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What Money Can't Buy)』
저자 :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역자 : 안기순
출판사 : 와이즈베리(2012년)
목차
서론 : 시장과 도덕
1장 : 새치기
2장 : 인센티브
3장 : 시장은 어떻게 도덕을 밀어내는가
4장 : 삶과 죽음의 시장
5장 : 명명권
<북 리뷰: 시장논리와 도덕논리의 충돌에 대해>
★ 책의 개요
이 책은 마이클 샌델 교수가 정치철학자의 관점에서 쓴 시장만능주의(시장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서다. 어느 분야에서나 근본주의자 내지 만능주의자들의 교만과 과신이 문제다. 시장원리가 전통적인 시장의 영역을 넘어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는 이런 현상을 그대로 방치해야 하는가, 아니면 이에 대해 도덕적 잣대(규범)를 가지고 평가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하는가에 대해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이용해 진지한 질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시장원리와 도덕원리가 서로 충돌하는 경우 상황에 따라 어떤 원리를 우선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다는 점에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제기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장에서의 경제활동도 상당부분 정의의 문제와 무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시장원리를 결혼, 이혼, 범죄 및 출산 등 비경제적인 분야로 확대 적용한 대표적인 인물은 시카고대학교의 경제학 교수였던 게리 베커(Gary Becker)다. 과거에는 경제학의 영역 밖에 있었던 이런 문제들에 경제논리를 적용시켜 분석한 공로로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거의 모든 분야에 시장원리가 적용될 수 있는 풍토를 만든 장본인으로 존경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다. 그가 이와 같이 경제논리를 확대•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선택은 궁극적으로 비용-편익 분석이라는 하나의 원리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비용-편익 분석은 경제학에서는 금과옥조에 해당한다.
문제는 비용-편익 분석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 원리를 적용함으로써 원래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저자도 이 점을 집중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시장이 도덕의 영역을 침범함으로써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지적한 생명보험시장의 사례는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누군가 일찍 죽어야 자신이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현실은 시장원리가 어떻게 도덕과 규범을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샌델 교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시장원리가 확대, 적용됨으로써 도덕이 파괴되거나 기준이 변질되는 데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상업화라고도 불리는 이런 현상은 시장논리에 의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시장만능주의에 일대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도덕적 관점에서 시장논리를 비판한 대표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 시장논리와 도덕논리의 충돌: 갈등과 대안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한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는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시장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하는 점은 저자는 시장경제와 시장사회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상호이익이 되는 거래를 통해 모든 사람의 복지를 증진시킨다는 시장원리는 반박하기 어렵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을 초래한 원동력이자 현재 많은 사람들이 누리는 경제적 풍요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장사회는 다른 문제다. 이 둘의 차이에 대해 저자는 “시장경제는 생산 활동을 조직하는 소중하고 효과적인 도구다. 이에 반해서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에 스며들어간 일종의 생활방식이다”(29쪽)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장사회에서는 시장논리로 인해 비시장적 규범이 파괴되고 도덕이 무너지는 사례가 발생한다. 이것은 결국 시장경제 자체의 발전에도 장애가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돈을 받고 하는 대리 줄서기와 같은 간단한 문제부터 금전적 인센티브와 같이 현재 모든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제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시장논리가 어떻게 비시장 규범, 즉 도덕원리를 침해하는지 논의한다. 예컨대 놀이공원이나 병원, 청문회 등에서 돈을 받고 대신 줄을 서는 방식은 시장논리에 의하면 효율적이지만,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점은 전용도로 통행권 판매나 암표 판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필자는 한때 전용도로 통행권 판매가 갖는 긍정적인 면을 지지한 적이 있었는데, 저자의 주장을 접하고 보니 도덕적 측면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류 경제학이 주장하듯이 시장은 도덕과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 책의 2장에서 다룬 인센티브의 문제다. 사실 인센티브 제도는 시장경제의 본질적인 구성요소는 아니었다. 이 말은 애덤 스미스 이래 시장은 개인의 이기심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는 자생적인 시스템으로 간주되었지,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으로 인식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경제 패러다임에 큰 변화가 일어나 인센티브와 시장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간주된다. 사람은 인센티브에 반응하고 경제학은 인센티브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까지 말한다. 심지어는 인센티바이즈(incentivize;인센티브화하다)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날 정도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제학 교재의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의 책에서도 이런 식으로 인센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거의 모든 분야에서 통용되는 인센티브 제도는 금전적 보상을 기본으로 한다. 특정 분야(단순 노동과 같은 비창의적인 분야)에서는 금전적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입증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효과를 맹신해 이 제도를 지나치게 확대·적용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내재적 동기를 감소시켜 예상치 못한 부작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다는 다양한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 책에서는 대표적인 사례로 어린이 집에 늦게 도착하는 부모에 대한 벌금 제도, 자발적인 헌혈대신 혈액 시장을 통한 혈액 공급 문제 그리고 스위스에서 핵폐기물 처리장 설립 문제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들 경우 모두 금전적 인센티브가 자발적이고 순수한 도덕적 동기를 구축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했다는 공통점을 보여주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우려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측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을 2008년 금융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금융시장의 수많은 사람들이 단기 금전적 인센티브에 미혹된 나머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미증유의 사건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금전적 인센티브 제도를 고안했던 시점에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유감스러운 일이었다.
필자는 시장의 영역이 있고 도덕(규범)의 영역이 있는 데 시장만능주의가 이를 파괴하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에 기본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문제는 시장원리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과연 무엇이 선택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경우 어떻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가이다. 시장은 적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분명 효과적이다. 시장원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박하고 변덕스러운 것만도 아니다. 시장과 도덕(규범)을 조화시킬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보편타당한 기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이라고 본다. 시장원리를 파기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본다.
<참조 사항: 첨부파일과 동영상에 관하여>
• 첨부파일에는 각 장의 핵심 메시지와 필자의 코멘트가 포함되어 있다. 이를 통해 저자가 시장지상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로 그처럼 강한 반론을 제기하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비시장적 규범을 무시한 채 시장논리만을 강조하는 데 따른 부정적인 측면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 www.ted.com 의 검색창에 Michael Sandel을 입력하면 이 책과 같은 제목(What Money can't buy)의 동영상을 볼 수 있다. 샌델 교수 특유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로 이 주제와 관련된 높은 수준의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저자의 이전 저서인 『정의란 무엇인가』와 결부시켜 이 책의 내용을 음미하는 것도 권장할 만하다. 시장과 도덕의 문제는 결국 시장과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