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글로벌경제 관련

파괴적 기술과 인간의 존엄성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05-25 16:42
조회
193

10년 후 세상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요즈음 같이 급변하는 시대에 10년 후를 예측한다는 것은 사실 무모한 일이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너무 빨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울 지경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지금은 상당히 보편화된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생각해보자. 2016년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의 대국이 있기 전까지 인공지능에 대해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사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의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딥러닝(Deep Learning), 즉 심층학습의 우월성이 인정받게 된 것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 제프리 힌튼(Geoffrey Hinton) 교수의 연구팀이 2012<국제 이미지 인식 경진대회>에서 우승하면서부터다. 인공지능이 현재와 같이 일상생활 곳곳에 널리 응용되기까지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나아가 기하급수적인 기술혁신의 속도를 감안할 때 10년 후 어떤 수준에 도달해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및 로봇공학이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전문가들이 동의한다.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용어가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 또는 파괴적 혁신이다. 이 용어를 처음 소개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Clayton M. Christensen)교수에 의하면 파괴적 기술이란 간단히 말해 기존의 중심 기술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채 시장의 변방에 머물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시장을 주도하게 되면서 산업을 완전히 재편하는 기술이다.  예컨대 19세기말 자동차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일부 호사가들이 이용하는 운송수단에 불과했기에 마차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했던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1920년대 포드(Ford)에서 T형 자동차를 대량생산하면서 마차는 사라지고 운송시장은 자동차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되었다.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개발한 것은 당시 필름시장을 주도하던 코닥(Kodak)이었지만 기존 시장점유율에 집착한 나머지 파괴적 기술로서 디지털 카메라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는 실수를 범했다. 이로 인해 결국 코닥은 몰락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21세기 초반까지 휴대폰 시장의 절대강자였던 노키아(Nokia)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애플보다 먼저 스마트폰을 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휴대폰 시장에서의 우위를 유지하는 전략에 치중한 끝에 결국 몰락하고 말았다. 이런 유형의 파괴적 기술은 이제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 되었다. 앞으로 인공지능 기술뿐만 아니라 3D 프린팅, 블록체인 기술, 합성생물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는 지속적인 파괴적 혁신이 사회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과거 세 차례의 산업혁명에 비해 사회 전반에 미치는 기술혁신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커졌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인간 중심이 아닌 기술 중심의 사회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 Harari)가 데이터주의(Dataism)를 경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다른 하나는 파괴적 혁신은 일자리, 즉 고용시장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이다. 자동화로 인해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근본적으로 대체함에 따라 전반적으로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습득한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간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끊이지 않고 있다일자리와 관련해 최초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옥스퍼드 마틴 스쿨(Oxford Martin School)의 연구원인 경제학자 칼 베네딕트 프레이(Carl Benedikt Frey)와 기계학습전문가인 마이클 오스본(Michael Osborne)2013년에 발표한 연구 결과다. 이들은 자동화가 될 확률이 높은 702가지의 직업에 순위를 매겨, 과학기술 혁신이 실업에 미칠 잠재적인 영향력을 수치화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향후 10년에서 20년 사이에 미국 내 모든 직업의 약 47퍼센트가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이들의 연구를 지지하는 전문가 설문조사와 연구가 잇달았다. 그렇지만 이들이 사용한 연구 방법에 문제가 있다면서 이를 반박하는 연구 결과도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실정이다.

 

예컨대 2018일의 미래에 관한 <세계경제포럼(WEF)>의 예측에 의하면 2022년까지 인공지능을 비롯한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75백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 133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58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이 보고서의 내용은 일자리 소멸을 우려하는 우울한 전망과 상충된다. 또한 세계적인 IT 컨설팅 기업인 <가트너(Gartner)>에 의하면 인공지능은 단기적으로 2020년까지 1.8백만 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반면, 2.3백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WEF와 대동소이한 예측이다. 또한 <매킨지 글로벌 연구소(MGI)>도 비교적 낙관적인 일련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소가 20186월에 발표한 <인공지능과 자동화 및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자동화 추세로 인해 2030년까지 완전 자동화되는 직업은 전체의 5퍼센트 정도에 그칠 것이며, 60퍼센트의 직업은 직무 면에서 30퍼센트 정도 자동화될 것이라고 한다. 전반적으로 완전자동화로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기 보다는 인간이 기계를 이용해 생산성을 향상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이런 이유로 이 보고서는 2030년까지 인공지능으로 인해 감소하는 일자리보다는 늘어나는 일자리가 더 많은 것이라는 낙과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와 같이 일자리 관련해서는 낙관적인 견해와 비관적인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경제포럼>의 의장을 맡고 있는 클라우스 슈밥(Klaus Schwab)은 저서 클라우스 슈밥의 제4차 산업혁명: 더 넥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낙관적으로 말했다:우리는 이 기회를 반드시 붙잡아야 한다.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의 부는 더욱 공정하게 분배될 것이고, 사회 갈등과 정치적 양극화를 완화할 사회적 신뢰기구가 다시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들은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살 것이고 지속가능한 환경 속에서 더욱 의미 있고 성취감 있는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그런데 그의 낙관적 예상과는 달리 성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슈밥은 개별 국가를 비롯해 국제적인 차원에서 적절한 거버넌스 (governance)를 확립함으로써 인공지능 중심으로 하는 파괴적 기술로 인한 일자리 문제 등 각종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는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는 글로벌 거버넌스 이전에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기술혁신인가 하는 문제다.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향상되고 비용이 절감됨으로써 우리 모두 물질적으로 더욱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나아가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가 등장해 종전에는 없었던 높은 수준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환영할 일이다. 예를 들자면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헬스케어 분야에서 괄목할 발전이 예상되고 있으며, 이는 충분히 가능한 목표다. 몸 상태에 관한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암과 같은 질병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평균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실로 대단한 발전이다이런 전망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기술혁신은 오직 효율과 비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공평(fairness)이나 존엄성(dignity)과 같은 인간의 기본권은 사실상 거의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데이터과학자 케시 오닐(Cathy O’Neil)이 저서 대량살상 수학무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수학, 데이터, IT기술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알고리즘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편견과 무지, 오만을 코드화한 프로그램들은 차별을 정당화화고, 민주주의를 위협합니다.”오닐은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대량살상무기만큼 위험하다고 생각해 대량살상 수학무기라고 패러디한 것이다.

  

일자리와 관련된 전문가들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이들 모두 한 가지 사안에는 동의하고 있다. 그것은 고임금 직업과 저임금 직업 간 양극화와 불평등이 지금보다도 더 심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다. 설상가상으로 소수의 거대 IT기업이나 전제적인 정부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개개인의 취향과 성격을 파악한 후 이들의 내면세계를 통제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과연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나아가 기술혁신이 물질적인 면에서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여유롭게 해주는 반면, 이로 인해 우리의 정신세계는 오히려 더 황폐해진다면 이는 존엄성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될 것이다. 필자는 파괴적 혁신으로 인해 동서양의 오래된 황금률(Golden Rule),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데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도덕적 원칙이 완전히 유명무실해질까 우려한다. 만약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종국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단지 헌법 조문이나 교과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추상적인 단어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파괴적 기술혁신의 와중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줄 수 있는 법과 제도 및 사회규범에 대한 광범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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