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분야

마셜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9-10-14 02:22
조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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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 

역자: 캐서린 한

출판사: 한국 NVC센터(2013)

 

차례 

1장 마음으로 주기-NVC의 핵심

2장 연민을 방해하는 대화

3장 있는 그대로 관찰하기

4장 느낌을 알아차리고 표현하기

5장 욕구를 의식함으로써 자신의 느낌에 대해 책임지기

6장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부탁하기

7장 공감으로 듣기

8장 공감의 힘

9장 우리 자신과 연민으로 연결하기

10장 분노를 온전히 표현하기

11장 보호를 위해 힘을 쓰기

12장 자신을 자유롭게 학 다른 사람을 돕기

13 NVC로 감사하기

 

 

대화란 무엇인가?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다양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의 본성에 역행하는 현상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회가 있으면 이런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려고 노력한다. 각종 모임에 참석하면서 인적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는 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본능적인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모두에게 유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대화(dialogue). 대화가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따라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고 치유를 경험을 할 수도 있다.

 

대화는 중요하다. 그런데 정말 아쉬운 것은 우리는 대부분 제대로 된 대화 방법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자 문화적 문제라 할 수 있다. 누구도 주어진 사회적·문화적 여건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변화는 결국 개인으로부터 시작해 집단으로 확산된 후 궁극적으로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그리고 집단과 집단 간 대화의 긍정적 효과를 높이려는 노력은 정말 중요하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 서로의 마음과 사고에 공감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오히려 점점 고갈되어 가는 듯한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모두 승자가 되는 대화가 가능한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진정한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대화 기술이다. 이런 목적에 가장 적합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비폭력대화1984년 비영리단체인 비폭력대화센터(Center for Nonviolent Communication)를 설립해 세계평화를 실천하는데 기여하려고 노력해온 임상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Marshall B. Rosenberg)가 비폭력대화 기법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쓴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한국인들에게 특히 긴요한 책이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는 불꽃 튀는 감정이 아니라 자기애를 바탕으로 지식을 쌓고 배려하는 능력을 키우면서 꾸준히 연마해야 하는 기술(art)로 설명했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강조하는 대화의 기술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대화의 기술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대화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면서 실제로는 상대방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화란 쌍방적이며 정보를 교류하고 관계를 형성하는 행위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여한 사람들 모두의 의식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해야만 진정한 대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수준 높은 대화다. 그러나 이것은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고 상대방에 대한 공감(empathy)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결코 실현하기 어려운 경지다. 

  

이런 관점에서 간명하면서도 깊이 있게 대화의 본질을 논했던 인물로 필자는 양자물리학자이자 사상가였던 데이비드 봄(David Bohm)을 언급하고 싶다. 봄은 저서 창조적 대화론(On Dialogue)에서 소통(communication)과 대화(dialogue)를 구분하면서, 소통이란 뭔가를 공통으로 만드는 행위라고 정의했다. 즉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정보나 지식을 가능한 정확한 방법으로 전달하는 행위가 소통이라는 것이다. 물론 소통의 대상은 정보나 지식에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공유함으로써 모두에게 유익한 모든 것들이 소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현재 한국사회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형성해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려는 시위 행위는 비록 정의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일지라도 제대로 된 소통이라고 보기 어렵다. 특히 지극히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두 집단이 최소한의 접점도 없이 자신들의 주장만을 관철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현재 한국사회를 규정하는 단어 한 가지 들자면 소통의 부재바로 이것이다.

 

또한 봄에 의하면 대화란 말의 의미가 서로 통하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대화는 반드시 두 사람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가운데 이루어질 수도 있으며 혼자의 경우에도 가능하다. 이른바 자기 자신과의 대화도 가능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화는 정해진 주제가 없더라도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대표적인 방식에 해당한다. 봄은 소통 가운데서도 대화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해 책의 상당부분을 대화의 과학적, 의미론적 측면을 세밀하게 분석하였다. 

