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글로벌경제 관련

자본주의 기업 대 협동조합 기업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6-28 01:20
조회
377

기업은 경제활동의 중심축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진다는 것은 종전에는 없던 새로운 가치, 즉 부가가치가 더 많이 창출되고, 이 과정에 참여한 경제주체들에게 분배된 후 지출로 이어지는 국민경제의 순환이 지속적으로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체이기 때문에 국민경제의 선순환을 위한 핵심 조직이다. 

 

그런데 보통 “기업”이라 불리는 조직은 다양한 기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예컨대 규모에 따라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상장(上場) 여부에 따라 상장기업과 비상장기업으로 분류한다. 또한 출자관계에 따라 사기업, 공기업 및 공사공동기업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법률상 규제에 따라 합명회사, 합자회사, 유한회사 및 주식회사로 분류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이다. 전 세계적으로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은 수적으로는 비중이 작지만 매출액이나 기업이익 및 고용 면에서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기업 = 주식회사”라는 등식이 성립한다 해도 무방하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최초의 주식회사는 1600년에 설립된 영국의 동인도회사라 할 수 있다. 비록 왕실로부터 특권을 부여받은 상인과 귀족들이 주주로서 자본금을 납입하여 설립된 회사라는 한계는 있지만, 주권을 매매할 수 있는 주식회사 형태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일반인들로부터 자본을 공모하여 사업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분명 모험이 따르는 신규 사업을 추진하고자 하는 기업가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이유로 17세기 이후 유럽 대륙에서는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들이 다수 등장해 자본주의체제를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흐름에 결정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 1720년에 불거진 남해거품(South Sea Bubble)사건이었다. 1711년 영국 정부의 부실채권을 떠맡는 조건으로 남미를 무대로 한 노예무역 특권을 부여받아 설립된 남해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주가가 단기간에 천정부지로 치솟았다가 급락한 사건은 역사상 유명한 거품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데 이것이 바로 남해거품 사건이다. 이 사건의 후유증이 너무 컸기에 영국 의회는 1720년 주식회사의 설립을 제한하는 “거품법(Bubble Act)"을 제정했고, 이로 인해 상당 기간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이 설립되지 않았다. 이런 교착 상황은 1842년 영국이 회사법을 개혁해 주식회사가 기업의 주요 형태가 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1855년 ”유한책임법“을 통과시켜 법인회사가 유한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해소되었다. 다른 나라들도 영국의 전례를 따랐다. 기업 활동에 우호적인 법과 제도를 바탕으로 이후 주식회사 형태의 기업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추세를 더욱 강화했던 것은 19세기 중후반 미국에서 일어난 대륙횡단철도 건설 붐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전대미문의 막대한 자본이 소요되는 사업으로서 일반 공모를 통해 불특정 다수로부터 사업에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는 선례가 되었다. 오늘날 주식회사를 상징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자본과 노동의 분리”에 기초한 자본주의체제와 “소유와 경영의 분리”에 기초한 현대적 주식회사체제가 확립되었으며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이 되었다.

 

이런 세계사적인 흐름에서 우리나라는 과연 무엇을 기여했나? 유감스럽게도 아무것도 기여한 것이 없다. 해방 이후 1960년대 초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되기 전까지는 일제시대에 살아남은 소수 기업들과 해방 후 미국의 원조정책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일부 기업들이 한국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유일한 경제 세력이었다. 그런데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추진되면서부터 상황이 급변해 정부와 긴밀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기업들이 승승장구하면서 오늘날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기업집단, 즉 재벌로 성장했다. 사실 이런 기업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언급한 이유는 한국 기업사의 왜곡된 측면을 제대로 이해해야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 기업사를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기업가정신을 폄하하고 지대추구행위를 장려했던 왜곡된 역사”라고 생각한다. 기업가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기술혁신이나 공정혁신을 추구하는 혁신적 사고와 과감하게 위험을 감수하려는 모험 정신,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공익에 기여하려는 명예심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지대추구행위는 기득권, 즉 경제적 지대를 유지·확대하기 위한 일체의 로비행위를 의미한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기업을 설립하고 경영했던 분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극소수였기에 이들의 정신이 한국 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방하는 존재이므로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다. 그렇기에 지금도 여전히 기업가정신은 중요하다. 일정 비율 이상의 기업들이 이런 정신을 근간으로 조업한다면 지대추구행위가 더 이상 확산되지 못하도록 견제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날을 고대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일까?

