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정치경제학
미국은 전성기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여전히 초강대국으로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경제적,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에 개입하면서 평화유지와 내정간섭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미국의 이익이 우선되어왔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대외정책은 국내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실에 접근하기 어렵다. 미국이 개입했던 여러 사건들을 살펴보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2003년 대량살상무기를 빌미로 한 이라크 침공이나 현재 진행 중인 중국과의 무역전쟁도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친미(親美) 또는 반미(反美)라는 극단적인 입장이 아니라 미국의 정책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용미(用美)다. 친미를 외치거나 반미를 강조해온 세력은 대체로 표면상으로는 국가와 민족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은밀하게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실질적으로 국가의 생존과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는 실용적인 용미가 절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강력한 힘의 원천인 달러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 연방준비제도·브레튼 우즈 체제의 탄생과 달러의 특권
달러는 미국 독립 직후인 1792년 당시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이 제안한 화폐주조법(Coinage Act)을 의회가 승인함으로써 공식적으로 미국의 화폐로 채택되었으니 지금부터 300여 년 전의 일이다. 이후 달러는 중앙은행의 설립 인가 및 취소가 반복되는 가운데 정부 또는 은행이 발행 주체가 되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거쳤다. 그런데 정부가 금화나 은화 같은 주화가 아닌 지폐의 발행 주체가 되었던 것은 링컨 대통령 재임 시절이었던 1861년부터 1865년에 걸친 기간뿐이었다. 남북전쟁에 소요되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발행된 이 지폐는 뒷면이 녹색으로 인쇄되었기에 그린백(Greenback)이라고 불렸는데 금이나 은의 지지를 받지 않고 순전히 정부가 보증하던 화폐였다. 그런데 남북전쟁의 상황에 따라 금과 대비한 그린백의 가치 변동이 매우 심했다. 그렇지만 결국 북군이 승리함에 따라 그린백의 가치는 점차 안정되었으며 1878년경에는 금과 대등한 가치를 가지면서 유통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더 이상 그린백을 발행하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은행과의 갈등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대부분의 기간 동안 은행이 지폐 발행을 담당했으나 금과 은의 보증이 충분하지 않았기에 주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극도로 혐오하는 미국의 전통은 달러화의 발행 및 유통을 둘러싼 정부와 은행 간의 갈등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1791부터 1811년까지 20년간 의회의 승인 하에 미국 제1은행(First bank of United States)이 설립되어 중앙은행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의회의 재 승인을 받지 못해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5년 후 미국 제2은행(Second Bank of United States)이 설립되어 1816년부터 1836년까지 20년간 존속했지만 역시 의회의 재 승인을 받지 못하고 폐쇄되었다. 이후 1837년부터 1862년까지 개별 주(州)의 인가를 받은 은행은 자유롭게 영업할 수 있는 “자유 은행”의 시대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은행은 금이나 은을 바탕으로 화폐를 발행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는데 느슨한 규제로 인해 금융 불안을 초래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졌다. 1797년에는 인가받은 은행이 24개에 불과했으나 1837년에는 712개로 늘어났던 것이 이를 방증한다. 이 시기 은행의 수명은 평균적으로 5년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으니 당시 금융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 기간 내내 인플레이션이 그치지 않았으며 지급불능으로 도산하는 은행들이 빈번했다.