 

봄은 대화의 목적은 자신의 주장이나 가정(假定)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설득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주장이나 가정에 대한 판단을 유보(留保)한 가운데 이런 상태를 주의 깊게 관찰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서 봄이 말하는 가정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자기 나름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대화 이전에 이미 고착되어 있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다. 봄은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의식이 어떻게 사고를 유발하고 이로부터 어떻게 의미가 형성되어 갈등을 유발하며 결국 어떻게 사회를 파편화’ (fragmentation)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에 의하면 대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의미들을 면밀하게 관찰함으로써 보다 높은 차원의 의미를 공유하는 데 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써 기존 사고의 한계를 극복하고 창조적인 결과를 얻는 것이 진정한 대화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창조적인 결과란 모두가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는 대립적이고 파편화된 상황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으며 각자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에 참여하고 있다는 확장된 의식을 공유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 봄의 생각이다. ‘의식의 파편화’(fragmentation of consciousness)를 극복하는 방편으로서의 대화, 이것이 진정한 대화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봄이 제시한 대화의 본질에 비추어 볼 때 이 책은 이런 대화를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봄이 대화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원리를 밝혔다면 로젠버그는 이를 실천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이 두 책은 상호보완적이다. 필자가 이 책을 리뷰하면서 굳이 봄의 책을 언급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필자는 한국인들이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진정한 대화를 실천하려 노력한다면 현실은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 

 

 

비폭력대화를 위한 핵심 구성요소: 느낌과 욕구의 솔직한 표현 

대화는 윈-윈 과정이 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부모-자식 관계, 노사관계, 정당들 간 관계, 선생-학생 관계 등 실로 거의 대부분의 관계에서 대화는 이상에서 한 참 멀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역효과를 내고 있다. 필자도 오랫동안 형제들 간에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신적, 물질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본 경험이 있기에 누구보다 대화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봄이 말한 것처럼 자신의 가정을 유보한 상태에서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상대방이 잘못했다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시작한다면 원했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화 이전보다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경우를 종종 체험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화를 통해 누구도 불편해지거나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대화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연민(compassion)과 공감(empathy)이라는 저자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연민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며 공감은 단순히 상대방의 입장이나 처지를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 감정이입이 될 정도가 되어야 가능한 감정이다. 저자는 공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는데, 장자(莊子)의 말을 인용한 것이 이채롭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장자는 진정한 공감이란 자신의 존재 전체로 듣는 것이라고 말했다: 듣는 것에는 귀로만 듣는 것이 있고, 마음으로 이해하면 듣는 것이 있다. 그러나 영혼으로 들을 때는 몸이나 마음 같은 어느 한 기능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로 들을 때는 이런 모든 기능들이 비워지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기능들이 비워졌을 때 전 존재로 들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바로 앞에 있는 것을 그대로 직접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절대로 귀로 듣거나 마음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다.”(155) 

 

장자가 한 말의 출처를 표시하지 않았으나 아마 장자에 나오는 구절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감의 전제가 존재 전체로 듣는 것이라는 표현이 강렬하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이런 태도를 항상 유지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프랑스의 작가이자 노동운동가였던 시몬 베유(Simone Weil)가 한 다음과 같은 말을 인용하였는데 우리 모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매우 드물고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스스로 그런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156) 

 

