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세이프의 《만물해독(Decoding the Universe)》
저자: 찰스 세이프(Charles Seife)
역자: 김은영
출판사: 지식의숲(2016)
차례
1장 잉여성
2장 악마들
3장 정보
4장 생명
5장 빛보다 빠르게
6장 패러독스
7장 양자 정보
8장 갈등
9장 우주
■ 기대 이상의 책: 정보의 물리적 해석
저자 찰스 세이프는 뉴욕 대학교 언론학 교수이자 『Zero』를 비롯해 여러 권의 과학 분야 책을 출판했으며 과학 잡지에 정기적으로 기고했던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언론학을 전공한 사람이 물리학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이 정도 책을 썼는지 의문이 들었는데, 그가 학부와 대학원에서 수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어느 정도 의문이 풀렸다. 세이프는 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일찍이 물리학에 대한 상당한 지식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Claude Shannon, 1916~2001)이 수학자이자 전기공학자였음을 감안할 때 세이프가 이 책을 쓴 것이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이 책은 물리학의 관점에서 정보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고 있다. 필자가 아는 바에 의하면 물리학의 관점에서 정보 문제를 다룬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이 책들은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다. 반면 이 책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두드러진다. 한 마디로 일반인들이 정보와 관련된 근원적인 문제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지금과 같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정보는 모든 면에서 가장 중요하며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를테면 정보는 금융시장에서 수익률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되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런 현상이 시장경제 전반, 나아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로 확대될 것이다. 정보를 장악한 주체는 사실상 해당 분야를 통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 개발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것도 결국 우월한 정보를 이용해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도 정보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은 이런 목적에 잘 부합하는 책이다.
앞의 차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매우 간결하게 구성되어 있다. 모두 정보와 관련된 9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전반부에 해당하는 1장부터 4장까지는 정보와 관련된 고전적 문제들-암호, 잉여성, 엔트로피 등-을 다루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잉여성(redundancy)과 엔트로피(entropy)에 대해 매우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클로드 섀넌이 1948년에 발표한 《Mathematical Theory of Communication》의 정보이론의 기초를 다진 획기적인 논문인데 여기서 잉여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었다. 간단히 말해 섀넌이 정의한 정보와 잉여성은 상보적인 개념으로서 잉여성이 정해지면 정보량(information quantity)이 결정되며 그 역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논의할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의 핵심 개념인 엔트로피는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은 개념이다. 이 법칙에 의하면 닫힌 계(closed system)에서 엔트로피는 결코 감소하지 않는다. 저자는 아주 쉬운 예를 이용해 이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나아가 엔트로피와 관련된 쟁점과 정보이론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내용이다.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가 1865년에 소개한 엔트로피 개념은 훗날 비운의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에 의해 일반적인 개념으로 확립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통계역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탄생했다. 물리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엔트로피와 정보이론에서 말하는 정보와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책이 별로 없었는데 이 책은 이 부분에서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본다. 이것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의 후반부인 5장 이하에서는 현대 물리학에서 정보의 의의에 관한 상세한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리학자들이 정보라는 형체도 없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개념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몇몇 선구적인 학자들의 노력으로 물리학자들이 정보의 관점에서 물리 현상을 조망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물리학자로서는, 필자가 아는 한, 존 휠러(John A. Wheeler), 데이비드 봄(David Bohm), 그리고 롤프 란다우어(Rolf Landauer)를 들 수 있다. 특히 존 휠러는 “모든 것은 정보다(Everything is information)”라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으며, 란다우어는 “정보는 물리적이다(Information is physical)”라면서 질량, 에너지 못지않게 정보가 물리적인 현상임을 입증했다. 봄은 이 둘과는 다른 관점, 특히 의미(meaning)의 관점에서 정보 문제를 다루었는데 그의 논점은 물리학의 주류는 아니었다. 정보이론의 전통을 이어 받아 물리학자들은 정보의 양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리학의 전통에 비추어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했다. 사물의 질적인 측면이나 주관적인 측면을 다루는 데 물리학은 관심이 없었다.
