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이부영의 『노자와 융』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6-02-24 11:07
조회
438

20160224_020558_56cd1006ea950.jpg
 

저자 : 이부영  

출판사 : 한길사(2012)

 

 

목차  

제1장 융의 ‘자기’와 노자의 도

제2장 도란 무엇인가 - 도의 본체

제3장 선과 악

제4장 무위

제5장 도의 여러 상징

제6장 아름다움과 삶의 즐거움

제7장 동시성의 원리와 도

제8장 성인 - 정신치료자의 자세와 관련하여

제9장 몸

제10장 삶과 죽음

제11장 도는 외롭다

 

 

<북 리뷰: 도와 무의식>  

★ 저자 소개 및 책의 개요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책이란 자의식의 한계 너머로 우리의 의식을 확장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자기 자신과 이웃 나아가 모든 현상과 사물을 보다 넓고 깊게 바라보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좋은 책을 어떻게 고를 수 있는가? 저자의 해박한 지식이나 다양한 체험을 펼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고뇌의 과정을 통해 얻은 지식이나 통찰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였으면 하는 순수한 동기에서 써진 책을 골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랜 만에 이 두 가지 기준을 모두 만족하는 책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하고 한국융연구원을 설립 운영 중인 이부영 교수의 『노자와 융』이다. B.C. 6세기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로 알려졌지만 실존 인물인지 조차 불확실한 노자(老子)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스위스 태생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칼 융(Carl G. Jung)을 연결시켜 논의를 전개한다는 발상 자체가 필자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두 명의 위대한 인물들이 시공을 초월해 만나 서로의 관심사를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 장면을 생각해보라. 이 얼마나 멋진 만남이겠는가.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과 융의 분석심리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마치 두 사람이 오랜 친구처럼 만나서 대화하는 장면을 연상할 수 있도록 서술하고 있다. 이 또한 두 사람의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여러 사람이 다양한 주해서를 내놓아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책이다. 비록 총 81장, 약 5,000자로 되어 있는 작은 책이지만 道可道 非常道로 시작하는 1장부터 해석상 논란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상징과 은유로 가득한 책이다. 그렇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도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도란 알 수 없으나 존재하며 작용하고 있는 것, 그것이 도다”(25쪽)라고 간단명료하게 해석한다. 또한 저자는 道可道 非常道에 대해 “즉, 모든 것을 포괄하고 끊임없이 작용하는 것, 만물의 어머니라고 볼만한 그것을 무엇이라 해야 할지 우리는 모른다. 우선 도라는 글자로 불러 볼 뿐이다”라고 해석한다. 

 

이 책은 모두 11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융의 자기와 노자의 도”로 시작해 “11장 도는 외롭다”로 끝난다. 각 장마다 다른 주제를 가지고 노자와 융의 사상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과 통찰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융은 말년에 동양 종교와 신비주의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특히 도덕경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지만 융의 이론과 도덕경의 근본 원리를 제대로 이해해야한 노자와 융을 연결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도와 무의식의 관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통해 전체의식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도 도에 다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알려주려 한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은 다음 구절에 잘 요약되어 있다: “정신세계의 근본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의식이라고 융은 말한다. 무의식은 자아의식과 그 발전의 원천이며 뿌리다. 의식은 발전하기 위해 외부적인 것에 일방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밖에 있는 집단의 법칙과 요구에 적응하는 나머지 사람은 자기 자신의 뿌리를 잊고 근본에서 멀어진다.......무의식과의 관계를 다시 맺음으로써 전체정신이 되는 것, 이것을 강조하는 융의 태도와 바깥일에 정신이 팔려있는 사람들 속에서 안을 들여다보고 삶의 원천인 도에서 양식을 구하고자 하는 노자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다.”(332쪽)

 

이와 같이 저자의 핵심 메시지는 융이 말하는 인간의 무의식과 노자의 도를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하고 있다:“도는 무(無)이지만 무에서 유(有)가 생겨나면 실로 다종다양한 것으로 발전, 분화되면서 그 근원인 무의 혼연일체, 무분별성과 거리가 멀어진다.......무와 유의 관계는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와 비슷하다. 최초에 무의식이 있었다. 모든 생성의 씨앗을 담고 있는 어떤 것, 여기서 ‘나(자아)’라는 의식이 태어난다. 그리고 나를 중심으로 의식이 강화되고 분화된다. 대상을 구분하고 분석하는 가운데 의식은 본래 인격의 통합체, 전체인격에서 멀어진다. 그것이 의식의 속성이다”(35쪽) 이런 관점에서 무의식을 해석한 것은 저자가 처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의 정수를 한마디로 마음의 중심에 관한 학설이라고 단언한다. 즉, 인간에게 자아(self)가 의식의 중심이라면 자기(Self)는 전체정신의 중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전체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이것은 무의식의 의식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융의 주장이다. 인간은 누구나 도에서 나왔으나 도로부터 멀어지는데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순환법칙에 의해 다시 도로 돌아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이다. 즉,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도의 운동법칙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융의 대극합일(對極合一)과 같은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정신은 대극(對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인간심성에 대한 융의 기본학설이다. 사랑과 미움,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전진과 후퇴 등 수많은 대극이 있다. 그리고 이들 대극 간에는 늘 반전이 일어난다.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고 그 반대도 일어난다. 융은 경험을 통해 대극을 통합하는 기능이 무의식에 존재함으로 발견하고 이를 초월적 기능이라 이름 하였는데 이로써 긴장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개체는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다고 보았다. 도덕경은 대극반전을 통해 궁극적으로 대극합일에 도달한다는 융의 사상을 가장 잘 요약해주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한 노자의 사상이 연역적 사고의 전형이라면 2만 명이 넘는 환자들의 치료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한 융의 사상은 귀납적 사고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사고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는 사실, 이것 또한 융의 말한 대극합일의 극적인 사례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시공을 초월한 이 두 위대한 사상가들의 통찰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참조 사항> 

우리의 몸밖에 있는 어떤 의식(우주의식, 무한의식, 신의식 또는 신성(神性) 등으로 불리는 그 무엇)에 연결되는 경우에 비로소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작동한다는 입장을 따른다면 인간의 뇌는 단지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하나의 물리적 수단, 즉 수용체(receptor)에 불과하다 할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뇌는 마치 전파를 수신하는 라디오 세트나 TV 수상기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라디오나 TV 수상기의 부품들 중 일부가 고장 나면 온전하게 전파를 수신할 수 없으므로 제대로 소리를 듣거나 온전한 화면을 볼 수 없다. 뇌의 일부가 손상되면 정상적인 정신활동을 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라면 뇌는 비록 수많은 뉴런과 시냅스의 창발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지생물학자들이나 진화생물학자들 그리고 인지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뇌의 창발성 자체가 의식과 정신활동을 생성해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필자는 이런 극단적인 대립을 넘어 인간의 정신작용의 본질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단초를 무의식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이야말로 무한의식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개념적 실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전생 및 환생)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령(영성)도 또한 무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가 의식에 국한시켜 모든 것을 해석하는 한 초월적인 측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도와 무의식을 연결시키려는 저자의 노력도 이런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