필자는 베유의 지적에 동의한다. 상대방에게 연민을 보이고 동정심을 갖는 것은 대체로 가능할 것이다. 그렇지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즉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그의 문제를 이해하려면 자신의 에고를 내려놓은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함부로 공감한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정직과 더불어 공감을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 NVC)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강조하고 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모두 정직한 태도를 갖고 공감하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 책의 제목으로는 비폭력소통이 더 적절하겠으나 비폭력대화로 번역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앞서 봄의 주장을 통해 살펴보았듯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소통방식이 대화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앞으로 정보기술이 더욱 발달해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우리의 주된 대화 상대가 되더라고 변하지 않을 원칙이다. 결국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 친구, 동료 나아가 사회에서 만나는 익명의 타인들과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이런 대화를 돕기 위한 수단으로 역할을 하는 데 그쳐야 할 것이다. 나아가 비폭력대화의 배후에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감정이 공감임을 감안할 때 한국사회에서 비폭력대화를 전파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분들(고현희 원장님을 비롯한 전문가들)이 최근 비폭력대화의 워크북을 출판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말하면 통하는 공감대화라고 정한 것도 일리 있다. 비폭력대화보다는 공감대화가 훨씬 더 거부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비폭력대화 = 공감대화>라는 등식이 성립하며, 우리가 지향해야 하는 대화는 바로 이런 대화인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비폭력대화는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가? 단순히 이론적인 원칙을 천명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이 책은 아마 그동안 출판되었던 수많은 자기계발서의 하나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부류의 책들과는 완연히 다르다. 무엇보다도 순차적으로 비폭력대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요소들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가 경험했던 다양한 실제 사례들을 통해 그 효능을 확인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특히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조직폭력배 집단들 간 문제나 팔레스타인 사태 같이 국제적으로 주목 받았던 문제에 관여해 비폭력대화를 통한 평화적인 해법을 모색했던 사례들은 인상적이다. 그 외 비폭력대화를 배우려던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경험을 하게 해준 것도 비폭력대화의 놀라운 효능을 보여준다. 

 

이와 같이 비폭력대화가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서도 언급했던 정직과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 대화에 참여한 당사자들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술을 체득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게다가 이 대화기술이 어떤 추상적인 원칙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느낌이라는 원초적인 요인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비폭력대화를 구성하는 네 가지 핵심 요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서로 마음으로 주고받는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다음 네 가지에 우리 의식의 초점을 둔다. 

첫째로, 어떤 상황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둘째로, 그 행동을 보았을 때 어떻게 느끼는가를 말한다.

셋째로, 자신이 알아차린 느낌이 내면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는지를 말한다.

넷째로, 내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해주길 바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21~22)

 

바로 이것이다. 관찰(observations) 느낌(feelings) 욕구(needs) 부탁(requests)의 순서로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재구성함으로써 쓸데없는 긴장을 피할 뿐 아니라 더 효과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거나 손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비폭력대화는 원-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대화에 적용되어야 하는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단지 비폭력대화는 이 원칙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키도록 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비폭력대화(NVC)를 통해 우리 의식을 네 가지 요소우리가 무엇을 관찰하고, 느끼고, 바라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무엇을 부탁하는가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29) 

 

필자는 저자가 말한 첫 단계에 적용되는 관찰은 앞서 언급했던 봄이 말한 자신의 가정을 유보한 상태에서 상대방의 말에 집중한다는 것과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모든 진정한 대화의 출발점인 것이다. 절대로 상대방의 말을 자신의 세계관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극히 타당하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대화에서는 최대한 도덕적 판단을 배제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이것이 대화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삶을 소외시키는 대화 방법은 위계적이고 지배적인 사회구조에서 시작되었고, 동시에 그러한 사회구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 차르, 귀족 등 소수 지배자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인구를 통제하려면, 대중들이 노예 같은 사고구조를 같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틀렸다거나 해야만 한다또는 안 하면 안 된다와 같은 말들은 이러한 목적에 아주 적합한 언어이다. 나쁘거나 잘못됐음을 암시하는 도덕주의적 판단으로 생각하도록 훈련을 받을수록, 사람들은 무엇이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쁜가 하는 판단의 기준을 외부의 다른 권위자에게서 구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진실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가가 더 중요해진다.”(49) 

 

