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올더스 헉슬리의 『영원의 철학(The Perennial Philosophy)』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2 19:32
조회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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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역자: 조옥경

출판사: 김영사(2014)

 

 

목차 

01 그대가 그것이다    02 근본 바탕의 성질

03 성격, 거룩함, 신성의 화신    04 세상 속의 신

05 최고의 사랑    06 고행, 비집착, 올바른 생계

07 진리    08 종교와 기질

09 자기이해    10 은총과 자유의지

11 선과 악    12 시간과 영원

13 구원, 해방, 깨달음    14 불멸과 존속

15 침묵    16 기도

17 고통    18 믿음

19 신은 조롱받지 않는다    20 종교로 인해 짓는 죄

21 우상숭배    22 감정에 호소하기

23 기적    24 의식, 상징, 성찬식

25 영적 훈련    26 끈기와 규칙성

27 묵상, 행위, 사회적 유용성

 

 

<북 리뷰: 영원의 철학에 관한 대표 선집>

★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저자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년)는 진화론의 창시자인 찰스 다윈을 적극 옹호했던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로서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대표작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로 잘 알려진 작가이자 철학자다. 헉슬리의 가계(家系)라든가 연보(年譜) 및 작품에 대해서는 이 책의 말미에 수록된 “옮긴이의 글”에 잘 요약되어 있으므로 더 이상 첨언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나아가 영원의 철학에 대한 ‘선집(anthology)’으로서 이 책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짤막하지만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저자의 형 줄리언 헉슬리는 유명한 생물학자였고 이복동생인 앤드루 헉슬리는 생리학자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과학자였다는 점에서 집안 전통에 비추어 영원의 철학을 신봉한 저자는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책과 관련해서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 저자의 뛰어난 지성과 탁월한 문장력에 놀랐다는 점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한 개인이 동서고금을 망라해 ‘영원의 철학’을 체험적으로 느꼈던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많은 현자(賢者)들이 남긴 저작과 글을 모두 섭렵한 후, 그 가운데 주옥같은 글 500여 편을 발췌해 자신의 견해와 함께 분류하고 정리할 수 있었는지 놀라울 뿐이다. 나름 좋은 책을 읽고 정리하는 작업을 시도해 온 입장에서 볼 때 저자의 천재적인 능력과 초인적인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이 난해하고 수준 높은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역자(譯者)의 노력에 대해서도 찬사를 아끼지 않고 싶다. 사실 뜻을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들이 간혹 있기에 영어 원전을 구입해 번역서와 대조해 본 결과, 역자의 번역이 적절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이유는 원래 문장이 복잡한 탓도 있고 영적(靈的)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탓에 저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인 한계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역자의 노력에도 경의를 표하고 싶다. 

 

 

★ 영원의 철학의 의미와 한계 

이 책은 이 분야를 대표하는 선집(選集)으로 손색이 없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감이다. 이 책을 꼼꼼히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인간의 정신세계는 실로 광대무변(廣大無邊)하다는 것이다. 137억년의 역사를 가진 우주에, 그리고 존재할지도 모르는 다른 우주에 인간과 같은 “의식의 스펙트럼”을 가진 생명체가 과연 존재할지 의문스럽다. 특히 이 책을 통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영원의 철학을 체험한 현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더구나 이들이 체험한 경지를 글로 표현하기 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비범한 노력과 헌신을 통해 체험한 바를 글로 남겨 지금 우리가 어렴풋하게나마 그들의 경지를 경험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을 한 구절씩 읽어갈 때마다 조금씩 경건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망외(望外)의 소득이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경건함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아주 오래된, 그러면서도 아직 뚜렷한 답을 얻지 못한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인 의문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의문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바로 영혼의 본질에 관한 의문이다.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는 사실은 곧 스스로 영적(靈的) 무지를 드러내는 일종의 자해행위이기에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런 의문을 공개적으로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모호한 믿음에 의존하기보다는 차라리 의문을 제기하는 편이 솔직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책의 앞머리에서 영원의 철학이란 “사물·생명·마음의 세계에 본질적인 ‘신성한 실재(divine reality)’가 있음을 인정하는 형이상학이자, 인간 영혼에서 ‘신성한 실재와 유사하거나 동일한 무언가’를 발견하는 심리학이며, ‘모든 존재의 내재적이면서 초월적인 바탕(Ground)에 대한 앎’을 인간의 최종 목표로 두는 윤리학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온 보편적인 개념이다”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정말로 영원의 철학의 본질을 요약한 감탄할 만한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고금(古今)의 많은 현자들과 지식인들이 영원의 철학이 지향하는 바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해 온 다양한 명칭들, 궁극의 실재(ultimate reality), 도(道), 하나님, 불성(佛性), 신성(神性), 존재의 근원(ground of being), 브라흐만, 우주의식(cosmic consciousness), 합일의식(unity consciousness), 무한의식(infinite consciousness), 신의식(god-consciousness), 우주심(cosmic mind) 등은 모두 저자의 정의에 의해 하나로 통일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것은 그만큼 저자의 지성과 영성이 상당한 경지에 있음을 대변한다고 하겠다. 