저자가 후반부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현대 물리학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결국 정보에 관한 이론이라는 점이다. 처음에는 저자의 이런 주장이 물리학자가 아닌 사람의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졌다. 그런데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이것이 결코 과장이나 허위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닦는데 기여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Uncertainty principle)는 정보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이 책은 이것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나아가 상대성이론 또한 정보에 관한 이론이라는 주장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주에 빛보다 빠른 것은 없으며 빛의 속도는 항상 일정하다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상대성이론은 정보에 관한 이론이라는 결론을 도출하는 저자의 논리에 공감할 수 있다. 그리고 조금만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 저자의 주장이 매우 간단한 논리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우리의 사고가 경직되어 있기에 이런 간단한 관계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리라.
■ 정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일상생활과 업무를 포함해 모든 면에서 정보에 의존해 일을 처리하는 데 익숙하다. 1980년대 개인용 컴퓨터, 1990년대 인터넷, 2000년대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실시간으로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전송, 수신, 저장 및 처리하는 가운데 의사결정을 내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정보혁명은 인간의 삶에 그 어떤 것보다 큰 변화를 초래했다. 이제는 정보가 너무 일상적인 개념이 되어서 누구도 정보에 담긴 깊은 의미에 관심을 갖지 않는 실정이지만, 사실 정보는 간단한 개념이 아니다. 이제라도 정보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들을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특히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정보기술이 모든 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술, 이른바 메타기술(meta technology)로서 역할을 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선 정보는 여러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으며, 종류도 많을 뿐만 아니라 용도 또한 다양하기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정보는 간단하다고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르나 많은 전문가들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정보는 의외로 심오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진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학문 분야에 따라 정보를 아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혼란을 유발하기도 한다. 반면 정보는 일상생활에서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수단 정도로 간단하게 취급된다. 이런 혼란을 극복하고 이론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야만 우리는 정보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이 책에서 정보를 다루는 방식과 관련해 특히 유의할 점은 정보의 두 가지 측면, 즉 양적 측면과 질적 측면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전자는 정보량(information quantity)과 관련되어 있고, 후자는 정보의 질(information quality)와 관련되어 있다. 흔히 정보이론(information theory) 또는 통신이론(communication theory)으로 알려진 분야 및 물리학과 생물학 등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정보량을 중심으로 정보 문제를 접근한다. 반면 경제학, 철학, 사회학 등의 분야에서는 정보의 질적 측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다. 이른바 의미론적 관점에서 정보 문제를 접근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일상적인 관점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이는 앞에서 언급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정보는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1) 일상적인 관점에서의 정보 2) 의미론적 관점에서의 정보 3) 통신이론적 관점에서의 정보.
과학적 관점에서 정보는 보통 3)에 해당하는 정보를 지칭한다. 이것이 바로 섀넌이 기념비적인 논문에서 다루었던 정보다. 그런데 여기에는 “의미”가 완전히 배제되어 있기에 <정보=데이터+의미>라는 일반적인 정의와는 맞지 않는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섀넌의 정보이론은 데이터의 전송에 관한 이론, 즉 통신이론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주로 3)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정보의 질적 측면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정보를 이용해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사실에 비추어 자명하다. 질적으로 우수한 정보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도움이 될 것이기에 그만큼 의사결정자의 효용(복지)을 증가시킬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보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불확실한 대상을 명료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양적이든 질적이든 정보는 일종의 서비스로 간주되어야 한다. 만질 수 있는 재화가 아니라는 의미다. 이런 정보는 종류가 무엇이든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갖는데 이것을 다음과 같이 분해해서 파악할 수 있다.
