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 분야

린 맥태거트의 《필드(The Field)》

작성자
이영환
작성일
2018-06-27 11:52
조회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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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린 맥태거트(Lynne Mctaggart)

역자: 이충호

출판사: 김영사(2016)

 

차례

1부 공명하는 우주

1. 어둠 속의 빛 2. 빛의 바다

3. 빛의 존재 4. 세포의 언어

5. 세계와 함께 공명하다

2. 확장된 마음

6. 창조적인 관찰자 7. 꿈의 공유

8. 확장된 눈 9. 무한한 이곳과 지금

3. 영점장의 활용

10. 치유의 장 11. 가이아에서 온 편지

12. 영점 시대

 

 

저자 소개 및 책의 특징

저자 린 맥태거트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며 대중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는 미국 여성이다. 지금도 맥태거트는 일군(一群)의 사람들의 의도(intention)”가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는 유튜브에 있는 여러 동영상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맥태거트는 대체요법을 통해 질병을 치유한 다음부터 현대 의학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담은 의사들이 당신에게 말해주지 않는 것(What Doctors don’t Tell You)라는 제목의 뉴스레터를 발행하기 시작했으며 1996년에는 같은 제목의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계기가 되어 맥태거트는 비단 현대의학만이 아니라 그 바탕에 있는 세계관-뉴턴의 기계적 세계관-에 의문을 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활동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 필드는 이런 그녀의 지적 여정에서 탄생한 것이다. 이 책 후기에 의하면 그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8년의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그녀는 이 긴 여정에서 주류 과학의 관점을 벗어나 새로운 연구를 수행하던 다양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거나 아니면 전화로 상세한 연구 내용을 청취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스스로 공부를 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고 한다.

 

필자가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10여 년 전인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주제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러다가 얼마 전 다시 읽어볼 요량으로 영어로 된 The Field를 구입했는데, 마침 번역본이 새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어 우리말로 다시 읽고 이 리뷰를 쓰게 되었다. 번거롭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매우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망설였다. 이 책은 출판된 이후 14개국 언어로 번역될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양자역학의 난해한 개념들을 쉬운 비유를 통해 대중이 이해할 수 있게 알려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우리가 갖고 있는 기존 세계관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이 책은 새로운 세계관이라는 측면에서는 나름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시도했으며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저자의 각고의 노력의 결심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아무튼 이 정도의 책을 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필자가 리뷰를 망설인 가장 큰 이유는 저자의 논리 전개 방식과 글쓰기 스타일에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펼치는 주장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는 것은 양자역학(quantum mechanism)에서 말하는 영점장(zero-point field) 개념이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 필자로서는 영점장에 대해 저자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나아가 다른 분야에 적절하게 응용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는 영점장은 만물의 모체일 뿐만 아니라 이 안에서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 과학에서는 부정하는 여러 현상, 예컨대 초심리학에서 말하는 초감각지각(Extra Sensory Perception; ESP)도 실은 충분히 현실적인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전문가들의 이론이나 실험 결과를 인용한다. 반면 이런 예외적인 현상들에 대해 비판적인 전문가들의 견해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것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라 보기 어렵다. 이것이 필자가 리뷰를 망설이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다음으로 필자가 망설인 이유로는 저자의 글쓰기 스타일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특정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마치 그 분야에서 대다수가 인정한 듯한 인상을 주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솀프는 자신의 이론을 양자 홀로그래피라고 불렀는데, 3차원 형태를 비롯해 물체에 관한 모든 종류의 정보가 영점장의 양자 요동을 통해 전달되며, 이 정보를 포착하여 재조합하면 3차원 상으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솀프는 푸소프가 예언한 것처럼 영점장이 광대한 기억 저장고라는 사실을 발견했다.”(134) 영점장이 광대한 기억 저장고라는 것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임에도 저자는 마치 이것이 과학계에서 공인된 사실인 것처럼 기술한다. 이외에도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 대목이 매우 많다. 필자는 이런 방식의 글쓰기는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생각한다. 과학의 권위를 이용해 인간의 의식, 정신 나아가 영혼에 대한 새로운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더욱 엄정한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책의 리뷰를 한 이유는 저자의 이런 노력과 시도에 경의를 표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것 중에서 저자와 같은 맥락에서 기존 과학 패러다임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진지한 시도를 담은 대표적인 저서로는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브루스 립튼(Bruce Lipton)자발적 진화,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과학의 망상, 로버트 란자(Robert Lanza)BiocentrismBeyond Biocentrism을 들 수 있다. 이 책들은 기존의 데카르트-뉴턴의 이원론적·기계적 세계관이 여러 분야에 미친 공과(功過)를 논한 다음 이제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물론 각자 전문 분야의 차이와 이로 인해 대안에 대한 견해에 다소 차이가 있지만, 환원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기존의 세계관을 지양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유기체적이고, 시스템적이며, 전일주의(holism)적인 세계관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대동소이하다. 이 책도 이런 관점에서 씌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이유에서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읽는 사람의 몫이다.