이런 금융 불안을 해소하고자 미국 정부는 1863년 국가은행법(National Banking Act)를 제정해 주 단위를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은행을 개설하는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으며, 이는 1913년 지금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eral Reserve System, 이하 Fed)가 설립되기 전까지 유지되었다. 그럼에도 이 기간 중 은행들은 금이나 은으로 달러의 가치를 보증하는 데 실패하는 사례들이 종종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빈번하게 금융위기가 재발하곤 하였다.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의 역할을 하는 중앙은행이 없는 상황에서금융위기를 조직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이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을 이용해 아메리카를 통제하려는 데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1694년에 설립된 잉글랜드 은행은 왕실과 상인들이 타협으로 탄생한 주식회사 형태의 중앙은행이었으며 1946년에야 국유화되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미국의 독립을 주도했던 조지 워싱턴을 비롯해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과 같은 인사들이 은행가들의 탐욕에 봉사하는 중앙은행의 설립에 반대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제1은행과 제2은행이 단명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1907년에 발생한 금융위기는 전대미문의 파급효과를 미쳤다. 금융재벌 존 피어폰드 모건(J. P. Morgan)의 노력으로 겨우 사태를 수습한 이후 1910년 몇몇 금융인과 상원의원 및 재무부 관료가 조지아 주 연안에 있는 지킬 섬(Jekyll island)에서 극비리에 회동해 새로운 중앙은행 시스템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과 1913년 12월 23일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연방준비법(Federal Reserve Act)에 서명함으로써 현재의 Fed가 탄생했다. 이 법에 의하면 의회가 이사회 의장과 이사의 선임을 승인한 후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를 밟고, Fed의 이익 중 상당부분이 재무부로 귀속되는 등 정부가 소유한 중앙은행이라는 외양을 갖추고 있지만, 실소유주는 민간은행이다. 이런 점에서 초기 잉글랜드 은행과 유사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금융을 통제해 세계를 지배하려는 세력이 Fed를 장악하고 있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킬 섬 회동에 참가한 주역들을 보면 이런 의혹이 들 만도 하다. 이들의 면모를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넬슨 올드리치(Nelson W. Aldrich): 상원의원, 미국 통화위원회 의장,
존 록펠러 주니어의 장인
• 에이브러햄 앤드류(Abrham P. Andrew): 재무부 차관보
• 프랭크 밴더리프(Frank A. Vanderlip): 뉴욕 내셔널 시티 뱅크(National City bank) 총재이며 윌리엄 록펠러와 투자은행 쿤로브(Kuhn, Loeb & Co.)의 대리인
• 헨리 데이비슨(Henry P. Davison): 투자은행 제이피 모건
(J.P.Morgan Co.)의 선임 파트너, 투자은행가
• 찰스 노턴(Charles D. Norton): 뉴욕 제이피 모건 퍼스트 내셔날 은행(First National Bank) 총재
• 벤저민 스트롱(Benjamin Strong): 제이피 모건 뱅커스 트러스트 캄패니(Banker Trust Company) 대표
• 폴 워버그(Paul M. Warburg): 투자은행 쿤로브의 파트너, 영국의 로스차일드 은행(Rothschild Bank)의 대리인
이 명단에는 당시 국제금융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세력들을 대변하는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 록펠러 가문 그리고 모건 가문이 그들이다. 이런 이유로 Fed를 둘러싼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탄생 목적 자체가 최종대부자로서 금융 안정을 도모하는 데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금융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를 안고 있는데, 이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에드워드 그리핀(G. Edward Griffin)의 『The Creature from Jekyll Island』를 참조하기 바란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읽혔던 중국 작가 쑹홍빈이 『화폐전쟁1』에서 언급했던 Fed에 관한 내용은 모두 이 책에 근거하고 있다.
1914년에 시작해 1918년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은 국제정치질서는 물론 국제금융질서에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했다. 가장 주목할 점은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던 영국의 퇴조다.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 금본위제의 폐지와 준비통화(reserve currency)로서 영국 파운드화의 몰락이다. 준비통화는 기축통화(anchor currency) 또는 국제결제통화(international settlement currency)로도 불리는데, 외환보유를 위한 준비자산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제무역의 결제통화로도 사용된다. 이런 이유로 준비통화는 다른 통화들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준비통화의 지위를 그럭저럭 유지했으나 1929년 세계대공황을 계기로 점차 그 지위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1931년 말 기준 세계 외환보유고에서 파운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50%인 반면,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40%로 상승했으며 나머지는 프랑스의 프랑이 차지했었다. 그 당시 달러는 이미 준비통화로서 파운드의 지위를 위협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던 미국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영국을 제치고 세계 1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으며 이 추세는 2차 세계대전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1차 세계대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국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던 반면, 미국은 오히려 전쟁을 계기로 부동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브레튼 우즈 체제(Bretton Woods System)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944년 종전 직전 미국 뉴헴프셔주의 작은 도시 브레튼 우즈에서 44개국의 대표들이 만나 종전 후 국제금융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서 영국 대표로 참석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 Keynes)의 안이 기각되고 미국이 제시한 안이 채택됨으로써 달러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융질서가 확립되었다. 이 모임에서 합의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실시해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시키고 다른 나라 통화는 달러에 고정
• 상하 1% 내에서 조정 가능한 고정환율제를 실시하고 국제수지의 근본적인 불균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그 이상의 변동을 허용
• 국제통화기금(IMF)과 국제개발은행(IBRD)의 창설
• 특별인출권(Special Drawing Right; SDR)의 창출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면서 동시에 가치 안정을 위해 금에 의한 가치 보장을 병행하는 금환본위제도를 실시한 것이다. 이것은 금본위제도의 변형된 형태라 할 수 있다. 당시 사람들의 뇌리에는 통화 가치의 안정을 위해서는 여전히 금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다시 금본위제도로 회귀하는 것이 국제금융질서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는 것도 이런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 금에 대한 집착은 인류의 무의식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사항은 원칙적으로 고정환율제를 채택했다는 점이다. 환율은 한 나라를 대표하는 가격으로서 거시경제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변동성이 커지면 개인이나 기업은 물론 국가 경영이 어려워진다. 환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기업과 정부는 안정적인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 의한 안정적인 환율을 바탕으로 선진국들은 자유무역을 통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평화로운 번영의 시기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는데, 이는 전후 미국의 역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브레튼 우즈 체제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이 더욱 강화된 미국이었다. 준비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는데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한다. 당시 이런 요건을 모두 갖춘 통화는 달러뿐이었으니 달러가 준비통화가 된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 국내경제 규모가 커야한다.
