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경영학 분야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21st Century)』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4-01 15:46
조회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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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역자: 장경덕

출판사: 글항아리(2014)

 

  

목차 

제1부-소득과 자본

제1장 소득과 생산

제2장 성장-환산과 현실

제2부-자본/소득 비율의 동학

제3장 자본의 변신

제4장 구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제5장 자본/소득비율의 장기적 추세

제6장 21세기 자본-노동의 소득분배

제3부-불평등의 구조

제7장 불평등과 집중-기본적 지표

제8장 두 개의 세계

제9장 노동소득의 불평등

제10장 자본소유의 불평등

제11장 장기적으로 본 능력과 상속

제12장 21세기 글로벌 부의 불평등

제4부- 21세기 자본 규제

제13장 21세기를 위한 사회적 국가

제14장 누진적 소득세를 다시 생각한다

제15장 글로벌 자본세

제16장 공공부채의 문제

결론

 

    

 

<북 리뷰: 불평등의 관점에서 본 자본주의의 미래>

★ 주류 경제학과 불평등의 문제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수 세기에 걸친 방대한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소득과 자본(부)의 불평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프랑스 경제학자이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이 책은 여러 전문가들이 협력해 오랫동안 연구한 성과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사실 주류 경제학에서는 불평등 문제를 철저히 무시해왔다.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파 경제이론에 의하면 시장경제에서 모든 것이 시장가격을 통해 조절되므로 분배 문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이 점은 1995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시카고대학교의 로버트 루카스(Robert Lucas, Jr.) 교수가 불평등의 문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한 발언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 책 이전에도 불평등 문제를 다룬 책이 다수 있었다. 필자가 읽어 본 것 중 대표적으로는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 교수의 『불평등의 대가』(2013)와 스튜어트 랜슬리(Stewart Lansley)의 『우리를 위한 경제학은 없다』(2012)를 들 수 있다. 전자는 주로 정치적 맥락에서 과도한 지대추구행위로 인한 불평등을 다루었던 반면, 후자는 대체로 1980년대 영미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채택된 이래 불평등이 악화된 원인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글로벌 차원에서 불평등 문제를 다룬 이 책이 상대적으로 더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이 방대한 실증 자료를 객관적인 방법으로 분석한 후 자본주의의 미래를 위한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저서들에 비해 훨씬 더 큰 규모의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 받을 만하다. 나아가 저자의 가장 큰 공헌은 불평등 문제를 다시 경제학의 주요 관심사가 되도록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반전시킨 데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불평등 문제는 모든 나라에서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중차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 자본의 귀환과 세습 자본주의의 정착: 자본수익률(r)과 경제성장률(g)의 동학 