inform = in + form
이런 해석에 따르면 정보란 “모호한 상태에 형상(form)를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 확률이 관련된다.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과 시스템 철학자 에르빈 라즐로(Ervin Laszlo)는 정보에 대한 이런 해석을 특별히 강조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보에 대한 이런 해석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에까지 소급된다.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란 바로 지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원형으로서 현실에 존재하는 실체에 형상을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데아를 안다는 것은 곧 정보를 얻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컨대 책상은 책상 이데아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물체인 것이다. 이 해석은 “의미”를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여러 분야에 정보를 폭넓게 적용할 수 있게 해준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는 정보의 정의라 할 수 있다.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에서는 이런 정보의 의미론적 측면을 근거로 정보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이와 달리 통신이론, 즉 정보이론은 오직 정보의 양적 측면만을 중시해왔다. 아무튼 정보는 물리학(양자정보이론), 생물학(생물정보학), 철학(정보철학), 사회학(정보사회학) 그리고 경제학(정보경제학)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모든 분야를 관통하는 하나의 정보이론을 확립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암호·잉여성 및 정보의 단위
정보를 논하는 경우 항상 따라다는 것이 암호다. 정보와 암호는 모두 메시지의 형태로 발신자(sender)로부터 수신자(receiver)에게 전달된다. 해독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암호화된 메시지에는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정보가 숨겨져 있다. 이 책의 원제목 『Decoding the Universe』는 우주 자체가 거대한 암호체계로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므로 이를 해독해 정보를 알아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아마 그래서 우리말 제목을 “만물해독(萬物解讀)”으로 정했을 것이다. 인간은 현재로서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우주가 보내는 암호를 수신하고 해독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암호는 메시지 안에 진짜 정보를 감춰 은밀하게 수신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정보를 안전하게 상대방에게 보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역사에는 암호가 적에게 노출되어 상황이 역전된 사례들이 적지 않다. 가장 널리 알려진 사례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서와 같이 앨런 튜링(Alan Turing)을 중심으로 구성된 암호해독팀이 난공불락으로 알려진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Enigma)를 해독해 2차 세계대전 전세(戰勢)를 역전시킨 일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정보의 생명은 전송에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정보에 물리적 실체를 부여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는 그 한 조각 한 조각이 총알의 무게처럼 실재적이고 포탄의 파편처럼 만질 수 있는 대상이었다. 또한 한 조각 한 조각의 정보는 화약으로 가득 찬 수송선처럼 위험한 공격 목표였다. 정보의 이러한 기본 성질은 우리가 받아들이기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정보는 질량, 에너지, 또는 온도처럼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18쪽)
이와 같이 암호학과 물리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를 담은 메시지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안전하게 전송하는 것이다. 이때 메시지의 의미와 전송 가운데 의미를 배제하고 오직 전송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섀넌의 정보이론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섀넌은 논문에서 이 점을 분명해했는데 이는 일반적인 정보이론(정확히 말하면 통신이론)을 구축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왜냐하면 개별 메시지에 담긴 정보의 의미는 주관적이므로 이를 감안한 일반적인 이론모형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정보이론은 전적으로 공학·물리학 영역으로 한정되었던 것이다. 이는 인류문명의 진화에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제공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렇게 정의된 정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이 잉여성(redundancy)이다. 섀넌은 논문에서 상세히 설명했을 정도로 잉여성은 중요한 개념이다. 그가 벨연구소의 연구원으로 관심을 가졌던 과제는 일정한 용량의 전화선(구리 케이블)을 이용해 잡음(noise)을 최소화하면서 가급적 많은 메시지를 전송하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메시지에서 잉여성 부분을 제거한 나머지가 정보에 해당된다. 이는 정보량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타당한 주장이다. 오늘날 대용량 파일을 압축해서 효율적으로 전송하는 기술도 바로 잉여성에 대한 섀넌의 연구 결과에 기초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수학적인 기호를 사용하지 않고 잉여성 개념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시지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잉여성이기 때문이다. 잉여성은 문장이나 메시지가 약간 왜곡되거나 훼손되었을 때도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여분의 실마리이다.”(22쪽) 그러면서 저자는 잉여성의 예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제시했다.
