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첼로 마시미니·줄리오 토노니의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
저자: 마르첼로 마시미니(Marcello Massimini)·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
역자: 박인용
출판사: 한언(2018)
차례
제1장 손바닥에 놓인 뇌
제2장 의문이 생기는 이유
제3장 가둬지다
제4장 미리 알아두어야 할 사항
제5장 열쇠가 되는 이론
제6장 두개골 안을 탐색해보자
제7장 수면·마취·혼수-의식의 경계를 잰다
제8장 세계의 의식분포도
제9장 손바닥에 들어오는 우주
■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이 책의 공저자 마르첼로 마시미니와 줄리오 토노니 가운데 토노니에 대해서는 익히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 ITT)의 창시자로 알고 있었지만 마시미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아마 두 사람 모두 이탈리아인이면서 같은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었기에 일찍부터 공동 연구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쓴 논문도 몇 편 있다.
이 책은 의식(consciousness)과 관련된 가장 과학적 이론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통합정보이론의 탄생 과정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 책이다. 이 이론은 위스콘신 대학교의 정신과 교수이면서 수면과 의식 연구 전문가인 신경과학자 줄리오 토노니가 2004년에 제안한 이론이다. 이 이론이 등장한지 얼마 안 돼서 널리 알려진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가 연구에 합류해 이 이론의 입지가 더 견고해진 것 같다. 마르첼로 마시미니 또한 토노니와 계속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2018년에는 토노니와 공저한 『Sizing up consciousness』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이 세 사람은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통합정보이론을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업그레이드 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 통합정보이론 3.0 단계에 있다고 한다.
필자 생각에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의 신경상관물(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에 관한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크리스토프 코흐의 연구를 더욱 발전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의식의 신경상관물이란 “특정한 의식 상태와 관련된 최소한의 충분한 신경 메커니즘, 즉 신경세포들의 최소 집단”을 의미한다. DNA 공동 발견자인 크릭은 작고하기 전 20여 년 동안 젊은 신경과학자가 크리스토프 코흐와 함께 의식 연구에 매진했다. 그리고 신경상관물 연구에 공감해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대표적인 인물로는 197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생물학자 제럴드 에덜먼(Gerald Edelman)을 들 수 있다. 에덜먼 또한 젊은 신경과학자 토노니와 함께 연구했는데 언젠가는 크릭과 코흐를 자신의 연구소로 초대해 공통 관심사에 대해 오랫동안 대화한 적이 있다. 그는 저서 『뇌는 하늘보다 넓다』에서 의식 연구에서 신경상관물이 갖는 의의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신경상관물이나 통합정보이론과 관련해 에덜먼은 상당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의식은 전적으로 뇌의 산물이라고 믿는 전형적인 환원주의자로서 『뇌는 하늘보다 넓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식에 대한 적절한 이론을 전개하려면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충분히 이해해야 하고, 그럼으로써 가령 인지나 기억같이 의식에 기여하는 현상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만일 이러한 현상들이 인과적으로 연결된다면 실험적 방법을 통해 그것들이 의식에 연결될 수 있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이것은 의식과 신경의 상관성을 밝혀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와 같은 에덜먼의 학문적 입장이 토노니에게 그대로 전수되어 통합정보이론을 제안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학문적인 계보를 고려할 때 코흐가 토노니의 이론을 지지하고 나선 배경은 충분히 수긍이 간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인과관계란 특정한 의식 상태를 초래하는 특정한 신경 메커니즘 또는 특정한 신경세포들의 집단 간의 관계를 의미한다. 엄밀하게 말해서 이들 간에 성립하는 것은 상관관계이지 인과관계라 할 수 없다. 토노니는 이 책을 비롯해 다른 곳에서도 신경세포의 활동이 선행한 후 이와 결부된 의식 상태가 발생하기에 이들 간에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시간적으로 A라는 현상이 선행된 후 B라는 현상이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인관관계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예컨대 비가 온 후에 주가가 하락했다고 해서 비가 원인이 되어 주가 하락이라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이치다. 필자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의식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는 많은 전문가들인과관계와 상관관계의 차이점을 가볍게 취급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뇌의 특정 부위에 문제가 생기면 특정 의식 활동이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뇌가 의식을 산출한다. 따라서 이들 간에는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이지만 이는 논리의 비약이다. 통합정보이론도 이런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은 이야기 전개 방식이다. 