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The River of Consciousness)》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06-04 11:27
조회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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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 

역자: 양병찬

출판사: 알마(2018)

 

 

차례

다윈에게 꽃의 의미는?

스피드

지각력식물과 하등동물의 정신세계

우리가 몰랐던 프로이트청년 신경학자

오류를 범하기 쉬운 기억

잘못 듣기

모방과 창조

항상성 유지

의식의 강

암점과학계에 비일비재한 망각과 무시

    

 

올리버 색스를 추모하며

올리버 색스(1933~2015)는 영국에서 태어나 의대를 졸업한 후 주로 미국에서 활동했던 신경과의사이자 뛰어난 작가였으며 미국의 몇몇 명문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기도 한 다재다능한 사람이었다. 색스는 주로 자신의 환자들의 임상 치료와 개인적인 신경질환 경험(幻像肢)을 바탕으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으며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여러 신문에 다양한 주제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뉴욕타임스는 그를 의학계의 계관시인(poet laureate)”, “20세기 위대한 임상저술가 중 한 명으로 지명했다. 또한 그의 저서들 중 일부는 영화와 뮤지컬로 제작되기도 했으니 그의 탁월한 글 솜씨를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그의 저서 Awakenings이 동명의 영화로 만들어져 1990년에 개봉된 것을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의 기적>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서도 상영된 바 있다.

 

필자는 일찍이 그의 명성을 들었기에 그의 책 몇 권을 구입해 두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읽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전 최근에 발행된 의식의 강(River of Consciousness)을 구입해 읽게 되었다. 의식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필자로서는 임상 경험이 풍부한 신경과의사가 의식 문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색스가 몇 년 전 작고했으며 이 책은 사망하기 직전 지인들에게 사후 출간을 부탁해 세상에 나온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은 새롭게 쓴 것은 아니고 이미 발표된 글 가운데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운 것들 중에서 선정된 것들이다. 특기할 사항은 색스 자신이 글의 배치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는 점이다. 아마도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다는 의미를 담으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종을 눈앞에 두고도 이런 작업에 정열을 쏟아 부었던 색스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떠오르는 듯하다. 필자에게는 이런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왔고 이 책을 읽은 후 개인적인 소회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이 글은 이 책에 대한 리뷰라기보다는 죽음에 직면해서도 최선을 다해 유작(遺作)을 준비했던 그에게 바치는 헌사(獻詞)라 할 수 있다. 색스와는 일면식도 없는 필자가 명복을 빌어준다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었는데 책을 사랑했던 선배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치열하게 살다 간 그의 삶에서 배울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찰스 다윈·지그문트 프로이트·윌리엄 제임스 

올리버 색스는 이 책에서 특별히 세 사람을 자주 언급하였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미국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제임스가 그들이다. 목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서로 독립적인 주제들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은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듯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배경에는 이 대단한 세 사람에 대한 저자의 존경과 관심이 깔려있는 것 같다. 색스는 오랫동안 신경과의사로 활동하면서도 어려서부터 갖고 있던 과학 전반에 대한 호기심을 말년까지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에서는 평생 2만 명이 넘는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면서도 동서양의 신비주의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칼 융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융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미뤄 융보다는 프로이트에 더 경도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점이 궁금하지만 더 이상 물어볼 기회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찰스 다윈에 대한 남다른 존경심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치열한 탐구 정신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다윈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매우 진실해 보인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자는 일반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윈의 여러 면모를 소개해주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다윈이 식물에 관심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연구 업적을 남겼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이 같은 식물학 연구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윈이 여섯 권의 책과 일흔 편 내외의 논문을 식물학에 할애했는데도 말이다.”(14) 저자는 식물에 대한 다윈의 연구는 종의 기원에서 밝힌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한 자연선택의 증거를 제공했다고 평가한다. 

