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오 토노니의 《파이(Phi)》
저자: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
역자: 려원기
출판사: 쌤앤파커스(2017)
차례
프롤로그
1. 갈릴레오의 꿈
1부 증거―자연의 실험
2. 서론 3. 대뇌 4. 소뇌 5. 2명의 맹인화가
6. 안에 갇혀버린 뇌 7. 기억을 잃어버린 여왕 8. 나누어진 뇌
9. 갈등하는 뇌 10. 사로잡힌 뇌 11. 잠든 뇌
2부 이론―사고 실험
12. 서론 13. 갈릴레오와 포토다이오드 14. 정보
15. 갈릴레오와 카메라 16. 통합된 정보 17. 갈릴레오와 박쥐
18. 어둠을 보다 19. 어둠의 의미 20. 빛의 궁전
21. 퀄리아의 정원
3부 적용―의식이라는 우주
22. 서론 23. 해질녘I 24. 해질녘II 25. 해질녘III
26. 새벽녘I 27. 새벽녘II 28. 새벽녘III 29. 일광I
30. 일광II 31. 일광III
에필로그
32. 3가지 늦은 꿈
■ “의식과 정보의 관계”에 대한 첨단 이론 소개
저자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는 현재 미국 위스컨신 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학자로서 수면 연구와 의식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저자는 초기에는 수면 연구에 집중하다가 수면 상태에서 의식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의식 연구에 매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저자는 일찍부터 197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생물학자 제럴드 에덜먼(Gerald Edelman)의 지도하에서 의식의 신경상관물(neural correlates of consciousness)에 관해 연구하였다.
당시 이 분야를 선도했던 학자는 이중나선을 공동 발견한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그가 발탁한 젊은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Christof Koch)였다. 필자가 어느 기사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크릭은 자신의 이론을 지지하는 에덜만과 자주 교류하였는데 이를 통해 토노니와 코흐도 자연스럽게 학문적 교류를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계는 지금까지 이어져서 코흐는 토노니의 통합정보이론(Integrated Information Theory;IIT)을 지지하는 차원을 넘어 공동 연구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제안한 의식에 대한 통합정보이론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책에는 통합정보이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통합정보의 크기를 측정하는 수학적 방법론과 관련된 내용이 거의 없다는 점이 다소 의아하다. 아마 일반인들이 이 이론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가운데 이 이론의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저자 나름대로의 의도가 깔려있지 않나 짐작할 뿐이다. 그러다보나 정작 통합정보이론의 핵심 메시지에 대한 설명은 턱 없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 이것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뇌의 기능이나 역할에 관련된 설명은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정작 통합정보이론이 어떻게 의식의 본질을 이해하는 가장 과학적인 이론으로 간주될 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이 필자의 기우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해외 서평 가운데도 이런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한 것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선 무엇보다도 필자는 최근 이처럼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책을 접한 적이 없다. 책 내용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에 이것은 한 권의 책으로서 매우 품위 있게 만들어졌다는 점은 주목받을 만하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말로 번역된 책이 아니라 영어로 출판된 원전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말 번역 책은 비용 문제로 때문인지 원전에 수록되어 있는 그림과 사진의 선명도와 질감을 살리지 못했다. 필자는 두 책을 대비하면서 문화적 수준의 차이를 목격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테의 《신곡》 형식을 모방했다는 것을 누구나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아마 같은 이탈리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는 의미에서 이런 형식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 베아트리체, 그리고 베르나르두스가 각각 지옥, 연옥 및 천국을 여행하는 단테의 안내자 역할을 했듯이, 이 책 1부에서는 프란시스 크릭, 2부에서는 앨런 튜링, 그리고 3부에서는 찰스 다윈이 여행자인 갈리레오 갈릴레이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이들은 실명이 아니라 가명으로 등장하는데, 누구라도 이들이 앞에서 거론한 세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이 사항은 각 장의 말미에 있는 <주>에서 저자는 마치 제3자가 등장해 각 장의 내용 가운데 미진한 부분에 대해 추가 해설하는 것 같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점이다. 이는 다른 책에서 찾아보기 힘든 방식으로 신선한 인상을 준다. 이런 형식적인 면을 포함해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적 소양이 만만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전에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 에릭 켄델(Eric Kandel)의 『통찰의 시대』를 읽으면서 미술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이것을 뇌의 기능과 연결시키는 능력에 경탄한 적이 있다. 그때 가졌던 느낌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빼어난 글 솜씨와 인문학적 소양, 그리고 의식에 관한 저자의 진지한 학문적인 태도가 잘 어우러진 책이다.