 

영점장과 비국소성의 의의 및 적용 범위에 대한 논란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양자물리학에서 존재가 입증된 영점장이다. 여기서 영점(zero-point)은 절대온도 0도를 나타내며 장(field)는 두 개 이상의 물체들 간에 일정한 힘이 작용하는 공간 내지 마당을 지칭하는 용어다. 따라서 영점장은 절대온도 0도의 양자 진공(quantum vacuum) 상태에서 성립하는 에너지장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리학자들이 진공이라고도 부르는 영점장에 ‘0’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절대영도의 온도, 즉 가능한 에너지 상태 중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에서도 장에서 에너지 요동이 포착되기 때문이다. 영점 에너지는 거기서 더 이상 에너지를 뽑아낼 수 없을 만큼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의 텅 빈 공간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하지만 불확정성 원리 때문에 가상 입자 교환에서 생겨나는 미세한 움직임이 항상 존재한다.”(49) 실제로 우주공간은 평균적으로 절대온도 3도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니 절대온도 0도에 매우 근접해 있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영점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 말대로 이 분야에 문외한이었던 저자가 전문가들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이해력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자 버너드 헤이시(Bernard Haisch)는 저서 신이론에서 영점장과 관련해 다음 같이 말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르면 가능한 모든 주파수대에서는 언제나 아주 작은 양의 전자기적 흔들림(양자 요동)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끝없는 요동들을 모두 합치면, 우리는 어마어마한 에너지 총량을 갖는 배경적 빛의 바다(background sea of light)를 얻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전자기적 영점장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헤이시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영점장에 대한 헤이시 및 동료들의 연구가 언젠가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믿음을 표출했다. 진공이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절대온도 0도에서조차 입자와 반입자들이 끊임없이 쌍생성·쌍소멸하는 변화무쌍한 에너지장이다. 이것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에 의해 입증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물리학자들이 인정하는 사실이다.

 

물리학에서 장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기와 자기가 상호작용하는 에너지 마당, 즉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을 발견했고, 제임스 클럭 맥스웰(James C. Maxwell)은 이 장을 기술하는 맥스웰 방정식을 고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익숙한 중력은 중력장(gravitational field)을 통해 그 힘을 행사한다. 저자는 이런 연장선상에서 바닥상태의 에너지장이라 할 수 있는 영점장은 단지 무한한 에너지의 저장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물의 모체라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담대한 주장이기에 근거 없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거침없이 이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저자의 태도에 대해 주류 과학자들은 당연히 비판적이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한 영어권 전문가들의 리뷰 가운데는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모두 사이비과학(pseudoscience)이라고 매도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아마존 독자들의 서평은 평균적으로 매우 호의적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독자들 간에 이같이 극단적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필자는 전문가들의 비판적인 견해를 상당 부분 인정하고 이들이 제시한 학문적인 엄격성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세계관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저자의 주장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평가한다. 그렇지만 영점장을 비롯해 양자역학의 주요 개념들을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경우에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 대해서 저자가 뭐라고 해명할지 궁금하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사항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했던 대표적인 과학자들, 예컨대 막스 플랑크(Max Planck), 닐스 보어(Niels Bohr),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그리고 에르빈 슈뢰딩거(Ervin Schrodinger) 등은 아원자들이 요동치는 미시세계, 나아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요즘의 양자 물리학자들을 상징하는 닥치고 계산이나 하라는 태도와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가졌던 것 같다. 이들 가운데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막스 플랑크는 1944년 이탈리아에서 행한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만물은 원자를 진동하게 만들고, 가장 작은 태양계와 같은 원자를 유지시켜주는 힘으로부터 유래하며 이로 인해 존재한다. 우리는 이런 힘의 뒤에는 의식적이며 지적인 마음이 존재한다고 가정해야 한다. 이 마음이 바로 만물의 모체다.”(All matter originates and exists only by virtue of a force which brings the particle of an atom to vibration and holds this most minute solar system of the atom together. We must assume behind this force the existence of a conscious and intelligent mind. This mind is the matrix of all matter.)

