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뇌의식과 과학

작성자
이경남
작성일
2018-05-29 17:47
조회
384

뇌의식과 과학

저자 앨런 월리스 | 역자 최호영 | 출판사 시스테마

 

 

뇌의식과 과학

 

목차

1.명상과학의 원리

 2.과학과 종교의 충돌

3.동양과 서양의 의식 연구

4.영적 각성과 객관적 지식

5.불교의 비신론, 다신론, 일신론

6.상호 주관성의 세계

7.사마타 : 명상을 통한 주의의 수련

8.우상숭배를 넘어서 : 경험주의 정신의 부흥

​책의 내용 중 일부 발췌입니다.

  과학의 승리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명상과학contemplative science이라는 학문분야를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게 보일 것이다(13쪽).

    

명상이라는 단어의 근원인 라틴어 콘템플라치오contemplatio’는 그리스어 테오리아theoria’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둘은 모두 현실reality의 본질을 드러내고 해명하며 명백히 하는 일에 전념하는 것을 말한다(13쪽).

 

  오랫동안 과학이라는 용어를 오로지 객관적이고 물리적이며 양적인 현상의 탐구로만 간주해 왔다. 심지어 몇몇 과학자들은 이런 현상들만이 실재라고 여긴다. 그러나 과학을 좀 더 넓은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웹스터 대학생용 신사전 제9판>의 정의에 따르면 과학적 방법이란 지식의 체계적 추구를 위한 여러 원리와 절차로서 문제의 인식과 표명, 관찰과 실험을 통한 자료의 수집, 가설의 표명과 검증을 포함한다(14쪽)."

    

 명상과 과학을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원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무게가 여전히 이 두 분야의 생산적인 협동을 가로막고 있을 뿐이다.

    

  종교, 철학, 과학의 중세적 융합이 현대에 와서 해체된 것과 비슷하게 의미 있는 삶의 핵심 3요소인 참된 행복, 진리, 미덕의 추구에도 분열이 일어났다. 내가 지향하는 명상과학은 종교적이든 아니든 어떤 신념체계에도 독단적으로 매달리지 않은 채 철저하게 경험적인 방식으로 이 세 요소의 추구를 재통합하고자 한다(15쪽)

  ​명상과 과학의 원리 안에는 이 두 접근법의 화해와 심지어 통합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역사적 뿌리 또한 존재한다(13쪽)

  마음 연구와 관련해 과학적 접근과 명상적 접근은 깊은 의미에서 상호 보완적이다(27쪽)

    

  많은 인지과학자들은 모든 정신 과정이 뇌의 기능 또는 속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그리고 과학적 연구의 범위가 계속 이렇게 제한되는 한, 이런 가정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는 강력한 증거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연구하기 위한 과학적 방법이 이렇게 유물론적 가정에 기초하는 한, 그 결과는 오로지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이 되기 쉽다(28쪽).

    

  대부분의 심리학자들과 인지과학자들은 모든 종류의 이원론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뇌의 기능 및 속성과 별개로 주관적인 정신 현상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어떤 증거도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지과학자들의 연구 범위가 행동, 뇌 기능,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주관적 보고에 국한되는 한, 반대 증거를 찾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32쪽)

    

  이런 상황에서 과학적 정설에 대해 유력한 대안을 찾으려면 현대 과학을 벗어나 세계의 명상 전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여러 의식 상태가 (비록 신체와 환경의 여러 제약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신경 활동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심층심리적인 근원 의식과 기저 의식에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271쪽).

 

 인간의 마음 근처에는 근원의식이 있다. 인간은 근원의식에서 외적 환경과 내부 세계의 이원성을 초월하여 비이원적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불교전통에 입각해 인간 마음의 근원에 심층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기저 의식(8의 야뢰야식)과 근원 의식(9의 아마라식)이 있다고 주장한다(271쪽).