• 국제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 금융시장의 규모가 크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
• 통화의 태환(兌換)이 용이해야 한다.
• 국내 거시정책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달러로 인해 미국이 얻는 이득이 지나치게 큰 데 대한 불만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달러의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1960년대 당시 프랑스 재무장관이었던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탕이 한 말로서 드골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었다. 실제로 드골 대통령은 당시 프랑스가 보유하던 상당액의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미국 정부에 요청했는데, 이는 미국의 특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스위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줄 것을 요청하는 사태로 인해 미국은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주는 정책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이는 곧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으며, 이후 국제금융질서는 요동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달러의 과도한 특권에 대해 살펴보자. 지금도 이를 반박하는 미국 전문가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벤 버냉키 전 Fed 이사장은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가 발행하는 잡지 <BROOKINGS> 2016년 1월호에 수록된 《The dollar’s international Role: “An exorbitant privilege?”》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달러의 과도한 특권은 과장된 것이며 그나마도 최근 상당히 축소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달러의 특권보다 국제 비즈니스와 정치의 공용어로서 영어의 특권이 더 크다고 비유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 지금도 달러는 미국에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지 않다면 미국이 달러의 지위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류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달러의 특권을 논할 때는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필요가 있다. 긍정적인 측면으로 우선 주조수입(seigniorage revenue)을 들 수 있다. 화폐를 발행할 권한을 가진 정부는 일정한 주조수입을 얻을 수 있는데 금본위제도에서는 그 수입이 미미했다. 그러나 정부가 보증하는 법정통화제도에서는 그렇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준비통화인 달러의 경우에는 상당한 주조수입이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미국 정부가 100달러 지폐를 추가 발행하는 데 소요되는 경비는 대략 1달러 정도로 추산되므로 주조수입은 99달러인 셈이다. 반면 100달러를 얻기 위해서 다른 나라가 미국에 재화를 수출하려면 상당한 자원이 소요된다. 미국은 이런 재화를 사실상 거저 얻는 셈이다.
또한 미국은 달러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국채를 발행할 수 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재정적자를 국채를 발행해 충당해왔으므로 낮은 금리로 인한 이득은 엄청나다. 달러는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달러 표시 채권도 그만큼 유리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였다. 문제의 진원지가 미국임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간주되었기에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미국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조기에 금융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를 역임한 국제금융 전문가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은 저서 『달러 제국의 몰락(Exorbitant Privilege)』에서 미국이 해외 부채에 지급하는 이자는 해외 투자 수익률보다 2~3% 낮으므로 미국은 그 차이만큼 국제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은 저렴한 해외자금 덕분에 저금리를 유지하면서 방탕한 소비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가난한 개발도상국 국민들이 잘사는 미국 국민들을 지원하는 셈이라고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는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그 밖에 미국 기업들은 환전에 따른 거래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자본을 조달하는 경우에도 유리한 조건을 적용할 수 있는 등 달러로 인한 특혜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반면 부정적인 측면은 매우 제한적이다. 준비통화인 탓에 달러는 종종 과대평가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인데, 달러 대비 다른 나라 통화가 저평가되는 바람에 미국 기업들이 수출에서 불리한 조건을 감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확대될 수 있으며, 실제로 이런 이유도 일부 작용해 미국은 매년 상당한 경상수지 적자를 보여 왔다. 고평가된 달러가 경상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은 아니지만 미국은 중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비난하면서 책임을 외부로 돌려왔다. 그런데 달러가 고평가된 경우 미국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수입품을 소비하는데 따른 이득이 이런 피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런저런 이유로 달러의 과도한 특권은 기정사실이다.