두 저자는 자신들의 의대생 시절 처음 뇌를 접하면서 느낀 놀라움으로 인해 뇌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서 평생 뇌를 연구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것으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토노니는 다른 책 『파이: 뇌로부터 영혼까지의 여행』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봐 나름 글 솜씨를 겸비한 과학자로서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언급할 점은 닐 암스트롱을 비롯해 달 탐사를 했던 우주비행사들이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느꼈던 경외심과 자신들이 해부학 시간에 처음 뇌를 접했을 때의 놀라운 느낌을 연결시킨 것이다. 이들에게 뇌는 그 정도로 신비스러운 물체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특별한 점을 발견했다. 다름 아니라 저자들이 우주비행사의 경외심을 환원주의적 관점에서 뇌를 탐구하려는 자신들의 호기심과 연관시킨 것과는 반대로 린 맥태거트(Lynne Mctaggart)는 저서 『필드』에서 다른 우주비행사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이 지구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신비로운 느낌을 우주 만물이 양자에너지장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전일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이런 상반된 해석은 오늘날 주류 과학의 패러다임(환원주의)과 이에 반기를 든 새로운 패러다임(전일주의) 간의 대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이 부분을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몇몇 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가졌던 느낌을 인용했다. 그 가운데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한쪽 눈을 감으면 지구의 모습이 엄지 손가락 저편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거인이 됐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나 자신이 매우 보잘 것 없다고 느꼈을 뿐이다.”(18쪽) 그러면서 이런 느낌이 자신들이 환원주의적 방법으로 뇌를 통해 의식 문제에 접근하기로 결심했을 때의 느낌과 유사한 것처럼 묘사한다.
한편 린 맥태거트는 『필드』에서 에드가 미첼의 느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때, 미첼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것은 ‘연결’ 느낌이었는데, 모든 행성과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망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모든 사람과 그들의 의도와 생각, 그리고 모든 시대에 존재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연결하는 어마어마한 역장(force field)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33쪽) 미첼은 우주와 하나가 되는 자신을 발견했으며 이는 결코 환원주의적 관점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이것은 절묘한 대비라 아니 할 수 없다. 우주비행사들이 가졌던 일종의 경외감이 저자들에게는 환원주의적 방법에 입각해 뇌를 연구하게 된 동기를 부여했던 반면 린 맥태거트에게는 우주 만물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제공했다. 이것은 다분히 역설적이지만 인간은 동일한 현상을 반대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그런 존재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이런 역설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자신의 생각, 자신의 연구만이 옳다는 독선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한다.
아무튼 두 저자는 이 책에서 정보의 관점에서 의식과 뇌의 관계를 다루면서 일체 복잡한 수학적 설명을 배제한 채 일반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 점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인간의 뇌를 비롯해 모든 동물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인공지능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명제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필자는 은연중에서 인간을 “정보 처리 기계”로 묘사하는 데 현재 과학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본다.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기계로 간주하는 사고방식은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라는 뉴턴식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은 인간을 “정보 처리 유기체(information-processing organism)”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들이 인간을 “정보 처리 기계”의 관점에서 접근한 데는 동의하지 않지만 의식 현상을 정보의 관점에서 접근한 것은 나름 의미 있는 시도라고 본다. 토노니는 기존의 의식 연구는 환원주의적으로 신경세포로부터 출발해서 신경세포 집단에 대한 연구,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식의 창발 과정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자신은 역으로 다양한 의식 상태로부터 출발해 이와 관련된 신경 메커니즘의 물리적 속성을 파악하고 각각의 정보적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의식의 출현을 설명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방법론적으로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이 책은 이런 방법을 이용해 통합정보이론을 제안하게 된 과정을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설명하고 있다.