저자는 이 책에서 간단한 논리를 바탕으로 방대한 자료를 분석한 후 자본주의 전개과정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위상, 그리고 자본축적의 동학과 치명적인 내적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물론 논의의 전개 과정이 지나치게 서술적이고 때때로 중복적이라는 면에서 읽기에 다소 불편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자본주의가 21세기에도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면, 자본주의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놓을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의 근간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부분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주장과 동일하다. 따라서 인류는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글로벌 차원에서 자본주의의 진로를 수정해야만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 책의 핵심은 저자가 자본주의 제1 기본법칙(α = r × β)과 제2 기본법칙(β = s/g)이라고 명명한 두 가지 기본법칙에 입각해 역사적으로 전개된 자본축적의 동학을 설명하는 데 있다. 여기서 α는 자본소득분배율, β는 자본/국민소득 비율, s는 저축률, g는 경제성장률을 나타낸다. 이 두 기본법칙으로부터 α = r × β = r×s/g가 유도된다. s가 대체로 안정된 범위 내에서 변동하므로 결국 자본소득분배율 는 주로 r과 g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자본/국민소득 비율을 나타내는 β가 장기적으로 s/g로 수렴하는 이유는 “해로드-도마의 경제성장 모델”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채택한 유일한 이론 모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단순히 수 세기에 걸친 여러 나라의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불평등의 전개과정을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방식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상황을 간단한 공식을 통해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이것은 저자가 지적한 데로 칼 마르크스가 아무런 자료 없이 단순한 추측에 입각해 자본주의의 미래를 전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방법이다. 나아가 당대의 대표적인 소설가인 프랑스의 오노레 드 발자크와 영국의 제인 어스틴의 작품을 통해 부와 소득의 불평등의 실상을 실감 있게 묘사한 것 또한 저자의 인문학적 역량을 보여준 것으로서 신선한 느낌을 준다.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역사적으로 r > g라는 관계가 항상 성립했으며 이로 인해 자본축적이 극한으로 치달아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것이 역사적으로만 검증할 수 있는 명제라고 주장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r > g가 반드시 성립할 수밖에 없는 철칙(鐵則)인지는 이론적으로 규명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민경제에 있어서 기술 수준, 노동의 생산성, 저축률 그리고 대체탄력성 등이 상호 작용하는 가운데 평균적인 r과 g가 결정된다고 보면 이들 간에 일정한 법칙이 성립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r과 g의 관계를 단순히 역사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물론 이 법칙은 국민경제에 따라 다른 특성을 보일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는 앞의 부등식과 반대로 r < g인 경우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가 지적했듯이 장기적으로는 이런 관계가 지속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r > g의 관계를 회복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을 저자는 자본의 귀환이라 불렀고, 이를 바탕으로 세습자본주의가 정착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이상 간단히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가 부와 소득의 불평등에 관해 내린 결론은 예상했던 것보다 자본의 위력이 더욱 강해지고 있으며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21세기 말에 자본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위기의 원인은 소득과 부의 불평등의 심화다. 여기서 저자는 소득의 불평등은 노동소득의 불평등, 자본소득의 불평등 그리고 이 두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인한 불평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이들이 미치는 영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자본소득은 항상 노동소득보다 불평등하게 분배되어왔다. 이것은 그만큼 자본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으며 동시에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비롯해 다른 지표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던 사실을 반영한다.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그다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에 있다. 물론 1980년대 이후 영미권에서 슈퍼경영자가 등장해 노동소득의 불평등도 더욱 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글로벌 차원에서 볼 때 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여전히 자본과 관련되어 있다. 슈퍼경영자의 경우 상상을 초월하는 막대한 소득을 바탕으로 결국 자본가로 변신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경우에도 스톡옵션을 비롯한 자본소득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방대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저자의 분석은 궁극적으로 r > g라는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모순으로 귀착된다. 1700년대 이래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역사적 자료에 의하면 r은 대체로 평균 4% 안팎에서 변동했던 반면 g는 평균 1%를 넘은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성장이 불가피한 미래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이런 추세는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 자체가 몰락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의 귀환’, 즉 사회적 국가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스웨덴을 비롯한 북구의 복지국가 모델의 다른 이름으로서 GDP대비 정부예산이 40%이상을 차지하는 국가를 말한다. 이런 국가만이 실질적인 의미에서 불평등을 완화하는 복지정책을 실시할 수 있으며 이들 정부 간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를 실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한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만이 기존의 누진적 소득세와 누진적 상속세와 상호보완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가운데 자본의 불평등을 완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과세제도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한 것 대부분을 수용하면서도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현재 글로벌 경제에서 국제금융자본이 갖고 있는 경제적 위력에 대해 비중 있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금융자본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일부 언급하기는 했지만, 금융자본이 자본주의의 미래에 미치는 가공할 영향력을 감안할 때 금융자본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진지한 논의 없이 자본주의의 미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또한 저자가 자본의 무한축적을 저지할 수 있는 유일하고 바람직한 대안으로 제시한 누진적 글로벌 자본세의 아이디어에는 공감한다. 혁명적인 방법을 배제한다면 현실적으로 조세제도만이 소득 및 자본의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차원에서 이 방법을 실행하는 데는 실질적으로 장애 요인이 너무 많다. 이 정책을 실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보인다. 저자도 이를 알고 있기에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으로서 역할을 기대한다는 취지에서 언급했다고 본다. 뚜렷한 대안을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누진적 자본세보다는 실행 가능한 다른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로버트 쉴러(Robert Shiller)가 『새로운 금융시대』(2013)에서 언급했던 “불평등 연계 세제” 같은 정책이다. 이 정책은 불평등의 정도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세제도를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렇지만 어떤 정책을 채택하던 과세의 측면과 인센티브의 측면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테면 국제 빈곤퇴치 기금을 만들어 여기에 기부한 부자나 기업에 대해서는 감세 또는 면세 특권을 제공함과 동시에 국제기구에서 글로벌 차원에서 명예의 전당을 만들어 거기에 헌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하지만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실행 가능한 방안을 도출하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한 시점이다. 