브레튼 우즈 체제가 달러에 과도한 특권을 부여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이런 특권을 바탕으로 경제적으로는 물론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힐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냉전체제 하에서 자국의 이익을 유지·확대하려고 했던 미국으로서는 강력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시급한 과제였다. 물론 달러의 해외 공급량에 따라 달러의 가치가 하락하는 등 부침을 겪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은 Fed의 막강한 영향력과 거대한 금융자본의 힘을 바탕으로 이 과제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그런데 준비통화의 내재적 특성으로 인해 이런 추세를 무한정 유지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 트리핀 딜레마·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와 금융자본의 부상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미국은 폐허가 된 유럽과 일본의 재건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 새롭게 부상한 소련과의 냉전체제에서 우위를 점하기 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마셜 플랜(Marshall Plan), 일본에서는 닷지 라인(Dodge Line)에 입각해 이들의 재건 및 원조 계획을 실행했다. 미국은 마셜 플랜에 따라 1947년부터 4년간 총 13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기술적 지원을 했는데,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약 1,3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이 이들 국가에 적용한 기본원칙은 복구를 지원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제품을 수출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최대 규모의 금을 확보하는 등 경제력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소련의 세계 공산화 야욕을 견제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여하고 막대한 경제 원조를 해준 것, 그리고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수립 및 집행 과정을 적극 지원한 것 모두 냉전체제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미국 정책의 일환이었다.
어쨌든 미국의 지원 덕택에 여러 나라들은 조기에 전쟁의 피해를 복구할 수 있었다. 특히 전범국이었던 독일과 일본의 재건은 미국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는데, 1960년대 중반 이들은 미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시현할 정도로 발전했다. 그 결과 미국은 빠르게 무역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전환하였다. 동시에 베트남전 확산에 따른 군비지출 증가가 겹치면서 미국은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해외에 지나치게 많은 달러가 넘쳐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달러 과잉은 필연적으로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졌기에 달러를 보유한 국가에서는 더 이상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달러를 금으로 태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것은 결국 1973년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로 이어졌다.
여기서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피할 수 없는 한계를 살펴보자.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가치가 안정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여러 국가들이 외화자산으로 보유하고 국제결제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달러가 해외에 공급되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양립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 달러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달러 가치 하락에 따라 안정성이 훼손되는 반면,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미국이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해 해외 달러 공급이 축소되어야 한다. 그러면 유동성 부족으로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 이것이 트리핀 딜레마(Triffin dilemma)인데, 1960년 예일대 경제학 교수였던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이 의회의 증언을 통해 밝힌 내용이기에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달러뿐만 아니라 준비통화라면 어떤 것이든 피하기 어려운 문제다. 글로벌 시대에 이 문제를 현명하게 대체하려면 관련된 여러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다자간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지나치게 자국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기에 유럽연합, 러시아 및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에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문제는 그의 정책에 대한 미국인들의 반응이다. 무역전쟁에 비판적이면서 동시에 미국 사회에 어느 정도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것은 달러의 특권을 유지하길 원하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1970년대 들어 미국은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태환해주는 정책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미국이 보유한 금의 규모에 비해 너무 많은 달러가 해외로 유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미국 대통령은 1970년 2월 미국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아시아에서 미국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닉슨 독트린(Nixson Doctrine)을 선포한 데 이어 1971년 8월에는 달러의 금 태환 정치를 골자로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것을 닉슨 쇼크(Nixon shock)라고 한다. 