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영성 관련

창조성을 키우는 독서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3 15:21
조회
352

 

다음에 묘사한 사람이 누구인지 맞추는 간단한 퀴즈로 논의를 시작해 보자. 이 사람은 1879년 독일 울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학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해 성적이 형편없었고, 담임선생은 장래가 걱정된다고 평가했다. 김나지움(독일식 고등학교)에서도 성적은 매우 저조했으며, 선생들을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지진아로 간주했다. 부친의 사업이 부진해 이탈리아로 이주 한 후에도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가까스로 스위스의 취리히 공대에 입학한 후 비로소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학과 수업을 소홀히 했기에 취리히 공대를 겨우 졸업할 수 있었고, 교수들은 항상 엉뚱한 질문만 하는 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추천서도 써주지 않았다. 이런 사유로 그는 어렵게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에 3급 심사관으로 취직할 수 있었다. 이 사람은 누구인가? 대부분 짐작하겠지만 이 사람이 바로 인류 최고의 천재 중 한 명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한때 세간에서는 아인슈타인이나 퀴리 부인 등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천재들이 한국에 태어났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물리학과 수학에는 재능이 있었지만 영어와 내신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 진학을 못하고 고졸 학력으로 어렵게 살았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퀴리 부인의 경우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여성이라는 한계와 부족한 외모로 인해 잘되었어야 고등학교 화학선생을 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 외에도 스티븐 호킹, 아이작 뉴턴,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과 같은 천재들이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으로 일생을 보냈을 것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가 한때 인구에 회자(膾炙)된 적이 있었다. 여기에는 결코 웃어넘길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문화적 편견과 제도적 한계가 잘 드러나 있다.

 

 각자 자신의 개성과 재능을 최대한 발현할 수 있는 사회는 어떤 의미에서도 바람직한 사회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런 사회에서 개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 당연히 행복할 것이며, 개개인의 생산성이 높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실용화됨으로써 경제적인 풍요와 높은 수준의 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를 지향하려면 무엇보다도 창의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평범한 존재로 살아가도록 강요하는 제도적․문화적 요인들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이 땅에 태어날 잠재적인 아인슈타인이나 퀴리 부인과 같은 인재들을 위한 우리의 비전이 되어야 한다.

 

 ‘창조성(creativity)’이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지적 활동에 해당한다. 모든 문명은 당대의 창조적인 사람들이 주도해 이룩한 것이다. 예컨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이집트 문명, 인도 문명, 중국 문명 등뿐만 아니라 산업혁명 이후 현대 문명을 주도한 것도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정보통신혁명도 빌 게이츠나 고든 무어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비롯한 소수의 창조적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어 온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창조성은 누구나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자질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창조성의 핵심은 순수한 호기심(pure curiosity)과 여기서 비롯되는 상상력(imagination)이다. 아인슈타인은 많은 명언을 남겼는데, 그 중 창조성과 관련된 것들 중 몇 개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 지성의 참된 모습은 지식이 아닌 상상력에서 나타난다.

•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모든 것을 끌어안기 때문이다.

• 평온한 삶이 가져다주는 단조로움과 고독은 창조적인 마음을 자극한다.

• 중요한 것은 결코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호기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물음과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 그리고 오래된 문제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은 창조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과학에서의 실질적인 진보를 만들어낸다.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창조성은 개인의 재능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화 수준 및 교육방법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도 한국 사회는 창조성을 배양하는데 여전히 우호적이지 않다. 무엇보다도 창조성은 다양성을 전제로 한다. 집단적인 사고나 획일적인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창조성이 자라날 수 없다. 한국 사회와 같이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여전히 위계질서가 중시되고 오랜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공동체 문화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풍토에서는 창조성이 성장하기 어렵다.

 