J-st tr- t- r—d th-s s-nt-nc- (Just try to read this sentence)
이 문장에는 모음이 모두 빠져있지만 문장을 해독하고 의미를 알아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메시지의 의미는 메시지의 일부가 제거되어도 그대로 유지된다. 이때 제거된 부분이 메시지의 잉여성에 해당된다. 이것은 메시지를 전송하는 비용 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메시지를 최대한 압축해 전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어의 경우 알파벳의 사용 빈도, 배열 방식에 일정한 규칙이 있으며 이로 인해 잉여성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대부분의 메시지 전송에 공통적이다. 그렇기에 잉여성은 정보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어서 저자는 잉여성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문자의 열에서 잉여 부분을 모두 제거하고 나면 남는 것은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더는 압축할 수 없는 핵심이다. 모든 문장에서 심장부에 자리 잡은 중심적으로 제거할 수 없는 어떤 것, 이것이 바로 정보다.......정보와 잉여성은 상보적이다. 문자 또는 기호의 열에서 잉여 부분을 제거하는 남는 것이 바로 정보다.”(27쪽) 따라서 “메시지 = 정보 + 잉여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의는 의미론적 관점의 정보와는 무관하고 오로지 양적 관점의 정보에 해당된다. 이런 이분법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든 통합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잉여성을 배제한 가운데 정보를 측정하려면 기본 단위가 필요하다. 이 부분에서 섀넌은 단순하면서도 대단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이른바 정보의 단위인 비트(bit)를 간결하게 정의한 것이다. 섀넌이 정의한 1비트는 동일한 확률을 가진 두 개의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나타내는 단위이다. 예컨대 앞면 또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반반인 동전을 던지는 경우 무엇이 실현될 것인가를 알기 위해 필요한 정보량이 1비트인 것이다. 섀넌은 이런 무작위적인 메시지의 특성을 확률적으로 파악했으며 여기에 놀람(surprise) 개념을 적용했다. 즉 확률(p)의 역수를 놀람의 척도로 사용했다. 그리고 섀넌은 통신 과정에서 전송되는 정보량을 측정하는 수학적 도구로 로그함수를 이용했다. 이는 통신 과정의 특성에 근거한 것이다. 이런 섀넌의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pH는 앞면이 나올 확률, pT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다. 그리고 로그함수의 밑수는 2진법에 따라서 2이다.
1) 섀넌 정보(H1): 공평한 동전(X1)의 경우(pH = pT = 0.5)
앞면인 경우: log2(1/pH) = log2(2) = 1, 뒷면인 경우: log2(1/pT) = log2(2) =1
→ H1 = 0.5ⅹlog2(1/pH) + 0.5ⅹlog2(1/pT) = 1(bit)
이것이 섀넌이 정의한 1비트의 의미로서 섀넌 정보 또는 섀넌 엔트로피 (Shannon entropy)라고 불린다. 엄밀하게 말하면 섀넌 정보는 정보 부족(information deficiency) 또는 자료 부족(data deficiency)에 해당한다. 이 점은 다음의 사례와 비교하면 알 수 있다.