 

1859종의 기원이 출판된 이후 다윈이 직면했던 가장 큰 고난은 종교계의 반발이 아니라 진화에 대한 기존의 해석과의 충돌이었다. 다윈 이전에도 진화에 대한 이론은 있었으며 대체로 진화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방향으로 진행되는 과정으로 인식되었다. 토머스 쿤도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이런 관점에서 다윈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진화의 개념 자체는 특히 종교 집단들로부터 저항에 부닥쳤지만, 그것은 다윈주의자들이 직면했던 가장 큰 난관은 결코 아니었다. 그 어려움은 다윈 자신의 발상과 매우 가까운 견해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다윈 이전 시대의 유명한 진화 이론들은 모두 진화를 목표-지향적 과정(goal-directed process)으로 간주하였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한다. 다윈은 종종 신성한 의미나 목적을 배제함으로써 세상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는 인상을 준다. 자연선택에는 방향이나 의도가 없고 추구할 목표도 없으므로, 다윈의 세상에는 설계도, 계획도, 청사진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다윈주의가 목적론적 사고(teleological thinking)의 종말을 선언했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린다.”(33) 그러면서 저자는 다윈의 아들 프랜시스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다윈의 진정한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옹호한다. 프랜시스에 의하면 다윈이 자연사 연구에 크게 기여한 것 중 하나가 목적론을 부활시킨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목적론은 진화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모든 종의 기관들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서서히 진화했다는 것으로 들린다. 이런 점에서 프랜시스 다윈이 아버지 찰스 다윈의 생각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저자는 부자 관계까지 동원해 다윈의 의도를 옹호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다윈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의 발로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다윈주의자들의 다윈에 대한 해석은 이른바 눈먼 시계공(blind watchmaker)”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된다. 이것이 진화 과정에 대한 다윈의 해석이라면 진화는 방향이 없는 무작위적인 과정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이다.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다윈은 갈라파고스에서 돌아온 이후 40여 년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질병으로 고생했지만 그의 지적 에너지와 창의력은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고, 다양한 관심사를 추구하는 습관도 평생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을 괴롭히는 각종 질병과 투쟁하면서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유지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다윈은 지금도 우리의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순수한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고된 작업을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윈에 이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대단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신경과의사로 활동하면서 저자는 분명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지만 프로이트의 선구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반대중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프로이트의 새로운 면모를 다루었는데 이 또한 그의 탁월한 능력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를테면 프로이트는 오랫동안 신경학자 겸 해부학자로 활동했다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로 알고 있지만, 그가 1876년부터 1896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주로 신경학자 겸 해부학자로 살았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프로이트 자신도 만년에 그 사실을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다.”(89) 

 