 

현재와 같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에서는 이런 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부분 재벌그룹의 계열사인 대기업들이 글로벌 경쟁 과정에서 살아남아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칭찬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성과가 기업가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기보다는 각종 특혜와 단기에 치우친 금전적 보상 정책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마냥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런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기업에 대한 대안으로 협동조합 기업의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특히 기업가정신을 배양하는 훈련의 장으로서 협동조합의 잠재력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필자가 앞에서 기업가정신의 핵심 요소로서 혁신적 사고, 과감한 모험 정신 및 명예심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대기업에 취업하고 싶어한다. 상대적으로 연봉이 높고 사회적으로도 인정받기에 결혼을 비롯해 여러 가지로 유리하기 때문이리라. 이런 이유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모두 대기업을 선호한다면 한국 사회에 기업가정신이 꽃피우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협동조합은 여전히 낯설고 뭔가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라는 인상을 준다. 비록 2012년을 기점으로 협동조합을 육성하는 법안이 가결되었지만 아직도 협동조합을 주식회사에 필적할 수 있는 기업 형태로 인식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런데 협동조합 기업에 관한 연구로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의 스테파노 자마니(Stefano Zamagni) 교수가 주장했듯이 협동조합은 “경쟁과 협력”이라는 상반된 두 개의 가치를 중심으로 얼마든지 자본주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기업 형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이론적 논쟁보다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협동조합이 이룩한 실제 성과를 일별해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협동조합들의 성공 사례 몇 가지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자료는 김현대 외의 『협동조합, 참 좋다』에서 발췌한 것으로서 숫자는 몇 년 전 데이터임을 감안하기 바란다.

 

이탈리아의 콥이탈리아: 이탈리아 북동부 4개 주 소비자협동조합의 연합체로서 대형 매장 15개와 소형매장 135개를 갖고 있다. 연 매출은 대략 19억 2,000만 유로, 원화로 2조 8,000억 원 가량 된다. 이탈리아 국민의 60%가 이 협동조합의 조합원이라 할 정도로 대중적인 기반이 견고하다.

덴마크의 대니쉬크라운: 글로벌 축산 협동조합으로서 연간 매출액은 원화로 9조 원이며 돈육 생산량은 세계 11위지만, 돈육 수출은 세계 1위다. 매출의 90% 이상이 139개 나라에 수출하는 데서 발생한다.

덴마크의 알라푸즈: 유가공 협동조합으로서 2011년 매출 7조 원으로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큰 유가공업체다. 2000년에 스웨덴 협동조합과 합병해서 지금의 알라푸즈가 됐다.

스위스의 미그로: 코프 스위스(Coop Swiss)와 함께 스위스의 대표적인 소비자협동조합으로서 8만 명의 직원이 일한다. 지역사회의 교육과 문화에 재투자하며 조합원들의 복지를 최우선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몬드라곤: 세계 최대의 노동자협동조합으로서 1956년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 마을에서 시작해 반세기 만에 스페인에서 매출 9위, 고용 3위의 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매출 규모는 연 140억 유로(약 20조 원)에 이른다.

네덜란드의 라보방크: 협동조합 은행으로 조합원 180만 명, 48개국의 고객 1,000만 명, 직원 5만 8,700명, 2010년말 기준 자산 6,5525억 유로(약 959조 원), 네덜란드 3대 금융기관이자 세계 25위 은행이다.

뉴질랜드의 폰테라: 낙농업 협동조합으로서 뉴질랜드 전체 우유의 92% 이상을 생산해 전 세계 140개 나라로 수출한다. 국내외의 직원만 1만 6,000명이 넘으며 연 매출은 110억 달러를 상회한다. 전 세계 수출용 유제품의 30% 이상을 차지하면서 압도적인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의 한살림과 아이쿱: 생활협동조합으로서 전체 조합원 수는 2008년 32만 명에서 2011년 63만 명으로 급증했다. 연 매출은 아이쿱이 2008년 1,301억 원에서 3,000억 원으로, 한살림이 1,326억 원에서 2,200억 원으로 늘었다.

 

이런 실제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협동조합은 자본 조달의 제약 때문에 소규모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조직이라 단정해서는 안 된다. 조합의 구성원들이 어떤 정신을 가지고 참여하는가에 따라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아직 협동조합의 역사가 일천하고 성공 사례가 많지 않은 풍토에서는 더욱 시도할 만하다.

 

필자는 자본주의 기업과 협동조합 기업의 결정적인 차이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유무(有無)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 기업에서 도덕적 해이는 피하기 어려운 난제다. 그러하기에 스톡옵션과 성과급을 위시한 여러 가지 금전적 인센티브 시스템을 활용해 도덕적 해이를 막으려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런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런데 최근의 여러 연구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금전적 인센티브라는 외재적 동기보다는 자발성, 시민정신, 자원봉사 등 내재적 동기에 의해 행동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경향은 인터넷 시대를 맞아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는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추진했던 엔카르타(Encarta)라는 온라인 사전 프로젝트는 완벽하게 실패한 반면, 아무런 대가 없이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위키피디아(Wikipedia)가 성공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협동조합 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협동조합 기업은 내재적 동기를 기반으로 하므로 도덕적 해이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것이 협동조합 기업의 최대 강점으로서 자본주의 기업에 대적할 수 있는 경쟁력의 원천이다.

 

경쟁과 협동의 조화를 통한 발전, 이것은 향후 글로벌 차원에서 기업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 두 가지 요소를 효과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인간의 외재적 동기와 내재적 동기를 최대한 유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기업 형태로는 기존의 자본주의 기업보다는 협동조합 기업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까지 협동조합 기업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이런 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이론적 기반이 취약하더라도 향후 심층 연구와 현실 경험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그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반면 앞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분리 원칙으로 인해 자본주의 기업은 이런 목표를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이 점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글로벌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우리 모두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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