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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 선언 2020>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4-25 17:22
조회
399

세계경제포럼(WEF)은 지금부터 50년 전인 1971년 경제학자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이 창설한 유럽경영포럼을 모체로 출발해 1987년 현재와 같이 세계적인 관점에서 큰 주제를 다루는 포럼으로 발전했다. 매년 1월 말 스위스의 작은 휴양 도시 다보스(Davos)에서 개최되기 때문에 다보스포럼으로도 불린다. 세계경제포럼의 공식적인 사명은 비즈니스계, 정치계, 학계 및 사회 여러 분야의 리더들이 참여해 글로벌 의제와 지역적 의제, 그리고 산업적 의제를 다룸으로써 세계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헌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를 위해 세계 주요 국가의 정상, 장관, 국제기구의 수장, 초국적 기업과 대형 금융회사의 CEO, 세계적 석학, 사회운동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략 3,000명 가량이 매년 1월말에 모여 나흘 간 여러 의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펼친다. 올해는 세계경제포럼 창설 5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로 121일부터 24일까지 총회가 개최되었다. 얼핏 보면 이 포럼은 인류의 보편적인 복지 향상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고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이 총회에 참가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한 영광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세계경제포럼의 진면목을 폭로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산드라 나비디(Sandra Navidi)를 들 수 있다. 글로벌 금융계의 내부자(insider)라 할 수 있는 나비디는 저서 슈퍼 허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보스의 공식적인 목적은 시급한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찾는 비판적인 토론을 촉진하는 것이다........실력자들이 노력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참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일대일로 만나서 강력한 인맥을 구축할 수 있는 끝없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나비디는 이 포럼에 금융계의 슈퍼 허브(Super Hub), 즉 거물들이 대거 참석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계경제포럼은 표면상으로는 글로벌 현황에 대한 진지하고 다양한 논의를 내세우지만 내면적으로는 소수의 특권층들의 사교모임, 그리고 고급정보 교환과 인맥 쌓기를 위한 모임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나비디가 밝힌 것처럼 심할 줄은 몰랐다. 내부자로서 직접 이 포럼에 참석한 경험에 근거한 말이니 신뢰가 간다.

 

이 포럼을 비판적 관점에서 평가한 또 다른 사람으로 미국 소노마 주립대학에서 정치사회학을 가르치는 피터 필립스(Peter Phillips) 교수를 들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전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를 분석한 저서 자이언트에서 세계경제포럼은 거대 자산운용사의 경영자들(managers)을 지원하는 여러 조력자들(facilitators)가운데 하나라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세계경제포럼을 통해 수천 명의 부자와 권력자가 함께 어울리며 자본가 계급의 세계를 문화적으로 경험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연결망 안의 연결망으로서 작동한다.......이 포럼에서 얻은 사회적 관계는 재계와 초국적 자본가 계급 연결망을 통해 지속되고, 그 과정을 통해 본인이 모종의 통찰력을 갖추었다는 인식과 연대 의식이 강화된다.이것은 다분히 냉소적인 표현이지만 세계경제포럼의 진짜 모습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앞서 소개한 나비디의 저서에는 이 포럼에 참석해 금융계 유명 인사를 소개 받아 그 자리에서 큰 계약을 성사시킨 사례 등 이 포럼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들어있다. 그러니 필립스 교수의 지적이 냉소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 특기할 사항은 클라우스 슈밥 의장이 <다보스 선언 2020(The Davos Manifesto 2020)>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세계경제포럼은 매년 주제를 선정해 다양한 토론 및 강연 세션을 진행해왔으므로 올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올해는 특별히 <다보스 선언 2020>을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선언의 핵심은 197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던 주주 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를 종식하고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단기적인 관점에서 이윤을 추구해온 관행을 폐기처분하고, 주주를 비롯해 소비자, 종업원, 납품업자, 채권단, 지역사회 및 환경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추구하는 조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만이 현재 위기에 봉착한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시의적절한 선언이다.

 

세계경제포럼은 일찍이 1973년에도 이와 유사한 선언을 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이번 선언에서는 사회적 관점에서 기업이라는 조직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한층 더 강조한 것이다. 기업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단순히 부를 창출하는 경제 조직이 아니라 정부 및 사회를 포괄하는 더 큰 시스템에 속해 있는 이해관계자라는 점은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슈밥 의장은 1970년대 초 큰 영향력이 있었던 시카고 대학교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19709<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고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라는 글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제안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고 회상한다. 그렇지만 이제는 자본주의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주주만이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필자는 그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과 같이 국가 자본주의를 채택하는 것이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외에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819미국을 대표하는 대기업 전문경영자들의 모임인 <비즈니스 원탁회의(Business Roundtable; BRT)>에 속한 181명의 전문경영자들이 서명한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서를 통해 이미 이런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1972년에 출범한 BRT는 대표적인 로비단체로서 각종 친기업적인 정부정책을 이끌어냈으며, 1997년에는 기업의 목적은 주주가치극대화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런 BRT이해관계자들 하나하나 모두 중요하다. 우리는 기업,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미래 성공을 위해 이들 모두에게 가치를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는데, 이번 <다보스 선언 2020>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선언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문득 1848년 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공표한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서문의 유럽에는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다. 구 유럽의 모든 권력들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한 동맹에 참여했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떠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다보스 선언 2020>은 현재 자본주의를 통제하고 있는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의 심각한 위기의식을 반영해 현재의 주주 자본주의가 무너지면서 극단적인 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세계경제포럼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특히 매년 금융계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예컨대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나 미국 최대 은행인 제이피모건체이스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정기적으로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이 평소에 이해관계자가치를 존중했다고 믿을 만한 증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피터 필립스 교수에 의하면 이 둘은 글로벌 파워 엘리트들 가운데서도 핵심 엘리트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다보스 선언 2020>립 서비스로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떨치기 어렵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번 포럼에 참석했던 진보적 경제학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도 이와 유사한 발언을 했다. 미국 대기업의 CEO들이 조세를 포탈하지 않으며 정부 규제를 적극적으로 준수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데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고액 연봉을 삭감하며 생활을 보장하는 임금을 지급하는 등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해관계자가치를 존중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필자도 그의 발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의식 전환이라는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된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학계나 재계 인사 가운데 이해관계자가치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해관계자가치를 측정하는 데 문제가 있으며, 둘째 기업 경영에서 어떤 이해관계자가치를 어느 정도 반영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고, 셋째 책임을 묻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종업원들의 복지를 위해 임금을 인상하는 것이 주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 이런 이해 충돌을 조정해 주는 적절한 기준이 없다. 이와 같이 이해관계자들 간에 갈등이 있는 경우 CEO의 도덕적 해이가 더 기승을 부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다. 아무튼 이해관계자가치를 추구하는 경우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 주주가치의 경우에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이윤이라는 계량적인 기준을 가지고 간단명료하게 평가할 수 있기에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주주가치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주주자본주의가 널리 수용될 수 있었다. 주주는 CEO에게 적절한 금전적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더 큰 가치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이해관계자가치를 포기하는 근거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런 문제점들을 보완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제는 그럴 시점이 무르익었다. 더 이상 주주가치에 집중하는 것은 모두가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번 선언을 계기로 권위 있는 몇몇 회계법인을 비롯해 여러 기관들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기로 한 것은 고무적이다. 부디 이런 노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기 바라는 심정이다. 이것은 세계경제포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나아가 한국 기업들도 이런 변화를 적극 수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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