편화된 의식세계를 문학적으로 잘 묘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문열씨를 그다지 평가하지 않았었는데 이런 소설을 쓰기도 했네요. 암튼 소설 장르까지 커버해 주시고 여러 모로 감사합니다. 계속관심 부탁합니다. 지식공유광장은 문자 그대로 광장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정담을 나누는 곳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최인훈씨의 광장은 좌절된 현실을 상징하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