 

이 책의 목차만 살펴봐도 이 책이 결코 평범한 내용을 다루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영원한 철학의 모든 면을 하나하나 분리해 영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이 영적인 세계를 여행하는데 필요한 상세한 메뉴얼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이 가운데 어떤 주제도 가벼운 것이 없다. 일상(日常)을 조금만 벗어나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인가?” “나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등등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면 저자가 여기서 다루는 주제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종교적 전통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인지 다양한 종교적 전통을 포괄적으로 다루면서도 기독교적 전통이 상대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 때문에 저자가 의도한 바를 오해할 가능성은 낮다고 생각한다. 단지 한 가지 명확히 하고 싶은 것은 저자는 처음부터 인간에게는 부정할 수 없는 영적 능력 내지 영성(spirituality)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인간의 본성에는 이런 자질이 원래부터 내재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이 내가 앞에서 언급한 영적 무지를 드러내는 의문이다. 우리의 소망 사고(wishful thinking)가 우리로 하여금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진실로 우리에게는 일반 정신과는 구분되는 영혼이라고 특별한 정신세계가 실재하는지 의문이다. 

 

영원의 철학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려면 인간에게는 영성이라는 실체가 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여기서 영성이란 “자의식에 사로잡힌 에고를 초월하는 더 큰 어떤 신성함이 존재하고 이것과 연결되고자 하는 인간 본래의 타고난 욕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의미의 영성이 인간의 타고난 천성의 일부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적지 않다. 우선 물질주의와 환원주의에 입각한 현대의 주류 과학은 영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성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증거를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아직까지 과학적 방법론을 이용해 영성의 실체를 증명한 경우는 없다. 이것은 마치 동양에서는 당연하게 여기는 현상인 기(氣)는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기에 객관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부분 경험을 통해 기라 불리는 현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물론 과학이 더 발달한 후 더 정교한 측정 기구를 이용해 기란 우리 몸에서 벌어지는 호르몬의 미묘한 작용에 불과하다는 것이 입증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어떤 명백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과학적으로는 무시되지만 경험적으로는 확증된 현상이다.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을 통해 축적된 자료를 최대한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면 이것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는 영성에 관해서도 이와 같은 입장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이성과 감성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점이고, 이것은 심리학, 인지과학 및 신경과학 등을 통해 이미 확립된 것이기에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영성에 관해서 일부 신경과학자들은 종교적 믿음이나 영적 각성 같은 현상도 뇌의 특정 부분(측두엽)의 기능이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벌어지는 현상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어떤 신경과학자는 신헬멧(God helmet)을 고안해 이 장치를 쓰고 있으면 뇌의 특정 부분이 강하게 자극을 받아 비일상적이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영성이 독립된 고유한 실체임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과학적 관점에서는 영성의 본질에 대해 어떤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태다. 그렇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예시하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지 않은 수행자 및 현자들이 영원의 철학에서 지향하는 경지, 즉 근본바탕과의 합일을 체험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들이 체험한 세계는 종교적 전통의 차이, 문화적 차이, 시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같이 같은 경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런 현자들이 경험했던 것들은 기존의 환원주의적 과학 방법론으로는 이해할 수도, 분석할 수도 없는 현상인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다양한 체험들이 모두 공통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 영원의 철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가지고 있는 정신적 한계 내지 의식의 한계 때문은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즉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의식 수준에는 공통의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모두 유사한 체험을 하고 같은 말을 하지만 이것을 궁극의 실재에 대한 부동의 증언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만약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있어 우리가 그것을 신이라 부르던, 무한의식이라 부르던 우리 인간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지에 있으며, 시공간의 제약 하에 있는 인간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한다면 분명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을 가진 존재요 개념일 것이다. 공간적으로 2차원의 한계를 넘을 수 없는 개미는 3차원에 사는 인간의 삶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 역은 가능하다. 인간은 비록 “내재하면서 초월적인 존재”의 희미한 그림자를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지만 그 실체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은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말하는 홀로그램 우주의 개념에 비유할 수 있다. 레이저를 이용하면 2차원의 건판에 어떤 대상의 3차원의 영상을 담을 수 있으며, 그 후 이 건판에 빛을 비추면 3차원의 영상이 재현된다. 이것이 홀로그램의 원리인데, 봄은 우주는 마치 홀로그램 같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건판의 작은 조각을 떼어낸 후 다시 빛을 비추면 여전히 대상 전체에 대한 정보가 작은 건판에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중요한 제약이 있다. 작은 건판 조각을 통해 전체를 볼 수는 있지만 정보의 질은 떨어져 매우 희미한 영상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의 철학은 우리는 전체에서 분리된 존재로서 근본바탕으로 돌아가 근원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바람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이른바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이다. 그러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떨어져 나온 우리는 전체, 즉 근본바탕 내지 궁극의 실재에 대해 불완전한 정보만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전체에서 분리되어있으며 다시 전체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확신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런 이유로 궁극의 실재에 대한 어떤 통일된 이해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살다간 많은 현자들의 체험은 여전히 방황하는 우리에게 희미하게나마 불빛을 제공하고 있다. 이 빛이 비추는 한 우리에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하겠다. 

 

 

<참조 사항: 첨부파일에 관하여> 

이 책의 특징은 저자가 신비체험을 한 동서양의 현자들이 남긴 글에서 발췌한 400여 인용문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인용문 사이에 저자의 고유한 사상을 반영한 주옥같은 문장들이 포진해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첨부파일에는 각 장의 핵심 메시지와 필자의 코멘트가 포함되어 있다. 상세한 내용에 관심 있는 분들은 첨부파일을 참조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