■ 의식 연구의 문제점
의식 문제만큼 여러 학문분야가 관련된 문제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는 신경과학, 생물학, 인지과학, 물리학, 심리학, 컴퓨터공학 나아가 종교 및 영성 등 여러 분야가 관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의식에 대한 정의는 실로 다양할 뿐만 아니라 접근방식에도 현저한 차이가 있기에 사실상 학제 간 연구가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었다. 특히 의식 문제에 대한 과학적 접근과 신비주의적 내지 영성적 접근은 공통분모가 전혀 없는 가운데 서로 배타적인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황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과학과 영성이라는 조화하기 어려운 두 분야를 통합해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앞으로 이들 대극적인 두 분야에서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의식 문제에 대한 돌파구가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의식에 관한 연구의 어려움과 관련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식이라는 용어 사용 방법이 망연자실할 정도로 천차만별이며, 그 정의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의식’이란 말은 어느 경우에는 ‘도덕적인 자각’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고 어느 경우에는 ‘자의식’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는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반응할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22쪽) 이와 같이 어떤 관점에서 의식을 이해하는가에 따라 의식에 대한 정의가 천차만별이고, 이로 인해 의식 문제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왔던 것이다. 예컨대 1950년대 하버드대학의 스키너(B. Skinner) 교수가 주도했던 행동주의 심리학은 오직 관찰할 수 있는 행동의 연구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주관적인 의식은 연구 대상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었다. 이런 풍토에서 사실상 의식에 관한 어떤 과학적 접근도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과학적 연구를 위해서는 연구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거나 실험 후 이를 바탕으로 수치화된 데이트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의식 문제는 그렇지 못하다면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반적으로 의식의 과학적 설명이라는 표현에 부합하려면 데이터나 숫자로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 감각적으로 납득할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어야 한다.”(30쪽) 이것은 나름 중요한 지적이다. 저자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데이터(객관)와 감각(주관)이라는 두 대극적인 측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설명이 진정 과학적인 설명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다. 어느 한 쪽만 강조하는 것은 편향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나치게 영성적인 면만 강조하는 것은 주관적인 한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토록 많은 영적 사기가 성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반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객관적인 데이터만 강조하다보면 주체인 인간 자체는 사라지고 오직 데이터만 남는다. 이른바 데이터주의(dataism)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과학인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과학적 발견이 아무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더라도 그 기본 전제는 인류에게 무엇을 기여할 수 있는가에 있다고 본다. 과학자 개인의 지적 유희를 위한 과학은 또 다른 유형의 도그마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의식 문제를 연구하는 경우 이 같은 두 대극적인 측면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깊은 통찰이 요구된다. 우리가 눈으로 외부 대상을 보지만 눈 자체는 볼 수 없듯이 의식을 통해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는 있으나 의식 자체를 알아차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경우에는 이른바 무한 회귀(infinite regression)의 문제가 발생한다.
■ 소뇌 vs. 시상·피질계
인간의 뇌에는 평균적으로 1000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이 가운데 대략 800억 개 정도가 소뇌(cerebellum) 및 이와 관련된 부위에 분포해 있고 나머지 200억 개 정도가 시상(thalamus) 및 대뇌피질(cerebral cortex)에 분포해 있다고 한다. 신경세포의 숫자만 놓고 본다면 소뇌는 인간의 뇌에게 가장 비중이 큰 부위에 해당된다. 그런데 의식 체험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소뇌는 좀비(zombie)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소뇌는 의식 체험에 실질적으로 거의 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뇌는 철학적 좀비(philosophical zombie)에 해당된다면서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철학 분야에서 현대의 이원론이 취하는 입장을 지탱하는 것은 좀비 이론이다. 철학적 좀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철학자 데이비드 차머스 덕에 유명해졌다.......철학자들이 상상하는 좀비란 예절이 바르고 성실하며 겉보기에는 우리와 전혀 분간할 수 없는 존재다. 어떤 의학적 검사나 심리 테스트로도 인간과 철학적 좀비를 분간할 수는 없다. 유일한 차이라면 “철학적 좀비에게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35쪽)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소뇌는 이른바 운동 신경세포들(motor neurons)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몸이 취하는 모든 섬세한 동작을 통제한다. 그리고 외부 자극에 대한 반응의 민첩성은 연습을 통해 강화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웬만해서는 몸의 균형을 잃지 않는 것도 다 소뇌의 활약 덕분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비유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세세한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위를 기울이려고 하면, 늦어지거나 빨라지고 손가락이 매끄럽게 움직이지 않게 되면서 당황하거나 엉뚱한 건반을 누리게 될 것이다. 머릿속에 있는 좀비는 오히려 우리보다 피아노를 훨씬 잘 연주하기에 우리의 개입 따위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좀비는 아주 막연한 지시밖에 들어주지 않는다. 피아노는 단지 하나의 예일 뿐이다.”(45쪽)