닉슨 독트린은 아시아를 비롯한 분쟁 지역에 미국은 더 이상 깊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원칙을 천명한 것이라면, 금 태환 정지는 실질적으로 브레튼 우즈 체제의 종식을 알리는 것이다. 모두 미국이 처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그런데 이후 전개된 국제경제질서의 변화를 고려할 때 미국의 금태환 정지 및 브레튼 우즈 체제 붕괴에 따라 고정환율제도에서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한 것은 결과적으로 미국에 더 많은 경제적 이득을 제공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 배경으로는 1980년대에 들어 미국 정부가 실시한 신자유주의정책과 투자은행의 급부상으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더 커졌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933년 대공황 직후 커터 글래스 상원의원과 헨리 스티걸 하원의원이 제안해 입법화된 <글래스-스티걸법>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업무를 철저히 분리해 은행이 과도한 투기적 사업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금융안정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법에 반하는 금융 행위들이 1970년대 중반부터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증권화(securitization)를 들 수 있다. 과거에는 유동성 부족으로 거래하기 어려웠던 모기지 채권을 비롯한 각종 금융자산들을 적당한 패키지로 묶어 유동성을 부여함으로써 대량 거래의 길을 터준 것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찰스 퍼거슨(Charles Ferguson)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필름 《Inside Job》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변동환율제도로 인한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에 대처하는 수단으로서 파생증권(derivative securities)의 거래를 장려하는 금융제도가 점차 확산되었다. 그 결과 1999년 클린턴 행정부 시절 <글래스-스티걸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결정이 내려짐으로써 금융자본은 실물자본을 지원하는 소극적 역할에서 벗어나 실물자본을 통제하는 위치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월스트리트(Wall Street)가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를 지배한다는 표현은 이를 상징한다. 금융자본의 부상은 곧 달러의 지위가 강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러는 준비통화로서만 아니라 천문학적 규모의 파생금융상품 거래의 결제통화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도 국제외환거래의 80% 이상이 달러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쑹홍빈의 『화폐전쟁5』, 레이쓰하이의 『G2전쟁』, 그리고 크리스티안 마라찌의 『금융자본주의의 폭력』을 참조하기 바란다.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로 인해 정부는 금의 보증 없이 필요시 원하는 만큼 통화를 발행할 수 있는 재량을 갖게 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 통화 남발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위험 때문에 이런 정책을 실시하기 어려웠는데 미국은 예외였다. 준비통화인 달러의 막강한 힘 때문에 미국은 달러의 공급을 크게 늘려도 인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Fed는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를 통해 달러 공급을 대폭 늘렸지만 해외에서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덕분에 미국은 인플레이션 위험 없이 경제침체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막강한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미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odern Monetary Theory)에 의하면 미국은 정부 부채가 계속 증가하더라도 달러의 추가 발행을 통해 인프라 구축과 교육 등에 투자함으로써 경제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힘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인플레이션 위험 때문에 생각하기 어려운 정책적 발상이다.
이런 달러의 지위를 위협할 수 있는 통화로 거론되는 것이 중국의 위안화라는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중국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최근까지도 국제금융의 변방에 있던 나라였다. 그런데 갑자기 글로벌 자본주의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국제금융 분야에서 일약 조커(joker)로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이 예상보다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룩함으로써 미국의 지위를 위협하는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는 점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중국의 위안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점점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를 반영해 위안화는 2016년 국제통화기금에서 발행하는 가상통화인 특별인출권(SDR)을 구성하는 통화 바스켓에 편입되었으며, 얼마 전에는 달러화와 유로화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가중치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다음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런 상황에서도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에는 거의 변화가 없다. 조만간 달러를 위협하는 대체 통화가 등장할 것 같지 않다.
