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The Turning Point)』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3-31 01:43
조회
3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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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역자: 구윤서·이성범

출판사: 범양사(2006)

 

  

목차

I. 위기와 변형

1. 사조(思潮)의 전환

II. 두 개의 모형

2.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

3. 새로운 물리학

III. 데카르트-뉴턴 사상의 영향

4. 기계론적 생명관

5. 생의학적 모델

6. 뉴턴적 심리학

7. 경제학의 난국

8. 성장의 암흑 면

IV. 새로운 실재관

9. 생의 시스템적 견해

10. 전체성과 건강

11. 시공(時空)을 초월한 여행

12. 태양시대(Solar Age)로 가는 길

 

<북 리뷰: 문명의 전환을 위한 의식 전환>

★ 저자 소개 및 책의 개요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는 일찍이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The Tao of Physics)』(1975)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물리학자이면서 시스템 이론가요 사상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든 앞의 책을 통해 현대 물리학―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이 동양의 여러 신비주의적 종교 사상과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펼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통찰을 제공한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 책은 시기적으로 볼 때 전작(前作)에 이어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후속작으로 보인다. 저자는 “문명의 전환”에 관한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그간 다양한 분야-생물학, 의학, 심리학 및 경제학 등-에서 이루어진 이론적 발전과 한계를 매우 심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닌데 저자는 이를 바탕으로 각 분야에서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학문적 움직임을 개관한 후 시스템 이론의 관점에서 향후 각 분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분야에 해박한 저자의 지식과 이를 종합해 “문명의 전환”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엮어내는 저자의 식견과 탄탄한 글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이 책이 영어권에서 출간된 것은 1982년이었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2006년이었다. 이 책이 상당히 오래 전에 출간된 것은 사실이지만 필자가 굳이 이 책을 소개하려는 이유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메시지가 아직도 유효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낡은 패러다임을 지양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한다는 일이 그리 어려운 것이다. 카프라가 이 책에 제안한 문명의 전환을 위한 노력이 아직도 결실을 맺으려면 요원해 보인다. 그럼에도 인터넷의 발달 이후 많은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변화가 축적되면 변증법적 논리에 의해 머지않아 새로운 문명이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력과 인내인 것 같다.

 

 

★ 문명의 전환을 위한 의식 전환

정신과 육체, 주체와 객체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데카르트의 이원론(dualism)이 서구인들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된 이후 뉴턴은 이를 더욱 정교한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발전시켰다.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시계 같이 작동하며, 이 원리는 생물과 무생물을 망라한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후 물질주의적 환원주의(materialistic reductionism)가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방법론으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런 세계관으로 무장한 인류는 자연을 인간과 분리된, 철저히 이용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인류는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사고방식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저자는 특히 생물학, 의학, 심리학 및 경제학 분야에 대한 검증을 통해 이러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영문판이 출간된 것이 1982년이므로 벌써 30여년이 지났지만 저자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타당하다는 점에서 저자의 혜안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의 세계관에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분리된 자아의식에 근거한 현대문명에 커다란 전환이 필요하다 점을 강조한다. 사실 문명의 전환은 거대한 담론(談論)이다. 하나의 문명이 다른 문명으로 대체되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넓은 지역에서 동시적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저자는 이런 일이 지금(이 책을 쓸 당시) 벌어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문명의 전환은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을 포괄하는 실로 거대한 변화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문명의 전환에는 패러다임 전환보다 더 긴 시간과 더 큰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예컨대 물리학 분야에서 20세기 초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 등장함에 따라 뉴턴의 역학에 기반을 둔 고전 물리학은, 비록 여전히 중간 크기의 세계에서는 유효하였지만, 사실상 중심에서 주변으로 밀려났다. 그렇지만 데카르트-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일반인들의 의식을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물리학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학문 분야에서 여전히 커다란 영향을 미쳐왔다. 이것은 한번 확립된 가치관 내지 세계관을 수정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보여주며, 나아가 이런 변화가 없으면 새로운 문명이 탄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그동안 생물학, 의학, 심리학 및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 환원주의에 입각한 기계적 세계관이 인류의 진보에 어느 정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이 강화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주의 모든 것들은 분리되어 있고, 기계와 같이 작동하므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작은 부분을 이해함으로써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는 환원주의가 이제는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진단에 입각해 저자는 환원주의를 지양하고 전일적 시각에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저자가 주장하는 전일적 시각은 고대부터 현자들이 주장해 온 신비주의 전통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저자가 주장하는 시스템적 견해와도 같은 것이다. 사실 저자는 시스템적 견해를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없는 것은 이 책이 시스템 이론에 대한 해설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어쨌든 시스템 이론은 저자가 새로운 문명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므로 좀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저자의 최근 저서 『The Systems View of Life』(2014)에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문명의 전환이라는 거대한 담론도 우리 의식수준의 변화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각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경제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경제이론을 구축하고 이를 이용해 현실을 분석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관행이다. 그런데 이런 경제이론은 현실의 심각한 문제인 경기침체나 불평등 등을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해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계론적 세계관이 아니라 유기체적 세계관에 입각한 새로운 경제이론이 필요하다는 증거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놀랍게도 저자의 이런 지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이 점은 특히 에너지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화석원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온 문명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태양 에너지와 같이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지 않으면 커다란 재앙이 올 것을 경고한다. 당시에 이런 주장을 전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자의 선견지명을 엿 볼 수 있다. 저자의 이런 통찰은 의학을 포함한 다른 분야에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명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다룬 저서 가운데 김용호의 『제3의 눈』(2011)과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신성한 경제학의 시대』(2015)가 돋보인다. 김용호의 저서는 새로운 과학과 동양사상을 결합해 인류가 과거의 시선(제2의 눈)으로부터 제3의 눈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자신과 주변 나아가 우주 전체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됨으로써 문명의 전환을 맞이하고 있으며 이것을 더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의 주장은 대체로 형이상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기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구체적인 변화와 연결시키기 쉽지 않다.

 

한편 찰스 아이젠스타인은 구체적으로 화폐, 즉 돈이라는 실체를 중심으로 현재 돈에 기반을 둔 경제에서 분리되지 않고 연결된 자아에 기반을 둔 선물경제(gift economy)를 제안하였다는 면에서는 상당히 실천적이고 구체적이다. 그렇지만 그의 이상적인 아이디어가 실제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낙관적인 견해를 제시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두 저서보다 전에 출간되기는 했지만 카프라의 저서는 분리 의식에서 전일적인 의식을 추구한다는 추상적인 주장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이를 실천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대안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김용호와 찰스 아이젠스타인의 저서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참조 사항: 첨부파일과 동영상에 관하여>

•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 메시지와 이에 대한 필자의 코멘트를 첨부파일에 수록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조하기 바란다. 이 책이 영어로 출간된 것이 1982년인데 당시 저자가 지적한 많은 문제들이 지금도 유효하다. 예컨대 화석원료에 대한 의존을 탈피해 태양 에너지의 시대로 나아가야한다는 주장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 저자가 성장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은 오늘날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저자는 단순히 물리학자가 아니라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는 사상가라 할 수 있다.

 

• 저자의 최근 생각은 저서 『The Systems View of Life』(2014)에 잘 요약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다음 링크의 동영상에서 이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해설해주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동영상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s://youtu.be/If2Fw0z6ux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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