저자는 이 대목에서 우리 모두가 일반적으로 익숙해 있는 대화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역사적, 사회의 위계질서적 관점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각종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폭력대화와 같은 완전히 새로운 대화 방법을 제안한 것이다. 이는 직식이 많든, 지위가 높든, 돈이 많든 그리고 이와 반대 상황에 있든 우리 모두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비폭력대화의 원칙을 위반한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들은 대체로 공감 능력이 형편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한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관점에서 비폭력대화의 네 가지 요소를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관점과 상대방의 관점이라는 정반대의 관점을 모두 포용하는 비폭력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때 최상의 대화는 자신의 관점을 버리고 상대방의 관점에서 비폭력대화를 시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또한 앞서 소개한 이렇게 말하면 통하는 공감대화라는 책에서도 우리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공감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말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필자는 이 책에서 제시한 비폭력대화와 관련된 핵심요소를 하나로 압축하라면 느낌’(feelings)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다. 저자의 탁월한 글 솜씨뿐만 아니라 풍부한 실제 사례들, 그리고 저자가 친절하게 독자들에게 제공한 자가진단 질문 등 여러 면에서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책이다. 따라서 전공과 직업을 막론하고 누구나 읽어야 하는 책이다. 적어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더 이상의 소개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데 필자가 이 책에서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자면 저자가 그토록 강조한 느낌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비폭력대화는 결국 자신의 느낌과 상대방의 느낌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느낌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외부의 누구도 자신의 느낌을 지배하지 못한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자신의 느낌에 대한 자극을 받을 뿐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다음 생각이나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도 느낌은 비폭력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저자는 느낌의 중요성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저자는 다음 구절에서 느낌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슬픔, 좌절, 실망, 두려움, 애잔함 등 우리가 이런 여러 느낌들을 가지고 태어난 데에는 한 가지 목적이 있다. 이런 느낌들의 목적은 우리가 원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연스러운 느낌이 우리 몸과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죄책감, 수치심, 우울 등 욕구로부터의 단절에서 오는 영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216)

 

그런데 필자는 느낌을 말하려면 반드시 정서(emotion)와의 관계를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느낌과 정서는 동전의 양면에 해당되면서 미묘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이 둘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필자는 구분하는 것이 맞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emotion은 감정으로도 번역되는데 sentiment와 구별하기 위해 종종 정서로 번역된다. 반면 sentiment는 감정으로 번역되는데, affect라는 단어도 보통 감정으로 번역되기에 이들 용어들이 같이 사용되는 경우 때로는 혼란스럽다. 

 