■ 의식은 통합된 정보인가?
저자가 의식과 관련해 개발한 통합정보이론(IIT)에 대해 이 책에서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소개 대신, 다분히 서술적인 방식으로 핵심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그치고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표현이 그러하다. “통합된 정보란, ‘부분들을 뛰어넘는 전체’에 의해 구별 가능한 정도를 나타내며, 기호는 Φ이다. 복합체란 Φ가 최댓값을 가지는 덩어리이며, 그 속에 하나의 의식이, 체험하는 단일한 실체로써 의식이 깃든다.”(248쪽) Φ는 저자가 제시한 통합된 정보의 양을 측정한 수치를 나타낸다.
그러면서 갈릴레오의 말을 빌려 통합정보이론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의식의 존재 유무 그리고 의식이 생겨나는 위치는 신경세포들의 어떤 속성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경들이 구성하는 복합체에 의해 만들어진 통합된 정보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그는 떠올렸다. 그렇다면 아마 의식의 특정한 방식-그 질감-은 복합체 내 세포들의 어떤 속성이 아니라, 정보가 어떤 식으로 생성되느냐에 따라 결정되리라, 그의 생각은 그러했다.”(260쪽) 이 책에서 갈릴레오는 저자의 분신에 해당된다. 갈릴레오의 탐구는 곧 저자의 연구 과정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통합된 정보가 바로 의식이라는 결론으로 유도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상당한 비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어 자신의 이론을 옹호한다. “비 한 방울 속의 분자들은 공기 바깥에 있는 분자들보다 더 강하게 상호작용하고 있기에 표면이 만들어집니다. 그 한 방울은 단일한 개체이며 경계가 지어져 있습니다. 만약 두 빗방울이 접하게 될 경우, 둘은 튕겨나가면서 여전히 분리된 채로 있거나, 서로 합쳐져 더 큰 하나의 빗방울을 이루게 됩니다. 의식도 아마 이와 비슷할 겁니다. 의식은 통합된 정보가 최대에 이르는 한 시스템 속에, 자신만의 물방울 속에 깃들어 있습니다.”(243쪽) 통합정보이론은 원래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수리 모형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 이 이론을 소개하는 입장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해서 인지 이 정도의 설명이나 은유로 그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설명을 통해 이 이론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다고 수리 모형을 이용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적어도 일반인들에게 알린다는 면에서, 이 이론은 딜레마에 처해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그동안 살펴본 바에 의하면 통합정보이론은 의식의 본질과 정도를 설명하는 나름 매우 정교한 과학적 이론이다. 저자가 다른 책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에서 간략하게 소개했듯이 이 이론은 오래된 측정 기술인 경두개자기자극법(TMS)과 뇌파도(EEG)를 업그레이드한 후, 이를 활용해 뇌에 자극을 보내고 되돌아오는 메아리(echo)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의식의 상태나 정도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이런 면에서 이 이론은 ‘의식을 이용해 의식을 연구하는 것과 의식의 주관적 속성’이라는 의식 연구의 근본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통합정보이론의 타당성 유무를 떠나 과학적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다른 분야와 달리 의식의 과학적 모형을 만드는 것은 정말 어려운 작업이라는 데 공감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신비체험을 한 현자들의 의식 상태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객관적 해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관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의식의 과학적 모형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이를 바탕으로 일반대중에게 의식 문제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필자는 저자의 통합정보이론이 “의식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를 제공할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언급하고 싶다, 하나는 저자가 사용하는 정보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의식과 정보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다. 우선 저자는 정보이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로드 섀넌이 제안한 정보 개념, 즉 비트(bit)를 이용해 의식의 정도를 측정한다. 그런데 섀넌 자신이 분명히 밝혔듯이 그가 말하는 정보 개념은 어떤 의미도 배제한 순전히 공학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이 개념을 이용해 정상적인 사람이든, 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든, 아니면 개나 고양이, 심지어 인터넷이나 컴퓨터 등이 보여주는 통합된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주체들로부터 측정된 Φ, 즉 파이(phi)는 의식의 정도를 측정하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의식의 질적 측면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줄 것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두 사람 A, B의 Φ를 측정했더니 같은 값이 유도되었다면, 이것은 두 사람이 질적으로 같은 의식 상태에 있다는 의미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자를 비롯해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들이 이 이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둘째, 정보는 이것을 필요로 하는 의식 있는 존재(예컨대 인간)를 전제로 하는 경우에만 성립한다. 