또한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가치체계 하에서는 창조성이 발현되기 어렵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미국인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의 중손자이면서 한국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피터 언더우드는 저서 『퍼스트 무버』(2012)에서 창조적인 사람이 성공하기 어려운 풍토가 개선되지 않으면 한국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의 한계를 넘어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도약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예컨대 대통령이나 재벌총수와 같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권위주의를 버리지 않으면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할 수 없다는 그의 충고를 깊이 경청해야 한다. 권위주의에 함몰된 사람은 창조적인 사람보다는 자신에게 아부 잘하는 사람들을 중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가치체계가 정착하도록 하려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도 보상받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가치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예를 들어 의사, 법률가, 회계사, 변리사 등 국가가 정해 놓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공급이 제한되고 이로 인해 과도한 보상을 받는 가치체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이들이 기존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전문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창조적인 사람들이 감당해야 하는 리스크에 비해 과도한 보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파워엘리트들이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기득권을 일부 포기해야 한다. 이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한 창조성을 육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창조성과 관련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방법과 교육내용을 개선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기관에서 현재와 같은 주입식 교육방법이 유지되는 한 창조성을 육성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피터 언더우드의 표현을 빌리자면 주입식 교육방법은 ‘패스트 팔로어’ 의 경우에는 나름 효과가 있었지만 ‘퍼스트 무버’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이에 대한 대안인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이 교육 현장에서 널리 활용되어야 하지만, 가르치는 교사들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장 실행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교육방법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도록 교육 관련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교육내용 또한 근본적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이 모든 학생들이 모든 과목을 배워야 하고, 그것도 입시 위주의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 차원에 그치고 마는 교육내용으로는 창조적인 인재를 육성하기 어렵다. 대학에서도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학문 간의 벽이 높아 자신이 전공하는 분야 외에는 기초 지식조차 습득하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는 실정이다.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는 시대를 선도하려면 인문·사회·과학 등 주요 학문 분야에 대한 기초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학문 간의 융합을 바탕으로 지식의 통합을 추구하는 ‘통섭(統攝)’에 그치지 않고, 상호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논리와 지식을 서로 통하게 한다는 의미의 ‘통섭(通攝)’을 지향하도록 교육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이것 또한 오랜 연구와 경험이 축적된 후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훗날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랜 세월 면면히 이어져 온 유대인의 교육방법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현재 대략 1,50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유대인은 주로 이스라엘과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인구의 0.2%에 불과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의 약 22%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금융, 문화예술 및 미디어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성공의 원동력은 어린 시절부터 무엇이든 질문을 하고 자유롭게 토론한 후 스스로 결론을 유도하도록 하는 교육방법에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왜 우리는 이런 교육방법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오랜 유교식 교육방법으로 인한 고착(固着)효과와 이에 근거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 그리고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대인의 막강한 파워와 그들의 창조성의 근원에 관해서 여기서는 더 이상 상세히 다룰 수 없으므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박재선의 『세계를 지배하는 유대인 파워』(2010)와 홍익희의 『유대인 창의성의 비밀』(2013)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서기 70년 로마의 압제에 항거해 무장봉기를 일으켰지만  완전히 패퇴하여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사라지고 유대민족은 전 세계를 방랑하는 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결같이 세계 곳곳에서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하는 유대 전통학교인 예시바에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창조적인 사고력을 키우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막강한 경쟁력의 원천임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방법과 교육내용을 바꾸는 것은, 이해당사자들의 거센 저항을 고려할 때,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그리고 설사 바뀐다하더라도 효과가 가시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이 문제는 정권 차원이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의 차원에서 단계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비교적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일반인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갖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할 것을 제안한다. 좋은 책은 우리에게 당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와 영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방안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현행 우수학술 및 교양도서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한다. 현재 이에 대한 지원 금액은 다른 분야, 예컨대 체육이나 예술 진흥에 대한 지원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다.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국민들이 좋은 책을 얼마나 많이 읽고 이해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이 좋은 책을 읽도록 하려면 우선 좋은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 따라서 영세한 출판업계의 실정을 감안해 정부는 과감하게 이에 대한 지원 금액을 늘려야 한다.

 

둘째, 학계와 출판계 및 관련 부서가 협력해 ‘좋은 책 리스트’를 만들고, 이에 근거해 연말정산시 일정 한도 내에서 가구당 도서구입비 전액을 감면해주는 소득공제 제도를 실시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리스트’에 있는 책을 구입하는 경우 가구당 연간 100만원 한도 내에서 전액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읽고자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다. 처음에는 소득세 감면이라는 수동적인 동기에서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책을 읽는 것이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는데 상당히 기여할 것이다.

 

 셋째, 동네 곳곳에 있는 수많은 카페들이 단순히 차를 마시고 잡담을 나누는 장소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 문화공간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새로운 ‘북카페’ 모델을 지정하고, 이 기준을 충족한 북카페에는 세제상 혜택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북카페는 책을 전시, 판매할 뿐만 아니라 방음 장치가 된 토론방을 갖추도록 함으로써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대로만 실행된다면 북카페는 사람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를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넷째, 어린 자녀들의 가정교육은 사실상 엄마가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해 지역별로 엄마들이 의기투합해 ‘독서 클럽’을 만들도록 유도한 후, 일정한 요건을 갖춘 클럽에 대해서는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경우 좋은 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약간의 재정적 지원을 해주고, 적절한 방식으로 독서 클럽 간 협력을 유도한다면 독서 클럽 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후 독서 클럽을 ‘지식협동조합’ 형태로 전환하도록 지원함으로써 이런 운동을 조직화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엄마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습관을 갖게 된다면 이를 바탕으로 자녀들과 좋은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새로운 문화가 정착할 수 있다. 

 

경제규모나 일인당 소득수준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 속한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좋은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에서 얻는 지식과 정보의 의미에 대해 궁리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은 개인의 사고력과 창조력을 배양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格物致知)가 아니겠는가. 필자는 주변 사람들이 책을 읽는 습관을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과거에 읽었던 좋은 책의 주요 내용을 발췌해 정리한 파일을 지인들과 공유했는데 이를 발전시켜 지금 이 사이트를 만든 것이다. 만약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운동에 참여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좋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좋은 책을 선정해 읽는 습관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상승효과로 인해 이런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고, 이에 따라 공유할 수 있는 지적 자산은 더 많이 축적될 수 있을 것이다. 지식공유광장이 이런 독서 풍토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기를 바란다.

 

이런 지적 교류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온․오프라인을 이용해 건설적으로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하고, 이런 전통이 상당 기간 지속된다면 비로소 창조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 등장해 사회적인 변혁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몇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창조성과는 거리가 먼 기존의 경직된 사회를 창조적인 사회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창조적인 교육을 위한 개혁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이런 개혁에 대한 단기적 보완책으로 일반인들에게 책을 읽을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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