그런데 이런 놀라운 기능을 가진 소뇌는 인간의 의식 체험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두 개골 뒤쪽에 있는 소뇌와 뇌반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신경세포들의 커다란 덩어리는 기저핵(basal ganglia)이 철학적 좀비에 해당된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엄청난 좀비를 하나씩 품고 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소뇌의 특징에 대해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것은 저자들이 정보통합이라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하지만 그 소뇌에는 의식이 들어있지 않다. 디지털 카메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름으로만 ‘하나인 것’이기 때문이다. 소뇌가 단일한 존재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올바른 각도에서 보고 알맞은 측정 방법을 취하면 곧 독립된 무수한 요소가 제각기 다른 모양으로 모여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145쪽) 소뇌에는 정보를 통합하는 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인류역사를 통해 이룩한 문명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인간은 실로 경이적인 존재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두뇌로부터 창조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명을 이룩하는 데 소뇌는 직접적으로는 거의 기여한 것이 없는 셈이다. 인간이 움직일 수 잇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간접적으로 기여했을 뿐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능과 감정, 그리고 생각이 제대로 역할을 하도록 하려면 반드시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미 밝혀졌듯이 인간의 대부분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것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다. 자신은 의식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의식이 조종하고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자전거를 타거나 운전을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그러면 무의식이 의식보다 훨씬 중요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에 또 다른 역설이 등장한다. 이와 같이 막강한 무의식도 의식적인 상태가 아니면 아무런 영향을 행사할 수 없다. 의식이 존재하는 경우에 비로소 무의식이 은밀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주인은 의식이지 무의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면 인간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뇌의 부위는 어디인가? 저자들은 이에 대해 분명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뇌간의 신경세포가 활동하기 시작해 눈이 뜨이더라도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사실 자고 일어나서 정신이 들 때 의식이 돌아와 주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 들으려면 뇌간 기능이 회복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뇌간 위에 위치하는, 진화적으로 훨씬 새로운 부위도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그 부위가 바로 수수께끼에 싸인 시스템에 따라 의식의 빛을 가져다준다. 그 부위가 바로 시상과 대뇌피질이다.”(70쪽) 사실 이것은 저자들만의 생각이 아니라 신경과학계의 공통적인 견해다. 의식에 관한 한 가장 중요한 부위는 시상과 대뇌피질이다. 보통 신피질(neocortex)로 알려진 부위다.
이와 같이 시상과 대뇌피질이 의식의 발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동안 이 부위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의식을 산출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해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데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수십 년 전까지는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신경세포가 내는 전기 활동량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말이라면 의식을 비교적 쉽게 측정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fMRI, PET, EEG, MEG 가운데 어느 것이라도 좋으니 계측에 사용하기만 하면 문제는 곧 해결된다.......그러나 현재 그렇게 엿장수 마음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알려졌다. 최근의 연구에 의해 ‘가장 깊이 잠든 단계(REM 수면)에서 서서히 멀어졌다가 완전히 사라졌더라도 깨어있을 때와 동동한 신경세포 활동량이 보인다’는 사실도 드러났다.”(85쪽)
또한 저자들은 프랜시스 크릭과 크리스토프 코흐가 제안한 의식의 신경상관물을 특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의식이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물질적 특성을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외에 신경세포의 동기발화(同期發火) 현상이 주목을 받았지만 이를 근거로 의식의 생성을 설명하는 일관성 있는 모형을 구축하지 못했다. 동기발화란 다양한 신경세포 다발이 동시에 일제히 활동 전위(電位)를 발생시키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이 신경세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전기적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이런 동기발화 현상은 의식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면밀한 검사 결과에 의하면 이것 또한 의식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의식과 동기발화 간에 일대일 대응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그동안 이루어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들은 소뇌와 시상·피질계의 작동방식을 비교한 후 통합정보이론을 제안하하는 배경이 된 중대한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이들의 소감은 다음에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시상·피질계는 의식을 만들어내고 소뇌는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매우 중요한 견해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그 견해는 의식의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우리에게 빛을 던지고 이끌어줄 사실이기 때문이다.”(96쪽) 저자들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으며 이와 관련된 측정 데이터를 바탕으로 통합정보이론을 제안하게 된 것이다.
