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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20-10-28 01:16
조회
1437

요즘 세간의 관심이 온통 코로나19에 쏠려 있는 바람에 인공지능과 관련된 보도는 거의 눈에 띠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연구가 한계에 도달했다거나 투자가 위축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21세기 경제 패권을 장악하려는 집단들 간에는 치열한 개발 경쟁이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20세기 초반 세상을 바꿔놓은 전기보다 인공지능의 파급효과가 더 크다는 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한다는 점에서 향후 인공지능이 사회 전반에 미칠 파괴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성능이 향상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 파괴적 혁신을 주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상상을 초월하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긍정적·부정적 양면을 포함하는 이율배반적인 특징을 보일 것이기에 많은 사람들을 곤혹하게 만들 것이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경제활동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본분을 망각한 일부 인사들의 공허한 말장난과 소모적인 정치적 논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려운 시기에 국가 재정을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실현하는 편리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인사가 있는가 하면 자신은 항상 옳다는 무오류의 착각에 빠져있는 인사도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인사도 눈에 띤다. 이런 유형을 나열하자면 지면이 부족할 지경이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목도하면서 문득 과연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동안 정치, 경제 양면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취약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공동체의 유지·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공감 대화 능력이 턱 없이 부족하다. 이런 풍토에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유지되기 어렵다. 서로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니 사회 전반에 불만과 갈등이 누적되어 언제 폭발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런 시점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향후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는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은 코로나19와 같은 팬데믹과 이미 상당히 진행된 기후변화와 더불어 인류에게 존재적 위험(existential risk)을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은 2018년에 작고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사후 출간된 저서 빅퀘스천에 대한 간결한 대답에서 인류를 멸종으로 내몰 수 있는 요인으로 지적했던 것이다. 호킹과 같은 뛰어난 인물이 경고했다는 이유만으로 존재적 위험에 대한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지만 사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왜 이런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시대를 견뎌낼 수 있도록 하는 힘의 원천은 육체적인 쾌락이 아니라 정신적 강인함이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마래에 대한 예지력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공지능의 정치경제학, 즉 인공지능이 정치와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를 생각해보는 것은 후손들의 미래를 위해서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이 자본주의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를 일소에 붙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이런 주장을 한 대표적인 인사로는 중국 칭화대 법대 펑시앙(Feng Xiang) 교수를 들 수 있다. 펑 교수가 2년 전 인공지능 워크숍에서 발표한 내용이 미국 신문 <워싱턴 포스트>AI will spell the end of capitalism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는데 미중 무역전쟁이 진행 중인 요즘 주목할 만한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마디로 인공지능 시대에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보다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가 더 우월하므로 사유재산에 기초한 자본주의는 종언(終焉)을 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펑 교수가 이런 주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과거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장점이었던 가격 시스템을 이용한 정보 처리 기능보다 국가가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보를 처리하는 계획경제가 더 우월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서 개인의 억지 주장으로 매도하기 어려운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시장경제에서 수요·공급의 상황을 반영해 가격 시스템이 유연하게 작동한다면 시장참여자들은 시장경제 전반에 걸친 정보를 입수해 의사결정에 반영함으로써 효율적인 결과를 달성할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 대부로 알려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일찍이 1945The Use of Knowledge in Society라는 논문에서 강조한 내용이다. 하이에크는 정보의 집계(aggregation), 전달(transmission) 및 공유(sharing)라는 측면에서 자유시장보다 더 나은 경제 시스템은 없다고 역설했으며 많은 경제학자들이 이에 공감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하이에크는 시장참여자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정보적으로 우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모두 비슷한 협상력을 가진 경쟁적인 시장을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반대로 현실의 시장은 대부분 독과점 상태에 있으며 우월한 정보를 보유한 일부 시장참여자들이 항상 존재한다. 이는 곧 하이에크가 강조했던 정보적 측면에서의 시장경제의 장점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다.

 

펑 교수는 이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자신만만하게 인공지능 시대에는 중국식 국가자본주의 내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가 정보적 측면에서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보다 우월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의 주장이 인권을 무시하고 사생활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극도로 우선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보다 정보적으로 우월할 수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같은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정보기술기업은 사회적 측면을 배제한 가운데 사적인 이익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에 관한 빅데이터를 활용할 뿐이다. 반면 중국식 국가자본주의에서 알리바바나 텐센트 같은 민간 기업은 언제나 국가 통제 하에 있으면서 사회적 이익을 위해 사적 이익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인공지능이 누구의 이익을 위해 봉사할지 자명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중국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인공지능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미국은 오직 소수의 엘리트가 인공지능이 창출하는 가치를 독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요점은 분권화된 시장경제가 정보적 측면에서 중앙집권적인 계획경제보다 우월하다는 명백한 사실이 인공지능시대에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스마트한 민주정부가 국가재정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개발한 후 향후 이 기술을 활용해 얻는 수익을 국민에게 사회적 배당금의 형태로 나눠줄 수 있다면 펑 교수가 주장한 중국식 시스템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왜냐하면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극소수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식 시스템은 결국 내부로부터 붕괴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각계각층의 인사들로 구성된 국가 인공지능 위원회를 설립해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인공지능 알고리즘 개발에 매진하도록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미국식 자유방임정책과 중국식 국가독점방식의 장점만 취하는 묘책이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현 정부는 그동안의 실책을 반성한다는 의미에서도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활용에 관한 획기적인 정책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이런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이는 곧 현 정부는 한국의 실정에 적합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스템을 모색할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로 간주될 수 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현재와 같이 무능과 비효율과 점철된 국회를 유지하기 보다는 복잡한 현실에 적합한 법을 신속하게 제정할 수 있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한 후 국회는 인공지능의 제안을 추인하는 정도의 권한만 갖도록 하는 것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신차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사례에 관한 자료로부터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차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경우 소요되는 기간과 인력 및 예산에 비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단기간에 그것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은 예산을 가지고 더 나은 신차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이것을 그대로 정치와 입법 과정에 적용한다면 사회 전체가 얻게 되는 이익은 엄청날 것이다. 무엇보다도 저질의 말장난과 소모적인 비방으로 인한 대다수 국민의 정신적 피로감을 해소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기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한시도 쉬지 않고 더 나은 법과 규칙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는 콜센터 직원만이 아니라 정치인이 일 순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대오각성하기 바란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새로운 자본주의와 새로운 민주주의가 요구된다는 것은 굳이 칼 마르크스의 유령을 불러오지 않더라도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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