 

  불교 명상가들은 주장하기를 명상적으로 고요한 상태인 사마타라는 고도의 삼매에 도달하면 의식의 상대적인 바닥상태를 경험할 수 있는데, 이것을 티베트 불교의 족첸Dzogchen(위대한 완성, 大究) 종파에서는 기저 의식substrate consciousness(알라야비즈나나)이라고 부른다. 이 파의 주장에 따르면 이것은 마음과 모든 신체감각의 바탕이 되는 개인의 의식 흐름이다. 또한 마음은 비록 신체 및 신체와 환경의 상호작용의 제약을 받지만 기저의식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했다(35쪽).

    

  이들 명상적 견해들이 대부분의 현대 인지과학자들의 신념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기도 하다.

    

  티베트 불교 닝마Nyingma 파의 족첸 스님인 뒤좀 링파(1385~1904)는 다음과 같이 썼다.

본질적으로 맑고 텅 빈 기저 의식은 거기서 나오는 모든 것의 원인으로서 계속 남아 있다. 기저 의식에서 나온 마음이 형태들을 제공하고 이 형태들은 의식의 끊임없는 흐름 속에서 안정된다(36쪽)."

    

 기저 의식은 능동적인 사고, 심상, 감각적 지각 등의 활동 에너지kinetic energy’를 모두 비운 상대적인 진공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마음이 능동적일 때는 이것을 식별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저 의식은 보통 수면 중, 그것도 꿈을 꾸지 않을 때나 죽을 때만 드러난다. 기저 의식은 마음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자연스런 상태로 묘사되지만, 이의 본질적이고 밝고 깨끗한 성질은 괴로운 생각과 감정으로 마음이 산란할 때도 여전히 존재한다. 휴식을 취할 때 기저 의식은 밝고 텅 비어 있는 반면, 생각이나 감각 자극을 통해 촉매작용이 일어나면 기저 의식의 잠재 에너지가 마음의 활동 에너지로 변화해서 온갖 정신적 또는 감각적 활동으로 나타난다(37쪽).

 ​기저 의식은 마음의 상대적인 바닥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 마음의 흐름이라는 맥락 안에서 기저 의식은 최저 수준의 활동상태이자 최고 수준의 자유 또는 가능성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38쪽).

    

  이러한 잠재력에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세계의 여러 명상 전통처럼 사마타를 통해 기저 의식 안으로 투명하게 뚫고 들어가는 것이다(39쪽).

 

  티베트 불교의 족첸 전통에서는 기저 의식(알라야비즈나나)과 기저(알라야)를 구분한다. 기저는 객관적으로 마음이 텅 빈 공간이며 기저 의식에 의해 주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이 진공 상태는 공간처럼 비물질적인 것으로서 사고도 없고 다른 아무 것도 없는 공이다. 우리가 잠이 들면 신체 감각과 정신 활동을 통해 나타났던 모든 객체 현상이 이 공 안으로 해체되며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이 공으로부터 다시 모양들이 떠오른다. 각성 상태가 기저 안으로 가라앉는 것에 대해 뒤좀 링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각력 있는 평범한 존재의 평범한 마음은 사라진다. 그러면 상속이 휴면 상태로 들러가면서 산만한 생각들이 각성의 공간 속으로 사라진다.... 내면을 응시하며 텅 빈 밝음을 경험하는 동안에 자신과 타인과 객체의 모양은 자취를 감춘다. 이것이 기저의식이다. ... 이런 사람은 마음의 순수 본질에 이른 것이다(39쪽).

    

 족첸 종파에서는 근원 의식(9의 아마라식)은 마음의 절대적인 바닥상태이다(271쪽).