또한 저자들은 과거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의거해 꿈을 꾸지 않으면서 자고 있는 상태, 즉 숙면 상태에서도 뇌의 전기 활동이 활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한다. “의식이 이처럼 없거나 완전히 사라져도, 그것에 따라 정신활동이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신경세포가 전기 신호를 내는 가운데 뭔가가 바뀐다.......이 현상의 요인이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다. 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경로가 열리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거기서 칼륨이 배출된다. 칼륨은 양이온, 즉 양전하를 띤 원자다. 하지만 ‘단지 칼륨이라는 원자 하나가 튀어나온다고 해서 왜 인간이 느끼는 모든 세계가 사라질까?’같은 수수께끼는 남는다.”(99쪽)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들은 통합정보이론을 제안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오직 칼륨 이온의 작용으로 의식이 사라지거나 생성된다고 설명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철저한 환원주의자는 아닌 것 같다.
■ 통합정보이론의 핵심과 한계
필자가 그동안 공부한 바에 의하면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의 본질과 정도를 설명하는 나름 매우 정교한 과학적 이론이다. 저자들이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듯이 이 이론은 오래된 측정 기술인 경두개자기자극법(TMS)과 뇌파도(EEG)를 업그레이드한 후 이를 활용해 뇌에 자극을 보낸 후 되돌아오는 메아리(echo)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의식의 상태나 정도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이런 면에서 이 이론은 ‘의식을 이용해 의식을 연구하는 것과 의식의 주관적 속성’이라는 의식 연구의 근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지만 의식 연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의식의 격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유전이나 원자의 연쇄반응, 허리케인의 발생이나 그 밖의 자연현상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답은 과학적으로 관찰하려는 자와 의식의 관계에 있다. 사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사실이나 현상과는 달리 의식의 생성 과정은 우리 자신과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107쪽)
필자는 통합정보이론의 타당성 유무를 떠나 과학적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이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식의 과학적 모형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신비체험을 한 현자들의 의식 상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과학적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의 과학적 모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를 바탕으로 일반대중에게 의식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통합정보이론을 간단히 소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는 이 이론에 대한 필자의 이해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이 이론 자체가 나름 엄격한 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수많은 관찰 결과를 해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들은 이 이론을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는데 우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정보통합이론의 기본명제는, ‘어느 신체 시스템은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이 있으면 의식이 있다’라는 것이다.......앞의 문장은 의식에 두 가지 기본적인 특성이 있음을 확인한 데서 얻어진 글이기도 하다. 그 기본적인 특성이란 ‘정보의 풍부함’과 ‘정보통합’이다. 나날이 의식경험이 용솟음치게 하려면 이 두 가지를 빼놓을 수 없다. ”(109쪽) 이 대목에서 저자들이 밝힌 두 가지 사항, 즉 정보의 풍부함(또는 차별화)와 정보통합은 서로 반대되는 속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이 이론의 핵심요소다.
여기서 정보의 풍부함이란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어떤 특정한 하나의 상태를 가려내는 것이 의식 경험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정보이론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정보이론의 창시자인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이 정보의 기본 단위로 정의한 1비트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이는 명백해진다. 왜냐하면 1비트는 동일한 확률을 가진 두 개의 무작위적인 상태들 중 어느 것이 실현될지 아는데 필요한 정보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작위적인 상태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곧 더 많은 정보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보통 특정한 상태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대안이 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가능한 상태들과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즉 단지 흑과 백을 비교한 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것은 의식 상태를 판별하는 데 정보의 풍부함은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필자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한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식경험은 풍부한 정보량으로 유지된다. 즉, 의식경험이라는 것은 무수한 다른 가능성을 독특한 방법으로 제거한 뒤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의식은 무수한 가능성의 목록으로 유지된다고 말할 수 있다.”(115쪽)
다음 저자들은 정보의 풍부함 못지않게 정보통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필자도 정보통합이 더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 정보의 풍부함이 의식의 필요조건이라면 정보통합은 충분조건에 해당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아무리 정보량이 많아도 이들 다양한 정보가 체계적인 방법으로 통합되지 않는다면 단일한 의식 경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이 사용한 비유인 디지털 카메라의 예가 이에 해당된다. 디지털 카메라의 화소가 아무리 많아져도, 즉 정보량이 커져도 이들은 의식을 생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정보를 통합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노트북에 아무리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해도 노트북은 의식을 만들 수 없다. 같은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식경험은 통합된 것이다. 의식의 어느 상태도 단일한 것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의식의 기반도 통합된 단일한 것이어야 한다.”(124쪽)
이와 같이 정보의 풍부함과 정보통합이라는 두 가지 공리(axiom)를 바탕으로 이들은 의식 상태 및 의식 정도를 측정하는 수리적 모형을 제안한 것이며 이를 나타내는 수치를 파이(Φ)로 명명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문자 Φ에서 수직선은 정보를 나타내고 동그라미는 통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앞에서 언급한 공리들에 근거한 통합정보이론의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의식을 만들어내는 기반은 엄청나게 많은 다른 상태를 구별할 수 있는 통합된 존재다. 즉, 어느 신체 시스템이 정보를 통합할 수 있다면, 그 시스템에는 의식이 있다.”(124쪽) 이 대목에서 우리는 통합정보이론이 인간의 의식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동물, 곤충 나아가 기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할 수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이 만물에 의식이 있다는 사고는 범심론(panpsychism)으로 알려진 오래된 철학 사조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중요 쟁점이 될 소지가 있다.