이것은 물리학자들이 미세조정된 우주를 설명할 때 흔히 거론하는 인류원리(anthropic principle)와 유사한 관점이다. 만약 우주를 관찰하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주는 과연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는 일찍이 “숲에 나무가 쓰러지는데 아무도 없다면 과연 ‘쿵!’하는 소리가 날 것인가?”라고 경험적 관념론자인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가 의문을 제기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정보란 오직 이를 필요로 하는 의식 있는 주체를 가정하는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무생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의식을 정의하고 본질을 설명하려 한다. 이는 순환론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저자는 기존의 의식 연구가 환원주의적으로 신경세포로부터 출발해서 신경세포 집단에 대한 연구, 그리고 최종적으로 의식의 창발 과정을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기에 문제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자신은 역으로 다양한 의식 상태로부터 출발해 이와 관련된 신경 메커니즘의 물리적 속성을 파악하고 각각의 정보적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의식의 출현을 설명하는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귀납적으로 의식의 본질을 파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바이다.
그런데 정보는 언제, 왜, 그리고 누가 필요로 하는가? 정보는 의식 있는 존재가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데 필요한 요소다, 이것은 박테리아 같은 단세포동물부터 사람과 같은 고등동물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이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통합적으로 측정해 의식의 정도를 측정한다는 생각은 순환론의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부연하자면 의식적 존재 → 정보 획득 → 선택 및 행동 → 의식 강화 → 정보 획득으로 이어지는 순환 고리가 형성된다. 정보보다는 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의식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정보를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는 다분히 역설적이다. 이른바 자기참조 역설(self-referential paradox)에 해당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런데 저자는 이 점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이 필자의 무지의 소치인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철학자 존 설(John Searle)이 저자의 통합정보이론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신경과학자 크리스토프 코흐의 저서에 대한 리뷰에서 이 이론이 이런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 점에 비추어볼 때 필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 통합정보이론과 범심론(汎心論)
저자는 이 책의 1부에서는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프랜시스 크릭의 안내를 받으면서 뇌의 여러 가지 기능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예컨대 분리뇌(split brain)의 경우 두 개의 자아가 등장한다는 것이 한 가지 예이다. 그리고 2부에서는 앨런 튜링과 클로드 섀넌을 등장시켜 통합된 정보의 관점에서 의식을 측정하는 것이 의식 문제에 대한 과학적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한다. 예컨대 이들의 안내를 받던 갈릴레오는 다음과 같은 생각에 이른다. “그래서 갈릴레오는 한 가지 단순한 생각에 이르렀다. 뇌 속에는 구분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대안들의 레퍼토리가 있기에 나에게 의식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포토다이오드에게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거나 무한히 미미할 것이다. 의식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대신 숫자로서 이를 벌충한다.”(208쪽)
저자가 비유적으로 자주 인용하는 포토다이오드(디지털 카메라에서 빛에 반응하는 부품)와 같이 빛의 존재 유무에 반응하는 주체는 1비트의 정보만을 처리할 뿐이다. 기본적으로 두 개의 상태 중 하나를 인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같이 복잡한 시스템을 가진 존재는 무수히 많은 상태들 가운데 하나를 의식하면서 나머지는 모두 배제해 버린다.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배제 원리(exclusion principle)이다. 따라서 섀넌의 정보이론에 의하면 무수히 많은 상태들 중 하나가 드러나게 하려면 많은 정보가 요구된다. 그렇기에 이런 경우 통합된 정보의 양은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의식의 정도를 반영한다.
