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관련

미세조정 우주(fine-tuned universe)에 관해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12-17 14:21
조회
449

소아시아 지방의 이오니아에 있던 밀레토스라는 도시 출신의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철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천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탈레스는 자주 하늘을 쳐다보면서 연구에 열중하였다. 그 날 저녁에도 전과 같이 무심히 밤하늘을 보면서 산보하고 있었다. 지상의 것은 어느 하나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별을 관찰하느라 정신없이 걷다가 길옆의 웅덩이에 빠졌다고 한다. 겨우 정신을 차려 그곳에서 기어 올라와 일단 집으로 돌아 와 이 사실을 노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 노파는 웃으면서 그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세상 사람들에게 현자라고 일컬어지고 있지만, 자신은 바로 눈 앞의 일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하늘의 이치를 알려고 하는가?"라고.

 

이 일화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뭔가에 몰두하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것도 현실을 완전히 잊고 자신이 궁금해 하던 일에 집중하면 이와 유사한 일이 지금도 벌어질 수 있다.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서 탈레스를 조롱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잠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을 잊고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우주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하면 할수록 참담하고 수치스럽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데 한 표를 행사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모든 정황이 국정문란을 가리키는데 굳이 법리공방을 벌이겠다고 고집하는 행위도 어처구니가 없다.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라면 국민들에게 이정도 고통을 안겼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게 인간적인 도리요 지도자로서의 덕목이다.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느낌을 걷어내고 잠시 새로운 기분을 갖기 위해 전혀 차원이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우주로 관심을 돌려보자. 마치 그 옛날 탈레스가 하늘의 별을 관찰했던 것처럼. 과학자들이 밝힌 바에 의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포함해 다양한 생명체들이 살기 적합하도록 미세조정(fine-tuned)되어 있는 우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를 비롯해 수십 개가 넘는 물리 상수(physical constant)들이 절묘한 값을 갖는 가운데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기에 현재 우리가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중력상수의 값을 비롯해 이들 상수의 값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우리가 사는 우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고 한다. 생명체는 물론이고 그 기초가 되는 입자들(예컨대 산소나 탄소와 같이 무거운 입자들)도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라 한다. 나아가 지구는 태양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이른바 골디락스 지대(Goldilocks zone)에 위치해 있는 것도 우리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다. 태양에 가까운 수성이나 태양에서 먼 목성에는 생명체가 없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연과학은 어떻게(how)”에 대해서는 대답을 추구해왔지만 (why)”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해왔다.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과연 그러할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세상에 대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The most incomprehensible thing about the world is that it is comprehensible)”라고 말했다. 왜 우리의 우주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의 낮은 확률로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어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는지 정말 궁금하다. 아인슈타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도 한 번쯤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전문가나 물리학자의 몫으로 남겨두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은 사람은 호주 출신의 물리학자 브랜던 카터(Brandon Carter)로서 1973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라 불리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은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인류원리란 우주의 관찰은 우주를 관찰하는 의식적이고 지적인 생명체와 양립해야 한다는 철학적 사고다.(The anthrophic principle is the philosophical consideration that observations of the Universe must be compatible with the conscious and sapient life that observes it.)”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린가? 단지 동어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가?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해야만 왜 우주는 미세조정 되었는가와 같은 어려운 질문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인간과 같이 의식이 있으며 지적인 존재가 존재하므로 이것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과연 이것이 우리가 미세조정된 우주에서 살게 된 이유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인류원리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찬반양론이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이렇게 미세조정된 원인은 무엇인가? 아니 원인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인가?

      

이 문제는 너무나 미묘하고도 어려워 현재 누구도 객관적인 증거에 바탕을 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로서는 그저 궁금할 뿐이다. 이와 관련해 토비아스 휘르터와 막스 라우너는 평행우주라는 미친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는가(2013)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1) 우리는 한마디로 엄청 운이 좋았다. 우주를 나타내는 모든 수치는 다른 값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우주는 암흑에 싸인 적막강산이었으리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우주의 로또를 통해 좁기는 하지만 비옥한 토양 위에 착륙했다.

2) 그건 행운이 아니라 필연적 결과다. 미래에 나타날 모든 것의 이론은 자연상수(물리상수를 지칭함)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어째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는지 밝혀낼 게 틀림없다.

3) 우리에게 행운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우주들이 있어서 그 가운데 우리가 살만한 곳이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인류원리가 우리에게 그런 곳을 찾아주었다.

4) 모든 건 운명이다. 어떤 고결한 존재가 세상을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우리의 세상은 더욱 발달한 문명이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산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신의 작품이거나.

 

이 가운데 과연 무엇이 미세조정된 우주에 대한 가장 납득할 만한 설명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3)4). 3)은 물리학의 첨단 이론인 끈이론(string theory)에 기반을 둔 다중우주(multiverse)를 상정한다. 4)는 창조주로서 신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이 두 개는 미세조정된 우주에 대해 정반대의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동영상 두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동영상은 엘러건트 유니버스(2002), 우주의 구조(2005)와 같은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물리학 교수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의 강연을 담고 있다. 그는 끈이론에 입각해 다중우주의 가능성을 설명한다. 두 번째 동영상은 천체물리학자 휴 로스(Hugh Ross)가 창조의 관점에서 미세조정된 우주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린의 TED동영상은 영어와 한국어 자막 중 하나를 선택해 감상할 수 있다. 휴의 동영상은 영어 자막만 이용할 수 있는데 자막이 정확하기 때문에 강연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참담한 현실을 잠시 잊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기원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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