또한 저자는 프로이트가 신경세포 연구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프로이트는 그 이전까지 아무도 몰랐던 사실을 알아냈으니, 그것은 신경세포체와 그 돌기(수상돌기, 축삭)가 신경계의 기본 구성요소인 동시에 신호전달 단위라는 것이었다. 에릭 켄들(Eric Kandel)은 자신의 저서 기억을 찾아서에서, 만약 프로이트가 의학계로 진출하지 않고 기초연구 분야에 머물러 있었다면, 오늘날 정신분석학의 아버지가 아니라 뉴런원리(neuron doctrine)의 공동 창시자로 명성을 날렸을 것이라고 추측했다.”(77) 이 모두 프로이트의 탁월한 능력에 대해 저자가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저자는 정신분석학자로서 프로이트의 선구적인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 이 점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 잘 드러나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의학적인 상태들을 오로지 독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기 위해, 신경학뿐만 아니라 정신의학적 상태에 대한 신경학적·생리학적 개념들을 모두 포기했다. 그는 <과학적 심리학을 위한 프로젝트>라는 논문에서, 정신상태의 신경적 기반을 상세히 기술하기 위해 최종적이고 고차원적인 이론화를 시도했다.”(102) 필자가 이해하기에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분야에 뉴턴역학을 도입함으로써 정신분석을 과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려 시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시도 자체가 바로 정신분석 연구에 장애가 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저자는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프로이트의 업적을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에 의하면 프로이트가 신경학적·생리학적 개념들을 포기한 이유가 독자적인 관점에서 정신의학을 연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정신분석에 뉴턴역학을 도입하려는 시도였다면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저자의 입장은 근거를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이것이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논제는 아닐 것이다. 아무튼 다윈에 이어 프로이트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매우 정중하다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견해를 인용하거나 설명함으로써 제임스에 대한 깊은 신뢰와 동시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의 제목 의식의 강도 제임스가 사용했던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제임스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마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었으며 또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바로 의식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그 가운데 저자가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과연 의식이 연속적인가 아니면 불연속적인가 하는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자연은 본질적으로 양자화(quantized)되어 있지만 우리는 이것을 연속적인 실체로 인식한다는 주장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점을 보여주는 가장 현실적인 사례가 인간의 시지각(visual perception)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적어도 시지각의 경우, ‘의식적 지각(conscious perception)은 연속적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죽 연결되어 연속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라고 주장할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마치 영화의 프레임처럼 말이다......그러나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는 행동과 경험을 구분하여, ‘행동은 매끄럽게 실행되는 반면, 경험은 영화처럼 불연속적 간격으로 조직된다고 주장한다. 코흐의 이 같은 의식모델은 시간의 인식은 가속되거나 감속될 수 있다는 제임스 메커니즘(James mechanism)을 뒷받침한다.”(51) 이 말은 시지각에 대한 최근의 연구 결과가 100여 년 전에 윌리엄 제임스의 통찰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불연속적인 현상을 연속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 의식의 교묘함이라 할 수 있다.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훨씬 더 적응하기 좋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진화해왔을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윌리엄 제임스가 명저 심리학 원리<사고의 흐름>이라는 유명한 장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고 말한다. 의식은 소유자에게는 늘 연속적인 것처럼 보인다. 끊어지지도 않고, 틈이 벌어지지도 않고 나뉘지도 않고, 조각조각 잘리지도 않고, 의식의 내용은 지속적으로 바뀔 수 있지만, 우리는 한 생각에서 다른 생각으로, 하나의 지각에서 다른 지각으로 중단이나 쉼 없이 순조로이 이동한다.” 마치 강물이 끊이지 않고 흐르듯이 의식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우리 의식이 그렇게 해석할 뿐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제임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따라서 제임스는 생각이란 흐르는 것으로 여기고,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이란 용어를 도입했다. 하지만 뭔가 켕기는 게 있었던지, 한 가지 가능성을 남겨뒀다. 의식은 불연속적이지만, 조이트로프(zoetrope)와 비슷한 착시에 의해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는 건지도 모른다.”(176) 조이트로프는 당시 유행했던 장난감으로 불연속적인 영상들을 빠르게 움직여 연속적인 동작으로 보여주던 기구를 말한다. 우리가 만화경으로 알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의식은 강은 흐르는가?

이 책은 독립적인 에세이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책 제목이 시사하듯이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의식 및 이와 관련된 뇌의 작용, 그리고 기억의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신경과학자가 아니므로 이런 주제와 관련된 깊은 논의를 하려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오랫동안 신경과의사로 활동했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형성하게 된 배경에는 찰스 다윈,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리고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잘 알고 있는 투렛증후군(Tourette’s syndrome)의 사례를 인용한 것도 이런 증세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의 특징적인 행동을 통해 비정상적인 시간의 흐름 및 이와 관련된 의식의 흐름의 특징을 규명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투렛증후군은 강박행위, (tic), 불수의운동 및 정체불명의 소리지르기를 특징으로 하는 신경장애를 지칭한다. 그의 저서 Awakening에서도 이런 증세를 가진 환자들에 대해 다루었다. 

  

그밖에 찰스 다윈이 지렁이와 같은 하등동물의 행동을 관찰 한 후 이들에게도 정신이란 것이 존재한다고 했다는 말도 저자에게는 나름 상당한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저자는 다윈의 이런 태도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윈, 로마네스, 기타 동시대의 생물학자들이 해파리와 같은 원시동물, 심지어 원생동물에서 정신(mind), 정신과정(mental process), 지능, 심지어 의식을 탐구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흥미롭다. 그로부터 몇 십 년 후 급진적인 행동주의가 과학계를 지배하며,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개념들, 특히 자극과 반응 사이의 내적 과정(inner process)부적절하거나 적어도 과학 연구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여기며 배척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82) 특히 행동주의 심리학에서는 주관적인 의식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행동과 그 원인에 대한 분석에 초점을 맞추었다. 저자는 이런 방법론에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의식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저자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정신에 대한 다윈의 견해까지 언급한 것은 정신 또는 의식으로 대변되는 주관적인 체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리라.