 

그리고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플랑크는 다음과 같은 말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의식을 근본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나는 물질은 의식으로부터 유도된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의식 너머로 갈 수 없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든 것, 우리가 존재한다고 간주하는 모든 것은 의식을 상정(想定)한다.”(I regard consciousness as fundamental. I regard matter as derivative from consciousness. We cannot get behind consciousness. Everything that we talk about, everything that we regard as existing, postulates consciousness.)

 

플랑크의 이런 견해는 저자가 이 책에서 전하려는 메시지와 매우 흡사하다. 이를테면 플랑크가 말한 만물의 모체(matrix of all matter)로서 마음은 저자가 말하는 에너지장으로서 영점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들은 정말로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우리는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라, 에너지를 띤 전하(電荷)이다. 인간과 모든 생물은 세상의 나머지 모든 것과 연결돼 있는 에너지장 속에 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다. 맥동하는 에너지장은 우리의 존재와 의식의 중심 엔진이자. 우리 존재의 알파요 오메가이다.”(19)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아원자들이 요동치는 영점장과 상호 교류하는 가운데 존재를 드러내기도 하고 영점장 속으로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만물의 모체가 바로 영점장이며 여기에 어떻게 접속하는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전생 기억과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도 영점장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에 접속한다는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국소성(non-locality)은 양자역학이 밝힌 미시세계의 기이함을 상징하는 용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과 밀접하게 연관된 성질로서 뉴턴의 고전 물리법칙뿐만 아니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도 위배되는 것으로 간주되어왔다. 물리법칙에 의하면 시공간에 격리되어 있는 두 물체 사이에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양자얽힘에 의하면 얽혀있던 입자가 두 개의 아원자로 분리되는 경우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 아원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즉시 다른 아원자의 상태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시공간을 초월해 빛보다 빠르게 다른 아원자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아인슈타인은 이것을 원격에서의 기이한 행동(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면서 EPR 역설로 알려진 사고실험을 통해 반박하려했으나 결국 그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양자얽힘은 사실로 확인되었고 이것은 비국소성의 근거가 되었다.

 

문제는 비국소성은 아원자, 원자, 그리고 잘해야 분자 수준에서 성립하는 성질임은 확인되었지만 큰 물체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필자가 이해하기에 미시세계에서는 결맞음(coherence)으로 인해 양자적 속성인 양자얽힘 현상이 발생하지만 거시세계에서는 결어긋남(decoherence)이 발생해 양자얽힘 현상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시세계 외의 다른 분야에서 비국소성을 적용하는 데는 조심하는 것이 당연한 태도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저자를 비롯해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과학적 근거를 활용하려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별다른 망설임 없이 이같이 과감한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태도는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비국소성은 물리학의 기반 자체의 뒤흔들었다. 이제 더 이상 물질은 각자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없게 되었다..........아원자 입자는 분리된 상태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상호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세계는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의 복잡한 망으로 존재했다. 상호 연결된 우주에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우주를 관찰하는 살아 있는 의식으로 보였다.”(40) 우리는 입자들은 분리되어 존재하는 실체이며 이들이 모여 생겨난 물체들도 본질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서 국소성을 만족한다. 그런데 적어도 아원자 차원에서는 이런 국소성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즉 아주 작은 단위인 아원자 수준에서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견해이기에 아인슈타인조차 그토록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반복 실험을 통해 이것이 사실임이 입증되었으니 더 이상 왈가왈부할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거시세계에 적용하는 데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아직 충분한 증거가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마치 거시세계에도 비국소성이 그대로 성립하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이 또한 저자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저감시키는 부분이다.