2) 섀넌 정보(H2): 편향된 동전(X2)의 경우(pH = 0.9, pT = 0.1)
H2 = 0.9ⅹlog2(1/0.9) + 0.1ⅹlog2(1/0.1)
= 0.9ⅹ0.15 + 0.1ⅹ3.32 = 0.469(bit)
3) 섀넌 정보(H3): 극단적으로 편향된 동전(X3)의 경우(pH = 1, pT = 0)
H3 = 1ⅹlog2(1/1) + 0ⅹlog2(1/0) = 0(bit)
이 세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작위적일수록 섀넌 정보량이 많다는 사실이다. 즉 정보량 기준으로 1) > 2) > 3)이 성립하는데 1)이 가장 무작위적이고 3)은 확실한 경우에 해당된다. 이런 의미에서 섀넌 정보는 정보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측정하는 단위라 할 수 있다. 즉 1)의 경우 무엇이 나올지 알기 위해서는 1비트의 정보가 필요하며, 2)의 경우에는 0.469비트만 필요하다. 반면 3)의 경우 0비트라는 것은 정보가 필요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측정되는 섀넌 정보는 모든 경우에 적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섀넌 엔트로피와 볼츠만 엔트로피
앞에서 정의한 섀넌 정보 또는 섀넌 엔트로피(H)는 일반화될 수 있다. N가지 가능한 경우가 있으며 각각의 확률은 p1,,,,,,,pN이라고 하자. 그러면 섀넌 엔트로피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H = pi Σ log2(1/pi) = - pi Σ log2 pi ≥ 0 (i=1,2,,,,,,.N)
한편 물리학에서 볼츠만 엔트로피(S)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S = kB loge W = kB ln W
(kB는 볼츠만 상수, ln는 자연로그, W는 특정한 거시상태에 상응하는 동등한 미시상태의 수)
이 두 식을 비교하면 H는 S를 일반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섀넌 엔트로피 공식에서 p1=p2......=pN = 1/N인 특수한 경우 H는 S의 형태로 전환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섀넌 엔트로피와 볼츠만 엔트로피 모두 확률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엔트로피는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집합 전체의 배열(configuration)을 확률의 개념으로 정리한 것이다. 즉, 원자로 이루어진 집합의 가장 확률이 높은 배열, 또는 우리가 언급했던 상자와 구슬의 예에서처럼 구슬을 상자 속에 던졌을 때 나올 확률이 가장 높은 결과 등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물질의 배열의 확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배열(또는 결과)의 엔트로피도 높아진다.”(83쪽) 저자는 두 개의 상자에 무작위적으로 구슬을 떨어뜨리는 간단한 실험을 통해 엔트로피 개념을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 실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엔트로피 개념과 확률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로부터 섀넌의 엔트로피와 볼츠만의 엔트로피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1,024개의 구슬을 두 상자에 떨어뜨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1,024개의 구슬을 모두 상자의 한쪽에만 떨어뜨리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해도 확률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확률은 1/21,024 = 1/10290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0에 가까운 값이며 이런 일은 우주에서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이 미시상태가 한 가지인 경우 엔트로피는 0이다. 이 예에서 엔트로피가 가장 높은 것은 각 상자에 구슬이 절반씩 떨어지는 경우다. 두 상자에 구슬이 반반씩 들어간 거시상태에 해당되는 수많은 미시상태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날 확률이 제일 높은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볼츠만 엔트로피는 상자 안에서 구슬이 놓일 수 있는 주어진 배열의 확률에 대한 척도이다. 그리고 이 사례에서도 섀넌 엔트로피를 계산할 수 있다. 예컨대 1,024개의 구슬이 모두 첫 번째 상자에 들어가는 경우는 0000........0(0이 1,024개 연이어 나오는 메시지)로 볼 수 있으며 이 경우 섀넌 엔트로피 H = 0임을 알 수 있다.
볼츠만 엔트로피 개념과 관련된 대표적인 논란은 멕스웰의 악마(Maxwell’s demon)라 불리는 제임스 맥스웰이 제기한 사고실험에서 비롯되었다. 이와 관련된 논란의 핵심은 볼츠만의 주장과는 반대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고 이로 인해 볼츠만 자신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것이 바로 섀넌의 정보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정보이론을 적용하면 맥스웰의 악마라 할지라도 엔트로피의 증가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애석하게도 볼츠만은 생전에 맥스웰의 악마를 극복하지 못했다. 사적인 투쟁에서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그러나 맥스웰의 악마를 물리친 것은 엔트로피가 아니었다. 바로 정보였다.”(99쪽) 이것은 물리학에서도 정보가 가장 기본적인 개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상대성이론·양자역학의 정보적 해석
이 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현대 물리학의 양대산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섀넌 정보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필자는 이와 관련된 저자의 논의를 겨우 이해하는 정도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든 반론을 제기할 형편은 못된다. 그럼에도 저자의 논의에 충분히 공감하는 이유는 물리학자 존 휠러가 말했듯이 “모든 것은 정보다”라는 명제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다양한 자연현상들과 인간의 의식세계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현상들(예컨대 전생 기억, 임사체험, 유체이탈 등)을 포함한 모든 현상들을 휠러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더 일관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시기상조다.