 

저자는 또한 이 책에서 기억 문제에 나름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신경과의사로서의 경험상 매우 적절한 반응일 것이다. 사실 기억 문제는 신경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신경과의사들에게도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기억은 그만큼 중요하며 의식 문제와도 깊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프로이트도 기억의 본질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진지한 학자나 의사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저자도 강조하듯이 기억은 매우 불완전하다. 우리가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기억도 대부분 오류로 가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가 그만큼 교묘하게 불완전한 기억을 짜 맞춰 그럴듯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오류투성이의 기억을 바탕으로 의식을 형성하고 판단하며 행동을 하는 것이다. 

 

이같이 기억 문제를 포함해 인간의 의식 문제는 여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들로 채워져 있다. 저자는 이와 관련된 최근의 연구로 알려진 의식의 신경상관자(neural correlate of consciousness)”에 대해 비교적 상세히 언급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크리스트프 코흐(Christof Koch), 그리고 제럴드 에덜먼(Gerald Edelman)이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저자는 특히 에덜만의 견해에 상당히 동조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내용에서 확인된다. 에덜먼은 이러한 과정의 신경적 기초를 뉴런 그룹들 간의 역동적인 상호작용 중 하나로 간주하고, 이 상호작용은 대뇌피질과 시상하부 등의 상이한 뇌 영역은 물론 대뇌피질 속의 다른 부분들에 존재하는 뉴런 그룹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에덜먼은 의식이 기억을 담당하는 영역(전두엽)’지각 범주화를 담당하는 영역(후두엽)’ 사이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호혜적 상호작용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했다.”(190) 

 

그러나 훗날 프랜시스 크릭이 고백했듯이 의식 문제에 대한 신경상관자적 접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런 방법이 고작해야 뇌의 특정 부위와 특정한 의식적 활동 간의 상관관계를 규명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의식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렇지만 주류 신경과학자들은 여전히 신경상관자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 또한 기본적으로 이런 관점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현재 지배적인 패러다임의 특징과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신경상관자를 고려하지 않고 의식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주류 과학계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일이므로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의식 문제에 대해 나름 유연한 태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컨대 그 이유는 고정된 모델을 바탕으로 실험을 통해 이론을 입증해야 하는 연구자로서가 아니라 다양한 환자들과의 교류를 바탕으로 인간 의식의 원초적인 모습을 관찰했던 의사로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리라. 이런 저자의 입장은 다음에 잘 표현되어 있다. 역동적으로 흐르는 의식은 다양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가장 낮은 수준에서는 능동적으로 연속적인 바라보기 및 탐색하기를 허용하고, 가장 높은 수준에서는 현재와 과거의 지각 및 기억의 상호작용을 허용한다. 에덜먼은 뇌는 하늘보다 넓다: 의식이라는 놀라운 재능에서 이러한 의식을 1차의식(primary consciousness)이라고 불렀다.......우리 인간은 언어와 자의식, 과거와 미래에 대한 뚜렷한 감각을 발판으로 하여 비교적 단순한 1차의식에서 고차의식, 즉 인간의식으로 도약했다. 인간의식은 모든 개인의 의식에 주체적으로나 개인적인 연속성을 부여한다.(196) 강물처럼 흐르는 의식의 연속성이란 우리가 스스로 불연속적인 의식에 부여한 속성이다. 

 

이상 간단하게 살펴본 것 외에도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양한 주제마다 세 사람의 이론이 배경에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저자는 평생 이들 세 사람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거듭 말하지만 필자가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저자인 올리버 색스가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거나 수많은 임상 경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밝혔기 때문이 아니다. 필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마지막 열정을 쏟아 부을 대상으로 책을 선정한 후 자신의 사후에 완성될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올리버 색스의 인간적인 면모에 매료되었기에 이 책에 대한 리뷰 형식을 빌려 소개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