따라서 저자에 의하면 통합된 정보를 측정하는 대상은 인간과 같은 유기체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렁이와 같은 하등 동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바위 같은 무생물에도 적용된다. 물론 바위의 Φ는 0으로 측정될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나 인터넷은 어떠한가? 컴퓨터에 따라서는 인간의 두뇌 못지않게 많은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그렇지만 Φ는 낮게 측정될 것이다. 그 이유는 컴퓨터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는 통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무관한 정보가 아무리 많이 저장되어 있어도 Φ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가장 많은 신경세포를 갖고 있는 인간의 소뇌가 사실상 의식과는 무관한 이유이다. 소뇌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독립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저자는 통합정보이론이 나름 일관된 논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실험을 통해 관찰한 데이터 수치, 즉 Φ의 크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수용하다보면 자연스럽데 생물, 무생물을 포함해 우주만물의 의식 상태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른바 범심론(汎心論)이다. 필자가 보기에 저자나 크리스토프 코흐는 처음부터 통합정보이론이 이런 방향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통합정보이론의 정당성을 유지하려면 현대판 범심론으로 해석되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3부에서 갈릴레오는 찰스 다윈의 안내를 받으면서 의식의 진화적 측면을 탐구한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지도교수였던 신경생물학자 제럴드 에덜만이 주장한 신경다윈주의(Neural Darwinism)에 입각해서 의식의 진화를 탐구하려는 것 같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통합정보이론이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그런데 필자는 이 부분에서 저자가 통합정보이론이 범심론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신경다윈주의의 새로운 버전으로 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토프 코흐는 인터넷이란 수많은 컴퓨터들의 연결망으로 구성된 복잡계로서 하나의 컴퓨터를 하나의 신경세포로 간주한다면, 인터넷도 의식을 가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양자(proton)는 쿼크(quark)로 구성되어 있으면서, 쿼크에는 없는 양전하라는 속성을 가진 창발적 실체이므로 양자의 Φ도 0은 아닐 것으로 본다. 이런 논리는 음전하를 띤 전자에도 적용된다. 비록 Φ의 크기는 매우 작지만 말이다.
필자는 통합정보이론이 의식 연구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이미 한 물간 범심론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나 크리스토프 코흐는 기본적으로 환원주의자이면서 과학적 물질주의를 대변하는 주류 신경과학자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심혈을 기울여 제시한 통합정보이론이 예기치 않게 자신들의 과학적 방법론을 부정할 수도 있는 결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전적으로 여기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릭스토프 코흐의 경우에는 많은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코흐가 출판한 책이나 미디어와의 인터뷰, 그리고 최근 달라이 라마와의 대담에서 코흐는 범심론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단한 결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의식의 어려운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만약 범심론이 과학적으로 인정받는다면 이는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의식이란 인간의 두뇌에 한정된 국소적인 정신 작용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 퍼져 있는 기본적인 구성 요소임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물질이나 에너지 못지않게 의식은 우주의 기본 요소에 해당된다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물리학자 존 휠러(John A. Wheeler)가 “만물은 정보다(Everything is information)”라고 선언한 것과도 연결된다. 통합된 정보가 곧 의식이라는 명제는 범심론을 수용하는 경우 비로소 의미를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이 대목에서 코흐와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저자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은 뇌와 함께 태어나, 파릇파릇한 신경들의 연결과 동시에 자라나고, 퀄리아의 형상을 꽃피우는 골격을 가지기 위해 가지치기를 하고서는, 뇌와 더불어 늙어간다. 푸르렀던 수관이 시들어 뇌가 말라버릴 즈음이면 영혼도 곧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그렇다. 의식이 물질로 환원될 수는 없다. Φ는 환원 불가능한, 존재하는 가장 본질적인 것이며, 정말로 실재하는 유일한 것이다. 하지만 의식은 물질에 의존하는 바, 만일 뇌를 도려낸다면 영혼 역시 무너지리라.”(347쪽) 저자의 입장이 어떻게 바뀔지 두고 볼 일이다.