아무튼 저자는 존 휠러가 제시한 명제를 뒷받침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저자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다. “정보의 법칙은 이미 열역학의 역설들을 해결했다. 사실은 정보이론이 열역학을 통째로 삼켜버렸다. 열역학의 문제들은 열역학이 사실은 정보이론의 특수한 사례라는 것을 인정하면 해결된다. 이제 그 정보가 물리적이라는 것을 알았으므로, 정보의 법칙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우주의 법칙을 파악할 수 있다. 모든 물질과 에너지가 열역학의 법칙을 따르듯이,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정보의 법칙을 따른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153쪽) 저자는 생명 현상도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도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마디로 존 휠러가 말한 명제는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관점에서 상대성이론을 해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양자이론이나 상대성이론 모두 엔트로피와 정보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두 가지 혁명적 이론에 불을 댕긴 앨버트 아인슈타인은 일찍이 엔트로피와 열역학, 그리고 통계역학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사실, 아인슈타인이 시작한 혁명 중 첫 번째 이론인 상대성이론은 정보의 교환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 이 이론의 핵심 사고는 정보는 빛의 속도보다 빨리 이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208쪽) 바로 이 점이다. 정보는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나 물체의 크기가 변할 수 있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의 기본 원리도 이러한 정보의 전달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관찰 내지 측정이라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정보를 얻으려는 것이고 이것은 시공간을 통한 정보의 전달이라는 물리적 과정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보는 상대성이론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빛과 같은 속도로 이동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사고실험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만약 누군가 점점 빠른 속도로 이동해 빛의 속도에 근접한다면 시간은 점점 느리게 가고 물체는 점점 작게 수축될 것이다. 그렇지만 정지해 있는 관찰자나 빛에 근접한 속도로 움직이는 관찰자나 모두에게 빛은 초속 30만 킬로미터로 움직인다. 얼핏 보기에 모순된 이런 현상들을 일관되게 설명하는 방법은 각 관찰자에게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지각(우리가 주변 환경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정보)과 현실을 분리시킬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관찰자가 어떤 것으로부터 정확한 정보(이를테면 속도위반 차량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가)를 얻는다면 그 정보는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단서가 붙는다. 그의 관점에서 옳다는 것이다.......질량, 길이, 속도, 시간에 대한 문제의 답이 서로 상충된다고 해도 모든 관찰자의 정보가 다 똑같이 옳다.”(232쪽)
이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보충 설명한다. “서로 다른 관찰자들은 같은 현상에 대한 같은 문제를 두고 서로 다른 답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상대성의 법칙은 정보가 한 관찰자에게서 다른 관찰자에게로 전달되는 과정을 지배하며, 서로 다른 관찰자들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는지를 말해준다.”(233쪽) 우리가 어떤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든 여기에는 반드시 정보 전달이라는 물리적 과정이 개입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정보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때 정보는 빛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는 사실과 빛의 속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일정하게 측정된다는 사실로 인해 상대성이론은 정보이론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저자는 같은 맥락에서 양자역학도 본질적으로 정보이론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사실 이에 대해서는 상대성이론의 경우보다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다. 예컨대 두 개의 상보적인 물리량(위치와 운동량, 에너지와 시간, 빛과 파동 등)을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가 정보에 관한 이론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측정을 통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얻을 있지만 상보적인 두 개의 물리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위치와 운동량은 행렬 곱셈에서 교환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관측 가능량들이다. 물리학 용어로 말하면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상보적이다. 하이젠베르크 이론의 수학은 한 쌍의 상보적 관측 가능량 중 한 가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려고 하면 나머지 한 가지에 대한 정보를 잃는다는 것을 암시한다.”(286쪽)