 

 

<참조 사항: 첨부파일과 관련 저서에 관하여> 

•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 신드롬”을 일으켰다. 경제학 분야에서 한 권의 책이 이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근래 보기 드문 일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불평등이 지적되기는 했지만(대표적으로는 라구람 라잔의 『폴트라인』(2011)을 들 수 있다), 별다른 쟁점으로 부각되지 못한 채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러다가 이 책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불평등 문제가 다시 글로벌 경제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되었다. 이 책으로 인해 주류 경제학도 더 이상 불평등 문제를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경제학은 주류인 신고전파경제이론과 같이 정치적 측면을 완전히 배제한 채 논리적 일관성만 추구하는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경제학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필자도 그의 생각에 동의한다. 신고전파 경제이론을 오랫동안 가르쳐온 입장에서 신고전파 경제이론에 더 이상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신고전파 경제이론은 불평등 문제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직접 확인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필자는 각 장의 핵심 메시지와 이에 대한 코멘트를 중심으로 파일을 만들었으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첨부파일을 참고하기 바란다.

 

• 토마 피케티의 저서가 대단한 업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불평등 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불평등 문제는 실로 복잡한 문제다. 이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서는 소득과 부의 공정한 분배에 관한 정치철학적 논의,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사유재산의 범위와 한계에 관한 합의, 정부 개입의 정당성에 관한 논의,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법적·철학적 논의,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공동선에 관한 합의 등 실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어떤 시도도 반드시 역풍을 맞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평등 문제는 각 사회의 문화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불평등의 정도”에 관해 충분히 논의한 후 다수가 수용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용인할 수 있는 불평등의 정도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논의가 전무한 실정이다. 이런 기준도 없이 어떻게 불평등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 토마 피케티의 저서 이후 불평등 관련된 많은 책들이 출간되었다. 물론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 앞서 불평등 문제를 다룬 좋은 책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들 수 있다. 피케티의 저서는 대체로 방대한 실증자료 분석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반면, 스티글리츠의 저서는 주로 미국의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을 정치적 타락과 지대추구행위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두 책의 한계를 넘어서 이론과 실증적인 면을 모두 망라한 가운데 불평등 관련된 쟁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대안을 제시한 앤서니 앳킨슨(Anthony B. Atkinson)의 『불평등을 넘어』(2015)는 주목할 만하다. 사실 피케티나 스티글리츠 교수보다는 앳킨슨 교수가 불평등 논의의 대부(代父)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그의 위상은 독보적이다. 또한 피케티 저서 출간 이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이 분야의 책으로는 류이근 기획의 『왜 자본은 일하는 자보다 더 많이 버는가』(2104), 김공회 외의 『왜 우리는 더 불평등해지는가』(2014)도 읽어볼 만하다. 그리고 YouTube에서 불평등 관련 많은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다음 링크의 동영상을 추천한다: https://youtu.be/Si4iyyJDa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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