 

끝으로 영점장에 대한 저자의 주장 대부분이 해럴드 푸소프(Harold Puthoff)라는 한 사람의 연구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푸소프는 물리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이자 초심리학자라고 하니 더욱 의문이 든다. 물론 푸소프의 연구도 티모시 보이어라는 학자의 연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개인적인 차원의 연구 성과로 격하시킬 이유는 없다. 그렇지만 양자물리학계에서 푸소프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저자는 그의 연구에 지나치게 편향되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를테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티모시 보이어가 시작하고 푸소프가 완성시킨 연구는 영점장을 고려할 경우 보어(Niels Bohr를 지칭함)의 선언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전자가 정확하게 제 궤도에서 균형을 잡은 채 영점장으로부터 끊임없이 에너지를 잃거나 얻으면서 동역학적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전자는 텅 빈 공간의 요동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으면서 속도를 늦추지 않고 계속 궤도를 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영점장은 수소 원자의 안정성을 설명하며, 더 나아가 모든 물질의 안정성도 설명할 수 있다. 푸소프는 영점 에너지라는 생명 유지 장치를 때는 순간 모든 원자 구조가 붕괴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56) 이 말이 맞는다면 영점장은 앞에서 인용했던 만물의 모체, 즉 막스 플랑크가 말한 매트릭스에 해당된다. 그러면 영점장은 생명 및 의식의 탄생과도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역량으로는 이것을 입증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드러나길 고대한다. 그렇지만 현재로서는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모든 것이 입증되었다는 듯 단정적으로 말한다. 필자로서는 저자의 이런 태도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영점장의 존재에 대해서는 이를 입증하는 다양한 증거-이를테면 램 이동(Lamb Shift), 카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 -가 있으므로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그렇지만 영점장의 역할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는 것으로 안다. 예컨대 영점장에 보존되어 있는 에너지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는 주장부터 거의 무시할 수준에 불과하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나아가 저자는 인간의 기억이나 의식을 포함한 모든 것들이 영점장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여기서 탄생하고 이곳으로 소멸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영점장을 통해 전생 기억이나 윤회 및 임사체험을 포함한 일체의 초자연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영점장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비록 저자는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하지만,

 

관찰자 효과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 대한 평가

양자역학에서 지금도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이 관찰자 효과(observer effect) 또는 측정 문제(measurement problem). 이와 관련해 지금도 가장 널리 수용되고 있는 것은 코펜하겐 해석이다. 이 해석에 의하면 의식 있는 관찰자는 슈뢰딩거의 파동함수(wave function)를 붕괴시켜 입자로 드러나게 한다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자 막스 보른(Max Born)은 이 파동함수의 제곱은 전자와 같은 아원자가 발견될 확률이라는 것을 입증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해석에 대해서 끊임없이 반론이 제기되어 온 것으로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관찰자의 범위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어떤 사람은 관찰자를 인간과 같이 의식 있는 존재로 한정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가이거 계측기 같은 기계도 관찰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나아가 물리학자 휴 에버렛(Hugh Everett)은 일찍이 다세계 해석(many-world interpretation)이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에서 입자-파동의 이중성을 해석하려고 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관찰자 효과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여러 가지 우주가 동시에 존재하는데 단지 관찰자에게는 파동함수가 붕괴되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이 제시한, 이른바 숨은 변수에 입각한 봄 해석도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하지 않은 필자가 이런 얘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저자가 과연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입자들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잠재적으로존재한다가 관찰이나 측정 행위를 통해 간섭을 받는 순간, 어떤 상태로 결정된다. 이 놀라운 결과는 현실의 본질에 관해서도 기존의 견해를 무너뜨리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결과는 관찰자의 의식이 관찰 대상을 존재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것 중 우리의 의식과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일 매 순간 우리는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41)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관찰자 효과에 대한 전형적인 과잉 해석에 해당된다. 골수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양자역학에 대한 이런 방식의 틀린 해석에 입각해 사람들을 오도하고 있다고 대표적인 뉴에이지 영성지도자인 디팍 초프라(Deepak Chopra)를 비난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도 우리가 세계를 창조한다는 주장은 문제가 많다. 관찰자 효과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전혀 다르다. 의식 있는 관찰자가 입자의 형태로 드러나게 했다는 의미에서 관념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그 이상은 현재로서는 논리적 비약이다.