<주요 통화별 외환보유 구성 비율>
| 2018 | 2016 | 2014 | 2012 | 2010 | 2008 | 2006 | 2004 | 2002 | 2000 |
달러 | 61.7% | 65.3% | 65.1% | 61.4% | 62.1% | 63.7% | 65.0% | 65.5% | 66.5% | 71.2% |
유로 | 20.6% | 19.1% | 21.2% | 24.1% | 25.7% | 26.2% | 24.9% | 24.6% | 23.6% | 18.2% |
엔 | 5.2% | 3.9% | 3.5% | 4.1% | 3.6% | 3.4% | 3.4% | 4.2% | 4.9% | 6.0% |
파운드 | 4.4% | 4.3% | 3.7% | 4.0% | 3.9% | 4.2% | 4.5% | 3.4% | 2.9% | 2.7% |
위안 | 1.8% | 1.2%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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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여러 나라들의 외환보유에서 평균적으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대를 유지하고 있다. 1970년대에는 이 비중이 80%대를 유지했던 적이 있었던 것과 대비해 상대적으로 달러의 비중이 다소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1990년대에는 50%대로 하락했던 적도 있었음을 감안할 때 20년 이상 60%대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준비통화이자 결제통화로 달러의 위상은 견고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중국의 경제력이 급증했지만 준비통화로서는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 무역전쟁·통화전쟁과 달러의 미래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최근 양국 간에 일정 부분 합의가 이루어졌지만 미국의 대중 무역적자가 대폭 줄어들기 전까지는 쉽게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무역전쟁이 당사국들은 물론 글로벌 경제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여러 번 입증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1930년 미국 공화당 소속 리드 스무트(Reed Smoot) 상원의원과 윌리스 홀리(Willis Hawley) 하원의원이 발의했던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들 수 있다. 미국은 당시 2만개가 넘는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국내 생산품에 대한 수요를 견인해 경기침체를 막으려는 잘못된 정책을 추진했다. 이에 대해 여러 나라들은 보복관세로 맞섰으며 이로 인해 국제 교역량이 크게 감소하면서 막 시작된 대공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무역전쟁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아가 무역전쟁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하는 미국 내 여론이 상대적으로 약한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 원인을 통화전쟁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통화전쟁은 단순히 미국과 중국 간 환율을 둘러싼 갈등에 한정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준비통화의 지위를 둘러싼 갈등을 말한다. 유튜브를 검색해보면 통화전쟁의 관점에서 무역전쟁을 해석하는 동영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정부는 물론, 일반대중도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엄청난 특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이런 달러의 위상을 위협할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다. 따라서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과거 달러화가 파운드화를 밀어내고 준비통화가 되었던 전철을 밟아 중국의 위안화가 달러를 대신해 준비통화가 되려는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려 한다는 것 말고는 무역전쟁의 진정한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 점에서는 일반대중을 비롯해 미국을 움직이는 파워엘리트와 트럼프 행정부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이 세계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과거 30%가 넘던 시절에서 지금은 20%대로 하락함에 따라 달러화의 위상이 전성기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여전히 막강하다. 국제통화기금 자료에 의하면 2019 글로벌 GDP(경상)는 86조 5990억 달러로 추정되는데, 이 가운데 미국 GDP는 21조 4394억 달러로 24.8%를 차지했고, 중국 GDP는 14조 1401억 달러로 16.3%를 차지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각국의 물가수준을 감안한 구매력 평가(PPP)에 의하면 글로벌 GDP는 141조 8690달러, 중국 GDP는 27조 3088억 달러(19.3%), 미국 GDP는 21조 4394억 달러(15.1%)로 추정되므로 미국과 중국의 실질적인 경제규모는 이미 역전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중국의 경제규모가 실질적으로 미국을 능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통화로서 중국의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미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 이유는 달러로 거래하는 데 따른 편리함과 이득 때문에 굳이 준비통화를 위안화로 교체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네트워크 외부효과(network externality)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달러의 현재 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여기에는 달러를 바탕으로 하는 금융자본의 막강한 금융시장 지배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금융자본의 주체들은 국적을 막론하고 달러를 기반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것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이익임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준비통화로서 달러의 위상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이들은 전쟁도 불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1차 및 2차 세계대전의 배후에는 준비통화를 둘러싼 열강들의 갈등이 있었다고 지적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중국은 국제통화기금이 발행하는 가상통화인 특별인출권 바스켓을 구성하는 비중 면에서 달러와 유로화 다음 세 번째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중국 정부는 달러 기반의 오일머니, 즉 페트로-달러에 대항하기 위해 2019년 상하이 국제에너지 거래소에서 위안화로 결제하는 석유선물거래를 개시함으로써 페트로-위안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유럽연합이나 러시아가 달러를 이용해 석유를 거래하는 관행에 도전해 온 것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렇지만 중국은 더 원대한 포부를 갖고 계속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이 현대판 실크로드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One Belt-One Road) 정책도 위안화의 국제적 지위를 궁극적으로 준비통화로 격상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금융세력은 이런 시도를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무역전쟁은 중국을 길들임으로써 통화전쟁으로 비화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제대로 파악한 후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으로 국익에 도움 되는 대미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섣불리 판단해 중국에 편향된 정책을 추진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