 

 기저 의식을 마음의 상대적인 바닥상태로 간주하는 반면에 근원 의식(즈냐냐)은 마음의 절대적인 바닥상태로 묘사한다. 어떤 개념이나 성질의 측면에서 내적으로 분화되지 않아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이 상태에는 최저 수준의 정신적 활동 상태이자 최고수준의 자유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근원 의식은 외적 공간과 내적 공간의 이원성을 초월하는 현상들(법계)의 절대공간에 대한 의식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의 상호주관적인 경험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현상(외적 공간과 내적 공간에 나타나는 모양들, 시간, 물질, 의식 따위)은 이 절대 공간으로부터 나오며 이것의 이런저런 배열일 뿐이다(41쪽).

    

  기저의 상대적 진공은 사마타 수행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반면에 현상들의 절대공간은 오직 명상적 통찰(비파사나)의 수양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다(42쪽)

    

  그리고 마음이 내적으로 분화되지 않아서 완전한 대칭을 이루는 근원 의식의 상태에서는 외적 공간과 내적 공간의 이원성을 초월해 절대 공간에 대한 비이원적인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한다. 저자는 근원 의식에 대한 이런 설명이 완전한 대칭상태의 절대적인 진공을 우주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몇몇 물리학자들의 설명과 비슷하다고 본다(271쪽).

    

  근원 의식에 의한 절대공간의 깨달음은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따위의 모든 구별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실로 모든 단어와 개념을 초월한다. 이러한 통찰은 의식의 주관적 양식이 객관적 공간을 만나서 생긴다기 보다 절대공간과 근원 의식의 본질적 통일성에 대한 비이원적 깨달음이다. 이 둘은 공통의 경계를 지니며 비국부적이고 무시간적이다. 절대공간이 경험된 세계의 근본 성질이라면 근원 의식은 세계를 경험하는 마음의 근본 성질이다. 그러나 이 둘은 언제나 동일한 성질의 것이므로 족첸 종파의 견해는 철학적 관념론이나 이원론 또는 유물론의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주체와 객체, 정신과 물질 따위의 모든 구별은 개념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절대공간과 근원 의식의 불가분성이 바로 위대한 완성Great Perfection(족첸)’이며, 이것은 종종 모든 현상의 한 가지 맛이라고도 일컬어진다(42쪽).

 달라이 라마가 '위대한 완성'에 대해 쓴 최근 저서에는 이것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의식의 모든 상태에는 근원적 각성의 투명한 빛이 스며들어 있다. 얼음이 아무리 단단해도 물이라는 얼음의 본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명확한 개념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있던 '장소', 그것의 마지막 휴식처는 근원적 각성의 광활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개념들은 근원적 각성의 광활한 범위 안에서 생기고 그곳으로 다시 해체된다(46쪽).  

 

  경험적인 효과의 측면에서도 기저 의식을 깨닫는 것과 근원 의식을 깨닫는 것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사마타의 경지에 이르러 기저 의식을 깨달으면 번뇌가 일시적으로 억제되는 반면, 근원 의식을 깨달으면 모든 번뇌와 망상을 영원히 제거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의식의 상대적인 바닥상태에서 경험하는 환희는 한정되고 일시적인 데 반해 근원 의식의 절대적인 바닥상태에 내재하는 믿을 수 없는 환희는 무한하고 영원하다. 기저 의식을 확인한 자는 개인의식의 상대성을 깨닫는 반면에 근원 의식을 깨닫는 자의 각성 상태는 그 범위가 무한한 것이다. 또한 사마타를 통해 열리는 창조적 잠재력은 한정된 반면에 궁극적인 명상적 통찰을 통해 드러나는 의식의 창조적 잠재력에는 경계가 없다. 근원 의식은 참된 행복의 궁극적 원인, 온갖 번뇌와 망상으로부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궁극적 진리, 모든 미덕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한다. 의식의 이 차원에서 행복과 진리, 모든 미덕에 대한 우리의 가장 깊은 갈망이 비롯된다. 의식의 이 차원은 의미있는 삶의 처음이자 끝이자 지혜와 자비의 궁극적 토대다(43쪽)

 

현상들의 절대공간에 대한 불교의 서술은 절대적 또는 진짜 진공에 대한 현대물리학의 서술과 비슷한 면이 있다.