 

관찰자 효과에 대한 저자의 논리적 비약은 초심리학(parapsychology)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초감각 지각(Extra Sensory Perception; ESP)에 이 개념을 적용하려는 데서 절정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의 같은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같은 질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만약 인간 관찰자가 전자를 어느 상태로 고정시킬 수 있다면, 더 큰 규모의 현실에서는 어느 정도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관찰자 효과는 살아 있는 의식이 개입할 때에만 영점장 같은 원시 수프에서 현실이 나타난다는 것을 시사했다. 그렇다면 이 논리에 따른다면, 우리가 관여할 때에만 물리적 세계가 구체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149)

 

이런 저자의 논리에 의하면 의식적인 존재는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 물질이나 기계의 작동애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영점장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의식적인 관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생각하게 되면 기계의 작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원격 투시(remote viewing)나 텔레파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이런 주장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런 분야에서 실제로 전문가들의 했던 다양한 실험 결과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 한다. 저자가 관찰자 효과라는 양자역학의 미묘한 쟁점을 이용해 여러 가지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저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낳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영점장과 동종 요법 및 초감각 지각

저자가 이 책에서 상당한 비중을 두면서 다루고 있는 것은 대체의학과 초심리학 분야에서의 연구 결과다. 어떤 면에서는 저자는 이 두 분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대한 논의를 위해 영점장을 비롯한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을 차용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즉 저자는 우선 자신이 다루려는 논의를 지지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에 대해 설명을 한 후 이를 바탕으로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입증하는 통합적인 논의를 전개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이 책을 쓰는 데 무엇보다도 큰 영감을 준 사건으로 1971년 아폴로 14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던 우주인 에드가 미첼(Edgar Mitchell)의 신비체험을 들수 있다. 미첼은 원래 초감각 지각(ESP)에 관심이 많았기에 그런 체험을 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탑승했던 우주선에서 최초로 지구 밖에서 바라본 푸른 별 지구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찍었으며 그 후 이 사진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다. 우리 모두는 외로운 행성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는 연결의식을 느끼는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미첼은 은퇴한 이후 캘리포니아에 <정신과학 연구소(Institute of the Noetic Sciences)>를 설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진행되던 초심리학 분야의 다양한 연구들을 통합하는 데도 크게 기여했다.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여러 분야 가운데 미첼과 대부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그렇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그때, 미첼은 이전에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것은 연결느낌이었는데, 모든 행성과 모든 시대와 모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망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모든 사람과 그들의 의도와 생각, 그리고 모든 시대에 존재한 모든 생물과 무생물을 연결하는 어마어마한 역장(force field)이 그곳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33) 저자는 미첼이 느꼈던 바로 그 느낌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양자 에너지장이라면 이것은 모든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든 양자역학의 법칙을 만족하는 가운데 파동의 형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주의 일부인 우리 몸과 의식도 양자 세계의 법칙을 따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저자는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우리 몸을 구성하는 세포들 간의 연결 관계, 동종 요법이라는 대체의학이 효력을 갖는 이유, 세포들이 DNA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형태와 관련된 정보를 얻는 방법, 우리의 뇌가 홀로그램(hologram)으로 작동하는 방식, 의식의 양자역학적 근거, 초심리학에 말하는 초자연적 현상인 원격 투시, 텔레파시, 원격 치유, 마음과 물질 간의 교감 등 실로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주장의 진위를 떠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바탕으로 이 정도의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통합적 접근을 선호하는 필자로서는 저자의 대단한 노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분야의 논의에 대해 필자가 어느 정도 공감하는 이유는 저자가 인용한 주요 인물들에 대해 필자 또한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뇌의 역할에 대한 칼 프리브람(Karl Pribram)의 연구, 형태형성장(morphogenetic field)에 대한 루퍼트 셸드레이크(Rupert Sheldrake)의 연구, 정보장(information field) 내지 아카식 기억(Akashic memory)에 대한 에르빈 라슬로(Ervin Laszlo)의 연구, 무작위적 사건 생성기(Random Event Generator; REG)를 이용한 딘 래딘(Dean Radin)의 연구 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1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보다는 훨씬 거부감이 적었던 것이리라.

 

그렇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자가 이들의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들 모두 자신의 연구를 통해 획기적인 발견을 했으며 모두 확고한 진실로 밝혀진 것처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전 세계에서 실시된 연구 결과는 인간의 의도가 세균과 효모, 식물, 개미, 병아리, 생쥐와 쥐, 개와 고양이, 인간 세포 표본, 효소의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한 집단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 사람들의 눈이나 큰 근육 운동 움직임, 호흡, 심지어는 뇌의 리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효과는 작았지만, 일관성 있게 나타났고, 처음으로 이 능력을 시도한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그런 효과가 나타났다.”(186) 필자도 이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마치 이런 현상이 항상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는 데는 거부감이 있다. 이것은 보다 엄격한 실험 설계를 통해 재현(reproduction)되는지 확인이 된 이후에나 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과학적 기준으로서 재현성의 의의를 무시하는 것은 자충수를 두는 것이다.