그밖에도 저자는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을 포함한 양자역학의 기이한 현상들이 모두 정보의 문제임을 역설한다. 양자중첩과 관련된 결맞음(coherence)이나 결어긋남(decoherence) 현상 모두 정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중첩이 발생하지만 거시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은 이유는 결어긋남 때문인데 이것은 자연이 그 물체와 끊임없이 빛 알갱이(광자)를 통해 정보를 교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의식 있는 인간만이 측정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도 항상 측정 행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깊고 깊은 진공 속에서라도 입자는 생겨났다 사라지며, 우리가 관찰하는 공간의 영역을 좁히면 좁힐수록 그 안에는 더 많은 입자가 있으며, 그 입자들의 수명은 더 짧고 에너지는 더 크다. 이 입자들은 끊임없이 어딘가에 부딪치고 튕겨 나오면서 자신이 만났던 물체에 대한 정보를 가져다가 환경 속으로 그 정보를 퍼뜨린다. 그리고는 진공 속으로 다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진공 요동이다.”(342쪽) 필자가 이해하고 있는 바에 의하면 이 진술은 기본적으로 옳다. 이른바 영점장(zero-point field)이라고 불리는 양자 에너지장에서는 이런 일이 항상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런 현상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것이 물리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수용하는 해석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공감한다. 인간만이 유일무이한 정보 전달 및 수신자는 아닌 것이다. 자연을 배제할 수 없다.
정보에 대한 이런 해석은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뒷받침한다. 슈뢰딩거 자신 파동방정식을 만들어 양자역학의 확립에 크게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양자중첩이나 양자얽힘 현상에 대한 코펜하겐 해석에 반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역설를 통해 코펜하겐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정보의 관점에서 보면 이 역설도 해소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렇게 꾸준히 일어나는 측정은 양자 영역의 규칙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결과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이라는 비밀도 여기서 생겨난다. 따라서 양자이론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중 하나에 대한 대답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왜 미시 세계의 물체는 거시 세계의 물체와는 다른 성질을 갖는가? 왜 원자는 중첩 상태에 있을 수 있는데 고양이는 그럴 수 없는가? 그 대답은 바로 ‘정보’다. 양자 정보를 환경 속으로 전달-자연에 의한 계속적 측정-하는 행동이 고양이와 원자를,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를 다르게 만든다.”(344쪽)
이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추가적으로 설명한다. “고양이를 이루고 있는 원자 모두가 광자를 방출하지 못할 확률은 사실 0퍼센트다. 물체가 크면 클수록 그 물체가 복사를 통해 정보를 흘리는 것을 막기는 어려워진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물체가 작을수록, 덜 복잡할수록, 차가울수록, 결깨짐이 줄어든다. 물체가 크고 복잡할수록, 뜨거울수록, 그 물체를 격리시키려는 노력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주변 환경 속으로 확산되는 그 물체에 대한 정보는 커진다.......이렇게 작은 입자의 결깨짐을 막는 것도 그토록 어렵다면 하물며 상자 속 고양이처럼 크고 따뜻하고 복잡한 물체의 결깨짐을 막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렵겠는가. 이것이 바로 미시적·양자적 세계와 거시적·고전적 세계의 기본 차이다.”(351쪽) 결국 우리가 관찰하는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정보의 전달 및 교류라는 정보와 관련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보는 고전적인 관점에서는 섀넌의 정보이론에 의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섀넌의 정보이론을 발전시킨 양자정보이론을 통해 미시 및 거시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 미래의 정보: 큐비트·양자컴퓨터·양자정보이론
필자가 알기에 양자정보이론은 요즈음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분야다. 양자정보이론에서 정보의 기본 단위를 큐비트(qubit)라고 한다. 이는 양자중첩 현상을 감안해 고전적 정보이론의 비트 개념을 확대시킨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컴퓨터가 정보를 조작하듯이 양자 컴퓨터는 양자 정보를 조작한다. 양자이론에 따른 법칙들의 난해한 미스터리까지 고려해 섀넌의 이론을 확장한 것이다. 양자 정보는 일반적인 정보보다 훨씬 강력하다. 양자 비트는 0과 1 같은 섀넌의 고전적 정보가 지니지 못한 성질을 부가적으로 가지고 있다. 양자 비트는 여러 부분으로 갈려져서 방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순간 이동할 수 있으며, 동시에 상호 모순된 연산을 처리할 수 있다.”(304쪽) 이것이 바로 양자중첩 현상을 이용한 양자정보이론의 핵심이다.