저자들은 통합정보이론을 적용하면 왜 소뇌는 의식을 산출하는 데 관여하지 않고 시상과 대뇌피질이 관여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소뇌를 구성하는 수많은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반면 시상과 대뇌피질을 구성하는 신경세포들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 서로 전기·화학적 신호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소뇌는 정보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은 반면 시상과 대뇌피질은 통합되어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 근본적인 차이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통합된 정보는 실질적으로 시스템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과관계와 동일한 수준에 있다. 인과관계가 특수한 것은 아니다. 즉 다양한 요소를 자극해도 항상 같은 결과가 나온다면 Φ의 값은 낮아진다(즉 정보량은 미미하다). 그리고 각각의 자극에 각각 다른 반응을 보여도 그것이 나머지 요소에 파급되지 않는다면 Φ의 값은 계속 낮다,”(133쪽) 이와 같이 풍부한 정보에 바탕을 둔 차이(차별화)와 이런 차별화를 통합하는 기능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 기능이 어느 정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Φ라는 단일한 정보량의 크기를 통해 평가하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 메시지다. Φ가 0인 시스템은, 그것이 무엇이든, 의식이 없는 것이다. Φ가 작으면 의식의 정도가 낮고, Φ가 크면 의식의 정도가 높은 것이다.
한편 저자들은 이 책에서 Φ의 크기를 의식 수준과 연관시키고 있는데 여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들이 측정한 Φ값은 하나의 수치로서 주로 의학적 관점이 많이 반영된 것이다. 예컨대 식물인간 상태에 있는 환자의 경우 이 이론에 따라 측정하면 Φ는 거의 0에 가까운 값으로 확인될 것이다. 반면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Φ가 높게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명상 상태에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일상적인 상태에서보다 Φ가 높게 측정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일관된 대답을 제공하기 어렵다. 명상 방법도 다양할 뿐만 아니라 명상의 깊이도 다른데 이 모든 요인들이 하나의 수치인 Φ에 압축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저자들은 명확하게 언급하지는 않고 있지만 필자 생각에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Φ값의 의미를 해석하면서 의식 수준의 차이를 나타낸다는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본다. 저자들 말대로 Φ는 통합적 관점에서 정보량을 측정하는 것이지 정보의 질, 즉 의식 수준을 측정하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들이 이 부분에서는 다소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대목이 여럿 눈에 띠었다. 이는 이 책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다.