 

그리고 초심리학에서 말하는 여러 가지 현상과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결맞음을 주위 환경으로 확장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단순히 어떤 것을 바라는 행위만으로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힘이다. 잔은 적어도 아원자 단계에서는 마음이 물질을 지배하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와 함께 인간 의도의 강력한 본질에 대해 훨씬 기본적인 사실도 입증했다. REG(Random Event Generator) 데이터는 인간 창조성의 본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문을 제공했다. 잔은 인간의 의식이 무작위적인 전자 장비에 질서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를 얻었다.”(174) 이것은 매우 도발적인 진술이다. REG는 무작위적으로 사건을 생성하는 기계를 말한다. 예컨대 컴퓨터에서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절반씩 무직위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은 REG의 일종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실험에 참가한 사람이 동전의 앞면이나 뒷면 중 하나가 나오기를 바라면 이런 의도가 기계에 영향을 미쳐 앞면이나 뒷면이 더 자주 나오게 된다는 것이다. 즉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다. 예컨대 앞면이 55% 이상 나온다면 50% 나오는 무작위적인 경우와 비교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저자는 몇몇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인간의 의도가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이것이 보편적인 현상인 것처럼 말한다. 적어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편향된 주장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른바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의 일종인 셈이다. 즉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이터는 취하고 그렇지 않은 데이터는 무시함으로써 자신의 가설을 확신하는 성향을 가리킨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이 책 곳곳에서 이런 유형의 확증편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확증편향의 다른 사례로 중보기도의 효과에 대한 저자의 평가를 들 수 있다. 이는 원격 치유의 일종에 해당한다. 저자는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분류한 후 이중맹검법이라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어떤 집단이 치유를 기원하는 기도를 받고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진행된 실험 결과에 의하면 유의미한 차이가 확인되었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마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1988년에 랜돌프 버드(Randolph Byrd)라는 의사가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버드는 무작위적이고 이중맹검법을 따른 실험을 통해 원격 기도가 관상동맥 집중치료실 환자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다.......그런데 원격 치유를 시도한 후, 기도를 받은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심한 증상이 크게 줄어들었고, 폐렴 발생 사례가 더 적었으며, 산소 호흡기 사용 빈도가 더 낮았고, 항생제 투여량도 줄어들었다.”(251) 이런 실험 결과를 한 번 얻었다는 것만으로 원격 치유가 효과가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과학적이라 할 수 없다. 이미 언급했듯이 재현성이 중요하다. 이런 실험에서 중요한 것은 엄격하게 실험을 설계하는 것이다. 여러 변수들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실험을 진행하는지 여부에 따라 실험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원격 기도가 환자들의 치유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실험 결과도 적지 않다. 여기서도 저자는 확증편향을 보여준다.

 

그런데 저자는 이 책에서 인용한 실험 결과에 입각해 인간의 의도, 즉 의식적 마음이 다른 사람들의 건강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임에 틀림없으며 이것은 영점장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기에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한다. 설사 저자의 주장이 맞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관관계를 밝힌데 지나지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과관계인데 저자는 이에 대한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 이 둘 간의 차이들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동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도가 어떤 경로를 통해 기계의 작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 것이며 이것은 인과관계의 문제다, 그렇지만 저자는 시종일관 상관관계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초심리학 분야에 속하는 다양한 초감각 지각-텔레파시, 염력, 원격 투시, 원격 치유, 예감 등-과 관련해 여러 전문가들의 실험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실험 결과가 초감각 지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이렇게 과감한 주장을 펼치는 배경에는 영점장을 통해 모든 것들이 파동의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이 존재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다음에 잘 드러나 있다. 과거에는 초자연적 능력(예지, 전생, 투시, 치유 능력 등)은 가끔 일부 개인을 통해 입증되었을 뿐이고, 그것은 금방 자연의 변덕이나 속임수로 일축되었다. 그러나 이들 과학자의 연구는 그러한 능력이 비정상적이거나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진 능력임을 보여주었다.......과학은 마침내 우리의 모든 잠재력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를 인류 역사의 마지막 진화 단계로 올라서도록 도와줄 것이다.”(298) 이것은 논리학에서 말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이런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는 데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만물의 모체로서 영점장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환원주의 vs. 전일주의: 대극의 합일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영점장을 소개한 이후 이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높아진 것은 전적으로 저자의 공로다. 그렇지만 영점장과 비국소성 및 관찰자 효과라는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에 대한 저자의 해석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의식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기억과 뇌의 관계, 초자연적 현상,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도(intention)의 원격 효과 등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연결시키는 에너지 배경으로 영점장을 그렇게 해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의 취지에는 상당 부분 공감하지만 방법론적인 면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여기서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르네 데카르트-아이작 뉴턴-찰스 다윈으로 이어지는 환원주의에 입각한 기계적 세계관에 대한 평가 문제다. 이미 필자가 다른 리뷰에서도 강조했듯이 문명의 차원에서 기계적 세계관의 대안을 모색한 대표적인 저서로는 프리초프 카프라의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브루스 립튼의 자발적 진화를 들 수 있다. 이 책도 이들과 같은 반열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다음에 잘 요약되어 있다. 이들은(새로운 과학에 동참한 사람들) 우리가 단순히 우연한 진화의 산물이거나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의 연구는 분산돼 있으면서도 통합된 지능의 존재를 시사했는데, 그것은 다윈이나 뉴턴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하고 정교한 존재이며, 그 과정은 무작위적이거나 혼돈적인 것이 아니라, 지성적이고 목적을 지닌 것이다. 이들은 생명의 역동적인 흐름 속에서 질서가 승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297)