    

 과학 저술가 K. C. 콜은 진짜 진공의 대칭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만약 어떤 것을 변형시켰는데 눈에 띄는 차이가 생기지 않으면 그것이 바로 대칭이다..... 만약 어떤 것이 완전히 대칭적이면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아무리 애써도 이른바 변화라는 것이 아무 효과도 낳지 않을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지각도 없다. 완전히 대칭적인 무는 전혀 변화가 없는 상태여서 우리가 그것에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작용을 가해도 아무 차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45쪽).

    

 불교도들은 명상 경험과 철학적 분석을 토대로 의식의 진짜 진공상태와 가짜 진공상태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다(46쪽).

 

 물리적 공간 및 의식의 진공 상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47쪽).

 물리학자들은 아직 진공의 모든 속성이나 자연의 모든 법칙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들은 보통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우주에서 의식이 중요하지 않다고 가정한다. 물리학자들이 우주를 의식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한, 불교도들은 의식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간 경험의 세계에서 그런 우주란 중요치 않다고 맞받아칠 것이다(48쪽). 

 

  현대물리학에 따르면 절대적 진공은 완전한 대칭이라는 독특한 성질을 지니며, 족첸 종파에서 말하는 현상들의 절대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니콜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신이 지닌 최고의 단순성 때문에 사실상 차이가 날 수 없다. 족첸 종파의 궁극적 주제는 현실의 상대적 차원과 절대적 차원의 비이원성인데 니콜라스도 이런 신념에 동의하는 듯하다. “당신 밖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당신이 내게 가르치듯이 당신 안에 있지 않은 다름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또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50쪽)"

     그리고 둘 다 (의식의 근원에 대한 명상적 이론과 우주의 근원에 대한 과학적 이론이 모두)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지만 이 둘이 궁극적으로 수렴되는 공통의 숨은 기초가 있을지 모른다고 추축한다(271쪽).

     그렇다면 그 수렴점은 바로 인간이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진리일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진리가 참된 행복과 모든 존재에 봉사하는 미덕의 삶을 낳는다고 나는 믿는다(50쪽)

  명상과학이 풀어야 할 중심과제는 의식을 물질의 창발적 속성이나 기능으로 환원하지 않으면서도 자연화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익한 것으로 판명 난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의식의 본질 및 잠재력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심각하게 제약하고 있는 과학적 유물론을 대신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인간의 본성을 근본적으로 재평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우리가 물리학에만 의존해 자연에서 우리의 위치를 이해한다면 인간의 존재는 로봇의 위치로 전락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생물학에만 의존한다면 우리는 동물의 지위로 전락할 것이다. 현대 주류심리학은 연구대상을 주로 정상과 정상 이하의 인간 마음에 한정시켰으며 이런 제한된 범위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정의했다. 반면에 불교에서는 인간 존재를 세 개의 차원에서 이해한다. 곧 인간의 몸과 마음을 바탕으로 규정하는 인간 본성, 개별적인 기저 의식을 바탕으로 규정하는 중생으로서의 인간 본성, 개개인의 인간 존재 또는 생물의 모든 한계를 초월하는 근원 의식을 바탕으로 규정하는 중생으로서의 인간 본성이 그것이다(51쪽)

결국에는 주관성이 빠진 채 순전히 객관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의 현재 과학을 대신하여 경험의 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현대 서양에서 명상적 삶의 이상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것을 재발견하기 위해 굳이 무리의 문화권 밖을 살펴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양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토마스 아퀴나스까지만 올라가도 우리는 이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명상의 삶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인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참된 행복과 진리와 미덕을 추구하는 것이 문명의 목적 자체이며 이런 것들에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바로 명상적 삶이다(52쪽).

 

작성자

kn2lee.bol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