■ 통합정보이론과 의식의 국소성 문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필자는 저자들을 포함해 의식의 과학적 이론 모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들은 과거 많은 과학자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에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알베르트 아이슈타인이 강조했던 “순수한 호기심(pure curiosity)”이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들이 제안한 통합정보이론의 일부 내용만 살펴봐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필자가 진정 아쉬워하는 것은 왜 이들은 “뇌가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명제에 대해 일말의 의심도 품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통합정보이론도 이 명제를 확인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것은 의식은 오로지 뇌의 산물이므로 뇌가 기능을 중지하면 의식도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이 이론 또한 의식의 국소성(locality)을 지지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 관점에서 의식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2013년 미국과 유로존에서 동시에 추진한 브레인 프로젝트는 뇌의 역설계와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 이른바 코넥텀(connectum)에 대한 연구를 통해 뇌에 관한 모든 것을 규명하려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이런 연구가 완결되면 의식에 관한 대부분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완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브레인 프로젝트가 종료되어도 이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면 왜 이들 수많은 연구자들은 의식의 비국소성(non-locality)의 가능성에 대해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의식의 비국소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연구비가 지원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현재의 주류 패러다임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뇌의 특정 부위가 망가지면 특정한 의식 활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인과관계의 관점에서 수용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베르니케 영역이 망가지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 브로카 영역이 망가지면 본인이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긴다. 후배엽의 신경세포에 이상이 생기면 이미지를 생성하지 못한다. 측두엽에 문제가 생기면 환각 현상이 발생한다. 치매에 걸리면 기억을 잃는다. 이런 모든 현상들은 뇌가 의식을 만들어낸다는 신념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뇌의 국소성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은 뇌는 TV 수상기나 휴대폰과 같은 기능을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들에 의하면 뇌는 의식을 만드는 기관이 아니라 의식의 수신기 내지 필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TV 부품 중 일부가 망가지면 화질이 나빠지거나 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특정한 의식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필자가 보기에 이런 주장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주류 과학자들은 이런 주장을 그냥 무시해버린다. 마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이런 태도를 전문적인 용어로 “benign neglect”, 즉 “상냥한 무시”라고 한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 태도라 할 수 없다. 기존의 견해와 상반되는 증거나 자료가 드러나면 이를 검증하는 것이 과학적 태도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제시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을 적용해서 철저하게 검증한 후 기존 이론이 점점 쌓이고 있는 이례 현상(anomaly)들을 설명할 수 없다면 이론을 수정하는 것이 올바른 과학적 태도라 할 수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의식은 뇌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의식의 비국소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들이 많이 축적되었고 이를 설명하려는 다양한 이론들이 제시되었다. 그런 증거로는 비일상적 의식상태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 예컨대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체험에 관한 연구 결과라든가 전생을 기억하는 아이들에 관한 연구, 텔레파시나 원격 투시, 예감 등 초감각지각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을 설명하려는 시도로는 생물학자 루퍼트 셸드레이크가 주장한 형태형성장(morphogenetic field)이론, 시스템 철학자 에르빈 라슬로가 주장하는 정보장(information field)이론이라든가 분석심리학자 칼 융이 제안한 동시성(synchronicity) 개념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지금 의식의 국소성과 비국소성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은 결론을 내리기에 시기상조라고 본다. 아마도 의식 문제는 과학의 가장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의식을 배제한 어떤 이론도 최종 이론이 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저자들도 이 점은 인식하고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우주를 관찰할 때 질량, 전하, 에너지량만 계측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함으로써 광대한 우주에 거대한 집합체가 있는 것을 봐왔다. 그 커다란 존재를 앞에 둔다면 우리 자신은 보잘것없는 먼지처럼 보인다.......의식 이론이 옳다는 가정 하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언젠가 다른 기본적 성질을 재는 것과 같은 정도로 Φ값을 측정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 눈앞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인간(그리고 그 밖의 것)의 복잡한 의식이 빛나는 이 장소에서 우주는 더욱 커다란 존재가 된다.”(276쪽)
이와 같이 저자들도 우주적 차원에서 의식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통합정보이론의 가능성에 대해 뭔가를 시사한다. 현재로서는 이들의 이론은 정보량을 중심으로 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반응을 측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물리학자 존 휠러가 남긴 “만물은 정보다(Everything is information)”라는 명제에 공감하고 있다. 정보는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생명의 탄생 및 의식의 본질 나아가 우주의 근본 요소라는 맥락에서도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따라서 정보를 배제한 가운데 의식 문제에 대한 대답을 구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정보이론은 발전시킬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중요한 장애 요인이 존재한다. 저자들은 이것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의식과 정보의 근본적인 관계에 관한 것이다.
정보는 왜, 누가 필요로 하는가? 정보는 의식 있는 존재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요소다, 이것은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동물부터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통합적으로 측정해 의식의 정도를 측정한다는 생각은 순환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부연하자면 의식적 존재 → 정보 획득 → 선택 및 행동 → 의식 강화 → 정보 획득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정보보다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활용한다는 아이디어에는 다분히 패러독스가 내재되어 있다. 이른바 자기참조 패러독스 말이다. 저자들이 이 점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의외다. 아니면 필자의 오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