고전적 정보이론에서 비트는 “0또는 1”을 측정하는 단위였지만 양자정보이론에서 큐비트는 “0과 1”을 측정하는 단위다. 여기서 “0과 1”은 어느 확률의 조합으로도 가능하므로 이를 이용하면 과거에 비할 바 없이 막강한 성능을 가진 컴퓨터, 이른바 양자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분야를 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말을 아끼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양자 정보와 관련해 저자는 단지 양자 컴퓨터와 같이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개발한다는 차원을 넘어 더 근원적인 차원에서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전망한다. 필자의 생각에도 이 대목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 책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우주 만물을 해독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정보란 바로 양자 정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양자 현상을 이해하는 열쇠를 쥔 양자 정보가 이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없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양자 정보가 양자 세계의 신비를 푸는 열쇠라는 점이다........양자 정보와 양자 컴퓨터 덕분에 실험물리학자들과 이론물리학자들은 양자 세계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양자 정보가 고전적 정보에 비해 물리법칙의 기반에 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있다. 사실 양자 정보는 아원자 세계와 거시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는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305쪽)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저자는 마치 존 휠러의 명제를 입증이라도 하는 듯한 자세로 만물의 배후에는 정보 및 양자 정보의 문제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런 입장을 생명 현상과 블랙홀 문제로까지 확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진정 정보의 관점에서 우주 만물을 해독하려고 한 셈이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린다. “우주는 정보위에서 움직인다.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도 자연은 끊임없이 측정을 시도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그 정보를 주변 환경 속으로 전파한다. 별이 태어나고, 빛나고, 죽어가는 과정에서 별의 정보는 은하 전체로 흩어진다.”(404쪽)
그런데 동시에 저자는 정보의 관점에서 우주 만물을 해독하는 것이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우주에 대한 우리의 그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가장 작은 스케일에서 보자면 아직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했으며, 가장 큰 스케일에서 보자면 우주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보이론으로는 아직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실마리는 얻을 수 있다. 정보는 실험적으로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우주의 영역-블랙홀의 내부-을 엿볼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구조를 드러내 보여준다.”(405쪽)
필자가 보기에 저자는 자신의 최고 역량을 발휘해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리고 정보가 물리적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저자는 이를 우리에게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보는 양적, 질적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다. 물리학의 특성상 정보의 질적 측면을 다루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의식(consciousness) 문제를 동시에 다루어야 한다. 의식이란 결국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과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자각(aware)하는 것이며, 이는 곧 정보를 수용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양자물리학자들이 주장했듯이 양자역학은 이 부분에서도 상당히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양자역학이 의식의 본질에 대한 가장 논리적이고 일반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정보의 질적 측면에 대한 이해에도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 → 의식 →과학과 영성이라는 인과의 연쇄에 존재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실마리가 풀릴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는 이 중요한 문제를 이해하는 단초는 정보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