필자가 굳이 느낌에 대해 논의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인간의 마음과 행동이 결정되는 과정에서 느낌이 차지하는 위상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게 하는 가장 큰 차이를 신피질을 활용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정보를 종합해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고 행동하는 능력에서 찾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이유로 흔히 포유류의 뇌라고 불리는 변연계(limbic system)가 주축이 되어 담당하고 있는 각종 감정이나 느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필자는 요즘 그 반대로 인간의 지적 능력은 감정이나 느낌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욕구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제반문제들을 처리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뇌의 진화 과정을 고려해도 변연계가 먼저 발달한 이후 신피질이 등장했으니 더욱 그럴 것 같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필자는 오랫동안 인간의 감정과 느낌에 대한 신경과학적 연구 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미국 남가주대학의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 교수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다. 다마지오 교수는 최근 출판한 저서 느낌의 진화에서도 정서와 느낌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그는 정서란 외부와 내부의 자극으로 인해, 예컨대 동공이 확장되거나, 뇌의 특정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거나, 또는 소름이 끼치거나 땀이 흐르는 것과 같은 육체적이고 생리적인 현상이라고 본다. 따라서 정서는 매우 짧은 시간동안에 일어나는 현상인 셈이다. 그러다가 이런 변화에 인간의 주관적인 생각이 첨가됨으로써 육체적, 생리적, 그리고 정신적 작용이 융합된 결과 느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이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이 말은 느낌은 인간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우리가 무엇을 진정 원하는지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즉 사회적 관계와 이에 따른 각종 되먹임이 반영되어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감정(sentiment)이 형성된다. 다마지오 교수가 말한 affect가 바로 이 감정에 해당되는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외부와 내부의 자극으로부터 유발되는 반응은 정서 느낌 감정의 순서로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랜 기간에 걸쳐 인간이 구축한 문명 및 문화와 관련해 느낌이 갖는 위상이다. 다마지오 교수는 예술, 문학, 음악, 종교, 철학 그리고 과학을 망라해 인류가 이룩한 엄청난 문화적 업적의 배경에는 이성적, 지적 능력 못지않게 감정과 느낌이 미친 영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감정과 느낌이 문화적 마음에 미친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다는 것이다. 예컨대 고통이라는 느낌으로 인해 의술이 발달한 것이지 지적 호기심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필자는 비폭력대화에서 느낌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미를 바로 이런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낌이 단순히 인간이 보일 수 있는 반응 중 하나에 불과하다면 저자가 관찰을 강조한 후 바로 느낌을 확인하라고 촉구하는 데 대한 논리적 근거가 희박해진다. 느낌은 인간이 외부와 내부의 자극에 반응해 자신의 주관적인 태도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은 대체로 수긍할 수 있다. 극도의 두려움이나 큰 슬픔을 느꼈을 때 우리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우리 이성은 잠시 마비되어 어떤 합리적인 판단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본능적으로 느낌이 인도하는 데로 따르게 된다. 물론 나중에 이성이 회복된 후에는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필자는 저자가 느낌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묵시적으로 이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관찰에서 바로 느낌으로 넘어간 후 자신 또는 상대방의 욕망을 가늠해보는 절차를 정당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가 느낌과 관련된 더 깊은 논의를 생략한 것이 다소 아쉽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놀라운 가치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대화 문화의 정착을 위해

한국처럼 사람들 간 소통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회는 이로 인해 내부 갈등이 점증하고 소모적 논쟁으로 에너지를 소진함에 따라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사람들 간 제대로 된 대화를 모색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대신 인공지능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인간 소외적인 사회가 출현할지도 모른다. 어느 사회나 이런 위험을 안고 있지만 한국사회가 특히 심할 것 같아 걱정이다.

 

필자는 한국이 진정 선진사회로 발전하려면 사람들이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훈련을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기득권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래야 한다고 본다. 이런 노력을 통해서야 비로소 약자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이런 감정을 바탕으로 진정한 사회통합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필자의 기대와는 정반대일 뿐만 아니라 특별한 충격이 없는 한 더욱 악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우려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물질적 풍요를 달성한다 해도 이는 그야말로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공감하는 마음이 사라진 사회는 그저 탐욕스러운 개인들의 경연장이요 약육강식의 정글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존엄(dignity)이 사라진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을 위해 사회가 아니다. 

 

이런 삭막한 환경에 한줄기 빛을 발하는 것이 바로 비폭력대화다. 이미 강조했듯이 정직과 공감을 바탕으로 자신의 솔직한 느낌에 따라 구체적인 욕구를 드러내면서 상대방에서 정중하게 부탁하는 대화,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정확하게 같은 내용을 반복할 수 있는 대화, 이것이 바로 비폭력대화요 공감대화다. 만약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이런 기술을 체득해 비폭력대화를 실천한다면 대화를 나누는 것이 큰 즐거움이자 배움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라도 비폭력대화가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는 날을 위해 각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한국사회에서 공감대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들이 모여 한국의 실정에 맞게 공감대화 워크북 이렇게 말하면 통하는 공감대화를 출판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하겠다. 이 책을 매뉴얼로 삼아 전문가로부터 6주간 훈련을 받으면 누구나 공감대화를 체득할 수 있다니 고무적이다. 대화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기에 연습이 필요하다. 몸에 배어 자동적으로 진행되지 않으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로젠버그의 비폭력대화가 전하는 메시지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워크북에서 안내하는 대로 연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한국사회는 분명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