 

필자도 이런 저자의 입장에 상당히 공감한다. 비록 저자가 통합된 지능의 존재라는 표현이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를 시사한다는 의혹을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자는 데카르트-뉴턴-다윈의 이론에 기반을 둔 기계적 세계관은 일방적으로 매도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당시의 지배적이었던 가톨릭에 기반을 둔 종교적 세계관에 대한 반발의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나름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칼 융이 말한 대극의 반전에 해당된다. 그런데 요즈음 기계적 세계관이 또 다른 극단으로 흘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로 유기체적·시스템적·전일적 세계관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대극의 반전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계관을 갖는 것이 바람직할 것인가? 기계적 세계관은 환원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모든 기계는 그것을 구성하는 부품으로 낱낱이 분해하면 그 성질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원주의적 방법론이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자만에 빠진 것이 문제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많은 증거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런 예외들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은 환원주의에 바탕을 둔 기존의 패러다임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이제는 이런 한계를 수용할 때가 온 것 같다. 여러 분야에서 환원주의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인간의 뇌와 관련된 논의를 들 수 있다. 환원주의적인 기존의 뇌과학에 의하면 인간의 의식(과 마음)은 뇌의 산물이다. 뇌는 의식의 생산자(producer)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반박하는 다양한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축적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의 정신과 교수였던 이언 스티븐슨(Ian Steveson)이 주도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전생 기억에 관한 연구는 뇌가 의식의 생산자라는 주장에 대한 무시할 수 없는 반증(反證)을 제공한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가 말했듯이 반증 사례가 확인되면 기존의 이론은 수정되어야 한다. 검은 백조가 발견된 이후 백조에 대한 정의가 수정되었듯이 말이다.

 

이외에도 수많은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NDE) 사례와 유체이탈(Out of Body Experience; OBE) 사례는 뇌가 의식의 생산자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증거로서 점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연구에 참여한 의사, 신경과학자, 심리학자들의 진지한 연구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매도하는 것 자체가 비과학적이다. 이들이 왜 그토록 많은 시간과 정열을 투입해 그런 현상을 연구하는지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주류 신경과학자들이 환원주의적 방법에 근거해 뇌의 각종 부위가 인간의 어떤 기능과 연관되어 있는지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개발한 것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필자는 이들이 이런 방법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임사체험이나 유체이탈 및 전생 기억 등의 사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뇌의 본질에 대해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과학적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행해야 할 세계관은 통합적 세계관이다. 환원주의의 한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장점을 취하고, 전일주의의 모호함을 비판하기 보다는 전체에 대한 통찰이라는 장점을 취함으로써 환원주의와 전일주의라는 두 극단적 방법의 조화, 즉 대극의 합일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를 올바른 세계관으로 인도할 수 있다. 환원주의 대 전일주의의 논쟁을 종식할 때가 온 것이다. 이 책은 영점장에 대한 과감한 해석을 바탕으로 우리에게 이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세부적으로는 지나친 논리적 비약으로 간주할 수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눈에 띰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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